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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Aug 05. 2015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33

@ Vientianne, Laos (Crossing the Border)

눈을 뜨니 오른쪽의 푸른 커튼과 낮은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침대에서부터 미세한 진동이 몸에 전해지면서 기차에서 자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상체만 살짝 세우고 기지개를 한번 쭉 편다.

오전 5시 반이다. 역시나 생각했던 데로 꽤나 잘 잤다. 중간에 한두 번 깨긴 했지만 바로 다시 잠들 수 있었다. 불을 끌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기차의 전등은 밤새 켜져 있었지만 내 숙면을 방해하지는 못하였다. 그 정도에 방해받기에는 어제의 하루가 너무 피곤했다.


기차는 밤새 어디까지 온 걸까. 잠시 화장실도 갈겸 사다리를 타고 조심조심 내려가 본다. 양 옆에 손잡이가 있어서 2층에서 내려가는 게 힘들지는 않다. 모든 침대칸은 파란색 커튼이 아직 굳건히 쳐져있고 승객들은 모두 한밤중이다. 어젯밤 모두 일찍 잠든 거 같은데 이 시간에 일어난 건 나뿐이다. 화장실을 가면서 밖을 보지만 본다고 해서 여기가 어딘지 알 도리는 당연히 없다. 내 목적지가 아마도 종점이었지. 크게 걱정 안 한다. 출입국 절차가 있으니 목적지에 다다르면 방송을 통해서건 승무원이 직접 얘기를 하건간에 내리라는 얘기를 할 거다.

시간이 아직 꽤 남아서 다시 잠을 청해 본다. 오늘도 어떤 하루가 펼쳐질지 모르니 잘 수 있을 때 충분히 자야 한다. 배가 고프다. 어제 먹을 수 있을 때 안 먹었기에 그렇다. 여행이란 이변의 연속이기에 항상 할 수 있을 때 그것이 무엇이든 최대한 해야만 한다. 오늘은 정말 맛있는걸 많이 먹어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눈을 감고 살짝 잠이 든다. 순간 나는 어떤 다른 여행지에 와 있다. 역시나 혼자 왔지만 사람들과 금세 친해져서 같이 어울린다. 로키 산맥을 가로지르는 버스여행을 하고 있다. 같이 있는 사람들이 너무 좋다. 일행에 아저씨도 있고 젊은 아이도 있다. 그들과 어울려 얘기를 즐겁게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스태프가 마지막 기차역이라고 일어나라며 소리를 지르며 깨운다. 잠시 꿈을 꿨나 보다. 갑자기 꿈에서의 일행이 사라지면서 외로움과 서글픔이 밀려온다. 그리고 난 다시 혼자다.

왜 이런 꿈을 꾼 걸까. 외롭나. 사람이 그리워졌나. 잠시 앉아있으니 원래의 나로 돌아온다. 홀로 여행은 당연히 외롭다. 가끔 일행이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그걸 상쇄시킬 만큼의 자유로움이 또 다시 혼자 여행을 떠나게 한다.

목적지가 가까워지자 승무원이 돌아다니며 침대를 다시 의자로 변신시킨다. 나도 가방을 챙기고 한편으로 물러서서 내 자리가 변하기를 기다린다. 어제 한 거의 역순이다. 매트리스 시트를 벗긴 후 배게 시트도 같이 벗겨서 따로 챙겨간다. 그리고 조립을 해제하여 1층은 의자 두개로, 2층은 안 쓰는 침대 하나로 만든다. 시트는 매번 새로운 것으로 쓰나 보다. 어제 잠자리가 괜히 아늑한 게 아니었다.

노여사는 어제 경주에서 사람들과 늦게까지 파티를 했단다. 혼자 다니는 거 좋다더니 다 거짓말이다. 태국 심카드의 마지막을 사용하며 오전에 잠시 대화를 나눈다. 그래도 난 혼자가 좋다. 가끔 외롭고 가끔 힘들고 또 가끔은 무섭기도 하지만 역시 혼자가 좋다. 난 나홀로 여행자다.

조금 후 이제 내리라고 승무원들이 돌아다니며 다시 알려준다. 몇번을 이리 알려주니 자다가 지나가는 일은 절대로 없겠다. 나도 이미 준비한 짐을 들고 일어나서 내리는 문쪽으로 간다.

곧 있어 Nong Khai 역에 도착하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내린다. 하루를 같이 있었지만 대부분 자는 시간이었어서 누가 누군지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그래도 이 기차, 생각보다 편안하고 아늑한 깨끗한 잠자리를 제공해주었다. 어찌 보면 비행기보다도 좋은 경험이 아니었나 싶다.

내리니 모두 어리둥절이다. 하긴 여긴 다 초행길일 테니 누군들 상황 파악이 되겠냐. 어제 자기 전에 잠시 검색해본 바로는 여기서 기차를 다시 타서 국경을 넘어가야 하는 걸로 기억한다. 그 기차표를 사는 곳에 가니 한두명이 줄을 서 있길래 나도 그 뒤에 조용히 가서 선다.

