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RI Jul 14. 2015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12

Bagan, Myanmar to Mandalay, Myanmar

여기 숙소에서는 은근히 항상 숙면을 취한다. 침대도 생각보다 편안하고, 그 무엇보다 룸메이트 중에서 코 고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축복이다. 어제 집착을 버려서 그런지,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몸과 마음이 다 편안하다. 오늘은 해돋이를 보지 않기로 마음 먹었기에 7시까지 늦잠을 잔다. 일상에서는 7시면 꼭두새벽이지만 여행 다닐 때는 7시가 늦잠이다.

이미 어제 바간과 제대로 이별인사를 끝난 상황에서 오늘 또 다시 해돋이를 또 보러 가는 거는 이미 이별한 전 여친에게 새벽에 '자니?'라고 문자를 보내는 거와 같은 행동이다. 몸은 아직 바간에 있지만 내 마음은 이미 바간을 떠났다. 이제 이곳에 더 이상의 미련은 없다.


뒤집어놔도 국방부의 시계는 간다더니 여행의 시간도 마찬가지다. 벌써 12일, 생각보다 시간이 금방 가버렸다. 하지만 아직 반도 안 지나갔다. 조바심을 내기에는 많이 이르다.


7시부터 식사가 시작해서 아침을 먹으러 로비로 향한다. 조금 앉아있으니 베트남 친구가 나와서 같이 자리를 잡는다. 어제부터 이상하게 미얀마 번호가 인증이 안돼서 카톡을 못하고 있었는데 이 친구의 도움으로 드디어 등록을 한다.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주는 친구이다.

연결되자마자 노여사한테 연락을 한다. 몇일 연락 못해서 걱정할까 봐 보냈는데, 왜 자꾸 연락질이냐며 혼난다. 솔로 코스프레 하느라 신났는데 방해하지 말고 메일 보낸거나 보란다. 난 그저 걱정할까 봐 그랬는데... 

그러면서 나의 반삭에 대응하고자 박수진의 단발머리를 했는데 머리만 박수진이 됐단다. 괜찮아, 나도 원빈이 아닌걸. 일단 인증샷을 보내라고 한다. 나름 기대된다. 사진이 오고 열어본다. 어..... 예쁘네...... 예쁘군..... 머리는 다시 자라니까....... 복수는 확실하게!

한바탕 풍파가 지나간 후에 생각이 나서 메일함을 열어본다. 노여사가 아침에 보낸 메일이 와 있다.

한국은 잊고 여행에 집중하셔요.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하루하루잖아. 특히나 미얀마를 또 언제 가겠어. 

잃어버릴 물건은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던 거임. 내가 회사에서 일이 늘면 원래 내 일이었는데 늦게 온  것이다...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ㅜㅜ). 

건강하기만 하면 무얼 잃어도 문제없어.

돈으로 살 수 있는 건 중요하지 않아. 또 무얼 잃게 되더라도 허허- 하고 웃으며 내 것이 아니었군. 하고 넘어갈 수 있기를... 

연락 안 해도 되니 여행자로 존재하시오! 

난 당분간 남친 없는 솔로의 주말을 친구들 만나며 잘 놀고 있을 테니 걱정 말고.



여친 하나는 잘 뒀다. 내가 맨날 하는 말이지만, 나보다 똑똑한지는 모르겠지만 나보다 현명하다는 생각은 자주 한다. 나처럼 복잡하게 재지 않고 항상 자신의 생활 방식, 가치관대로 살아간다. 언제나 변하지 않는 등대처럼 나에게 인생의 이정표를 제시해 준다.


거기에 나는 6년을 만나면서 노여사보다 예쁜 여자를 못 봤다. (아이유는 텔레비전에 나오니 예외...) 여행 다니면서도 그런 사람은 못 봤다. 그러니 바람 필까 봐 걱정하지 마세요.


물론 안 좋은 상황도 꽤나 있었지만 취향이 맞고, 가치관이 맞다 보니 항상 잘 넘겨왔다. 취향이 맞는다는 것은 꽤나 중요하다. 누구는 호텔 레스토랑을 좋아하는데 누구는 곱창에 소주를 좋아한다면 문제가 된다. 영화를 둘다 혼자 보는걸 좋아하는 거부터, 곱창으로 상징되는 음식에 대한 선호도까지, 같은 성향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여기 조식은 어제도 그러했는데 오늘도 역시나 별로다. 어제와 다른 음식이 나오긴 했는데 기본적으로 밥에 튀김이라는 조합은 동일하다. 뭔가 한국의 튀김과도 비슷한데, 미안하지만 맛이 없다.


앉아있으니 어떤 서양인이 와서 합석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눈다. 이 친구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왔다. 여행 다니면서 미국 사람을 많이 못 보는데, 이상하게 바간에서만 많이 본다. Ostello Bello의 영향인가?

이 친구는 괌에서 한국인 두 명 하고 1년을 같이 지내고 한국 어린이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쳐서 한국에 대해서는 좀 익숙하단다. 한국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져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게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현 대통령에 대한 얘기,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 이번 일 주년 때 광화문에서 내가 겪었던 어이없었던 얘기까지. 듣는 사람이 잘 들어주니 나도 신나게 얘기한다.

사실 정치적인 스탠스는 모두가 각자의 소신을 가질 자유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하기에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이번 세월호 일 주에 딱 맞춘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탐방, 그리고 그날 광화문에 우연히 데이트를 갔다가 전경들에게 갇혀서 지하철도 못 탈뻔했었다는 황당한 상황, 뭐 이런 객관적인 얘기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일주일을 같이 다녀도 마음이 안 맞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단 30분만 얘기해도 통하는 사람이 있다. 이 친구, 뭔가 통한다. 얘도 지난번에 한국인들하고 얘기할 때는 나이트, 소맥, '씨X새X' 같은 것만 배웠다고 내 얘기에 매우 흥미  있어한다. UCLA를 나왔다더니 다른 나라 얘기임에도 내가 얘기해주는 정치, 경제적인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때맞침 만달레이로 가는 버스가 왔다고 알려준다. 이런, 한참 재미있게 얘기하고 있었는데 아쉽다. 이 친구도 아쉬워하더니 페이스북 친구하게 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 한다. 주소를 알려주고 아쉬워하며 떠난다. 북부 쪽을 다닐 예정이라고 했으니 인연이 맞으면 또 만나게 되겠지.


