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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Aug 04. 2015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32

From Bangkok, Thailand to ...

Day 32, 2부의 시작이다.


6시 45분 비행기라 새벽 4시 반으로 알람을 맞춰놨다. 하지만 그 이른 새벽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알람이 울리기 1분 전에 잠에서 깨고 알람을 끈다. 이건 좀 병 같다.

근데 굳이 이렇게 빨리 출발할 필요가 있을까. 공항도 하도 가다 보니 익숙해져서 국제항공이라도 한 시간이면 준비가 다 될 거 같다. 하지만 늦어도 5시에는 나가야 안전다.

어제 오랜만에 와이파이 연결이 되고 밀린 여행기를 올리고 사진 백업도 하느라 막상 베트남에 대한 검색을 제대로 못했다. 아침에 서둘러 오늘 가는 하노이에서 머물 게스트하우스를 지도에서 확보해보려 하는데 또 핸드폰이 말썽이다. 여긴 초행이라 어느 정도 찾아보고 갈 필요가 있는데 시간이 없다. 짐을 싸고 잠시 정비를 하다 보니 어느새 출발해야 하는 5시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져서 서둘러 짐을 싸고 어깨에 울러 매고 뛰어나오듯이 문을 열고 나선다.


내려오니 24시간 스태프가 있는 건지 한 명이 바깥에서 졸고 있길래 택시 좀 빨리 잡아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 얘기를 하자마자 택시가 한대 들어온다. 무전도 안 했는데? 그냥 한번씩 와서 찔러보나 보다. 유명한 호텔이라 다르다.

이런 거 별로 안 좋아하지만 급하니 어쩔 수 없다. 기사님한테 비행기 시간에 좀 늦었으니 빨리 가달라고 부탁드린다. 아저씨 알겠다는 끄덕임을 하시더니 방콕의 총알택시의 진수를 보여주신다. 방콕에서의 운전은 서울보다 무서워 보인다. 새벽 시간인데도 여기저기 끼어들고 난리도 아니다. 나도 운전 꽤 해봐서 나름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여기는 위험하다.


어제 리셉션의 여성 스태프가 100바트면 택시로 공항까지 무조건 간다고 호언 장담하더니, 총알택시는 고려를 안 했나 보다. 택시를 가끔 타다 보면면 천천히 시간 끌면서 가는 게 요금이 더 나오는지, 아니면 그냥 빨리 가는 게 더 많이 나오는지 항상 궁금했는데 오늘의 경험 결과 최소한 태국에서는 빠르게 가는 것이 더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같은 거리인데도 112바트가 나온다. 내가 어제 돈을 아껴놨기에 망정이지 예산이 모자랐으면 큰일날 뻔했다. 새삼스레 어제 그 저렴한 식당을 추천해준 종업원한테 감사의 마음이 든다.

그래도 기사님 덕분에 5시 20분까지 공항에 도착했다. 6시 45분 비행기니 가까스레 1시간 반 정도 전에 도착한 셈이다. 택시 요금이 생각보다 좀 더 나오긴 했지만 놔둬봤자 쓸데도 없는 바트, 팁까지 드릴까 하다 그냥 감사의 마음을 담아 잔돈까지 딱 맞춰서 드린다. 미안하지만 내 인생에서 팁은 어제 저녁이 마지막이다.


새벽의 공항은 평소와 다르게 매우 분주하다.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를 가는 걸까? 평소 오던 돈므앙 공항의 인파보다 3배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다들 티켓팅을 하고자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불안해해야 정상이지만 이미 키오스크의 셀프 체크인이 워낙 익숙한 나에게는 큰 걱정이 없다. 바로 키오스크로 직행한다. 이 시간은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키오스크에도 한두 명 줄이 있고 도와주는 스태프도 있다.


국제 항공이니 여권을 스캔해야 하는데 내 기억으로는 왼쪽 키오스크 스캐너가 그다지 안 좋았기에 오른쪽으로 줄을 선다. 돈므앙 공항은 너무 자주 오다 보니 진짜 우리 동네인 명일동 만큼 편해졌다. 키오스크에 스태프가 있으니 편하게 다 알아서 해준다. 저번에 가장 난관이었던 스캔도 스태프가 하니 일사천리다.

시간이 아주 촉박하지는 않지만 공항에서는 무조건 보딩 게이트 앞까지 간 후에 쉬어야 마음이 편하다. 바로 패스포트 컨트롤로 간다. 여기도 줄이 쫙 서있다. 쑤완나품 공항도 있는데 왜 다 여기 있는 걸까. 돈므앙 공항에서만 입출국을 하는 에어아시아 때문이겠지. 여기서 국제항공편을 운행하는 건 내가 알기로는 에어아시아 뿐이다.


