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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Aug 06. 2015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34

Vientiane, Laos to Vang Vieng, Laos

나에게는 비싼 숙소가 그다지 의미 없는 게 여기 숙소나 어제 기차나 잘 잔 건 매한가지다. 에어컨은 있으면 좋지만 새벽에는 오히려 추워서 끄기 위해 일어나고, 다시 더워지면 또 켜기 위해 다시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숙면을 취하는 데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

언제나 그렇듯 5시에 일어나지만 이곳도 해돋이를 볼수 있는 곳은 아니기에 해가 다 뜬 6시 반이 지나서야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을 먹어야 한다. 아침을 먹어야 몸에 힘이 들어가고 하루에 활기가 생긴다. 고맙게도 아침부터 신호가 제대로 오기에 근심부터 해결한다. 어느 순간부터 동남아식 비데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게 은근히 좋다. 날씨가 워낙 더운 이곳인지라 깔끔하게 해결해야 뒤탈(?)이 없는데 물로 씻는 것만큼 깔끔한 게 어디 있겠나. 좀 더러운 얘기일 수도 잇지만 언제나 얘기하듯 여행에서 이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덕분에 오늘 하루도 깔끔하게 시작한다.

나가기 전에 누워서 이것저것 검색을 해본다. 오늘 이 도시에 하루 더 머문다면 어디를 갈지, 또 떠난다면 어떻게 갈지를 구상해본다. 좀 보다가 '므앙응오이'라는 곳이 눈에 들어온다. 딱히 특별한 건 없지만 조용한 동네라는 게 마음에 든다. 오늘 바로 가볼까? 구글 지도를 열고 검색해보니 그건 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라오스의 북부동네라 여기서는 좀 멀다. 헌데 그곳을 염두에 두니 동선이 대충 그려진다. 여기 비엔티엔부터 제일 가까운 방비엥, 그 위에 루앙프라방, 그리고 북부 도시들까지 한 줄로 쫙 그어진다. 이 도시들을 하나씩 거치면서 북부로 가고, 그쪽으로 향하면 베트남도 가까워지니 육로로 베트남으로 넘어간 후에 베트남 북부를 돌다 내려와서 하노이에서 서울로! 이 코스가 최적이라는 느낌이다. 좋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그냥 방비엥으로 바로 떠나 볼까? 어제는 조금 고민했지만 결정은 항상 순식간이다.

비엔티엔의 새벽 거리는 다른 동남아 도시들에 비해서 꽤나 조용하다. 아, 오늘이 일요일이라 그런 걸 지도 모르겠다. 또 요일 감각을 잊었다. 노여사가 지금 여행 중이라는 사실에서 주말임을 상기해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식당들도 아직 다 셔터를 열지 않고 있다. 이거 아침 먹을 곳이나 있을런가 모르겠다.

좀 걷다 보니 거리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영업 중인 곳을 발견한다. 어제 저녁에는 못 본 듯한데 아마 아침에만 잠시 영업하시는 곳이지 싶다. 이런 저렴하고 가까운 곳은 환영이다. 보아하니 죽과 국수가 있기에 죽을 달라고 하고 얼마냐고 물어본다. 뭐라 하시는데 라오스말로 하셔서 못 알아듣겠다. 라오스어로 숫자도 빨리 외워야겠다. 어리둥절하며 보고 있으니 만킵짜리를 한 장 꺼내서 보여주신다. 만킵이면 얼마지? 1,000원 조금 넘는 돈이다. 단위가 크니까 그리 비싸지 않은데도 자꾸 비싸게 느껴진다. 빨리 익숙해져야지.

앉아있으니 곧 그릇에 뜨끈한 죽을 담아서 가져다주신다. 다른 사람들을 보니  이것저것 넣어서 먹고 있기에 나도 그럴까 하고 눈치를 보고 있으니, 앞에 앉은 다른 남자가 양념을 내게 넘겨준다. "꼽짜이"라고 감사를 표하고 주신 것들을 넣어본다. 레몬을 짜서 넣고, 설탕을 조금, 후추를 적당히, 그리고 말려놓은 마늘을 넣는다.

적당히 섞어서 먹어보니 이 맛은 익숙하다. 빠이에서 아침에 먹었던 그 죽과 거의 흡사하다. 하긴 죽이 죽이지 뭔 큰 차이가 있겠냐. 다만 여기는 뼈가 붙어있는 잡다구리 한 고기 건더기들이 꽤나 많다. 심지어 선지도 보인다. 동남아에서 선지는 처음 본다. 원래 이런 특수부위를 좋아하기에 맛있게 먹어준다.

다 먹고 버릇처럼 그릇을 정리해서 가져다 드리고 만킵을 공손하게 드린다. 내 공손함에 비해 사장님은 시크하게 받으시지만 하루 본 거니 뭐 어쩔 수 없다. 한 곳에 정착하고 단골을 만들고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야 이 사람들도 마음을 연다. 어서 빨리 라오스에서도 '시포' 같은 곳을 찾고 싶다.

어제 방비엥까지 가는 버스표를 40,000킵에 판매하는 곳을 찾아 나서 본다. 시간이 일러서 여행사 문은 아직 열지 않았겠지만 근처에서 커피라도 한잔하며 기다리면 열겠지 뭐. 근데 아무리 찾아도 모르겠다. 분명히 이 근처였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내 길눈이 이리 어두웠던가? 어제 스쳐 지나갔던 45,000킵에 팔던 곳은 여행자 거리 한복판이니 그냥 쉽게 발견한다. 안되면 이곳에서라도 사야겠다. 5,000킵 차이면 꽤나 커 보이지만 사실 600원 정도 차이다. 같은 버스표를 60,000킵에 팔려고 하는 숙소와는 다르다.

카페도 모두 문을 닫아 있다. 진짜 일요일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이곳의 아침이 늦게 시작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갈 수 있는 곳이 없다. 지금 있는 호텔의 체크아웃이 11시다. 어서 버스표를 먼저 사놓아야 마음이 안정되지만 연 곳이 없으니 도리가 없다. 날씨도 약간 더워지고 일단 방으로 돌아온다. 9시쯤 다시 나가서 돌아다녀봐야겠다.

9시가 돼서 나가니 숙소 로비에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어제 그 어여쁜 처자 둘이서 가방을 다 챙겨가지고 있는 게 아마도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이들도 나를 보고 놀라며 여기 숙박했냐고 묻는다. 12달러면 괜찮은 것 같아서 묵었다고 얘기해준다. 여기 좀 돌아다니면서 물어보니 도미토리 아니면 12달러에 에어컨방은 사실 거의 없다. 나름 딜을 잘했다.