버스를 타니 사람이 꽤 많다. 어제 8시 표는 자리 없다더니 오늘 만달레이 쪽으로 가는 사람이 많은가보다. 생각해보니 오늘이 토요일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숙소에서 함께 있었던 베트남 친구와 자리를 잡고 앉는다. 이 친구도 만달레이에 가야 한다고 해서 같이 버스에 올라탔다. 자리에 앉으니 내 옆에 말레이시아 애들 4명이 있어서 그들과도 또 얘기를 나눈다. 또 어쩌다 보니 세종대왕과 한글 얘기...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얘기를 할 때, 한글이 가장 자랑스럽다. 다른 언어와 다르게 기획하에 '발명'이 되었다는 게 자랑스럽고, 그 의도가 민중을 계몽시키기 위한 민주주의 정신에 있었다는 게 또 자랑스럽다. 놀라운 건 외국인들은 한국이 한문을 쓰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는 거다. 여행자로서 한국에 대해 알리고, 또 다른 나라에 대해 배우는 것도 필요한 마음가짐이다.

7만 원짜리 핸드폰의 한계일까? 낮에 열심히 쓴 글이 다 날라갔다. 마음을 가다듬고 또 다시 썼는데 또 사라졌다. 에버노트를 깔았어야 했는데, 기본 노트 어플로 했더니 이 모양이다. 결국 똑같은 글을 세 번째 쓴다. 역시 제일 처음 쓴 게 마음에 든다. 아무래도 다시 쓰면 처음 쓸 때처럼 진심이 담기기 힘들고 실시간의 묘미도 떨어진다. 그러니 이것아, 내 글 좀 그만 씹어먹어다오. 어쩔 수 없지, 이것도 여행의 일부분인걸.

또 하나 문제가 있다. 보통 키보드로 60%, 그리고 단모음 키보드로 40%를 써왔는데 이 저렴이 7만원 스마트폰은 터치감이 너무 안 좋아서 100% 키보드에만 의존해야 한다. 키보드는 어디서든 필 수 있는게 아니기에, 그때 그때 순간을 적지 못하니 좀 답답하다. 하지만 뭐, 언제나 그렇듯 적응하겠지.

버스가 출발하고  중간중간 또 꽤 사람을 태운다. 통로에 있는 간이 좌석까지 내렸음에도 만석이다. 좁은 자리에서 가방을 발 아래 놓고 그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가면서 글을 써본다. 글을 좀 쓰니 바로 멀미가 난다. 그냥 휴게소에 있을 때만 쓰기로 한다.


버스로 5시간, 한국에서 생각하면 긴 시간이지만 막상 여행 중에는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밖을 보고 멍 때리고 있으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사색을 하게 된다. 면벽수행이 아닌 면창 수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이동 중에 생각이 가장 많아지고, 또 의외로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끊겼던 핸드폰 신호가 갑자기 회복되면서 부재중 전화 두통이 뜬다. 어? 내 번호를 아는 사람은 경찰밖에 없는데? 살짝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어본다. 어떤 현지인이 받는데 영어를 하는 건지 미얀마 언어인지,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가 없다.

버스에서 현지어와 영어가 가능한 사람을 급하게 찾는다. 머릿속으로는 여기서라도 내려서 돌아가야 하나, 하는 별 생각이 다 든다. 버스 운전수가 영어를 좀 한다기에 부탁을 좀 해보지만 원활하지가 않다.

내릴거면 잠시 멈춘 여기서라도 내려야 한다. 마음은 급한데 버스는 야속하게도 그냥 출발한다. 소통이 안되니 문자로 보내 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문자를 보내려고 버튼을 누른다. 문득 어제 내가 보낸 문자가 눈에 들어온다. 아...

어제 심을 넣고 개통 후 문자가 가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무 번호에 test라고 문자를 보냈었는데, 그 번호다. 하, 뭐 실망은 안된다. 어차피 잃어버린 핸드폰은 내거가 아니었으니 돌아온다 해도 덤이다.

다시 전화가 오길래 받아 보니 이번에는 영어를 좀 하신다. 괜히 의도치 않게 번거롭게 해드렸다. 상황을 설명하고 미안하다고 한다. 보통 그냥 무시해도 되는데 끝까지 영어 하는 사람을 찾아서 다시 전화까지 한 것을 보니 여기 사람들의 성향을 알만 하다.


차가 한참 가다가 고속도로에 들어선다. 그래도 고속도로를 들어가니 승차감이 조금은 좋아진다. 그래 봤자 도찐개찐이지만. 내 옆에 앉은 아저씨는 고개를 휙 제치고 자다가 앞에 앉은 부인한테 매너없다고 얻어터진다. 한번이 아니라 한 10번 정도. 어디 가나 남자들은 맞고 사나 보다.


오후 1시가 지나니 만달레이에 들어섰는지 조금 큰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번 왔던 곳이라 그런지 뭔가 미묘하게 익숙하고 반갑다. 차는  중간중간에 계속 서면서 사람들을 내려준다. 이제 곧 미얀마에서의 내 고향에 갈 수 있겠군.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이 사람들 내가 가는 곳을 알고 있나? 타기 전에 스태프한테 얘기를 했던가, 가물가물하다. 앞에 베트남 친구한테 물어보니 자기는 얘기를 했단다. 옆에 말레이시아 그룹도 다 얘기를 했단다. 뭐지? 왜 나만 안 묻는 거지? 후딱 가서 얘기를 하니 뭐라 뭐라 하는데 나랑 그 베트남 친구가 일행인 줄 알았나 보다. 물론 비슷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바로 지도를 펴고 내가 갈 곳을 알려준다. 78번 길의 31번과 32번 사이!

듣더니 뭔가 큰 일이군, 하는 표정을 짓는다. 말레이시아의 '레이첼'이라는 이름의 아이가 지도를 보더니 지나친 거 같다고 한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난 동양인이 서양인 이름을 갖는 것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는지라 뭔가 쟤 꺼려진다. 영어를 매우 잘하는 거 보니 이민한 애 같기도 한데... 여하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난 어쩌지?