사람은 많지만 생각보다 금방 줄이 줄어든다. 한쪽에서는 출국세관통지서를 작성하는 사람들이 있다. 몇 번  입출국했더니 출국 세관 서류는 꼭 챙겨놓는다. 캄보디아에서의 항공편을 안 적어서 다시 써야 했던 경험을 되살려 오늘은 줄 서서 항공편도 써놓는다. 갑자기 씨엠립 공항에서 그때 펜을 집어던진 공학 직원이 떠오른다. 에잇.

이번에는 시큐리티체크이다. 오늘은 그냥 통과되려나? 바쁠 때는 여기를 절대 그냥 통과되는 법이 없다. "삐~" 소리와 함께 한쪽으로 가서 가방을 열라는 지시를 받는다. 하, 그래 이것마저도 몇 번째냐. 알았다고 하고 그냥 열어서 세제를 보여준다. 다른 거 보려고 하길래, 내가 알아 이거 맞아,라고 얘기해준다. 이거 버리든가 해야지. 빠이에서 산 거니 오래 쓰기도 했다. 나도 참 물건 안 버린다.

헌데 이번에는 세재를 돌려주지 않는다. 버려야 한단다. 이건 또 무슨 말이래. 내가 이거 들고 비행기만 7번을 탔다고 그래도 안된단다. 몇 푼 안 하는 거니 아까운 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정이 들어서 버릴려니 아쉽다. 그래도 내 더러운 옷들을 항상 깨끗하게 만들어주던 우렁각시 같은 존재였는데. 잘 가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게이트로 가면서 남은 태국돈을 탈탈 털어 음료수 하나를 산다. 남겨봐야 쓸데도 없을테니 다 소비하는게 오히려 낫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목도 모른데 잘됐다.


게이트 앞으로 가니 약 한 시간 정도 시간이 있다. 하지만 베트남에 대한 정보를 거의 못 모았기에 여유를 즐길 틈도 없이 앉아서 정신없이 검색한다. 와이파이가 될 때 최대한 많이 준비를 해야 한다. 화면 캡쳐는 왜인지 몰라도 여전히 안되기에 노여사가 떠날 때 줬던 작은 노트에 열심히 옮겨 적는다.


시간이 돼서 보딩이다. 굳이 빨리 갈 필요 없어서 줄이 좀 줄어들기를 기다리다가 맨 뒤에 선다. 이제 내 차례가 되어 들어가는데 갑자기 내 여권을 보더니 베트남에서 출국하는 비행기표는 있냐고 묻는다. 아니 다른 사람은 다 안 묻더니 왜 나한테만 묻지? 불법 체류할 것처럼 보였나? 이럴 때는 당당해야 한다. 당당하게 없다고, 거기서 라오스로 버스 타고 넘어갈 계획이라고 얘기한다. 그랬더니 자기들끼리 뭔가를 진지하게 얘기하더니 잠시 옆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9시 45분에 떠나는 비행기인데 지금이 9시 35분이다. 10분 밖에 안남았다. 일단 사람들이 다 들어가기를 기다렸다가 급하게 뭐가 문제냐고, 빨리 처리해달라고 제촉한다. 마음이 급하다. 나를 빨리 들여보내라!

스태프가 오더니 출국하는 비행기표가 지금 없으면 입국이 안된단다. 이건 왠 생뚱맞은 소리지. 그럼 입국해서 버스로 출국하는 그 수많은 여행자들이 미리 표를 예매하고 간다는 소리냐. 말이 안되잖아. 그게 말이 되냐고 하니 한국, 일본의 여행객들에게만 그리 제재를 한단다. 3개월 전에 규정이 바뀌어서 공문이 내려왔기 때문에 자기들도 어쩔 수가 없다고 한다. 아니 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서 진상이라도 부렸나. 일본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그렇고 베트남에서 불법 체류할 사람이 어디 있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규정을 만들었을까.


그러는 와중에도 시간은 잔인하게 흘러간다. 스태프가 나보고 지금 예약할 수 없냐고 묻는다. 핸드폰으로 예약하라고 하는데, 내 이 7만 원짜리 핸드폰으로 예약하려면 10분 안에는 절대 불가능하거니와 예약할 항공권을 지불할 카드도 없다. 그러고 있는데 시간은 9시 44분이 된다. 스태프가 미안하다고 하며 무전기로 비행기를 출발시키라고 얘기한다.