처자들이 이곳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방금 전에 어제 국경에서 만났던 그 눈빛이 느끼한 벨기에 총각도 만났었단다. 내가 있었으면 중매 좀 섰을 텐데 아쉽다. 싸움 구경과 연애 구경만큼 재미있는 건 없다. 역시 여행 다니다 보면 한번 마주친 사람은 다시 만나는 일이 생각보다 흔하다.

이 친구들 혹시 버스표를 여기 호텔에서 60,000킵에 구입한 건 아닐까?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어제 35,000킵에 샀단다. 35,000?! 내가 어제 제일 저렴하게 본 게 40,000킵인데 능력 좋다. 젊은 처자들이 제법이다. 당장 어디인지 물어보니 명함을 가져왔다고 하나 준다. 나도 저기를 찾아가봐야겠다.

이들과 인사를 하고 돌아선다. 어차피 같이 방비엥으로 가니 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나겠지. 어제는 오래간만에 만난 한국 일행에 내 흐름이 많이 영향 받았지만 지금은 괜찮다. 하루 자고 나니 다시 나만의 외롭고 쓸쓸하면서도 자유로운 여행자로 돌아왔다.

처자들과는 작별 인사를 하고 그들이 준 명함 하나를 든 채 이들이 찾았다는 이곳의 최저가로 예상되는 곳을 찾아가본다. 이제 이 구역을 몇 바퀴 돌았더니 지도만 봐도 대충 어딘지 감이 온다. 그다지 헤매지 않고 근처까지 단번에 찾아간다. 어제 내가 봐 뒀던 여행사도 발견하지만 일요일이라 그런지 역시 문을 닫았다. 지금 가는 곳도 문 닫지 않았으려나. 이름을 보니 게스트하우스라도 그러지는 않았을 거 같다.

근처에 여행사가 하나 있기에 혹시 몰라서 물어보니 50,000킵이란다. 당황스럽군. 그냥 지나치니 바로 옆에 그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밖에 떡하니 35,000킵이라고 적혀있다. 그럼에도 바로 옆에 있는 여행사에서 50,000킵에 같은 표를 사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거다.

들어가서 확인하니 처자들이 알려준 그곳이 맞다. 혹시 몰라서 에어컨 버스임을 다시 확인한다. 사실 서너 시간 가는 거라 큰 의미는 없지만 이왕이면 에어컨이 좋겠지. 2시 출발이고 내가 있는 타위게스트하우스로 1시에 픽업을 온단다. 11시에 체크아웃이니 짐을 싸고 나와서 점심 먹고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 먹으면서 띵가띵가하고 있으면 딱일 거 같다. 구매한 표는 소중히 지갑 안에 갈무리해둔다.

이제 어디로 갈까? 점심 먹기에는 시간이 아직 이르고 그렇다고 숙소로 돌아가기는 싫다. 그러고 보니 어제 강 근처에 한국 여행사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어제 내 사정을 얘기하고 혹시 한국에서 돈을 송금 받으면 라오스돈으로 나에게 건내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가능은 한데 시간이 늦으니 다음날 오라고 했었다. 시간도 남으니까 한번 들러볼까. 대충 하루 3만 원으로 계산하면 30만원에서 40만원 내외만 있으면 일단 경비로서는 충분할 거 같다. 남은 200달러는 베트남으로 갈지도 모르니 비상금으로 남겨두자.

한인여행사를 찾기 위해 여행자 거리를 지나서 쭉 강가 쪽으로 걸어간다. 근데 여기 여행자 거리는 맞을까? 딱 보아하니 그런 느낌이긴 한데 확인은 못해봤다. 뭐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여행자가 많이 오면 그게 여행자 거리지.

강가 근처에 가서 한인여행사는 금방 찾지만 일요일이라 그런지 문을 닫았다. 아저씨, 왜 오늘 오라고 하셨나요. 뭐 어쩔 수 없다. 한국의 위성도시라는 방비엥에 가서 뽑지 뭐. 삼겹살 가게까지 문을 열었다니 한국 여행사는 분명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다.

남는 시간에 커피 한잔 마시고 싶은데 적당한 곳을 못 찾는다. 그러다 메인 사거리에 있는 카페가 눈에 들어온다. 어제는 너무 비싸 보여서 지나갔지만 커피 한잔이니 괜찮을 거다. 슬쩍 안에를 염탐해보니 에스프레소 머신도 보인다. 현지 커피도 좋지만 제대로 된 얼음 동동 아메리카노도 한번 먹을 때가 되었다.

자리에 앉으니 여사장님이 유창한 영어로 뭘 먹을 거냐고 묻는다. 갑자기 유창한 영어를 들으니 당황해서 내가 버벅거린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아메리카노'를 영어로 얘기할 때면 온몸이 느글거린다. 다른 단어는 영어식으로 굴려도 상관없는데 유독 '아메리카노'는 그냥 한국식으로 '아. 메. 리. 카. 노.'가 맞는 거 같다.

앉아서 기다리는데 여사장님이 이번에는 뒤에 서양인과 유창하게 불어로 대화를 나누신다. 라오스 신여성이다. 불어도 엄청 유창하다. 과연 몇 개 국어를 하시는 걸까? 외모도 나이는 적당히 있으신 듯 하지만 한때 미모로 날리셨을 거 같다. 어제 지나갈 때 서양 홀아비 같은 여행자들이 잔뜩 있던 게 이유가 있었다. 나도 동양 홀아비 여행자로 오늘은 합류해본다.

아메리카노가 나온다. 한 모금 쭉 빨아보니 진정 아메리카노다. 아 좋아라. 라오스에서의 된장남이 된다. 사실 된장남이라고 하기에는 이 한잔이 12,000킵, 즉 2,000원이 안된다. 그래도 제대로 된 아메리카노 한잔에 기분이 업된다. 입으로 전달된 카페인이 온몸을 돌고 뇌까지 전달되는 게 느껴진다.

와이파이가 잡히길래 좀 해보니 속도가 꽤나 나온다. 이럴 때 후딱 여행기를 올려야 한다. 사진을 첨부해서 올려보니, 30장이 30분이 안돼서 오류 한번 없이 올라간다. 어제 2시간 동안 고생해서 올린 게 억울해지는 순간이다. 라오스의 인터넷은 느리지 않았다. 그냥 내 방의 와이파이가 느렸던 거다. 빠른 김에 나스에 접속해서 백업을 좀 해보니 200KB/s가 나온다. 동남아에서 100KB/s가 넘는 것을 처음 본다. 감동이다.