일단 얘기는 했으니까 기다려본다. 그래도 데려다 주겠지 뭐. 아니면 만달레이 어딘가에 내려주면 그거 하나 못 찾아가겠어. 처음에는 여기 길 주소 구조가 머리에 안 들어왔는데 한번 이해하고 나니까 매우 쉽다. 단순히 얘기하자면 길 주소만 있고 번지수는 없는데, 길주소가 숫자로 되어 있는 거다. 그러니까 횡으로 78번 길에 종으로 31번 길과 32번 길 사이에 내 숙소가 있는 건데, 이런 시스템이다보니 주소만으로는 정확한 위치를 핀포인트 할 수는 없다. 건물을 보면 되니까 찾아갈 때는 그리 문제가 되지는 않는데 우편은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해진다.

이제 하나 둘, 모두 내리기 시작한다. 바간에서 함께 온 베트남 청년도 내린다. 이 친구 다 좋은데, 말이 너무 많아서 좀 불편했다. 나는 책을 보고 싶은데 옆에서 계속 말을 걸기도 하고, 잘려고 해도 말을 걸고... 혼자 다니느라 외로워서 그랬겠지? 그래도 3일을 옆 침대에서 보냈는데 살짝 아쉽다. 하지만 버스는 출발하기에 이별은 순식간이다.

말레이시아 영어이름 소녀 레이첼이 갑자기 불안해졌다. 자기들 호텔 가는 길을 운전수가 잘 모르나 보다. 호텔에 전화해서 대신 알려달라고 하고 마음이 급한지 아주 난리다. 뭐가 그리 급할까. 어떻게든 못 가겠어? 풍기는 포스가 배낭여행자가 아닌 '곱게 자란 처녀의 미얀마 체험' 같아 보인다. 그 와중에 내가 제일 싫어하는 행동을 한다. 운전수에게는 친절하게 행동하면서 돌아서서 영어로 '쟤 뭐야'라고 하면서 무식하다고 무시하는 행동.

내가 사람한테 정이 완전히 떨어질 때가 하나 있는데, 서비스를 받는다고 그 사람을 소유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지위를 그 사람 위로 올려서 행동하는 경우다. 예전에 한 선배가 택시 기사한테 별거 아닌 거 가지고 나는 돈을 지불하는데 넌 뭐 그 딴 식이야 라고 얘기하는걸 보고 정내미가 뚝 떨어진 적이 있다. 개인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1분이라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노예제 뿐이고 그건 내가 아는 한 현재 불법이다. 그리고 남들 무시하는 사람 치고 그다지 잘난 사람 못 봤다.

그나저나 기사님이 나는 기억하고 있겠지? 슬슬 불안해지지만 그래도 기다려본다. 운전수가 다시 주소를 묻길래 "78번 길에 31번과 32번 사이"라고 다시 한번 소리를 질러서 알려준다. 아 저렇게 주소를 확실하게 얘기하면 찾기 편하지,라는 뜻의 우호적인 웃음을 나에게 보낸다. 그래, 길에 버리지는 않겠구나.


결국 말레이시아 애들도 내리고 나만 남았다. 이제 버스가 뭔가 내 개인 택시 같다. 느긋하게 의자에 기대서 밖을 보고 앉아있는다. 여기서는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날까? 그것보다 게스트하우스의 스태프들이 날 기억하고 있을까? 빡빡이 한국인이라면 나름 강렬한 인상을 남기거 같긴 한데.

버스가 드디어 멈춘다. 다 도착했나? 하지만 밖을 보니 여기가 아닌 거 같다. 또 누굴 태우나 싶어서 스태프들을 바라보니 여기가 자기들이 갈 수 있는 최대한이라고 얘기를 한다.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여기서 5분에서 10분 거리니까 택시를 타든지 걸어가라고 한다. 하... 가만히 있으니 호구로 보였구나. 항의할까 싶다가 이 친구들과는 영어도 안 통하는데 그냥 참기로 한다. 그래, 안 그래도 너무 쉽게 왔어. 조금은 걸어야지 배냥여행이지. 하지만 기분이 매우 얹찮다. 미얀마에 온 이후 처음으로 겪는 이기적인 행동이다.

나름의 불만을 최대한 표시하고 내린다. 그래 봤자 신경도 안 쓰는 거 같다. 세컨드 백을 메인 백 안에 집어넣는다. 두개를 합체시켜야 여행자 도보 패션의 완성! 선글라스를 잡아 슬쩍 얼굴에 쓰고 샌들 신은 발을 당당하게 내딛는다. 뭐라고 항의하긴 했지만 난 은근히 여행 중에 풀군장으로 걸어가는 이 시간을 즐기는 거 같다.


4일 전에 봤던 거리와 비슷한데 그때와는 다르게 모든 것이 익숙하다. 이리도 이국적이던 곳이 짧은 시간에 익숙해지는 거 보면 사람은 참 대단하다. 길의 다니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익숙하고, 그들의 말들도 친근하다. 근데 그러고 보니 미얀마에서는 길거리 음식을 많이 못 먹어봤다. 태국에서는 맨날 먹었는데 여기는 어쩌다 보니 이리 되었다.

생각보다 얼마 안가 도착한다. 길 주소 체계를 이해하고 나니 지도를 필 필요도 없다. 저 멀리 'Ace Star' 게스트하우스가 보이니 기분이 들뜬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역시나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날 맞이해준다. 여기는 로비가 제일 시원하다. 근데 로키가 안 보인다. 처음 보는 스태프가 앉아있으니 뭔가 당황스럽다. 장소는 익숙한데 사람이 익숙하지 않다.