내 비행기! 내 비행기! 눈앞에서 강도를 만난 느낌이다. 내가 내 돈 주고 산 내 표를 쓰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되냐. 규정이 그렇다면 따라야겠지만 한국과 일본 두나라에만 그렇다는 건 굉장히 마음에 안 든다. 그걸 다 떠나서 비행기가 나 없이 이륙하는걸 보고 있으니 현실이 확 와 닿는다. 아 이제 어쩌지.

그러면 내 방금 놓친 비행기표는 환불이라도 받을 수 있냐고 하니 환불은 공항세만 가능하단다. 공항세 얼마나 한다고, 망했다. 대신 추가 페널티를 조금 내고 내일 같은 도시로의 항공권으로 교환은 된다고 한다. 그래, 이미 비행기는 떠났으니 어쩔 수 없다. 정신을 차리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지금 옵션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하나는 다시 내일 하노이로 가는 새벽표로 교환하고 돌아오는 표도 구매한 뒤 방콕에서 하루 더 자는 거다. 이 경우 오늘 방콕에서 지내는 비용이 들고, 미리 구매한 돌아오는 표는 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디로 이동할지 모르는데 표를 사놓으면 어쩌라는 건지. 두 번째는 오늘 당장 호찌민시로 가는 거다. 호찌민은 낮 1시 반에 비행기가 있다고 한다. 그럼 오늘 출발할 수 있으니 방콕에서 하루를 더 쓸데없이 보내는 건 피할 수 있을 듯 싶다. 혹시나 해서 라오스로 가는 비행기를 스태프에게 물어보니 라오스는 에어아시아가 안 간단다.

일단 이 탑승구에서 공항 대기실로 다시 나가야 하는데 혼자는 못 가기에 스태프 한 명이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따라간다. 이런 상황이 나만 있는 것이 아닌게 중국 관광객 여러 명도 그 스태프를 나와 같이 따라간다. 나만 당한 게 아니라는 생각에 위안이 조금 되지만 그런다고 상황이 바뀌는 건 아니다.

어느 사무실 앞에 도착하니 우리보고 기다리라고 얘기하고 스태프는 사라진다. 보아하니 가끔 영화 같은데 보면 입국  금지당해서 끌려가는 그런 곳 같다. 뭐 나는 그냥 나가면 되니 여권이 정리 될 때까지만 기다린다. 시간이 꽤 걸리기에 이 틈에 정신없이 호찌민을 검색한다. 호찌민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문득 와이파이 제한이 2시간인 게 떠올라서 마음은 더 급해진다.


호찌민도 당연하지만 찾아보니 배낭여행자 거리가 있다. 일단 호텔 가격을 대충 찾아보니 하노이보다는 조금 비싸지만 10달러 내외로 잘 수 있을 것 같으니 큰 문제는 안될 듯하다. 그 다음에는 공항에서 그 여행자거리까지 가는 방법을 검색한다.

그러고 있는데 스태프가 나오기에 출국 도장이 취소된 여권을 받아 들고 다시 따라간다. 내 평생 공항에서 역방향으로 걸어나오는 건 처음이다. 나름 신기한 경험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정신이 없다 보니 여유를 즐길 상황은 아니다.

쪽문과 뒷문을 통하여 어미새처럼 우리를 이끌고 가던 에어아시아 스태프는 우리를 에어아시아 표 판매하는 곳에 버려두고 사라진다. 여기서 다시 표를 사라는 거겠지. 일단은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면서 여전히 검색을 한다. 폭풍 검색을 하고 싶지만 핸드폰이 원낙 느린 관계로 하나씩 차근 차근 탐색한다.


내 번호가 호출돼서 표를 사러 간다. 그래도 아직 새벽인지라 시간이 좀 남고 여러 옵션이 남아있어서 다행이다. 일단 내 기존표를 보여주고 상황을 설명한 후에 호찌민시로 떠나는 비행기로 교환하고 싶다고 얘기를 한다. 교환은 같은 하노이로, 시간을 바꿔서만 된다고 한다. 하, 그러고 보니 아까 그런 말을 들은 것도 같다. 그러면 호찌민시라고 가는 건 얼마냐고 물으니 조회를 해보더니 미안하지만 오늘 표는 매진이란다. 산 넘어 산이다.