내 바로 옆에서 한국말이 들린다. 아까 기차에서도 한국인 두 명 정도가 보이는 것 같더니 라오스에 오니 확실히 한국인이 많아진 느낌이다. 지금 옆에는 어려 보이는 여자 두 명이다. 아는 척을 할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건다. "라오스로 가세요?"


왠지 내가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못했다는 그런 다소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맞다고 대답을 한다. 무서워하지 마요. 해치지 않아요. 표를 사기 위해 같이 기다리면서 잠시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눈다.

여행한지 얼마 안된듯 보이셔서 내가 아는 정보를 조금 공유해준다. 하지만 나도 어제 급작스럽게 오게 된 거라 딱히 아는 게 없다. 내가 한 달째 여행 중이라고 얘기하니 놀라신다. 항상 1년, 2년 여행하는 사람들만 보다 보니 이런 반응도 나름 신선하다.

뭔가 한국말이 그리웠나? 혼자가 좋다고 하다고 그리 얘기하던 내가 계속 먼저 말을 걸고 대화를 시도하려는 거 같다. 한 달 동안 혼자 다녔더니 뭔가 한국인과의 대화가 그리웠던 걸까. 아니면 아까 그 꿈 때문일까.

이제 기차표를 산다. 여기 기차는 국경만 넘어가고 바로 내린다. 15분만 가서 그런지 기차표는 20바트로 매우 저렴하다. 표를 사고 나니 역무원이 저쪽 Immigration으로 가라고 한다. 이미그레이션은 다음 역에서 하는 줄 알았는데 여기서 하는 건가? 일단 가라는데로 가본다. 어여쁜 한국 소녀 두명은 자연스레 일행 아닌 일행이 되었다.

세관용지를 제출하고 출국 수속을 한다. 다른 한국분 두 분은 금방 통과되는데 나는 시간이 좀 걸린다. 혹시 베트남을 가려다 취소된 거 때문에 전산 데이터에 문제가 생긴 거 아닌지 걱정된다. 하지만 곧 검사를 끝내고 여권을 돌려준다.

9시 기차인데 현재 8시니 시간이 1시간이 남았다. 혼자 여행 다닐 때는 언제나 기다림의 연속이라 한 시간은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지만 왠지 옆에 다른 이들이 있으니 신경이 쓰인다.

신경이 쓰인 건 나만이 아니었나 보다. 나 혼자 다닐 때는 그리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지더니, 어여쁜 젊은 여인 둘이랑 같이 있으니 사방에 서양 남자들이 말을 걸려고 시도한다. 벨기에 남성 하나는 대놓고 이쪽을 바라보는 눈빛이 다르다. 외국에서 한국 남자와 여자의 위상 차이를 몸으로 체감한다. 한 달 동안 사람들이 나와 대화할 때 느꼈던 눈빛, 말투, 그리고 보이는 관심이 지금과는 정말 천지차이다. 한국 여자들이 어디 가든 인기 많은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거 서러워서 살겠나. 그런 의미에서 노여사는 해외 여행 간다고 하면 좀 말려봐야겠다.

조금 기다리다 보니 기차가 와서 다 같이 올라탄다. 이 기차는 따로 배정된 자리가 없다. 그냥 아무 곳에 앉아서 바깥을 보며 멍 때리고 있으니 기차가 곧 출발한다. 확실한 일행은 아니지만 그래도 같이 가는 사람이 둘 있으니 아무래도 계속 신경을 쓰게 된다. 근데 그 신경 쓰는 게 예전만큼 불편하지는 않다. 사람이 그리운 걸까? 아님 아리따운 젊은 여성 둘이라 그런 걸까?

태국을 떠난 기차는 곧바로 라오스로 들어선다. 강이 막고 있는 두나라의 국경을 다리 하나가 잇고 있다. 다리 위에는 라오스 국기와 태국 국기가 같이 어우러져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그럼 여기서 궁금증 하나. 현재 이 다리 위에 있는 나, 즉 국경 위에 있는 나는 태국에 있는 걸까, 라오스에 있는 걸까?


이동 시간이 15분이라 다리를 건너자마자 도착이다. 다 같이 내린다. 같이 나오면서 보니 이곳에도 Immigration이 또 있다. 아, 아까는 출국 수속이고 여기는 입국 수속인가보다. 비행기 타고 떠날 때는 출국 수속과 도착해서 입국 수속, 이렇게 두 번을 하면서 육로는 왜 당연히 하나라고 생각했을까. 역시 사람의 선입견은 무섭다.

서양애들은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줄 서 있지만 한국인은 비자가 필요 없으니 바로 출국 수속으로 간다. 비자는 필요없어도 무슨 종이를 주고 채우라고 한다. 우린 말 잘 듣는 학생이니 하라는 건 군말 없이 한다.

별 의미 없는 용지를 작성하고 여권과 함께 제출하니 50바트를 또 달라고 한다. 여기저기 조금씩 돈이 나간다. 큰 돈은 아니고 공식적인 수수료 같기에 지불하고 입국 수속을 마친다.