일단 방이 있냐고 먼저 물어보니 예약 안했냐고 하면서 좀 찾아보겠다고 한다. 허, 없으면 안되는데... 갈 데도 없거니와 더워서 또 이동하기도 싫다. 다행히 좀 찾더니 방이 있단다. 그런데 방이 두 종류가 있다고 어떤 걸로 가겠냐고 한다. 혹시 모를 바가지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이미 지난번에 왔던 아이임을 인식시키기 위하여 12달러, 지난번에 묵은 방으로 달라고 하고 로키는 어디 갔냐고 넌지시 물어본다. 어디서든 아는 티를 내야 사기를 안 당한다.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지금 말고 그냥 체크아웃할 때 내라고 한다. 하긴 나도 며칠 있을지 모르니 그게 낫겠다. 여권을 맡기고 계단을 올라가는데 로키를 만난다. 로키, 날 보더니 무척 반가워한다. 나도 반가워 이것아. 아 나보다 나이가 많으려나.

방으로 갔더니 내 침대는 구석 자리다. 지난번 자리가 좋았지만 뭐 별 수 있나. 짐을 놓고 일단 뭐라도 먹으러 내려간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괜찮은 식당을 물어보니 78번 길, 31번 교차로에 무슨 유명한 식당이 있다고 해서 길을 한번 나선다. 그 정도 주소면 찾아가기 어렵지 않겠다. 근데 덥다. 진짜 덥다. 동남아는 낮에는 방에서 나오면 안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식당을 못 찾겠다. 내가 갑자기 길치가 된 게 아니라면 아까 스탭이 길을 잘못 알려 준걸거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못 찾겠다. 에잇. 그냥 근처 식당이나 갈려고 마음을 바꿔먹는데 이곳에는 그냥 식당 자체가 없다. 여기 뭐 이래?


일단 숙소로 발을 돌린다. 헌데 왼편에 빵 가게 같아 보이는 곳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유명한 빵집인가? 원래 빵을 좋아하진 않지만 어차피 시간도 2시가 넘었고, 저녁을 제대로 먹으려면 그냥 간단히 요기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들어가니  시식처럼 해놓은 게 있다. 시식 맞겠지? 괜히 도둑놈 소리 안 들으려고 다른 사람들을 지켜보니 시식이 맞는 거 같아서 한입 먹어본다. 호두케이크 같은 맛이 난다. 내가 서 있으니 여종업원이 와서 미얀마어로 자연스럽게 말을 건다.


아 또 현지인으로  오해받았구나. 영어로 대답하니 또 이전에 미얀마에서 몇번 봤던 그 수줍어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을 짓는다. 이 나라는 어찌된 게 시골인 바간보다 대도시인 만달레이 사람들이 외국인을 보고 더 당황해 한다. 바간은 관광지라 그런가? 내가 그래서 바간에 정을 못 붙인 건가 싶기도 하다.

뒤에서 애들끼리 '어떻게 해, 어떻게 해'하면서 모여서 회의를 하는 모습이 귀엽다. 대충 이거 얼마냐, 양은 어느 정도 주느냐를 묻는 건데 결국 계산기로 숫자를 표시하고 박스를 보여주는 것으로 의사소통이 된다. 언어를 몰라도 될건 다 된다.

2천 원짜리 하나를 산다. 그러다 하나 더 산다. 생각해보니 스태프들도 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봉지를 싸들고 숙소로 온다. 근데, 정말로 진짜 덥다.

이 숙소에서 가장 시원한 로비에서 아까부터 무위도식하고 있는 남자 스태프에게 빵 좀 줄까 물어보니 괜찮단다. 사실 너희 줄려고 산건 아니고, 옥상에서 맨날 고생하는 여자 스태프들 줄려고 산거야. 알겠다고 하고 방으로 와서 키보드와 충전시켜놨던 내 핫핑크 스마트폰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간다.

방에는 여행자들이 아무도 안보이더니 모두 여기 모여있었나 보다. 인도 여자분 하나와 남자 둘이 있다. 모두한테 빵을 권했더니 다 괜찮단다. 그런데 막상 여자 스태프들이 안 보인다. 이러면 안되는데.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 빵 이리 많이 사왔는데 다 어디 간 거야. 이거 뭐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일단 커피를 한잔 타고 앉아서 빵을 먹어본다. 흠 역시 빵은 나랑 맞지 않다. 이거 양이 너무 많은데... 주방으로 가서 접시와 칼을 가지고 와서 반 넘게 뚝 떼서 그릇에 담는다. 잘 보이게 주방 한 가운데 그릇을 놔둔다. 보고 먹겠지?

좀 앉아서 글을 쓰는데 덥다. 너무 덥다. 너무 너무 덥다. 안되겠어서 다시 방으로 내려온다. 샤워를 할까 싶다가, 어차피 저녁에 또 나갈 텐데 그냥 가만히 누워 있으면 괜찮겠지 생각하며 침대로 간다.

침대에 누워서 글을 좀 쓰는데 더위가 안 가신다. 안되겠다. 더위와 찝찝함이 극에 달해 있다. 결국 다 접고 수건을 들고 화장실로 뛰어가서 물을 끼얹고 간단히 샤워를 한다. 물론 옷은 안 갈아입는다. 지금 갈아입으면 저녁에 입을 옷이 없다. 여행 다닐 때 이 정도 더러움은 견딜 줄 알아야 진정한 여행자다.

그나저나 앞으로 일정을 어찌 할지 고민이다. 아까 스태프한테 살짝 물어보니 Hsipaw로 가는 기차는 매일 오후 4시에 출발한단다. 그리고 10시간이 걸린다. 그  말인 즉슨 오후 4시에 출발해서 새벽 2시에 도착한다는 얘기다. 이거 그냥 대충 가면 안될 거 같다. 그 시간에 숙소 못 구하면 난리 난다. 물론 그렇게 가는 여행자들이 꽤 있는듯 하니 방법은 있겠지만 일단 조사를 좀 더 해봐야겠다.

어차피 빨리 가도 내일 오후 4시니까 숙소에 누워서 검색을 좀 한다. 어제 설치 못했던 에버노트도 받아서 설치하고, 말 그대로 개인정비 시간을 갖는다. 아직 내일 바로 Hsipaw를 갈지 하루 더 만달레이에 있을지도 결정 못했다. 이따 저녁 먹으러 나가기 전까지는 결정을 해야 할 텐데.

