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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힘 Feb 29. 2024

미리 연락하고 출발하는 게 그렇게 힘든 건가요

이혼소송 이야기 2

누가 설명 좀 해줘요


나르시시스트만으로 이 모든 행동들이 설명이 되는지.


15년을 함께했는데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 못 할 일이 있다. 그건 아마 당신을 용서한다 해도 이해는 안 되지 싶다. 고로 우리는 끝내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약속 시간을 정확히 정하는 일, 출발하면서 미리 연락해 주는 일 그게 하늘이 두쪽 나도, 목에 칼이 들어와도 못 할 일인지 궁금 하기를 15년. 포기할 만도, 아니 안 궁금할 때도 됐는데 난 아직 궁금하다. 원인을 알고 나면 포기가 될는지.


당신의 이상행동이 나르시시스트 모두 설명이 되겠냐만은 이것도 '그들만의 리그'인지 묻고 싶다.


면접교섭을 할 때마다 반복되는 제멋대로 행동에 그나마 아이들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했던 이 짓도 때려치우고 싶어졌다.


결혼 생활 중에는 아이들 두고는 혼자 마트도 못 가게 했던 남의 편이었던 터라  아이들을 아빠에게 보내고 얼마 만에 맞아보는 자유시간인데 그마저도 마음은 쳐다도 보기 싫은 그곳에 따라가 있다. 나는 몸이 부서져도 맘 편한 게 최고라서 자유시간 반납하고라도 이젠 안 보내고픈 맘이 굴뚝이 됐다.


아이들 먹는 것, 입히는 것, 자는 것, 노는 것, 어느 것 하나 본인 몸뚱이 깔끔 떠는 거 말곤 아이들 케어는 관심도 없던 사람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주변에선 잠시라도 잊고 내려놓으라 지만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되나.


처음 가사조사 때 조사관이 지정해 준 면접교섭 시간은 둘째, 넷째 토요일. 오전 10시에 비양육자가 직접 와서 데려가 일요일 오후 6시에 데려다 놓는 거였다. 그 사람은 곧 죽어도 토요일에 우리를 위해 시간을 내어준 적 없고 본인 일만 보던 사람인데 그런 명령에 아마도 기가 막혔을 거다.


조사관이 쐐기를 박 듯하는 말에도 단박에 그러겠다고 속 시원한 대답은 못하는 나르라서 또 뱅뱅 돌려 말하기 또는 남에게 책임 전가하기 권법으로  "집사람이 싫다고 하면 말고요"라고 했다. 난 분명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네"라고 대답했는데 이건 또 무슨 개뿔딱지 같은 소리인지. 조사관은 딱 잘라 원고 생각 말고 피고가 동의하는지만 대답하라고 했다.


나르들은 '나는 거절하지 않는다. 단지 이 사람이 날 거절하게 만들었을 뿐!' 이런 황당한 논리를 펼친다.

그렇게 또 나에게 떠넘기려 했다.


"집사람이 뭐 그렇게 오래 데리고 있는 거 싫다고 하면 제가 가서 잠깐 보고 오고요"


"난 그런 말 한적 없잖아... 당신 생각을 말씀하시라고요." 답답해서 껴들었다가 한소리 들었다. 까딱하면 스칠 듯 나란히 붙여 앉혀놓고는 조사관 본인을 통해서만 얘기할 수 있다며 서로 대화는 금지라고 했다. 그러면 따로 불러주시던지.

말귀 못 알아듣고 쳇바퀴 돌듯 해대는 헛소리를 여기까지 와서 내 귓구멍 바로 에서 직통으로 듣고 있어야 하는지 했다.


"아니 뭐 이 사람이 애들 만나는 거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요"


1평 남짓 한 조용한 조사실, 바로 옆에 앉아 나누는 대화에도 혼자 딴 세상에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대화법에 진짜 고구마가 백개 먹은 듯 목이 막히다 못해 눈물이 날지경이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답답해야 하지?


조사관이 그래서 따를 건지 말건지 세 번째 묻고서야 그러겠다고 했다. 조사관은 사정이 있으면 조율가능하다고 했는데 왜 토요일에 일을 한다고는 죽어도 말은 못 하는 걸까. 아마 조사관이 무서워가 아니었을 거다. 단지 당신은 내핑계로 본인 일해야 하는 토요일 시간을 미루고만 싶을 뿐, 절대 본인 일 때문에 미루겠다는 말이 안 나오는 사람이다. 이혼도 본인 나쁜 놈 되기 싫어 내가 내 발로 나갈 때까지 괴롭혔으니까.


약속을 지키리라 믿지 않았지만 그냥 어떻게 하는지 보려고 내버려 뒀다.


괴물 같은 그와 첫 대면조사가 너무 긴장되고 무서워 가는 길 내내 심장이 터질듯했고, 긴장이 풀리면서 탈이 났는지 돌아오는 내내 위가 아팠다. 결국 밤늦게 응급실에 갔다가 나오는 길에 전화가 왔다.


그때만 해도 내가 집을 나간 후 개인적인 연락은 서로 없던 때라 다시 심장이 터질 듯했다. 받기 싫었지만 어차피 대면 조사도 했겠다 소송 중에 함부로는 못하겠지 싶어서 받았다. 대체 내게 무슨 용건이 있는지도 궁금했다.


역시나 말을 빙빙 돌리기 시작하며 횡설수설.


"우리가 시간정해 놓고 꼭 그렇게 해야 하는 사이도 아니고 당신이 불편하면 당신 원하는 대로 해줄게 당신 생각은 어때?"라고.


'언제부터 내 생각 궁금했니... 내 생각 들어준 적 없으면서 네가 원하는 대답 나올 때까지 달달 볶는 버릇 아직도 못 버렸구나...'


진짜 넌덜머리가 났다.


"아니 이미 얘기 다 끝난 건데 왜 이제 와서 딴소리야? 난 괜찮은데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아니 내가 토요일에 일을 하잖아."


그래... 그거잖아. 그렇게 돌려하고 싶었던 말이.
그러니 너랑 무슨 말을 더 하나 싶었다.


조사받던 그 자리에서 일을 해야 해서 토요일 오전은 안된다고 했어야지. 대체 왜 내가 거부하는 걸로 치길 저렇게까지 원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역시나 본인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니 심통이 났다.


"아 그래? 그래 그럼 나 이제 그 어떤 상의도 안 한다?"


나랑 상의란 걸 해본 적이 있었던가. 상의가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본인이 제 돈 들여 땅을 사서 시부모님 새 집을 지어드렸을 때도 나는 이미 집을 짓기 시작하고 알게 됐었다. 그것도 그가 시어머니와 통화하는 걸 우연히 듣고서. 내가 왜 상의도 없었는지 따져 물었을 때도 "그게 왜? 내가 내 돈으로 짓겠다는데 너한테 말해야 돼?"라고 했었다. 전혀 뭐가 잘못된 줄 모르는 사람처럼.

그런 당신이 나에게 '상의'라는 말을 하다니.


그렇게 시작된 면접 교섭은 첫 회,  한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약속시간이 지켜졌다.


다른 건 다 고사하고 몇 시에 오는지 미리 말 안 해줄 거면 제발 출발할 때라도 연락 좀 달라는 부탁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아빠 언제 오는지 백번도 더 묻는 큰아이한테 매번 '나도 모르겠다'라고 대꾸하는 일은 또 내 몫이 됐다.


"너같이 편하게 사는 여사는 대한민국에 없을 거다!"라고 늘 얘기하던 당신은 여전히 내게 더 지어줄 짐이 없어서 억울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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