이 와중에도 벨기에의 느끼한 눈빛을 보내던 그놈은 계속해서 우리 일행에 관심을 갖는다. 헌데 이놈 약간 축구선수 호날두를 닮았다. 나름 잘 생겼다. 잘되게 한번 밀어줘볼까?

하지만 서양인들은 아직도 비자 처리를 하고 있기에 인사를 하고 먼저 이동을 하러 움직인다. 여자 2명은 못 봤겠지만 난 돌아서면서 그놈의 절실하게 아쉬워하는 눈빛을 봤다. 나를 보며 뭔가를 애원하는 듯한 눈빛, 하지만 정확히 뭘 뜻하는지 모르니 무시하기로 한다. 그런 건 확실하게 말하라고. 쯧.

자 이제 버스를 타고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엔으로 향할 차례다. 그러고 보면 한 나라의 수도가 이렇게 국경과 가깝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태국이랑 엄청나게 사이가 좋나? 웬만하여서는 이리 가까우면 잠재적인 문제가 있지 않을까.

우리 같이 국경을 넘어온 사람들을 태워주기 위해서인지 한쪽에서 대여섯 명의 기사님들이 봉고 몇 대와 함께 모여있다. 그 기사님들과 흥정을 시도해본다.

담합이다. 얘네, 우리한테 다른 옵션이 없는 것을 알기에 서로 말을 맞추고 가격을 맞춰놨다. 봉고 한대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무조건 인당 200바트를 내란다. 그러면 3명에 600바트라는 얘기인데, 내가 한두 명을 더 데리고 올 테니 할인해달라고 해도 절대 안된단다. 조금 할인해도 사람이 늘어나면 당연히 이득일 텐데 안 내리는 거 보니 자기들끼리 무조건 인당 200바트를 기준으로 하자고 합의가 된 것이 확실하다. 알지만 어쩔 수가 없다. 여기서 걸어갈 수도 없고, 뚝뚝도 안보이니 다른 옵션이 없다. 이래서 경쟁이 필요한 건데, 그마저도 아마 미연에 없애버린 게 확실하다.

인당 200바트면 사실 너무 비싸다. 3명이니 600바트다. 하, 이걸 타야 하나. 조금 밀고 당기고 해보지만 우리한테 아무 무기가 없는 네고는 한계가 있다. 사람을 좀 더 모으는 게 어찌 보면 유일한 네고파워이자 변수지만 그마저도 잘라버렸으니 더 이상 방법이 없다. 그저 인정에 호소하고 비싸다고 하소연하는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네고가 유일하다. 이게 먹혀봤자 얼마나 먹히겠는가.

일단 150바트를 목표로 하지만 꿈쩍도 안 한다. 그러다가 그냥 3명에 500바트로 가자고 자기들이 먼저 제시한다. 이것도 한 명이 지른 게 아니라 다 같이 합의를 본 후 얘기를 한다. 이 정도가 최선인가 보다. 아쉽지만 대신 우리가 머무는 호텔까지 무조건 데려다 달라고 합의를 하고 올라탄다.

라오스도 첫인상이 썩 좋지는 않구나. 이런 게 한 나라의 인상을 만든다는 것을 알려나. 하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 나라를 생각하라고 하는 것도 이기적인 얘기겠지.

가면서 두 여인과 또 대화를 나눈다. 이후에 파타야 해변을 갈 계획이라길래 내가 있었던 꼬리뻬 파타야 해변의 사진을 보여준다. 어차피 이들은 일정이 짧아서 거기까지 못 들어갈 걸 알면서 나는 왜 보여주는 걸까. 자랑하고 싶은 건가. 여행에는 장소와 기간보다 마음가짐과 경험이 중요하다고 늘 생각하면서 나도 뭔가 속물적인 여행가가 된 거 같아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한다. 2박 3일 방콕 여행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고 경험이 있는 거다.

50분 정도를 가야 시내에 도착한다고 하던 봉고는 30분 정도 지나더니 도착한다. 처자들이 타위 게스트하우스를 이미 예약했기에 나도 그냥 거기서 내리기로 한다. 어차피 나는 목적지가 없으니 그 게스트하우스도 가보고 아니면 또 이동하면 된다. 기사님이 타위 게스트하우스를 사람들에게 몇번 물어보더니 한 길가에 우리를 세우고 내리라고 한다. 타위 게스트하우스가 여기냐고 물으니 여기 바로 옆이라고 대답한다.

일단 내가 500바트를 전부 지불하고 처자들에게는 나중에 받기로 한다. 내려서 스윽 둘러보는데 타위 게스트하우스가 안 보인다. 옆에 뚝뚝 기사가 있기에 물어보니 여기서 아주 멀다고 한참 걸어가야 한다고 얘기 해준다.