스태프 한마디에 계획이 아주 그냥 바닥부터 다 틀어진다. 그럼 내일 하노이로 가야 하려나. 내일 하노이 가는 표로 교환하면 추가로 내야 하는 금액이 얼마냐고 물어본다. 조회하더니 1,900바트라고 알려준다. 6만 원 돈이다. 뭐 이리 비싸. 궁금해서 그럼 그냥 표를 새로 사면 얼마냐고 물으니 조회해보더니 자기도 약간 황당한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2,100바트란다. 아놔, 빌어먹을 에어아시아!

취소하면 공항 수수료 700바트는 돌려받을 수 있단다. 어쩌지. 어쩌지. 아무리 생각해도 6만 원을 더 내고 가는 건 아닌 거 같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아무 액션도 취하지 않은 채 뒤에 의자로 돌아와서 앉는다.

이거, 진정한 국제미아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표는 포기하는 것이 맞는것 같다. 비행기표를 포기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문득 드디어 빌어먹을 에어아시아의 손길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에 자유로움과 불안함이 동시에 안쪽에서 고개를 든다. 쇼섕크탈출에서 장기복역수가 갑자기 자유가 주어지고 세상에 나가자 갑자기 뭘 해야 할지 몰랐던 심정과 같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제부터 진정 제약 없는 여행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여행 재미있구먼! 그래, 2부라면 이 정도 신고식은 해야지! 이상하게 갑자기 신이 난다. 변태인가? 나름 뭔가 새로운 미션이 주어졌다는 생각에 기분 좋게 여러 생각을 해본다. 이리 된 거 버스 타고 베트남으로 가볼까? 아님 차라리 라오스로 바로 갈까? 이런 상황이 되니 오히려 자유로움과 여유가 느껴진다.

앉아서 차분히 검색을 좀 하다 보니 라오스로 가는 기차가 눈에 들어온다. 미얀마에서 기차가 워낙 좋은 추억을 줬기에 괜찮을 수도 있겠다 싶어 좀 더 찾아본다.

매일 저녁 8시 반에 출발하는 슬리핑 기차가 방콕에서 출발하여 다음날 아침에 라오스에 도착한단다. 나쁘지 않은데? 가격은 대략 700바트 정도 한다. 비행기표의 1/3 가격에 숙박비도 아낄 수 있고 기차 체험도 할 수 있으니 1석 3조이다. 출발 시간이 오늘 저녁 8시 반이니 남은 시간에 방콕을 좀 돌아다녀 보는 것도 좋겠다. 갑자기 어벤저스2를 아직 안 본 생각이 난다. 이거 한국 가서 보면 극장에서 내릴 듯해서 여행 중에 보려고 했는데 오늘 보면 딱이겠다. 그래 이거다!

일단 이 느려 터진 핸드폰으로 검색에는 한계가 많기에 대략적인 것만 찾아보고 공항의 입국해서 여행자들이 나가는 곳으로 향한다. 입국하는 여행자들이 있는 곳이니 그곳에 안내 데스크가 있을거다. 여행 안내 데스크에 문의를 좀 더 해봐야 할거 같다.


내려가니 바로 여행 안내소가 보인다.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접근한다. 내가 아무리 험상 궂게 생겼어도 웃으며 접근하면 대부분이 호의적으로 얘기를 시작한다. 다행히 거기 남자가 영어를 어느 정도 한다. 내가 지금 비행기를 놓치게 되어서 기차를 타야 하는 상황임을 설명한다. 라오스 가는 기차표를 어디서 어떻게 사면 될까,라고 물어보니 인터넷으로 검색을 막 해보더니 알려준다. 이 공항 건너편에 기차역이 있는데 거기서 사면 된단다. 이리 가까운데 있다니, 일이 잘 풀리고 있다. 타는 건 시내로 가서 타야 한다고 하는데 어차피 영화를 보러 가야 하니 잘됐다.


그 다음을 또 묻는다. 나 방콕에서 12시간을 보내게 되었다네. 헌데 장안의 화제인 어벤저스2를 아직 못 봤지 뭔가. 이거는 어디서 보는 게 좋을까? 이리 얘기하니 옆에 여성 스태프들이 이 질문이 웃겼는지 날 보고 웃길래 아이언맨 포즈까지 취해주며 마블 팬이라 꼭 봐야 한다는 제스처를 취한다. 나의 풍부한 유머에 모두 반했는지, 갑자기 뒤에 있던 청소하는 아주머니까지 도와주려고 서로 난리다. 역시 여유가 생기니 사람들하고 얘기하는 것도 여유가 생겼다.

