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자신의 ADHD를 처음으로 마주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내가 ADHD를 처음 인지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못되게 굴던 사람 덕분이었다. 방송 작가로 8년을 일하다가 처음으로 이직을 했다. 그 자리에 날 부른 건 내 친구였는데, 어째서인지 내가 하는 일마다 지적하기 바빴다. 처음 입사하고 나서 일에 대한 간단한 안내를 듣고, 잠시 둘이 담배를 피우러 나왔는데 나보고 사람들의 말을 끊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때 새롭게 해야 할 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고, 궁금하거나 확인하고 싶은 사항이 많았다. 별생각 없이 메모를 하며 중간중간 궁금한 걸 물어봤는데, 그게 기분이 나빴다는 것이다. 깜짝 놀란 나는 같이 설명을 해주던 당시 나의 상사인 친구와 친구의 여자친구 둘에게 열심히 사과했다. 일에 너무 집중해서 내가 말을 끊는 실례를 하는 줄 몰랐다고.
그 이후로도 과거의 그 친구는 일 하는 중간중간 나에 대한 지적을 서슴지 않았다. 의견을 분위기 보며 내라던가, 말이 너무 많아서 싫다던가… 그러니까, 보통의 현대인이라면 쉽게 해 줄 수 없는 원색적인 비난을 아끼지 않고 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맙게도 친구는 한 방에 카운터를 날려주었다. ‘쟤가 ADHD가 아닐 리가 없어.’ 하고. 그의 여자친구도 내게 말했다. ‘저는 이렇게 모든 것에 빨리 질리는 사람을 처음 봤어요.’ 지금 다시 곱씹어봐도 짜증스럽고 화나는 말이다. 내가 그 회사에 근무하는 기간 동안 그들은 은근하게 나를 걱정하거나 쿨한 척 하며 나를 비난하거나 지적하는 말을 툭하면 했기 때문이다. 그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아서 내 질병에 대한 적극적 자세를 취하게 해준 은인임에도 여전히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난다.
그 말을 들으며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았던 것이 떠올라 분하기 때문이다. 당시에 쿨하게 ‘그렇긴 해.’ 하고 넘기는 게 아니라 ‘아무리 그래도 말을 좀 조심 해주면 안 될까. 나로 인해 불편한 점이 있으면 내가 고칠게.’라고 말해야 했다. 그럼 내 마음에 상처가 조금 작게 남았을 텐데… (그들은 훌륭한 스타트업의 상사답게 날 산만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상한 사람 취급하길 망설이지 않으면서, 자신에 대한 지적이 아닌 것들은 하나도 넘기지 못하고 날 쥐어뜯었다… 암튼 이건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아무튼, 나는 INTP에, 태어날 때부터 감정이 꽤 무딘 편이라 대체로 어떤 비난을 들으면 ‘그렇긴 하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지적을 2년 가까이 쌓아두며 듣자 내 마음은 상처가 나다 못해 피가 철철 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걸 인지하지 못했고, 지옥에서 온 T 100%의 인간답게 간단하게 생각했다. ‘아무래도 업무가 산발적으로 오는 방송계와 달리 회사에는 내가 안 어울리는 모양이다. 약 먹고 해결합시다.’ 그렇게 나는 처음 ADHD를 고치기 위해 병원에 갔다. 당시 회사 근처에 있는 병원을 찾았는데, 나름 신경정신과 유경험자였던 나는 의사 앞에 앉은 뒤 아주 간단하고 노련하게 설명했다.
“저에게 ADHD가 있는 것 같은데요, 간단한 검사와 함께 약을 처방받고 싶습니다.”
“환자 분, 검사는 전문가인 저와 내담 후, 여부를 판단해서 할 거고요. 우선 무엇이 가장 불편한지 말해주시겠어요?”
“직장 상사가 제가 ADHD가 아닐 리가 없대요. 해결하고자 합니다.”
인스타로 치면 기도하는 손 이모지가 붙을만한 깔끔한 대답을 했는데, 전문가는 달랐다. 내 대답을 그냥 넘기지 않고 대답해 주었다.
“그 말을 들을 때 참 속상하셨겠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의 벽 중 무언가가 개박살이 나며 공중으로 분해된 것 같았다. 마음이 무척 아팠고, 눈물이 펑펑 터질 것 같았다. 그러게, 왜 나는 그 말을 들을 때 속상하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바보인가? 하지만 나는 노련한 INTP였기에 자괴감에 빠지는 대신 눈을 몇 번 깜박거리다 말했다.
“아뇨, 그다지… 선생님께서 오늘 제가 ADHD라고 판단되면 바로 처방이 가능한가요?”
“…… 음, 그럼 우선 ADHD 문진을 해볼까요?”
“네.”
“어떤 점 때문에 가장 많이 지적을 받는 것 같아요?”
“모르겠어요. 그냥 저를 전반적으로 혐오하는 것 같아요.”
“날 지적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어요. 우선 확인해 봅시다.”