여기 인터넷은 그래도 좀 할만하다. 오래간만에 인터넷 다운 인터넷을 하니 속이 다 시원하다.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게 지난번에 이곳에 왔을 때는 방콕에서 왔던지라 여기 인터넷 속도가 너무나도 답답했는데, 바간에서 돌아온 지금은 미얀마에 이 속도가 어떻게 나오지 싶을 정도다. 초고속 인터넷이 부럽지 않다.

좀 찾아보다 오늘은 'Mandalay Hill'에서 일몰을 보고, 81번가에 유명한 중국음식점을 들리기로 마음 먹는다. 지금이 5시니 슬슬 나가야겠다.

내려가니 여자 스태프를 포함한 모든 스태프가 모여있다. 여자 스태프들이 날 알아보고 반가워하며 환하게 웃는다. 나도 반가워하지만 외국에서는 그곳의 문화를 모르니 이성을 대할 때 조금 조심스럽다. 옥상에 여성분들 줄려고 케이크를 따로 접시에 담아놨다고 하니 신나 하면서 뛰어 올라간다. 일단 내일 Hsipaw 가는 버스를 물어보니 아침 6시와 저녁 7시, 이렇게 두개만 있단다. 아니 무슨 스케줄이 이러지? 근데 옆에 방금 들어온 서양 여행자분이 자기는 2시 반 차를 타고 갔다고 일러준다. 하지만 여기서 예약은 못하고 다른 곳에서 했다나. 근데 그곳이 어딘지는 모른단다. 어쩌라는 거지.

일단 Mandalay  Hill부터 가야겠다. 택시 타면 얼마냐고 물어보니 5달러란다. 아니 뭐 이리 비싸. 오토바이 택시를 타면 3달러라는데 이리 된 거 한번 일반 버스를 타 볼까 한다. 어디서 타는지, 또 어디로 가는지 얘기할 수 있게 종이에 미얀마어로 써달라고 해서 가지고 나온다.

막상 나오니 해가 좀 지고 있다. 어느새 5시가 훌쩍 넘었다. 이거 버스 타고 갔다가는 일몰을 못 볼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방황하고 있는데 옆에 오토바이를 탄 현지인이 어디로 갈 거냐고 물어본다. 아까 스태프가 미얀마어로 써준 만달레이 힐을 보여주니 2000키얏에 가잔다. 오, 빙고. 바로 타자고 하고, 헬멧을 쓰고 뒤에 올라탄다.


출발하고 얼마 안있어서 싼 이유를 깨닫는다. 이건 오토바이가 아니라 스쿠터다. 게다가 백미러도 없는 스쿠터다. 뭐 사실 상관없다. 목적지까지 가기만 하면 되지.


스쿠터에 타고도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가고 있는데 옆에 똑같은 속도로 가는 아빠, 엄마, 딸 일가족이 탄 오토바이에서 아빠가 나를 지긋이 쳐다본다. 그래도 내가 외국인으로 보이긴 하는지 뭔가 신기한가 보다. 지나다니면 사람들이 항상 쳐다본다. 무의식적으로 항상 하듯이 "밍글라바"라고 인사한다. 미얀마에서는 모두가 그렇듯이 역시나 반갑게 웃으면서 답변해준다. 이곳에서 "밍글라바"는 사람을 이어주는 마법의 단어다.


생각보다 꽤 멀다. 한참 가서야 멀리서 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 저 산을 올라가야 한단 말인가. 근처까지 가서 내려달라고 하고 약속한 2000키얏을 준다. "제주디마레"라고 감사의 말을 전하니 운전한 분도 또 순박하게 웃으로 화답해준다. 두 번째 마법의 단어다.


이곳으로 올라가는 건가? 올라가는데 어린 아이들이 꽤나 보인다. 또 "밍글라바"를 시도 없이 외친다. 근데  그중에 하나가 내가 갈 곳이 이쪽이 아닌 옆쪽이라고 알려준다. 큰일날뻔했다. 한참 올라간 후 "어라? 이 산이 아닌간벼"라며 당황할뻔했다.

제대로 된 입구를 찾아서 들어가려고 하니 왠지 신발을 벗어야 할거 같다. 쭈볏쭈볏 거리며 눈치를 보는데 옆에 누가 벗길래 따라서 벗고 손에 들고 간다. 내려오던 아주머니가 그런 나를 보더니 옆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쪽을 보니까 신발을 맡기는 곳이 따로 있다. 200키얏이라고 쓰여 있길래 내야 하나 하고 있는데 그냥 가라고 웃으면서 얘기하신다. 공짜는 마다하면 안된다고 배웠다.


계단이 많다. 올라간다. 또 계단이다. 또 또 계단이다. 아 이거 만만하게 볼게 아니구나. 올라가는 중에 만나는  사람마다 "밍글라바"라며 미소를 띈 채로 인사한다. 헥헥 거리는 반삭의 동양인이 그 힘든 와중에도 "밍글라바"를 꼬박 꼬박 하고 있으니 웃긴가 보다. 많은 사람에게 오늘 웃음을 선사한다.


신기하게 이 올라가는 길에도 사는 사람들이 꽤나 보인다. 하긴 이 높은 곳을 출퇴근해야 한다면 누가 여기서 일을 하겠는가. 애기들도 있고, 강아지, 고양이도 많다. 한쪽에서 강아지 한마리와, 고양이 한마리가 친근하게 누워 자길래 고양이 사진 좀 찍을려고 다가서니 강아지가 시끄럽게 짓고 난리가 난다. 안 데려가 이놈아. 뭔 견묘지우가 이리도 깊다냐. 우리 애들은 같은 고양이인데도 서로 못 죽여 안달인데.




올라가는 길이 끝이 없다. 이제는 지쳐서 어깨로 숨을 쉬기 시작한다. 백 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라 생각하고 왔어야 했다. 이제는 거의 죽어가지만 그래도 꼬박 꼬박 "밍글라바"를 외치니 사람들이 웃는 게 아니라 안쓰러워한다. 만달레이힐, 만만히 볼게 아니었구나.