앉아있는데 선글라스를 머리에 예쁘게 꽂은 한국 여성 여행자들이 지나간다. 누군가 그랬다지. 멋 부리면 한국 여행자라고. 사실 멋 부리는 게 뭐가 잘못인가. 부릴 수 있으면 부리는 게 좋다. 믿기지 않겠지만 나도 나름 최대한의 멋을 부린 거다. 이 티셔츠와 바지를 괜히 산 줄 아나.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거지로 보이겠지. 너희도 한 달 동안 7키로 가방만 들고 다녀봐라.

오랜만에 전달된 진성 카페인에 몸이 반응을 한다. 정신은 바짝 차려지고 손은 조금 떨리며 심장은 두근두근거린다. 이 느낌이 나름 좋다. 짐 싸러 일어나야 하는데 뭔가 가기가 싫다. 이 카페, 뭔가 느낌이 좋다. 분위기는 정말 다르지만 왠지 제주도 대평리에서 귤을 공짜로 주셨던 그 카페가 생각난다.

그래도 일어나야지. 어제 숙소는 15달러를 12달러로 네고했더니 제일 위에 4층을 줬었다. 체크아웃을 늦게 하면 또 뭐라고 할지 알 수 없다. 떠나기 싫어하는 무거운 엉덩이를 다그치며 억지로 몸을 일으킨다.

방으로 올라가는 길에 스태프에게 12시까지 있어도 되냐고 한번 물어본다. 한 시간 차이니 뭐 있어도 큰 상관없겠지만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 모든 것은 확실하게 하는 게 좋다. 다행이 괜찮다고 한다. 꼽차이.

방으로 들어와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잠시 더위를 식힌다. 혹시 모르니 샤워도 한번 더 한다. 언제나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12시가 다가온다. 이제는 일어날 때이다. 짐을 5분 만에 싸버린다. 이거 근데 짐이라고 불러야 하나? 그냥 잡다구리 덩어리? 버스를 탈거기에 두 가방을 합체하지는 않고 각자 따로 어깨에 메고 방을 나선다. 이런 좋은 방, 앞으로 라오스에 있는 동안에는 다시 오기 힘들겠지. 그래도 두 여성 여행자 덕에 좋은 방에서 하루 잘 쉬었다.

내려와서 스태프에게 얘기를 하고 메인 가방을 로비에 놔둔다. 점심을 먹고 한시까지 돌아오면 된다. 비엔티안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숙소 바로 앞으로 정했다. 어제 보니 사람이 항상 많은 게 꽤나 맛있어 보여서 떠나기 전에 꼭 가보고 싶었다.

오늘도 역시 손님이 많다. 현지인도 있고 서양인도 있고 한국인도 보인다. 마지막 식사로 잘 고른 듯하다. 메뉴를 보니 무슨 스프링롤 같은 거에 야채와 같이 먹는 식이다. 2만킵이면 먹어볼 만하다. 전통 쌈 같은거 일려나? 뭔지 모르겠지만 동남아에서 많이 보이던 Ovatine이라는 음료와 같이 주문해본다.

조금 기다리니 롤과 야채를 가득 담은 접시를 같이 가져다준다. 야채는 익히 보던 상추와 마늘, 오이, 그리고 고추이다. 특이한 점은 쌈에 밥이 아닌 면을 같이 준다. 같은 쌀이니 뭐 이리 먹으나 저리 먹으나 상관없겠지.

분석에 들어간다. 고추는 조그마하길래 혹시 안 매운 건가 싶어서 살짝 먹어보니 엄청 맵다. 큰일 날뻔했다. 마늘은 마늘이고, 오이는 오이다. 쌈은 향을 맡아보니 상추도 있고 고수도 있다.

상추를 하나 잡고 고수를 뜯어서 넣는다. 고기가 들어있는 롤을 하나 쌈 위에 올리고 면을 적당히 잘라서 그 위에 또 올린다. 마늘과 오이, 숙주나물을 넣고 주어진 땅콩소스를 조금 같이 담는다. 그리고 크게 한입 벌리고 입안에 넣어본다.

생각보다 조화가 괜찮다. 쌈에 롤을 넣는 것도 그렇고 면을 넣는 것도 그렇고 익숙하지 않아서 어떨까 싶었는데 의외로 맛있다. 거기에 고추를 조금 베어 먹으니 자극적인 매운 맛이 전달되며 맛이 완성된다. 이거 저녁에 왔으면 딱 소주 안주이겠다 싶다. 하지만 어차피 소주는 나에게 없다.

헌데 아침부터 이상하게 속이 부글거린다. 나 물갈이 끝난 거 아니었나. 한 달이 지났는데 또 왜 이런다냐. 라오스 물은 또 다를 수도 있겠다 싶다. 어제 먹은 버블티와 지금 먹는 차 모두 차가운 음료이기에 정제 안된 현지물일거다. 만약 지금 속이 안좋은데 거기에 추가로 이걸 먹은거라면 나름 큰일이다. 짧다고 하지만 그래도 서너 시간의 버스 여행에서 잘못하면 지옥을 맛볼 수도 있다.

내 앞에 자리에서는 한국 중년 남성분이 현지인들과 같이 식사를 하고 있다. 라오스말도 조금 하시는 게 이쪽에 오래 사신 분 같다. 아까부터 현지인들한테 계속 영어나 라오스 말이 아닌 한국말로 얘기하시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나가면서 한번 난리가 난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큰소리가 나오며 "씨 X 씨 X"이라고 욕을 계속한다. 무슨 일일까.

여행지에서 안 좋은 일이 생길 수 있지만 이럴 때도 가능하면 예의를 지켰으면 좋겠다. 모두의 여행 방식이 다르기에 행동 하나하나가 어떤 게 맞다라는 걸 얘기하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기본적으로 대화를 통하면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한다. 오해라는 게 언어의 문제에서 올 수도 있고, 문화의 차이에서 올 수도 있다.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도 그 나라의 이미지를 결정한다. 좋든 싫든, 나오면 우리 모두는 외교관이 될 수밖에 없다. 내가 진상을 부리면 개인이 진상 부린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한국인이 진상 부린 걸로 인식된다.

