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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힘 Jun 15. 2023

다시 찾아온 몹쓸 병

'그래 안 아프면 이상하지'

심장이 덜컹. 한 번씩 불규칙하게 삐걱 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최근에 시작한 수영이 무리가 되었나 생각했다. 그러다 몸이 간지럽기 시작했다. 설마 했는데 눈이 떠지지 않을 정도로 뻑뻑함을 느끼자마자 올게 왔구나 확신했다.


'그래 아파야 정상이지.'

체감 상 이미 난 녹아 없어졌어야 할 것 같은데 이 정도면 다행이다 싶다.


4년 전 둘째를 낳고 아이가 6개월이 되었을 때 머리가 깨지도록 아프기 시작했다. 속이 울렁거렸고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었다. 그 무렵 갑자기 차를 사게 되어 운전연습을 시작한 때라 너무 긴장을 해서 그런가 싶었지만 점점 기운이 빠지기 시작했다. 6개월인 딸을 들어 올리기 힘들 정도로. 그 작은아이를 안고서 땅을 짚지 않고는 일어나질 못해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 조금씩 끌고 옮겼었다. 불현듯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위암인가? 큰 병인가? 나 죽으면 우리 애들 어쩌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 와중에 실비가 없어 뭐라도 일단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급히 실비 보험에 가입하고 혹시 몰라 조금 버티다 병원에 갔다.   


위 내시경부터 받았다. 위염은 있지만 큰 이상은 없어 갑상선 초음파를 해보자고 하셨다. 초음파 상 갑상선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하여 피검사를 해두고 돌아왔던 다음 날, 의사 선생님께서 직접 전화를 주셨다. 지금 바로 병원에 올 수 있느냐고.

 

갑상선 항진증 수치도 높은데 간수치가 너무 높아 당장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라고 하셨다.

나는 그 와중에 아이들 때문에 입원은 무리라고 했다. 내가 아프다 해도 아이들을 봐줄 남편이 아니니까.


입원을 무조건 해야 하는 게 아니라면 일단 통원 치료를 하겠다고 했다.

일단은 간과 갑상선 항진증 약을 처방받고 돌아가 컨디션이 많이 안 좋으면 응급실이라도 가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 돌아왔다. 치료는 대학병원으로 다니라며 써 주신 소견서와 함께.


그 당시 맥박이 너무 빨라 방치하면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어 위험하다 했고 다리근육이 다 빠져서 후들거렸다. 몸무게는 순식간에 7킬로가 빠졌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눈이 말라붙어 안 떠지는 느낌을 받고서 눈까지 잘못되는 줄 알고 너무 무서웠다. 샤워를 하면 이유 없이 몸이 간지럽기 시작해서 밤늦도록 잠 못 들고 피가 나도록 긁어댔다.

알고 보니 이 모든 게 갑상선항진증 증상이었다.


다시 정상수치가 되기까지 메티마졸 4알로 시작해 1알로 줄여 끊기까지 2년이 걸렸다.

그리고 약 끊은 지 1년 만에 남편으로 인한 최대치 스트레스와 함께 갑상선 항진증이 다시 찾아왔다.


요 근래 시도 때도 없이 툭하면 눈물이 나던 게 갑상선 호르몬 때문이었다.

첫째 임신, 둘째 임신, 그리고 두 번째 갑상선 항진증, 그렇게 네 번째 호르몬의 노예가 되었다.


'그래 멀쩡하면 이상하지.'

내 명대로 못 살고 죽겠다 싶을 정도로 못살겠더니 그래도 이 정도면 다행이다.


이젠 죽지 않고, 아프지 않고 살아있는 게 감사한 일상이 되었다.

그래도 첫 번째 발병 당시만큼 아프지 않은 건 간수치가 정상인 덕인가보다.


심장이 빨리 뛰고, 눈이 건조하고, 온몸이 간지럽고, 손이 떨리고, 피곤하고, 눈물 나고 증상이란 증상은 가지가지 다 하지만 이제 뭐 이런 것쯤이야.


'근데 번엔 살 빠지는 거 빼고 다하네?'


이왕 가지가지 다 하려면 살은 왜 안 빠지나 내심 기대하는 철없는 날 보며 '아직 덜 아팠구나' 싶었다.


우리 아이들 다 클 때까지는 곁에 있어주는 게 삶의 목표가 되었고, 이렇게 근근이 얇고 가늘게라도 엄마라는 자리는 꼭 지켜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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