아차 싶어서 돌아보니 봉고는 이미 떠나고 없다. 이것도 사기라면 사기인 걸까. 혼자 다닐 때는 이런 단순한 사기는 당한 적이 없는데 잠시 한국인 일행을 만나서 경계가 풀어졌나 보다. 뭔가 다 내 잘못 같고 처자들한테도 미안해진다. 나야 가방을 메고 있으니 좀 걸어도 상관없지만 캐리어를 끌고 온 두 여인네는 걷기가 쉽지 않을 텐데 걱정이다.

앞에 편의점 같은 게 있기에 들어가서 길을 한번 물어보니 의외로 걸어서 10분 정도라고 그리 멀지 않단다. 아까 뚝뚝 기사님은 멀다고 얘기하고 손님을 유치하려고 한 걸가? 라오스의 첫인상이 진짜 그다지 좋지 않다. 길을 물어보고 나오니 처자들이 동전을 포함하여 자기들 몫을 내 손에 건네주고 자기들이 알아서 가보겠다고 한다.

이건 처음에 네고를 하고 대화를 한 내 잘못이라 여겨서 그냥 보내지는 못하겠다. 게다가 나보다 한참  어린아이들이라 조카 같아서 숙소까지는 데려다 주고 싶다. 어차피 나야 갈 곳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냥 숙소까지는 같이 가자고 하고 길을 리드한다.

가는 길에 여러 명에게 물어보지만 사람마다 다른 곳을 얘기한다. 다들 너무 친절하게 얘기를 해주는데 그 방향이 다르다. 모르면 차라리 모른다고 하면 좋을 텐데. 이거 흡사 인도에서 길 물어 볼 때의 느낌이다. 다들 어떻게든 돕고 싶어 하는데 막상 도움이 안된다.

그래도 대략적인 방향은 아는지 일러주는 길대로 가니 대충 근처에 온 느낌이 든다. 물어봤을 때 대답해주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근처임을 느낀다. 하지만 딱 그 게스트하우스가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이쯤 찾으면 대충 눈에 들어오던데, 어디 숨어있는 걸까. 그때 여인네 한 명이 "아 저기다!"라고 외친다.

하, 꽤나 어렵게 찾았다. 가끔 길을 헤매기도 했지만 항상 잘 찾는 편인데 새로운 나라이기도 하고 분위기도 좀 달라서 생각보다 고생한 거 같다. 둘을 이끌고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간다.

둘은 이미 Booking.com에서 15달러로 예약을 하고 왔다. 에어컨에 화장실이 딸린 싱글룸 중에서 가장 싼 거였다고 한다. 슬쩍 물어보니 도미토리는 없다. 두 명이 15달러면 한 사람 앞에 7.5달러니 이들에게는 괜찮지만 혼자인 나한테는 너무 과하다. 일단 그 둘이 접수를 끝내는 것을 도와준다.

청소가 좀 남았다고 기다리라고 해서 셋이 앉아서 잠시 기다린다. 그동안 살짝 네고를 해보니, 여기는 어차피 더블 침대라 1인이든 2인이든 가격이 같단다. 에이 그러지 말고, 얘기 좀 해보자. 스태프가 그래도 친절한 게 어느 정도 대화가 될 거 같다.

일단 처자 둘은 방청소가 끝나서 올라간다. 여기서 그들과 인사를 나눈다. 어차피 일정이 안 맞기도 하고 나도 일행을 만들 생각은 없기에 아쉽지만 이별이다. 점심이라도 같이 먹고 싶긴 하지만 먼저 묻지는 않는다. 같은 라오스에 있으니 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나겠지. 그래도 오랜만에 한국인들하고 이동해서 즐거웠다. 안전한  여행하세요.

둘이 올라가고 본격적인 네고를 한다. 한참을 고민하던 스태프가 그럼 10,000킵에 하자고 한다. 만킵이면 얼마지. 어차피 킵도 없으니 달라로 얼마냐고 물으니 대략 12.5달러란다. 이런 네고의 여지를 그냥 넘겨주다니. 그럼 그냥 12달러고 하자고 얘기한다. 조금 고민하더니 그냥 그러자고 한다. 15달러 방을 12달러에 했으면 나쁘지 않기에 나도 예상보다 조금 더 쓰긴 하지만 계약해버린다. 또 이동하는 것도 사실 좀 귀찮다. 일단 하루를 이곳에 있으면서 분위기를 봐야겠다.

방은 꽤나 괜찮다. 침대도 편안하고 화장실도 깨끗하며 느리지만 와이파이도 방에서 잡힌다. 어제 하루 종일 못 씻었기에 일단 대충 샤워부터 하고 침대에 눕는다. 이제 식사를 하러 가야 하는데 영 귀찮고 피곤하다. 그리고 이상하게 무기력하다. 누워서 가만히 있는데 뭔가 오늘따라 집에 가고 싶고 노여사가 보고 싶다.

계속 혼자 다니다가 정말 짧지만 한국인하고 일행을 해서 긴장이 무너졌나? 왜 이렇게 허무하고 허탈하지. 일단 11시 정도기에 배터리 두개가 완전히 방전된 핸드폰도 충전할 겸 잠시 누워있다 살짝 잠이 든다.