자기들끼리 상의를 하더니 시암 파라곤에 큰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있다고 거기로 가라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한다. 시암! 거기는 한국에서 온 선배와 맛난 저녁을 먹고 비싼 안동소주를 잃어버렸던 곳이기에 잊을 수가 없다. 예전에 두번이나 머물렀던 숙소 근처라 가는 길도 눈감고 간다. 일이 진짜 술술 풀린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고도 남은 시간 동안 뭘 하면 좋을지 의견을 달라고 한다. 잘생긴 남자 직원에게 여자친구랑 데이트할 때 어디 가냐고 물어보니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 없구나. 잘 생겼으니 금방 생길 거라고 얘기해준다. 시암에 아쿠아리움도 있으니 생각해보라고 해준다. 아쿠아리움이라. 이건 좀 상황을 봐야겠다.

거기까지 듣고 두손 모아 정자세로 "깝꾼깝"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매우 친절하게 얘기해주셔서 오늘 일정이 조금 풀렸다. 역시 여유를 가지고 다가서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와주고 싶어 한다.

다음은 환전이다. 어제 돈을 다 썼기에 오늘 쓸 돈을 조금 바꿔야 한다. 환전을 하기에 앞서 심충전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좀 돌아다녀야 하고, 갑자기 가게 되는 라오스에 대해 아는 것도 없기에 검색을 하려면 3G가 좀 필요할 것 같다. 옆에 트루 통신사에 가서 상황을 다시 한번 얘기하고 오늘 하루만 쓸만한 패키지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한다. 원래 250바트에 일주일 동안 1.5기가를 주는데 나에게는 150바트에 3일간 1.2기가를 주는 패키지를 만들어 주겠단다. 특별히 해주는 거란다. 이 정도면 꽤나 괜찮다.


심카드를 등록하고 이제는 진짜 환전하러 간다. 바트는 끝난 줄 알고 바닥을 긁어모아 다 썼더니 또 다시 환전을 하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막판에 과소비 안 하고 모아놓는 건데 아쉽다. 역시 여행은 진짜 한치앞을 알 수 없다.

대충 계산해보니 오늘 하루 기차표 등 해서 2000바트 정도가 필요할 거 같다. 헌데  50달러짜리가 없어서 그냥 100달러를 32.6 환율에 환전해서 3,260바트를 받는다. 남는 거는 라오스 가서 다시 환전하든가 해야겠다.



이제 기차표를 사기 위해 돈므앙 건너편에 있다는 기차역을 찾아가본다. 당연히 한번에 못 찾고 사람들한테 몇 번 물어서 구름다리를 건너서 찾는다. 이 공항에 몇 번이나 왔으면서 코앞에 이런 게 있는지도 몰랐구나.


역무원한테 얘기하니 여기서는 라오스 국경까지 가는 표만 살 수 있다고 한다. 그 이후는 거기서 사야 한단다. 아까 검색해서 이미 알고 있었던 건지라 그리 달라고 한다. 침대가 2층이 있고 1층이 있는데 2층이 더 싸다. 인도 여행 당시 침대 기차를 탔을때 나는 독립적인 공간의 느낌이 좋아서 2층이 더 마음에 들었었다. 게다가 더 싸다고 하니 당연히 고민 없이 2층으로 산다.

679바트이다. 생각보다 저렴하다. 역시 비행기 버리기를 잘했다. 그런데 역무원이 표를 주면서 설명해주는데 출발역이 돈므앙역으로 되어 있다. 나보고 여기서 12시간 있으라고? 의사전달이  잘못되었나 보다. 시내로 바꿔달라고 하니 9바트가 추가된다. 688바트로 시내에서 라오스 국경까지 가는 표를 받아 들고 돌아선다.

갑자기 헛웃음이 난다. 라오스 갈까 말까 그리 고민했었는데 정말 급작스럽고 생뚱맞게 가게 되었다. 그래, 자유여행은 이런 맛이 좀 있어야지. 지금까지는 너무 샌님 같이 다녔다. 이리 결정되니 뭔가 라오스가 기피해야 할 곳이 아니라 내 운명이 부르는 곳으로 느껴진다. 한손에 기차표를 들고 들뜬 마음을 숨기지 않은 채 미소를 지으며 공항으로 다시 돌아간다.

시내로 가야 하니 또 다시 그리운 A1 공항버스를 타야 한다. 앞으로 '마지막'이라는 말은 조심해서 써야겠다. 이걸 다시 타게 될 줄 몰랐다. 그 앞에서 헤매는 초보 여행자들을 뒤로 한채 너무나도 익숙하게 버스를 타고 자리를 잡는다. 운임도 30바트임을 알기에 미리 준비하고 건네준다.