다 먹었는데 시간은 좀 남고 자리는 많기에 키보드를 피고 있으니 계산서를 가져다준다. 3만킵이다. 첫 식사를 4만킵이 넘게 줬다는 걸 생각하면 꽤나 괜찮은 가격이다. 5만킵을 주고 잔돈을 기다린다.

조금 기다려보는데 잔돈을 안 가져온다. 혹시나 해서 내 돈을 가져간 사람을 보니 그냥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아까 그분이 싸운 이유가 이거였을려나. 한국인은 당연하게 팁을 준다고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그래도 3만킵 식사에 2만킵 팁은 말도 안되잖아.

결국 종업원을 불러서 잔돈을 안 준다고 달라고 얘기를 한다. 알았다고 돌아가더니 자기들끼리 나를 보며 구석에서 웃는다. 아까 그분한테도 그러했었다. 뭐지? 살짝 기분이 나쁘지만 2만킵을 가지고 와서 넘어간다. 역시 싸움은 양쪽을 다 들어야 안다. 헌데 내가 이해한 상황이 맞는지도 확신이 없어서 기분이 나쁘기도 애매하다. 뭐 좋게 생각하자. 뭔가 오해가 있었겠지.

버스가 올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아서 숙소에 가서 로비에서 인터넷을 하며 기다린다. 와이파이 신호는 가득 이지만 속도는 여전히 느리다. 아까 카페가 그립다. 하지만 뭐 그렇다고 인터넷이 급하게 필요할 일도 없다.

1시가 지나서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왠 쌩따우 같은 버스가 온다. 헉, 저걸 타고 가는 건가? 좀 싸다 싶었더니 이런 쓰레기를 나에게 준건가. 그래, 싸게 샀으니 감수하자. 좋은 경험이지 뭐. 하지만 에어컨 버스라고 했는데...

내가 울상을 짓고 있으니 호텔 스태프가 이걸로 가는 게 아니라, 이걸 타고 버스 타는 곳까지만 간다고 일러준다. 표정에 보였나 보다. 아 다행이다. 한편으로는 저거 타고 고생하며 가도 좋은 경험이었겠다 싶었어서 아쉽기도 하다.

쌩따우에 올라타서 보니 모두 딱 봐도 한국인이다. 이제 드디어 그 유명한 방비엥행이 시작되었구나. 괜히 눈치 볼 거 없이 처음부터 한국말로 인사를 한다. 어차피 방비엥에서는 한국인을 피할 수도 없고 또 굳이 피할 이유도 없는 거 같다. 자, 모두 한국의 위성도시인 방비엥으로 떠나 보자.

거의 다 직장인들이고 짧게 4일에서 7일ㄲ지 휴가를 내고 온 사람들이다. 얼마나 꿀 같은 휴식일까. 여행지에서의 하루하루가 의미하는 바는 나보다 이 사람들이 클 거 같다. 얘기해보니 다 좋은 친구들 같다. 근데 이 좋은 아이들이 왜 다 남자들끼리 온 거니. 그래, 이런 데는 남자들끼리 와야 더 재미있는 법이지. 그럼 그럼.

같이 방비엥에 있으면 앞으로 계속 마주칠지도 모르겠다. 다 좋아 보여서 같이 액티비티를 몇 번 하는 것도 좋아 보인다. 하지만 같이 일행이 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좋지 않을 거다. 난 하루하루의 여유를 목표로 하고 이들은 주어진 시간 내에 최대한 즐겨야 하니 목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인연이 되려나.

혹시나 해서 버스표는 얼마에 샀냐고 한번 물어본다. 10만킵에 샀다고 한다. 잘못 들었나? 두 명이 10만킵인가? 그래도 인당 5만킵이니 좀 비싼 건데... 근데 인당 10만킵이란다. 그것도 한 팀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팀도 그리 샀단다. 이건 너무 차이 나는데? 거의 사기 수준이다. 나는 얼마냐고 물어봐서 3만5천 킵에 샀다고 조심스럽게 얘기한다. 이미 지불이 끝난 거니 괜히 되새길 필요는 없을 텐데. 타는 버스라도 다른걸가.

쌩따우는 한 10분 정도 가더니 우리를 데려갈 진짜 버스가 서 있는 곳에 멈춘다. 근데 큰 버스라더니 미니버스가 하나 달랑 서 있다. 미니버스가 더 비쌌으니 이건 저들이 타고 갈 버스인 듯하고 내 버스는 어디 있지? 물어보니 그냥 모두 이걸 타란다. 같은 버스를 타는 거란 말인가.

이러면 이들은 같은 서비스를 3배의 돈을 주고 산 셈이다. 이건 바가지가 아니라 사기 수준이다. 라오스에 한국인이 많이 늘더니 한국인을 상대로 사기 치는 경향이 생긴 거 같다. 아까 식당에서의 경험이 이어지면서 조심해야 하는 나라로 인식이 된다.

버스를 타고 맨 뒤에 자리를 잡는다. 한국인 남성 6명, 한국인 여성 2명이 앞쪽에 앉고 나와 맨 뒤에 돌 정도 지난 아기를 데리고 온 프랑스 부부가 앉는다. 잠시 대화를 해보니 아기는 18개월이고 운전석 옆에 앉은 장모와 장인어른을 모시고 3달째 여행 중이란다. 이 부부는 2년째 여행 중이다.

서양에서는 이런 경우를 많이 본다. 아시아 사람들은 왜 나이가 들어서 이렇게 못 다닐까? 언제 한번 어머니를 모시고 배낭여행을 가고 싶어서 여쭤봤더니 질색하시면서 패키지도 힘든데 이걸 어떻게 가냐고 하신다. 이런 경험을 어머니와  함께하고 싶었는데 진심 아쉽다.

애기는 뒤에서 난리가 났다. 여기 왜 이리 덥다냐. 더위에 익숙해진 나도 이럴 정도면 다른 사람들은 정말 덥겠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그렇듯이 뒤에 앉아서 키보드를 편다. 하지만 워낙 길이 험해서 쓰는 게 쉽지 않다.

조금 가던 버스는 한 외진 곳에서 멈추더니 왠 현지 꼬마 아이를 하나 태운다. 자리가 있으려나? 맨 뒤에 프랑스 남편과 내가 양쪽으로 당겨 앉으며 자리를 만든다. 버스로 이동할 때마다 이런 경우가 한번씩은 있는 거 보니 현지인들 중 돈이 좀 있는 자들의 이동수단이 아닌가 싶다.