일어나니 1시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기운이 빠진 몸을 일으킨다. 세컨드 가방을 꺼내서 대충 물건들을 쑤셔 넣고 어깨에 울러 맨 채 나온다. 하지만 신이 나지 않는다. 일단 밥부터 먹어보자

거리로 나오니 낮 1시라 그런지 열기가 느껴진다. 그래도 북부 도시라 그런지 만달레이나 씨엠립에 비하면 귀엽다. 이 정도는 덥지도 않다. 일단 분위기를 한번 느낄겸 목적지 없이 그냥 한번 발 닿는 데로 걸어가본다.

라오스의 첫인상은 묘하다. 사실 아직까지는 사람들에게서 다른 나라와의 차이를 잘 느끼지는 못하겠다. 국경을 넘어갔지 나라가 바뀌었다는 인상은 잘 못 받는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 육로로 넘어왔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비슷하지만 그에 반해 비엔티엔의 풍경은 자기만의 독특함이 느껴진다. 나름 깔끔히 정돈된 도로에 다른 도시에 비해 현대적인 카페와 식당들이 많이 눈에 띈다. 이게 비엔티엔의 모습인지, 아니면 이곳 여행자 거리만의 모습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누가 서울에 와서 이태원만 보고 서울은 다양한 나라의 레스토랑들이 즐비한 이국적인 도시다,라고 얘기하는 누를 범하고 싶지는 않다.

오늘 점심을 먹기 위해 여기저기 둘러본다. 제대로 한 끼 챙겨먹고 싶은 마음인데 기운이 없다. 이런 현대적인 도시가 나와 궁합이 안 맞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이동이 피곤했는지 그저 힘이 없기도 하다. 어제는 그리 신났었는데 오늘은 왜 이럴까. 식당을 찾는 것도 맛있는 것을 먹어야겠다, 이런 즐거운 기분이 아니라 그래도 먹어야 기운을 차리지, 이런 느낌이다.

일단 라오스는 좀 오래 있을 수 있기에 환전부터 한다. 오늘은 하필이면 주말이라 은행이 다 문을 닫았다. 그래도 열어있는 환전소를 발견하지만 환율이 어떠한지 전혀 감이 없다. 일단은 그냥 지니고 있는 태국 바트만 모두 바꾼다. 어차피 돈을 한국에서 좀 받아야 할테고 아마도 그 돈은 라오스돈으로 받을 테니 환전은 조금씩만 일단 해보자.

유심도 하나 구입한다. 파는 곳이 없어 물어 물어 찾아가니 처음에 버스에서 내려서 길을 물어봤던 그 편의점이다. 유심이 얼마냐고 물어보니 10,000킵이란다. 아니 뭐 이리 비싸. 순간 당황해서 그냥 쓰지 말아야 하나 싶다가 자세히 계산해보니 1,200원 정도다. 단위가 큰 거는 알고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이게 직관적으로 안 받아들여진다.

편의점의 라오스 여성은 뭐가 좋은지 그렇게 웃는다. 유심을 넣었는데 내 7만 원짜리 핸드폰이 인식을 못해도 마냥 좋다며 싱글벙글이다. 결국 유심을 잘라서 마이크로 유심으로 만든 후 다른 슬롯에 넣으니 된다. 이 라오스 여성의 행복한 웃음을 마주치니 문득 미얀마가 떠오른다. 그래, 라오스도 정을 한번 붙여보자.

벌써 2시다. 이제 진짜 밥을 먹어야 한다. 먹어야 산다. 어제 어쩌다 보니 두 끼만, 그것도 매우 적은 양을 먹었었다. 그러하기에 이번 점심은 좀 제대로 챙겨먹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든다. 그런 각오로 주변을 둘러보지만 딱히 눈에 들어오는 곳은 없다. 이곳 거리의 특징인지 바와 레스토랑을 겸하는, 여행자들을 상대로 하는 음식점들만 눈에 들어온다.

순수 현지 식당을 가보고 싶었지만 그냥 여행자용 식당을 찾아가기로 한다. 경험상 현지 식당은 가격은 저렴한데 양이 적고 재료도 풍부하게 쓰지 않는 경향이 있다. 평소라면 상관없지만 몸보신 좀 해야 하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오히려 조금 비싼 여행자 식당이 나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빵 종류를 먹고 싶지는 않아서 돌아다니다가 라오스 음식을 파는 듯해 보이는 깔끔한 식당에 들어가서 자리 잡는다. 에어컨도 나오고 좋다. 앉아서 라오스 음식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골라본다. 메뉴를 보니 대략 동남아 스타일의 음식이 아닐까 예상이 된다. 라오스 비어 작은 것도 같이 하나 시킨다.

나온 것을 먹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고수향 물씬 풍기는 많이 먹어본 그런 맛이다. 그래도 배가 고파서 그런지 맛있게 먹는다. 좀 매콤한 걸로 시켰더니 입맛에는 맞는다. 라오스 맥주는 생각보다 은근 괜찮다. 동남아 맥주들이 대부분 입맛에 맛지만 그중에서도 이 맥주가 목넘김이 부드러운 것이 마음에 든다.