의사와 간단히 문진을 해본 결과 ADHD에 대해 묻는 모든 문항에서 거의 한 두 개만 빼고 ‘매우 그렇다’를 기록했고. 나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진짜 이렇게 ADHD가 아닐 리가 없네요.”
하도 나에 관한 원색적인 비난을 들으며 마음을 다쳐놓은 덕일까? 날 배려해 주는 의사의 말과 객관성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검사지의 공격적이지 않은 말은 내 마음을 건드리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그래, 예상대로 ADHD구나. 그럼 대충 콘서타나 스트라테라를 처방받은 뒤에는 이 지옥이 끝나겠지. 이 보기 괴로운 이야기를 공유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지금 무언가 마음에 내가 혹시 이 사람처럼 ADHD, 혹은 ADD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 나처럼 나쁜 사람을 만나서 원색적인 지적이나 비난을 듣기 전에 빨리 전문가를 만나라. 운이 좋다면 별 타격 없이 좀 더 손쉽고 편안한 인생을 살 수 있다. 아니, 오히려 더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아무튼. 다시 이야기로 돌아오자. 전문가답게 의사는 나의 정신과적 이력을 알고 싶어 했고, 날 자극하지 않는 은은한 상담을 시도했다. 하지만 나는 아래의 5줄로 그와의 상담을 거부했다.
“제가 인생에 굴곡이 현대인 답지 않게 많습니다. 이미 정신과에 내원한 경험이 많고요, 마음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제 점심시간이 현재 20분 남았습니다. 정말 죄송한데 빠른 처방과 진료를 도와주실 순 없으실까요?”
의사가 공감해 준 순간부터 이미 내 눈에 눈물이 반쯤 고여있었기 때문일까? 의사는 고맙게도 상담을 이어가는 대신 며칠 후 보자는 말과 함께 내게 콘서타를 처방해 주었다. 그게 바로 내가 콘서타와 처음 만난 날의 일이다. 나는 그 병원에서 의사의 조심스러운 접근을 받으며, 얼마간 약을 타먹었다. 하지만 먹으면 뉴런이 터지는 기분이라는 다른 환자들의 말과 달리 나는 콘서타에게서 그다지 큰 효력을 보지 못했다. 게다가 훌륭한 ADHD 답게 약 먹는 것 자체를 까먹기도 해서 오락 가락 하는 몸상태에 괴롭기까지 했다. 대충 진료비와 약값으로 직장인에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보려던 나는 큰 실망과 도탄에 빠졌다. 왜! 왜 나는 이것조차 쉽지가 않은 건데? 내 인생은 왜 블로그 후기처럼 한 번에 좋아지질 않는 거냐고!
그렇게 성질을 부리는 동안 두 달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 흘렀고, 내 마음속에서는 하나의 답이 떠올랐다. 그랬다. 이제는 미루지 말고 나의 정신병과 마주 볼 시간이다. 내 마음속에는 대체 뭐가 있길래 나는 손쉽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없는 걸까? 그게 뭔지 몰라도 멱살을 잡고 뿌리째 뽑아내고 말겠다. 그리고 그 강인한 의지만큼, 혹은 그것보다 더 큰 두려움이 들었다. 진짜 돌이킬 수 없는 정신병자면 어떻게 하지? 이 쪽이 확률이 더 높아 보이는데? 그리고 이상한 정신과 의사를 만나서 내가 상처받으면 어떻게 하지? 정말이지 더 이상은 코딱지만큼도 상처받기 싫은데. 그럼 진짜로 못 견디고 콱 죽어버리는 게 빠를 거 같은데, 나는 심지어 죽을 용기도 마음도 없잖아. 진짜 개판 났다. 어떻게 해야 해? 이런 고민 따위를 하던 때, 머릿속에 불현듯 몇 년 전에 썼던 일기가 떠올랐다.
“내가 리한씨의 과거를 묻지 않는 게 과연 상담에 필요 없어서 일까요?”
마치 영화에 나오는 사람이나 할 법한 까리한 멘트가 내 뇌리에서 잊히지 않고 있었다. 상담을 거부하는 나를 마치 신내림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꿰뚫어 보는 듯했던 의사가 했던 말이었다. 게다가 이 병원은 집에서 10분 거리. 아무리 귀찮아도 집에서 대충 앞 구르기 3번 하면 갈 수 있을 법한 거리다. 그럼 천하의 게으름뱅이인 나도 치료를 미룰 수 없겠지. 좋아. 어쩐지 용할 것만 같은 저 의사를 만나보자. 그리고 그때 나는 결심했다. 만약 의사가 최고의 의사가 아니더라도, 절대 물러나지 않겠다고. 의사가 최고의 의사가 아니라면 내가 최고의 환자가 되어 보겠다. 멋진 학교를 나온 석박사를 이용해서, 이번에야말로 잘 살아보고야 말겠다. 돈과 시간이 얼마가 들든, 이번에는 나를 위해서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고. 왜냐하면 이대로는 죽어도 못 살겠으니까. 근데 내 손으로 날 죽이는 것만은 하기 싫으니까. 마지막으로 무슨 짓이든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