10살 정도 되는 아이가 내 옆에 와서 앉는다. 새로운 사람이 왔으니 또 한번 무의식적으로 인사를 한다. 아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영어를 아냐고 물어보니 모른단다.

잘됬다. 이 기회에 라오스말로 숫자나 배워야겠다. 어제 잠시 찾아보니 태국 말과 숫자가 매우 비슷하다. 태국말로도 '능, 송, 삼, 씨'까지만 외웠던 지라 그 이후는 사실 같은지 아닌지 모르겠다.

영어가 안 통해도 이 정도는 배울 수 있다. 어리둥절한 아이한테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능, 송, 삼, 씨"라고 하고 다섯 번째 손가락에서 아이를 빤히 쳐다본다. 갑자기 이해한 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나머지를 가르쳐준다. "능 송 삼 씨 하 혹 쨋 뺏 코이 십." 어라, 잘은 기억 안 나지만 태국어와 완전히 같은 거 아닌가?

자 기본을 익혔으니 고급 단계다. 십 이후 백, 천, 만을 물어본다. 돈의 단위가 크다 보니 그 이후를 알아야 사실 의미가 있다. 못 알아들어서 계산기 어플을 실행시켜서 보여준다. 이해한 소년은 교육을 이어나간다. "씹, 호이, 한, 믄, 샘." 대략 여기까지 익힌다.

다음은 응용이다. 계산기에 숫자를 하나 쓰고 읽으면서 맞는지 봐달라고 한다. '45975' 시믄하한코이호이쨋십하. 쉽지 않다. 반복 학습을 하면서 최대한 익숙해지려 노력한다. 몇 번 스스로 한 이후 소년한테 문제를 내달라고 한다. 무료 현지 과외다.

좀 익숙해지고 나서 답례를 하기 위해 한국어를 가르치려 해본다. 처음에는 내가 뭐하는지 못 알아듣던 소년이 내 의도를 알아채고는 손을 절레절레 흔들면서 싫단다. 그래, 공부하기 싫겠지. 미안하다. 그냥 잠이나 자면서 가자.

책을 피고 읽고 있으니 이 아이 피곤한지 꾸벅꾸벅한다. 살짝 어깨를 들이밀고 머리를 내쪽으로 기대게 한다. 자연스레 기대서 자는 아이를 보니 귀엽다. 아이들은 국적불문, 참 순수하고 예쁘다. 하지만 길이 아이를 편히 잠들게 하지 않는다. 엄청난 덜컹거림에 아이가 깨고 만다. 잘 자고 있었는데 안타깝다.

한 언덕 마을에 버스가 멈춘다. 아이는 여기서 내린다. 공짜는 아니고 얼마인가를 내고 내리는 듯 보인다. 이별의 인사는 라오스말로 아직 안 배웠기에 그냥 "바이 바이"라고 인사한다. 나를 돌아보며 미소를 한번 짓고 소년은 사라진다.

이제 방비엥에 많이 접근했나 보다. 길이 고불고불해지며 산을 오르는 것이 빠이 가는 길을 연상시킨다. 앞에 친구가 핸드폰으로 지도를 보고 있길래 얼마 남았는지 물어보니 대략 한 시간 정도 더 가면 도착할 듯하다.

어디서 자지? 혹시 몰라서 어디를 얼마에 예약하셨나 앞의 한국인들에게 물어보니 강가에 9만 원으로 예약을 했단다. 9천 원이면 모를까 9만 원은 나에게 3 일치 예산이다. 그냥 홀로 또 가방 메고 게스트하우스 사냥을 다녀야겠다.

옆에 프랑스 아이는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잠들어 있다. 아 귀여워라. 이렇게 어릴 때부터 여행 다니는 애들은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자라게 될까? 다양성을 존중해주고 자유로움을 아는 아이로 자라게 될까. 나중에 혹시라도 자식을 낳는다면 어릴 때부터 이런 자유로운 여행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

버스에 앉아있는데 앞에 한국인 남자가 네이버에 '방비엥 맛집'이라고 검색하는 것을 본다. 나도 모르게 여행지 맛집은 네이버보다는 TripAdvisor가 좋아요,라고 얘기하고 바로 후회한다. 일단은 일부러 보지 않았다 하지만 남의 핸드폰을 보고 얘기한 거고, 그걸 떠나서 무슨 내가 얼마나 안다고 남의 여행에 조언을 한단 말인가. 여행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고 하고서는 짧은 여행객이 많은 방비엥으로 오면서 나도 모를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그래 봤자 고작 한 달 여행했다고 말이다. 한심하다. 모든 여행자의 여행은 특별하며, 그가 겪는 실패 또한 여행의 일부분이기에 이런 참견은 정말 무의미한 거다.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부끄럽다.







우리를 싣고 달리던 미니버스는 5시가 되어서 방비엥에 세워준다. 모두 내리라고 해서 내린다. 내려서 가방을 챙기고 보니 내 앞자리에 분들은 이미 없어졌다. 다른 남자분들은 있기에 그분들과 프랑스분들과 인사를 나눈다. 나는 이제부터 게스트하우스 사냥에 나서야 한다.

새로운 도시는 언제나 낯설다. 이곳이 어디인지, 어디가 메인 거리인지, 강은 어디 있는지 도통 감이 안 잡히다. 일단 가방을 멘 상태로 방향을 한군대 잡고 무작정 걸어본다. 이럴 때는 발로 느낄  수밖에 없다. 발이 아픈 만큼 동네는 더 친숙해지게 된다.

방비엥을 둘러싸고 있는 산이 굉장히 멋지다. 때마침 일몰 시간과 맞아 떨어져서 산 뒤로 은은하게 번지는 노을을 감상한다. 온지 30분이 안됐지만 뭔가 매력이 풍부한 동네라는 게 벌써 느껴진다. '사람이 많고 유명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라던 한 여행자의 말이 떠오른다.

한참을 걷는데 너무 시골스러운 곳들이 나온다. 이곳이 맞나? 7만 원짜리 핸드폰의 GPS는 자기 멋대로 위치를 표시해주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다. 좀 가다 보니 이곳은 너무 외곽 같다. 외국인을 처음 보는듯한 사람들의 표정에서 가던 길을 되돌린다. 반대 방향으로 가보자.