44,000킵이 나왔다. 이게 얼마야. 대충 계산해보니 6,000원이 조금 안된다. 이곳에 한 끼로는 꽤나 비싸지만 그래도 너무 과한 지출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절약하는 내 원래의 여행 스타일을 찾을 필요가 있다. 오늘 전반적으로 좀 많이 흔들리는 느낌이다.

일단 딱히 뭘 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어서 숙소로 발길을 돌린다. 비앙티앙은 내가 정말 티클만큼 밖에 모르지만 왠지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은 안 든다. 원래 계획한데로 도미토리를 가지 않는 바람에 이곳에 대한 정보도 많이 못 얻었다. 그냥 여기서 가까운 방비엥으로 내일 떠나 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느낌이 안 좋은 동네에 오래 있으면 뭔가 지친다. 궁합이 맞는 동네를 찾아 정착하는 것이 내 방식이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방비엥으로 가는 버스를 알아본다. 대충 보니 대략 40,000~45,000킵을 부른다. 에어컨 버스 기준이다. 어차피 서너 시간 가는 거라 부담 없기에 이 정도면 괜찮은 가격이다. 한국돈으로는 8로 나누면 되니 대략 5천 원 정도 선이다.

숙소에도 버스 예약이 되기에 물어보니 60,000킵이다. 바로 옆에 조금만 걸어가면 40,000킵에 팔고 있는데, 그래도 여기서 비싸게 예약하는 사람들이 있겠지? 아까 낮에 여성분들한테도 숙소에서 하지 말고 다른 곳에서 하라고 했는데 잘 했을런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그분들도 내일 방비엥으로 간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인연이 닿으면 또 만날지도 모르겠다. 방비엥 다음에는 어디로 가지? 좀 조용한 동네를 찾아봐야겠다.


돌아오는 길에 버블티를 하나 사서 온다. 이 동네에는 버블티가 정말 많이 보인다. 한국에서도 즐겨 마셨기에 여기서도 고민 없이 하나 산다.


숙소로 올라오니 또 뭔가 지친다. 잠시 앉아있다가 다시 잠이 든다. 어제 기차에서 나름 잘 잤는데도 이동을 해서 그런지 좀 피곤했나 보다. 살짝 잠이 드는 게 아니라 잠에 취해서 몇 시간을 비몽사몽으로 기절한다.

일어나니 7시다. 슬슬 저녁도 먹고 버스도 예약하러 나가야 한다. 새로운 나라에 새로운 도시를 왔는데 이렇게 탐험 욕구가 안 드는 것도 참 신기하다. 벗어나야 한다.

유심을 바꿨더니 카톡 인증을 다시 하라고 안내가 뜬다. 태국에서는 안 그러더니 왜 또 여기서는 이러지. 헌데, 아이디 로그인을 하니 이 아디를 쓸려면 기존에 썼던 번호를 넣으란다. 미얀마에서 썼던 번호를 내가 어찌 아니. 결국 아이디 로그인을 못해서 친구 리스트가 다 날아간다. 노여사와 몇 명만 아이디가 떠올라서 추가하고, 카톡 고객센터로 상황을 문의해놓는다.

아까 글을 올려보니 사진이 안 올라가서 말았는데 지금 올리니 느리지만 올라간다. 호, 한번 해볼까? 어제 여행기의 사진이 38장인데 10장까지는 잘 올라가더니 또 먹통이다. 7시 반이 넘었지만 이 10장을 못 올린게 아까워서 업로드가 될때까지 기다린다. 동남아에서 제대로 와이파이 속도가 나오는 곳은 정녕 방콕 밖에 없는 걸까.

중간에 에러가 또 뜬다. 에이씨 안 해. 밥이나 먹으러 나가야겠다. 딱히 땡기는 건 없지만 그래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에어컨을 끄고, 문단속을 하고 방문을 열고 나선다.

어디로 갈까? 일단 버스표 예약부터 할까? 예약하러 걸어가는데 숙소 바로 옆 왼편에 사람들이 많이 앉아있는 국수집이 보인다. 어차피 시간도 늦었고 여행사는 밥 먹고 가나 지금 가나 닫았으면 진작 닫았을 거고, 아니면 계속 열겠지. 그래 밥부터 먹고 가자.

식당에 들어가서 사람들이 먹는 걸 보니 면요리 같다. 뭔가 싶어서 유심히 쳐다보니 어차피 메뉴가 몇 개 없다. 그냥 적당히 중간 금액인 17,000킵 짜리로 주문을 하고 기다린다.

음식은 순식간에 나온다. 국물 미리 만들어놓고, 면만 끓여서 부으면 될 테니 사실 시간이 오래 걸릴 이유는 없겠지. 국물부터 떠 먹어본다. 닭뼈를 우려낸 건지 시원하다. 면을 먹어본다. 동남아에서 지금까지 먹었던 얇은 면과 약간 다르다. 칼국수하고 비슷하다. 신선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맛있다. 옆에 매콤한 양념을 좀 넣어서 먹으니 얼큰한 게 아주 마음에 든다.