드디어 정상에 도착! 인간승리다. 생각해보니 남산하고 비슷한 곳인가 보다. 올라오니 확실히 만달레이 시내가 다 보이는 게 좋다. 다만, 미세먼지인지 안개인지 모래인지 모를 공해로 해가 사라졌다. 해가 사라졌다! 30분을 낑낑거리며 올라왔는데 해가 없다. 에잇, 빌어먹을 에어아시아.



그래도 만달레이에서 제일 높은 이 곳에서 키보드를 피고 글을 쓰니 기분이 좋다. 땀이 흥건하지만 바람도 시원하다. 해는 안 보이지만 그래도 구름 뒤에서 후광을 예쁘게 보여주고 떠난다. 나름 예의는 있구먼. 바람을 쐬면서 좀 앉아있는다.

이제 내려가야지? 후....... 내려갈 생각을 하니 한숨부터 나온다. 맨발로 이동한 가장 먼 거리로 KH 기네스 북에 등재해야겠다.

숨을 좀 가라앉힐겸 앉아 쉬면서 주변을 보니 이곳에는 그래도 외국인이 좀 보인다. 일본인도 지나가고 서양인도 지나간다. 갑자기 뒤에서 "Hello"라고 누가 나를 부른다. 나한테 먼저 말을 걸 사람이 없는데, 누구지?

뒤를 돌아보니 베트남 청년이 있다. 바간에서 같이 숙소에 있고, 이곳까지 같이 온 그 베트남 청년이다. 이야, 이건 또 인연인데? 아무 약속 없이 여기서 만나다니. 전생에 부부 정도의 연은 닿았겠다. 그리 친하게 생각하진 않았었지만 이리 만나니 뭔가 격하게 반갑다.

이 정도면 저녁을 같이 먹자고 얘기해야겠다. 슬쩍 물어보니 친구를 만나러 가야 한단다. 아쉽네. 우리의 연은 여기까지 인가 보다. 헤어지면서 뒷모습을 보며 생각해보니 이 친구는 페이스북도 안 물어봤다. 하지만 사실 나는 누구에게도 내가 먼저 물어본 적은 없다. 누가 나한테 물어보면 답했을 뿐이다. 영어를 잘 못해서 서양인들하고 잘 못 어울리던 청년, Have a safe trip back home.


너무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가야겠다. 하... 내려가기 싫어... 힘들어... 그래도 여기서 살 수는 없으니 내려가야지. 


모든 길은 올라갔으면 내려가야 하는 법이다. 올라갔는데 더 올라가려는 건 욕심이다. 


올라갈 때는 그리 힘들더니 내려가는 건 순식간이다. 항상 이런 식이다. 한발 한발 힘겹게 올라갔더니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다. 허무하다. 그렇다고 올라갔던 그 순간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겠지. 

내려오니 길에 오토바이 택시들이 대기하고 있다. 오늘 저녁 식사 할 곳은 아까 낮에 미리 조사를 해놨었다. 기사님에게 '81번가의 38번과 39번 사이'까지 얼마냐고 물어보니 3000키얏이란다. 올 때 2000키얏에 오긴 했지만 사실 너무 저렴하다 생각했었다. 30분은 가는 거 같은데 3000키얏이면 나쁘지 않다. 가자고 한다.

신발을 찾으러 가니 올라갈때 안 낸 200키얏을 내란다. 공짜일리는 없지. 뭐 200키얏이면 200원인데 그걸 아까워하면 안된다.

오토바에 올라타니 이번에는 헬멧을 안 준다. 아저씨가 출발하자마자 이 아저씨 좀 놀았구나 싶다. 아까는 헬멧까지 쓰고 선비처럼 왔다면 이번에는 폭주족처럼 화려하게 드라이빙을 한다. 요리조리 잘 피하면서 속도도 우렁차게 낸다. 나도 같이 무게중심을 맞춰주면서 간다. 이게 설명하기 좀 어려운데 뒤에 앉은 사람이 조금씩 무게중심을 맞춰주면 운전하는 사람이 훨씬 수월하다,라고 나는 믿는다.

더위에도 냄새가 있다면 이해를 할까? 더운 냄새, 그리고 도시의 냄새를 맡으며 왼편에 왕궁의 야경을 두고 스쿠터를 타고 달린다. 하필 또 오늘따라 보름달이다. 이거 생각해보면 굉장히 로맨틱할 수도 있지만... 수염 덥수룩한 남자 둘이서 간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왕궁의 야경이 너무나도 멋진데 사진에 못 담아서 아쉽다. 어차피 만달레이에 또 한번 와야 하니, 다음 방문 시에는 저 왕궁쪽을 저녁에 한번 가볼까 싶다.


30분 정도 걸려서 목표한 곳에 도착한다. 'Super 81', 드디어 론리에 나오는 식당에 나도 방문을 했다. 유명한 식당 답게 사람이 엄청 많다. 1층에는 자리가 없어서 2층으로 불려가지만 결국 2층에도 자리가 없어서 옥상까지 올라간다.


옥상에 올라서자마자 보이는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혼자서도 충분히 로맨틱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일단 제일 유명한 것을 시킨다. 뭔지 모르지만 5000키얏 정도면 비싸긴 해도 못 먹을 정도는 아니다. 눈에 생맥주가 띈다. 물어보니 600키얏이다! 물론 350cc 정도긴 하지만 그래도 600원이라니! 눈이 뒤집혀서 바로 주문한다.


근데 야외이다 보니 벌레가 문제다. 설상가상으로 바로 옆에 전등이 있으니 달려드는 벌레들이 어마어마하다. 결국 자리를 옮겨달라고 해서 어두컴컴한 곳으로 간다. 그래, 난 어두운데가 어울리지... 바로 옆에는 가족 단위로 왔나 보다. 겨우 걸음마하는 애기와 눈이 마주치기에 나도 모르게 또 습관처럼 "밍글라바"라고 하니 엄마가 나를 보며 방긋 웃으며 좋아한다. 애가 내쪽으로 걸어온다. 왠지 만지는 것은 예의가 아닌듯 싶어 말로만 놀아주는데도 해맑게 좋아한다. 2살 정도 됐나? 몇살이냐고 어머니에게 영어로 물어보니 순간 표정이 팍 굳어지면서 긴장하신다. 영어울렁증은 만국 공통이다. 1살이란다. 그보다는 많아 보이는데. 아, 우리나라 나이로 생각해서 그런가? 내 조카 어릴때를 생각해보면 딱 2살 같다. 귀여운 것.