돌아서서 쭈욱 가보니 여기가 어딘지 도통 모르겠지만 일단 게스트하우스는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중에 적당한 곳을 일단 한번 들어가본다. 물으면서 다녀야 이것도 감이 잡힌다. 사장님이 나를 보더니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는다. 한국인이라고 하니 바로 "꽃보다 청춘, 바로"라고 반사적으로 얘기하신다. 방이 얼마냐고 하니 "십이만킵"이라고 한국어로 대답해주신다. 동남아 여행하면서 한국말 하는 현지인을 처음 만난 순간이다. 이곳 사람들은 어느 정도 한국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정말 텔레비전의 위력은 대단하다.

에어컨 방이고 좋긴 한데 12만킵은 너무 비싸다. 내 표정을 보더니 사장님 10만킵까지 해주겠단다. 그 가격이면 어제 비엔티안에서 묵었던 숙소와 같다. 이곳도 유명해지더니 숙소 가격에 거품이 들어간 듯하다. 아무리 그래도 북부 시골 마을인데 수도보다 가격이 비싼 건 좀 그렇다.

일단 나와서 또 걷는다. 걷는 것만이 답이다. 그런데 걷다가 "Sengkeo"라는 게스트하우스를 우연히 발견한다. Booking.com에서 이곳이 가장 저렴했기에 여기를 기준으로 돌고 있었지만 지도가 엉망이라 못 찾았는데 갑자기 내 눈앞에 나타난다. 이런 거 보면 참 신기하다.

여기 근데 입구에 공사판이 있고 안에 아이들만 놀고 있어서 게스트하우스가 맞는지 의심이 든다. 망했나? 만약 오늘 부킹닷컴에서 찾아보지 않았다면 망한 줄 알고 그냥 지나갔을 듯하다. 그래도 한번 들어가본다. 아이들이 종이 비행기를 날리며 놀고 있다가 나를 흘낏 보고 그냥 다시 자기들끼리 논다. 야 그래도 손님이잖아. 혹시 리셉션이 어디냐고 물으니 안쪽을 말 없이 가리킨다. 여기 좀 머물면서 얘네랑 친해져 볼까? 낯가림이 심한 아이들이다.

아이들보다 더 눈에 띄는 건 강아지 한 마리다. 이놈, 사랑을 받고 자란 티가 난다. 내가 멀리서 손짓하니 미친 듯이 달려와서 핥고 난리 났다. 일반 길거리 개들과는 태도가 다르다. 귀여운 놈. 좀 놀아주다 리셉션으로 향한다.

한 아주머니가 맞이해준다. "싸바이디." 한 명 숙소가 얼마냐고 하니 60,000킵이라고 한다. 이게 얼마지? 대략 계산해보니 7.5달러다. 부킹닷컴에 얼마였더라. 왠지 그거보다 쌌던 거 같아서 내가 온라인 확인한 가격은 더  낮았다,라고 하시니 50,000킵으로 하자신다. 혹시 더 할인은 안되나? 안된단다. 사실 어제 잔 곳이 100,000킵이었기에 반값이면 굉장히 저렴한 거다.

방을 보여준다. 들어가보니 확실히 좀 후즐근하다. 하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 와이파이도 신호는 약하게 잡히지만 잠시 속도를 테스트해보니 어제 숙소보다도 낫다. 계약하자고 하고 5만킵을 드린다.

근데 부킹닷컴에 얼마였지? 한번 궁금해서 들어가보니 7.5달러다. 아 처음에 부른 60,000킵이 맞는 금액이었다. 그래도 바로 50,000킵으로 내리신 거 보니 이 정도 네고는 쉽게 해주나 보다. 확실히 비수기에는 온라인 예약보다 워크인이 더 저렴할 여지가 많다.

일단 땀을 꽤 흘렸기에 목욕부터 한다. 요즘 머물지 않고 계속 이동했기에 밀린 빨래도 많다. 옷 두개를 번갈아가며 입다 보니 둔한 나한테마저 땀냄새가 느껴진다. 이곳에서 빨리 빨래를 해야겠다.

씻고 나서 동네 파악도 할 겸 작은 가방만 들고 나선다. 애들이 아직도 마당에서 종이 비행기를 가지고 놀고 있기에 친해지려고 시도를 해본다. 내가 한창때 종이 비행기 좀 날렸지. 옛날 기억을 떠올리며 비행기 하나를 달라고 해서 나뭇가지로 날개를 돌돌돌 말아준다. 내 행동에 애들이 급 관심을 가지며 모여든다. 이제 이들하고 친해지는 건 순식간이다. 양쪽 날개를 다 같이 돌돌 말아준 후에 당당하게 던진다. 코앞에 떨어진다. 애들이 모두 나를 힐긋 쳐다보더니 다시 자기들 하던 일로 돌아간다. 이게 아닌데. 원래 이렇게 말면 비행기가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그러지 않았나? 미안해 애들아,라고 얘기를 하니 한 아이가 "It's OK"라고 쿨하게 대답해주더니 지네끼리 놀러 간다. 그게 더 서럽다 이놈아.

나를 이미 잊고 자기들 놀이에 빠진 애들을 뒤로 하고 방비엥 탐방에 나선다. 가는 길에 한 허물어져가는 슈퍼 같은 곳에 할머니가 한분 있기에 들려서 세제를 하나 산다. 공항에서 세제를 뺏겼기에 하나 필요하다. 말은 안 통하지만 눈빛과 행동으로 세제임을 확인하고 6,000 킷을 드린다. 오는 길에 소년에게 배운 라오스어를 잘 사용해먹는다. 숫자만 알아도 이거 은근히 쓸만하다. 이삼일이면 마스터할 수 있지 싶다.

이 게스트하우스 리뷰에 메인 길에서 멀리 있다고 불평이 있더니, 아마 여기가 끄트머리인가 보다. 그래서 그런지 길은 한적하고 외국인은 거의 안 보인다. 여기 한국인이 많이 오는 곳 맞나? 왠지 이 동네에서도 정 붙이고 잠시 지낼 수 있을 거 같은 기대감이 생긴다.

메인거리로 추정되는 방향으로 조금 가니 이제 번화한 모습이 나타난다. 여행지에서 항상 볼 수 있는 식당들과 바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길거리에 팬케이크 노점상도 널려 있다. 조금 더 가니 은행도 보인다. 이곳이 읍내 중심인가 보다.

이곳에 오니 한국인이 이제 본격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삼삼오오 몰려 다니는 것이 동양인이다 싶으면 거진 다 한국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양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약간 독특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일반 여행자들이 다니는 모습은 다른 여타 여행지와 다를게 없으나 그와 별개로 한국인 관광객들이 독특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 친구들끼리 온 사람들, 예쁘게 차려입은 처자들, 중년 부부들, 그 구성도 다양하다.