뜨겁고 얼큰하니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 그릇을 해치운다. 아, 갑자기 이제 좀 살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맛있는 음식은 위장뿐만 아니라 머리도 개운하게 해준다. 이 한 그릇을 먹으니 희한하게도 오늘 하루 종일 다소 우울했던 기분이 나아진다. 사람 참 단순하다.

이 동네에 하루 더 있어볼까? 그래도 라오스의 수도인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잠만 자다 간다는 것은 좀 아니지 않나. 라오스 여행 중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면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베트남으로 바로 빠진다면 비엔티엔으로 다시 돌아올 일은 없을 거다. 고민된다. 일단 생맥주를 찾아보자. 생맥주가 빠지는 여행은 나에게 있을 수 없다.

지도에 보니 강이 있었던 것 같아 대략 그쪽 방향을 추정해서 걸어간다. 아까 낮에 왔던 방향에서 반대편으로 가보니 또 다른 라오스의 밤 풍경이 펼쳐진다. 여기도 길거리 음식이 여기저기 펼쳐져있다. 특히 오리 국수가 많이 보인다. 내일 낮에는 저런 걸 먹어볼까? 오늘 점심에 그딴 곳에서 먹는 게 아니었다. 바보 같으니라고.

하지만 방향은 잘못 짚었나 보다. 이제는 핸드폰 충전이 되어 있으니 지도를 열고 현재 위치를 짚어서 확실하게 찾아보고 방향을 대충 파악한다. 오늘 낮에 갔던 곳에서 조금 더 들어가야 하나보다.

그쪽으로 돌아서 가는데 중간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식당 같은 곳이 보인다. 그냥 지나칠 수 없지. 기웃기웃 거리니 한 현지인이 일본말로 말을 건다. 짧은 일본어로 일본인 아니고 한국인이라고 대답을 해준다. 근데 이분 일본말을 꽤 하신다. 나보다는 확실히 잘한다.

여기서 뭐를 파냐고 물어보니 두유란다. 그깟 두유에 사람이 왜 이리 많지? 얼마냐고 물어보니 공짜란다. 허, 왠 공짜? 공짜란 없다는 내 지론이지만 이건 좀 다르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결혼식 같은 파티를 하고 사람들에게 음료수를 베푸는 것 같다. 나도 일단 한잔을 부탁해본다.

얼음이 담긴 두유를 받고 여기서 지금 뭐하는건지 확실히 한번 물어보려고 아까 그 사람을 찾아보니 이미 이곳을 떠나고 있다. 이 사람도 주인이 아니라 얻어먹으러 온 사람이었나 보다. 뭐 공짜면 좋은 거지. 감사히 먹겠다고 얘기하고 돌아선다. 그나저나 라오스 말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를 아까 물어서 배웠는데 잘 안 외워진다. 이삼일 안에 필수 10 단어는 외워야 여행이 편해질 텐데.

두유를 먹으면서 강가 쪽으로 향한다. 동남아에서 방콕을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횡단보도와 신호등을 본다. 좋은데? 근데 조금 기다려보니 신호등의 시스템을 모르겠다. 기다려도 신호가 안 바뀐다. 그냥 폼인가. 한참 기다리다 무시하고 미얀마에서 늘상 그랬듯이 스릴을 즐기며 길을 건넌다.

조금 걸으니 역시 예상했던 데로 낮에 왔던 그 여행자 거리가 나온다. 여기도 세 번째 보다 보니 이제 좀 익숙해졌다. 여행 다닐 때 낯설음을 없애는 방법은 단순하다. 그냥 계속 봐야 한다. 이 동네도 좀 돌아다녀보니 역시나 생각보다 그리 크지는 않다.

뒤에서 한국말 소리가 잔뜩 들리더니 가이드 한 명이 중년부부 대여섯 쌍을 이끌고 오고 있다. 나를 한국인으로 생각하지 않는 듯해서 나도 그냥 묵묵히 따른다. 방향이 같아서 계속 같이 가게 된다. 이분들도 강가로 향하고 있나 보다.

조금 걸어가니 시야가 확 트이면서 넓은 강이 나온다. 이 강은 한강보다 더 크다. 메콩강인가? 사전 정보 없이 와서 무슨 강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야가 확 열리니 시원한 느낌이 든다. 주변에는 저녁에만 열리는 건지 계속 있는 건지 모를 시장이 길가에 펼쳐져 있다.

잠시 한국 가이드의 말을 훔쳐 들으니 이 고수부지 같은 곳이 한국에서 원조를 해줘서 만들어진 곳이란다. 우리나라의 한강고수부지 공원과 다소 흡사하다. 커플들이 앉아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기도 하고 가족 단위로 나와서 더위를 피하고도 있다. 나도 그런 사람들 옆에 스윽 가서 조용히 앉은 후 키보드를 펴본다.

