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곡이와 현미, 일명 곡물자매!
나에게 고양이는 항상 그리운 존재다. 예전에 인연이 닿아서 두 마리와 함께 오랜 시간을 식구로 지냈었고, 그들과의 이별 이후 고양이만 보면 마음속 한편이 아련해지고는 했다. 그럼에도 새로운 식구를 들이지 않았던 것은 예전 그 두 놈에 대한 의리라고 하면 너무 과한 느낌일까.
하지만 실제로 그러했다. 나는 얘들을 '고양이'라고 칭하는 것도 싫다. 마치 친구한테 '인간'이라고 칭하는 기분이다. 식구로 같이 살면 알겠지만 정말 같은 고양이는 세상에 단 하나도 없다. 모두 자기만의 개성과 '묘격체'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두 놈을 보내고 그 빈자리를 다른 애들로 채운다는 것은 내 스스로에게 너무 이기적으로 느껴졌다.
그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타협을 한 걸까? 솔직히 그런지도 모르겠다. 내가 의도하지 않게 생겨버린 그 빈자리는 채우지 아니하고서는 계속 나를 잡아끌 것만 같았다. 확실하게 마음먹은 것은 이번에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을 가서이다. 지나가는 애들 한 마리에도 정이가고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것을 보니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새로운 애들을 맞이하고, 이전의 추억은 이제 그만 잊고 앞으로 나아가 보자.
사람에게 인연이 있듯이, 나는 묘연을 믿는다. 친구를 살 수 없듯이, 앞으로 길면 20년가량 같이 할 애들을 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도 찾는 사람에게 오는 법이기에 적극적으로 주변을 돌아보고 다녔다. 그러던 중 두 놈이 눈에 확 들어와버렸다.
박스에 버려져 있던 애들을 누가 발견하여 보호소에서 1주일, 그리고 또 임시 탁묘 하는 분에게서 1주일 있던 아이들이 그렇게 내 삶으로 들어왔다. 원래 3마리였지만 1마리는 따로 입양을 갔고 나는 똥꼬발랄한 자매를 식구로 들이게 되었다.
이 둘이 처음 온 날, 최대한 적응이 쉬울 수 있도록 화장실과 장난감 등을 미리 열심히 준비를 하고 긴장하고 있었건만... 집에 오자마자 발라당 뒤집고 밥도 잘 먹고 화장실도 잘 가는 얘네를 보니 어이가 없었다. 원래 냥이들은 경계심이 강해서 환경이 바뀌면 어두운 구석에서 며칠은 기죽은 듯이 지내는 것이 정상인데 얘네한테는 그런 것 없나 보다. 자매를 들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익숙하니 환경이 익숙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가 보다.
살면서 가장 많이 듣는 게 이름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름에는 일종의 마법이 있다고 믿는다. 이름을 듣고 그 존재가 바로 연결이 안 된다면 잘못 지은 이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름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떠오르는 것을 지으려고 했지만, 누군가 추천한 '현미'와 '오곡'을 듣는 순간 반해버리고 말았다. 이보다 어울리는 이름은 찾기 어려울 거다. 일명 곡물자매!
그렇게 오곡이와 현미가 우리 집에 온지도 이제 벌써 2주가 거의 다 되어간다. 그동안 화장실을 펠렛으로 길들였고, 그 과정에서 이불에 자꾸 실수를 해서 새벽마다 빨래를 하게 만들었고, 1차 접종을 했으며, 새벽 4시마다 의식처럼 행해지는 추격 게임에 나는 항상 수면이 부족한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퇴근하고 집에 왔을 때 나를 바라보는 저 눈을 보면 모든 피로가 풀린다.
문득 이들로 인해서 예전의 그 두 아이가 더 이상 잘 안 떠오른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고 잊은 것은 아니다.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 잠시 묵혀둘 뿐이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덮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게 순리라고 나는 믿는다.
누군가에는 이미 초등학교 들어가는 아들이 있을 나이에 나는 육묘일기를 한번 써보려 한다. 사실 쓸게 뭐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살다 보면 이런저런 추억들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 어디 한번 이 공간도 조금씩 채워보자. 팔자에 없던 인스타그램도 하는 거 보니 쓸 거리야 많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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