앉아 있는데 시키지도 않은 안주가 나온다. 기본 안주인가 보다. 공짜로 주는 이것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만원에 팔겠다. 안주들이 슬슬 내 안의 술 본능을 자극한다. 내일 새벽에 버스 타야 하는데... 이거 불안하다. 그냥 하루 더 있어? 기본 안주는 마늘, 고기, 옥수수 등을 고기에 구운 거다. 같이 주는 소스는 약간 제주도의 멸젖 느낌도 난다. 오 맛있다. 진짜 하루 더 있어? 


자리가 없는지 내 바로 옆에 간이 자리를 피고 남녀 4명이 앉는다. 약간 눈치가 보이지만 신경 안 쓰련다. 너희는 자주 올 수 있지만 난 아니야! 그리고 너희는 커플 둘이 짝짜꿍으로 왔잖아... 봐줘... 

기다리니 밥이 나온다. 혹시나, 궁금해서, 아까 나온 기본안주가 메인디쉬냐고 물어보니 '이건 뭔 소리냐' 싶은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 아니라고 한다. 미안해, 워낙 이런 대접에 익숙지 않아서. 근데 진짜 저 기본안주가 메인디쉬라고 해도 먹을 거 같다. 아니 무슨 기본 안주로 숯불에 구운 고기와 마늘과 옥수수를 준다냐. 한마디로 이게 우리나라에서 기본으로 주는 새우깡급이라는 거잖아. 600원짜리 생맥주를 시켰는데 덤으로 나온게 말이지.

일단 맥주 하나 더! 땅땅! 뭐 내일 갈지 말지는 숙소로 돌아 갔을 때의 컨디션 보고 결정하는 걸로 하자. 여기는 숙소와 그리 멀지 않아서 걸어갈 예정이다. 한 30분 걸어가면 충분히 갈 거리다. 이거 다음에 왔을 때도 여기로 와야 하나. 너무 마음에 드는데. 론리에 나온 곳인데도 지금은 외국인은 하나도 안 보이고 현지인들만 가득한걸 보니 정말 맛집은 맛집인 듯하다.

키보드를 펼쳐놓고 먹으면서 글을 쓰니 나름 혼자 먹는 게 아니라 누구랑 대화하면서 먹는 느낌이다. 아 좋구나. 날도 시원하고.


기다리던 메인디쉬인 코코넛 새우 뭐시기가 나온다. 새우를 한점 뜯어서 먹어본다. 헉! 진짜 육성으로 탄성을 짓는다. 껍질은 바삭바삭하고 양념은 매콤하고, 코코넛으로 요리를 했다더니 풍미도 느껴진다. 야 이거 대박인데? 하느님, 오늘 저를 이곳으로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는 빠이에서 구워먹었던 고기가 이번 여행 식사 중에서 1등이었지만 이곳에서 한입을 떠먹자마자 얘가 1등으로 바로 등극해버린다. 물론 생맥주와의 앙상블도 무시 못한다. 그동안 1000키얏짜리 밥만 먹으면서 미얀마 음식 별로라고 무시했던 내가 다 부끄럽다.

양도 새우가 이게 몇 마리야. 오동통한 새우 8마리가 5000원이다. 허허. 머리도 넣었는지 내장 맛도 일품이다. 신기하게 그럼에도 새우 머리의 질김이 전혀 안 느껴진다. 새우 하나를 밥에 얹어서 먹고 시원한 맥주 한 모금으로 입가심을 해본다. 캬.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는데 육성으로 "야, 이거 진짜 맛있다." 라고 감탄하면서 먹는다. 미얀마 와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하늘에는 보름달이 날 비추고 있고, 테이블에는 한잔에 600원이니 거의 무제한으로 시킬 수 있는 생맥주가 있으며, 내가 태어나서 먹은 가장 맛있는 새우요리까지 이곳에 있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으리오!

에라 모르겠다, 한잔 더! 이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 건데 복잡하게 생각할 거 있나. 내일 못 가면 못 가는 거지. 하루 더 있는다고 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 음식을 먹고 나니 만달레이 맛집 투어나 제대로 해볼까 싶기도 하다.


그래 봤자 맥주 500 두 잔 정도 먹은 건데 잔이 300cc라 3개가 테이블에 있으니 뭔가 부끄럽다. 슬쩍 두개를 저 옆으로 치운다. 물론 인증샷은 찍은 이후에. 그러고 보니 이 사람들 쟤 뭐하나 싶을 거다. 밥 한입 먹고 술 한잔 마시다가 갑자기 글을 쓰고 혼잣말도 하고 있는 괴상한 외국인이다. 어쩔 테야, 이게 내 혼자 여행하는 스타일이다, 스타일.


손님은 계속 들어오는데 혼자 4명 자리에 있다 보니 자꾸 의자를 가져간다. 결국 모두 가져가서 내 의자 딱 하나만 남는다. 이거 뭔가 초라하구먼. 괜찮아, 엉덩이 붙일 곳만 있으면 되지.


개인적으로 머리 부분이 가장 맛있는 거 같다. 그래도 이제 그만 감탄하고 가야지. 마지막 한입을 준비해놓지만 막상 먹기 아깝다. 그래도 먹어야지.... 간이 테이블이 계속 펴지는 게 슬슬 눈치 보이기도 한다.


계산서를 달라고 한다. 손님이 많아서 그런지 계산서가 나오는 것도 한참 걸린다. 11,300키얏이 나왔다. 확실히 미얀마 물가를 생각하면 엄청 비싼 거지만 개인적으로는 전혀 아깝지 않은 돈이다. 아니 오히려 여기는 오면 올수록 돈을 버는 느낌이다. 서비스도 좋은 것이, 계산서가 늦게 나왔다고 매니저가 와서 사과까지 한다. 혼자가면 은근히 눈치를 주던 한국의 식당들과 비교된다. 계산을 하고 일어서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손님들이 그 자리에 앉는다. 내려가면서 보니 1층, 2층 다 만석이다.