바람이 불어서 시원하다. 물은 왜 항상 바람과 친구인 걸까. 물로 인하여 저기압, 고기압이 형성되던가. 예전 고등학교 지리 시간에 집중 안 한 티가 난다. 호기심이 좀 생기지만 묻어둔다. 헌데 모기를 너무 과소평가했다. 바람 때문에 없을 거 같더니 마구 물어댄다. 모기퇴치 크림을 바를까 잠시 고민하다 오늘은 그냥 일어선다.

잠시 시장을 둘러본다. 티셔츠를 하나 살까? 아니면 팔찌를 하나 살까? 예쁜 물건들이 많지만 뭔가 손이 안 간다. 아직 라오스에 애정이 담기지 않아서 그런 거 같다. 미얀마에서 티셔츠나 팔찌라도 하나 사올걸 하는 뒤늦은 후회가 든다. 시포에서 그곳을 기억할 그 아무것도 사오지 않았다니. 이번에 혹시 시포만큼 마음에 드는 장소가 나타나면 꼭 뭔가를 하나 사서 몸에 걸치리라 다짐해본다.

다시 생맥주를 찾아 나선다. 베트남에서 500원에 생맥주를 3잔 준다는 얘기에 흥분해서 엄청 기대했었는데 라오스에서는 아직 잘 안 보인다. 유일하게 길거리 식당에서 판매하는 곳이 보이긴 한데 가볍게 한잔 먹을 분위기는 아닌지라 내일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넘긴다.

찾다가 보니 다시 숙소 근처까지 와버렸다. 한바퀴 돌아보니 라오스에서는 생맥주를 즐겨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신 버블티가 엄청나게 많이 보인다. 깔끔한 버블티 매장만 해도 숙소 앞의 짧은 거리에 세개나 보이고, 그 이외에 현지인들이 주 고객인듯한 후즐근한 버블티 가게도 꽤나 보이는데, 모든 매장에 사람이 꽤 많다. 아까 낮에 하나 사서 먹긴 했지만 내일은 점심 먹고 아예 현지인 스타일의 가게를 들러볼까 계획해본다.

근처에 팬케이크 가게가 하나 보이지만 생맥주는 아무리 찾아도 안보인다. 생맥주는 포기한다. 이곳에서 팬케이크나 하나 사고 맥주 한 병을 마트에서 사 가지고 숙소에 가서 책이나 보면서 먹어야겠다.

팬케이크 아저씨에게 팬케이크를 하나 달라고 한다. 8,000킵이다. 우리나라 돈으로 1000원, 저렴하다. 이 아저씨 만드는 폼이 꼬리뻬의 그 할머니와는 차원이 다르다.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진다. 들어가는 건 계란과 버터, 그리고 연유 밖에 없어 보이지만 딱 봐도 맛있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만들면서 이것저것 아저씨와 대화도 나눈다. 요새 한국인이 많아졌다기에 한국에 텔레비전 프로가 나와서 그렇다고 알려준다. 라오스말로 안녕인 "사바이디"와 땡큐인 "꼽차이"를 다시 배운다. 이제 이 두 단어는 겨우 머리에 들어온 듯 싶다.

포장해준 팬케이크를 들고 맥주를 사러 편의점을 간다. 이 거리에 편의점이 있는지 모르고 아까 심카드 사러 괜히 엄한 곳을 엄청 헤매었다. 여기 꽤나 유명한 거리인가 보다. 이 거리에만 한국식당이 두개나 있다. 동남아에서 가장 시원한 곳인 편의점에서 비어라오 큰 병 하나를 9,000킵에 산다. 생각해보니 치약, 칫솔이 없어져서 걔네도 하나씩 구입한다.

방으로 올라와서 흐른 땀을 샤워하며 씻어내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침대에 앉는다. 아까 산 팬케이크와 맥주를 펼쳐놓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와이파이 속도가 나쁘지 않기에 다시 한번 업로드를 시도해본다. 저번에 업로드하면서 핸드폰으로 다른 검색을 시도하다가 실패한적이 있기에 이번에는 글이 올라가는걸 기다리면서 건드리지 않고 맥주를 마시며 책을 본다.

최소 20번의 오류 끝에 조금씩 전진하던 업로드바가 드디어 완료된다. 아 이번 글 올리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역시 여행기까지 올려야 비로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오늘 글도 올려야 하지만 그건 내일의 몫으로 넘긴다.

라오스에서의 첫날이지만 사실 아직 라오스에 들어온듯한 기분이 안 든다. 동남아의 분위기는 당연히 느껴지지만 라오스만의 느낌은 아직 나에게 전달이 되지 못했다. 이건 좀 더 머물러야 하는 걸까, 아님 더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걸까. 내일 방비엥으로 갈지 말지도 고민이다. 버스가 오전 10시, 그리고 오후 1시에 있는 듯 하니 내일 일어나서 한번 생각해봐야겠다. 오늘은 딱히 힘든 건 없는 날이었지만 뭔가 굉장히 무기력한 하루였다. 내일은 다시 내 여행의 페이스를 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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