조금 더 지켜보다 보니 이러한 모습이 생길 수 있는 이유도 가늠이 된다. 다른 여행지와 다르게 여기는 확실한 '액티비티'가 있다. 그것도 트래킹 같이 난이도 높은 활동들이 아닌 강을 무대로 펼쳐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활동들이다. 그러니 머무는 여행자들 뿐만 아니라 즐기러 오는 관광객들도 포섭할 수 있는 걸거다. 그런 의미에서 방송으로 방비엥이 유명해졌지만 잠시 반짝하고 사라질 인기는 아닐 거 같다.

좀 돌아다니다가 나도 모르게 한국인들이 많이 자리 잡은 식당으로 가서 자리에 앉는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돌아다니다 보니 왠지 이쪽이 제일 맛있어 보였다. 한쪽에서는 원래부터 알던 사이는 아니지만 이번에 액티비티 하면서 친해진 듯한 8명 정도의 한국인들이 술을 마시며 시끌벅적하게 놀고 있다. 좀 시끄럽긴 하지만 이거 가지고 뭐라 하면 안된다. 약간 다른 방식이긴 해도 서양인들은 이보다 더 시끄럽게 더 늦게까지 논다. 빠이에서 경험했다.

라오스에는 역시 생맥주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일단 라오스 음식이라고 적혀 있는 35,000킵 짜리 요리를 주문한다. 왜 첫 식사는 비싸게 먹게 되는 걸까. 혹시 몰라 "Draught Beer"가 있냐고 그래도 한번 물어보니 ABC맥주가 그거라고 한다. 어, 있나? 10,000킵 짜리 맥주라 일단 달라고 해본다.

이게 뭔 생맥주냐, 병맥 주지. 아마 맥주 종류의 하나인가 보다. 예전에도 어디선가 이런 적이 있었다. 라오스는 그냥 생맥주가 없는 나라인가 보다. 가지도 않은 베트남이 벌써 그리워진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면서 습관처럼 키보드를 찾는다. 헌데 가방에 없다. 큰 가방에 넣고 나왔나 보다. 이런. 갑자기 얘가 없으니 너무 허전하다. 그럼 킨들이라도 봐야겠다 싶어서 보니 걔도 없다. 책과 키보드가 둘다 없는 건 이번 여행 다니면서 처음이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다 보니 갑자기 아무 할 일이 없어지면서 급격한 심심함이 몰려온다. 난 확실히 홀로 여행자가 아니라 '글과 함께 여행하는 여행자'였나보다. 이런 아무것도 없는 환경을 처음 맞이하다 보니 이상하게 외롭고 허전하다.

멍하니 앉아있으니 다행히 음식이 나온다. 음식은 우리나라로 치면 죽통밥 같이 무슨 통에 들어간 밥과 낮에 점심에 먹었던 것과 비슷한 쌈이 같이 나온다. 이렇게 쌈 싸듯이 먹는 게 라오스식인가 보다. 한번 먹어봤기에 익숙하게 먹는다. 밥이 차진 게 일반 동남아 밥과 다르다. 쌀은 같을 테고 조리 방법에 차이가 있나 본데 꽤나 맛있다.

앉아있는데 이 앞쪽 왼쪽 길로 물놀이를 하고 오는 듯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여기 물놀이도 할 수 있나? 일단 그럼 내일은 분위기를 하루 더 보고 액티비티는 그 다음날 하는 걸로 방향을 잡는다. 방비엥 자체가 최소 3일은 있을만한 곳으로 보인다. 물론 성향이 맞으면 장기투숙도 괜찮을 거다.

방비엥은 한국인을 너무 만날까 두려워서 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할 곳이 아니었다. 내 생각이 짧았다. 한국인이 너무 많으니 오히려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뭉칠 일이 없다. 미얀마 같이 한국인이 귀한 곳에서나 한국인을 보면 반갑다고 인사하고 일행이 되거나 하지, 이렇게 어느 식당에서든 한국인이 반인 곳에서는 오히려 한국인끼리 무시하게 된다. 이 당연한 진리를 식당에 앉아있으면서 깨닫는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

앉아서 계산서를 달라고 한다. 60,000킵이 나왔다. 뭐 이리 많이 나왔지. 10만킵을 주고 4만킵을 돌려받는다. 그리고 나가려고 하는데 뭔가 이상하다. 숙소가 5만킵인데 아무리 그래도 6만킵은 너무 나온 거 같다. 메뉴판을 찾아본다. 음식이 3만5천킵이고 맥주가 1만킵이다. 고로 45,000킵이다.

종업원을 불러서 설명해준다. 한참 듣더니 그런가 하면서 가더니 1만킵을 더 가지고 온다. 너 잘못 들었니. 15,000킵을 줘야 한다고 재차 얘기하니 다시 가더니 가지고 온다. 이거 과연 실수일까? 라오스 와서 이런 경험을 몇번 하다 보니 이제 의심이 된다. 실수도 반복이 되면 실수가 아닌 거다. 아까 버스를 10만킵 주고 탄 한국인들부터 해서 한국인을 호구로 여기는 게 아닌가 싶다. 라오스에서는 정신 좀 차리고 다 체크하면서 다녀야겠다.

너무 따지는 것도 문제지만 호구가 될 필요는 절대 없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내는 만큼만 내고 매너는 돈으로 하는 게 아니라 웃음과 대화로 보태는 거다. 아직 확실치 않지만 정말 라오스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우습게 안다면 아무 생각 없이 왔다가 바가지 당하고 가는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도 어느 정도 책임은 있는 게 아닐까.

찝찝한 기분을 안고 가방을 챙겨서 일어난다. 일단 강가로 가본다. 가다가 여행사가 있길래 시세를 알아보려고 여기 액티비티 가격을 물어본다. 카야킹과 동굴 탐험이 점심 포함해서 9만킵이란다. 아까 오면서 물어봤더니 다 10만킵이었는데 여기 좀 저렴하다. 게다가 내일 7명이 있다고 나 혼자 들어가도 부담이 안된단다. 잠시 고민하다가 결제해버린다. 내일 하루 더 분위기를 보고 액티비티를 하려고 했는데 조건이 좋아 보여서 그냥 마음을 바꿔버린다. 갈대와도 같은 게 여행자의 마음이라던가. 헌데 돈이 조금 부족하다. 줄 수는 잇지만 그러면 환전 전에 정말 땡전 한 푼 안 남게 된다. 결국 남겨놓으려 했던 노여사 돈에 손을 댄다.