소화도 시킬 겸 숙소까지 천천히 걸어간다. 만달레이의 밤 거리는 마음이 편하다. 미얀마 자체가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 동네 명일동 뒷거리를 걷는 느낌이다. 하긴, 낮에 안전함을 느꼈는데 저녁이라고 그 사람들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위험해질 이유가 있나. 거리가 흙으로 되어 있음에도 왜 이리 깨끗한가 했더니 사람들이 항상 나와서 수시로 청소를 하고 있다. 저녁 8시라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이시간에 빗자루를 가지고 나와서 청소하는 모습이 뭔가 특이하다.



급할 것도 없으니 천천히 걷는다. 한 도시가 보여주는 낮의 모습과 저녁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그나저나 그리 멀리 온 것이 않음에도 이리 다른 곳이 있단 말인가? 역시 도시는 발로 느껴야 한다는 철학을 다시 깨닫는다. 차를 타고 가면 못 느끼는 것들이 걸어가다 보면 하나하나 보인다.


한 곳에서는 한 개가 엄청나게 많은 강아지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다른 곳에서는 나이트에서 나왔는지 섹시하게 차려입은 젊은 남녀들이 서로를 유혹하고 있다. Myanmar라고 간판이 있는 곳에서는 현지인들이 모여 시끌벅적하게 생맥주를 마시고 있다. 아 저기가 생맥주 전문점인가보다. 다음에 왔을 때 와야지. 이 밤거리의 그 어떤 곳도 불안하지 않다. 


중간에 기분이 좋아져서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노래도 부르고, 지나가는 개한테 "밍글라바"라고도 외쳐본다. 술에 취한 것이 아니다. 그냥 뭔가 기분이 업되서 분위기에 취한 것일 뿐이다. 이상하게 만달레이에서는 마음이 안정된다. 여기서는 게스트하우스가 여행 분위기의 30%가 아니라 80% 이상을 차지하는 거 같다.  만달레이는 대도시임에도 미얀마에서의 나의 고향 같은 느낌이 든다.


산책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다. 숙소에 들어가니 로키와 다른 남자 스태프들이 있다. 기분이 좋아서 81번가에 중국집 아냐 라고 한참 얘기하는데 아무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여기 사는 스태프들에게는 만 키얏이 큰 돈이겠구. 한복 얘기하고 아차 싶었는데 또 괜한 자랑을 한 게 아닌가 싶다. 으유, 이 눈치 없는 것.

컨디션이 나쁘지 않아서 그래도 내일 Hsipaw로 떠나기로 마음 먹는다. 만달레이는 어차피 또 돌아와야 하는 곳이니 방콕처럼 올 때마다 조금씩 볼 것을 남겨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로키한테 지금 시간이 좀 늦었지만 내일 오전 버스가 있는지 좀 알아봐달라고 부탁하니 알았다며 조금만 기다리란다.

여기저기 전화하더니 아침 6시 버스는 없단다. 저녁 7시 버스는 그다지 타고 싶지 않고, 역시 하루 더 있어야 하나? 뭐 그것도 막상 나쁘지 않다. 그런데 여기저기 더 전화하더니 오후 2시 반 버스를 찾았단다. 아니 없다더니. 뭐 이건 더 좋다. 아침 먹고 느긋하게 쉬다가 가면 딱이겠다.

버스값을 주니 이 시간에 표를 사러 뛰어 나간다. 너무 미안해서 멀리 가냐고 물어보니 가깝다고 별거 아니라고 웃으며 대답한다. 로키 첫인상은 솔직히 외모적으로 약간 정신지체가 있는 그저 바보처럼 착한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좀 겪다 보니 일도 똑 부러지게 하고 심성은 정말 너무나도 착하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거, 나쁜지 알면서도 나도 어쩔 수 없이 이러는거 보면 인간은 참 어리석다. 어찌 보면 만달레이, 아니 미얀마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지게 만든 건 로키 이 친구와 처음 갔던 식당의 그 종업원이었다. 사람은 첫 3초의 인상이 3년을 간다더니 이 친구들이 나의 미얀마에 대한 인상을 결정지어버렸다.

버스표를 받고서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방으로 올라온다. 9시가 넘었기에 자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조심스레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지만 방에는 아무도 없다. 아니, 다들 어디 간 거야. 만달레이는 아무래도 북부 미얀마 여행의 허브이다 보니 오래 머무는 사람이 없어서 누군가와 친해지기가 쉽지 않다. 뭐 없으면 잘됐지. 내일 떠나는 시간도 좀 늦어졌겠다, 세제를 물에 풀고 빨래를 담가놓고 씻으러 간다.

이제 드디어 잠옷으로 갈아입을 시간이다. 이 시간이 하루 중에 거의 유일하게 뽀송뽀송 있을 수 있다. 왜? 내 잠은 소중하니까. 서양인들은 잘 때 거의 다 벗고 잔다. 여자가 있든 없든 신경도 안 쓴다. 몸이 비루하건 왕자 복근이건 상관없다. 하지만 나는 못하겠다. 내 몸, 아무한테나 함부로 못 보여준다. 유교권 나라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절대로 몸이 비루하기 때문이 아니다.

침대에 와서 오늘 정리를 한다. 이제 오늘 마무리를 한 이후에 담가놓은 빨래를 제대로 빨고 옥상에 널은 후  책을 보면서 잠들면 된다. 요즘 21세기 자본론에 재미를 붙였다. 버스에서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멀미 때문에 아쉽다. 멀미를 피할 수 있던 내 오디오북은 노트 4와 함께 저 멀리로...

오늘 뭔가 기분이 많이 좋다. 만달레이는 날 기분 좋게 하는 거 같다. 이곳에서는 내 스토리가 있다. 여행지에서는 내 스토리가 있느냐 없냐가 가장 중요하다. 백 명 중에 99명이 극찬한 곳이라도 나에게는 최악이 될 수도 있다. 그러하기에 여행은 계속 나만의 자리를 찾아 헤매는 모험이다. 내일 시작될 Hsipaw에서의 여행, 다시 한번 나의 자리를 찾아 떠나 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1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