여행 떠나기 전에 노여사가 예전 여행하고 남은 돈이라고 달라로 150달러 정도를 줬었다. 고맙게 받았지만 쓸 생각은 없었고 돌아가면서 이걸로 면세점에서 선물이나 사가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핸드폰을 잃어버리면서 돈을 뽑을 수가 없게 되었고, 결국 오늘 열게 되었다. 원래 용돈으로 준 거니 잘 쓸께. 대신 한국 가면 맛있는 곱창을 사주도록 하마.

9만 킵이라 10달러로 8만킵을 퉁치고 나머지 1만킵을 라오스킵으로 드린다. 여기서는 이유 불문하고 상점에서는 1달러에 8,000킵으로 통일되어 있다. 막상 은행에서 바꿔도 1달러에 8,020킵 이러니 달러를 써도 크게 손해 보는 건 아니다. 상인들도 미세하지만 이익이기에 마다하지 않는다.

내일 아침 9시까지 오란다. 수영복을 입고 오냐고 물어보니 그냥 옷을 입어도 된단다. 우리 물에 안 들어가나? 그건 다른 액티비티 일려나. 그래도 난 수영복을 입고 와야겠다. 강을 다니다 갑자기 뛰어들고 싶을 수도 있지 않을까. 언제나 대비해야 한다.

계산을 하고 길을 따라 더 내려가니 강가를 중심으로 진정한 여행자 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펍들이 쭉 늘어서 있고 게스트하우스들도 엄청 많다. 그리고 한국인도 엄청 많다. 특이한 것은 4개 바가 줄지어 있는데 모두 미드 '프렌즈'를 틀고 있다. 나도 프렌즈를 4번 정도 본 마니아이다 보니 나중에 와서 보면서 맥주 좀 마셔도 괜찮겠다 싶다. 그러고 있는 서양인들이 꽤나 보인다.

방비엥은 진짜 뭔가 매력덩어리 같다. 액티비티도 한둘이 아니다. 튜브를 들고 오는 사람들이 있기에 뭔가 봤더니 튜브를 빌려서 뚝뚝을 타고 상류로 간 이후에 그 튜브에 몸을 실어 강의 흐름에 자연스레 몸을 맡긴 채 유유자적하며 각자 내려오는 액티비티도 있다. 그 유명한 블루라군은 아직 어떻게 가는 건지 감이 안 잡힌다. 스쿠터를 빌려서 가야 하려나? 이곳에서 일주일간 매일 같이 액티비티를 해도 다 못할 거 같은 느낌이다. 거기다가 길거리는 빠이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많다.

길을 가니 현지인들이 말을 건다. 뭐지? 자세히 들어보니 스페셜 어쩌고 하는 게 마약이다. 론리에 보니 여기가 원래 마약 소굴이었다가 지금은 잡혔다더니 아닌가 보다. 히피들이 많이 있을 곳으로 보이니 마리화나가 빠질 수는 없겠지. 나한테 물어보는 거 보니 한국인들도 많이 하는 거 아닌가 우려된다. 뭐 자기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이 거리에는 생각보다 게스트하우스가 마음에 드는 곳이 너무 많이 보인다. 한 곳 찔러서 한번 들어가본다. 강가에 있는 것도 마음에 들고 번화가에 있으면서도 조금 들어가 있어 의외로 조용한 것도 좋다. 하지만 비싸겠지.

얼마냐고 물어보니 5만킵이라고 대답한다. 내가 잘못 들었나? 0 하나를 잘못 들었나 싶어서 물어보니 5만킵이 맞다. 화장실이 야외인가? 화장실도 실내란다. 방을 보여달라고 한다. 들어가보니 지금 있는 방보다 훨씬 깨끗하다. 아니 지금 게스트하우스가 제일 싼 줄 알고 시설이 안 좋아도 그러려니 했는데 이러면 얘기가 달라진다. 게다가 와이파이 공유기도 내 방 바로 앞에 있어서 풀로 잡힌다.

바로 계약한다. 가격에 놀라서 네고 생각도 못한다. 뒤늦게 생각이 들지만 늦었다. 대신 하루 더 있거나 그러면 얘기를 다시 해봐야겠다. 내일 오전에 액티비티를 가야 하니 그냥 돈을 주고 열쇠를 받아온다. 아침에 짐을 들고 방에 던져놓은 후에 강가로 놀이를 가야겠다. 역시 숙소는 와서 느껴야 안다. 온라인으로 백날 봐야 제대로 된 곳을 찾을 수 없다.

이것저것 하다 보니 벌써 8시 반이다. 오늘은 일단 귀가해야겠다. 키보드를 안 들고 와서 글도 밀린데다가 내일은 액티비티가 있는 날이니 좀 쉬어줘야 한다. 난 더 이상 이팔청춘이 아니다.

돌아오는 길이 상대적으로 멀다. 화려한 골목을 지나 한참을 걸으니 어두컴컴한 골목이 나오고 그 한구석에 내가 있는 Sengkeo 게스트하우스가 나온다. 여기 마당이 마음에 들긴 했지만 그래도 바꾸기 잘한 거 같다.

방에 들어와서 샤워부터 한다. 물이 졸졸졸 나온다. 그래, 내일 옮기니까 괜찮아. 씻고 침대에 누우니 온갖 벌레들이 난리다. 정말 지금까지 숙소 중 벌레로는 최고다. 오랜만에 떠올리는 마야네보다도 심하다. 그래, 내일 옮기니까. 오늘 계약하고 오기 잘했다.

누워서 글을 쓴다. 글은 그때그때 써야지 이렇게 밀리면 뭔가 짐이 된다. 하지만 오늘은 여러 가지 일이 있었기에 재미있게 작문을 한다. 내일이야 말로 하루종일 물놀이 액티비티라 중간에 못 쓸 가능성이 많다. 내 성격상 배 위에서도 쓸려나? 시포에서 트래킹 하면서도 썼는데 또 못 쓸 이유는 없지 싶다. 난 글과 함께 여행하는 여행자니까.

방비엥은 생각보다 무척 마음에 든다. 한국인이 너무 많으니 역설적으로 한국인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마음에 든다. 숙소만 괜찮고 여러 가지 상황이 맞으면 좀 오래 머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행은 언제나 이변의 연속이기에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르고 며느리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게 또 여행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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