또 다른 익숙한 곳, 모칫역에 도착한다. 오늘은 좀 이동을 많이 해야 할 듯해서 세컨드가방을 메인 백에 집어넣고 7.5키로를 몸으로 느끼며 버스에서 내린다. 근데 이 가방을 메고 극장까지 가야 하는 건가? 불편할 듯 하지만 뭔가 재미있을 듯해서 또 다시 미소가 지어진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긍정적이다.


여기 모칫역에서 숙소가 있던 라챠테윗 역까지는 37바트라 잔돈을 바꿔서 자동판매기를 이용해야 했지만 지금 가야하는 시암역은 42바트 표준 요금이라 그냥 창구에서 구매한다. 사람이 꽤나 많아서 보니 9시가 좀 넘었다. 출근시간이다. 내가 봐도 거지몰골인 상태로 또 한번 만원 지하철에 올라탄다.


시암역에 도착해서 사람들을 해 집으며 겨우 내린다. 시암역, 여기는 진심으로 다시 오게 될 줄 몰랐다. 심카드 충전을 했더니 인터넷이 돼서 검색이 편하다. 극장이 시암 파라곤 5층에 있다길래 그쪽으로 향한다.

시암 전체가 10시에 여는데 시간이 아직 안되었는지 사람들이 다 닫힌 문 앞에 기다리고 있다. 뭐 좋은데라고 이렇게 기다리기까지 하지? 나도 뭐 할 일도 없으니 가방을 내려놓고 계단에 털썩 주저앉아 기다린다. 가방이 무겁지만 그래도 얘가 있으니 외국인으로, 여행자로 보는 것 같아 좋은 점도 있다.


조금 기다리니 문을 열기에 또 다시 가방을 짊어지고 사람들을 따라 시암 센터로 입성한다. 여행지에서 이러고 다닐 때는 전혀 위화감이 없었는데 정상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커다란 배낭을 메고 후질근한, 그리고 너무 편안한 복장으로 걸어 다니니 살짝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여행의 묘미란 이런 눈치 따위는 잊어버리는 것이지. 사람들이 쳐다보든 말든 신경 안 쓴다.



시암 센터에서 시암 파라곤으로 넘어간다. 시암 센터도 나름 깔끔했지만 파라곤은 좀 심하게 현대적이다. 씨암 센터가 아웃렛의 느낌이었다면 씨암 파라곤은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명품관의 느낌이다. 나는 지금 거지꼴을 하고 명품관을 걷고 있는 거다. 짜릿하구먼.


5층에 극장이 있다는 인터넷의 정보를 봤기에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투명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사람들과 함께 5층으로 향한다. 7.5키로 가방은 여전히 나와 함께다. 가방이 그나마 가벼우니 이런 행동이라도 할 수 있다. 역시 적게 싸오길 정말 잘했다.


이곳의 극장은 정말 고급스러움의 극치다. 의자들도 모두 소파에, 모든 것이 프리미엄 컨셉이다. 여기만 이런 건지 태국의 모든 극장들이 이런 건지는 모르겠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사람은 거의 없다.

거의 다 키오스크를 이용하기에 가서 보니 키오스크에서는 카드 결제만 된다. 카드가 없는 나는 어쩔 수 없이 창구로 간다. 어벤저스 표를 물어보니 극장이 하나이고 시간도 단 두개다. 막판인가 보다. 얘는 꼭 극장에서 보려고 했는데 내리기 전에 와서 다행이다. 오늘 비행기를 못 탄게 어찌 보면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아 지나치게 긍정적이다.

오후 2시 표를 220바트 주고 산다. 여기는 앉는 자리에 따라 가격도 조금 다르다. 그냥 중간 자리로 산다. 이제는 기다리면 된다. 지금이 오전 10시니까 남은 4시간 동안 배를 좀 채우고 글도 쓰고, 밀린 글도 업로드하다 보면 적당하지 싶다.


가방의 무게를 즐거이 느끼고 다녔지만 이걸 들고 하루 종일 다닐 생각을 하니 좀 부담스럽다. 혹시 어디 맡길데가 있으려나. 내려가면서 한번 물어봐야겠다.

여기는 다 명품관이고 어차피 나는 거지꼴이니 그냥 샤넬, 구찌에 들어가서 당당히 물어본다. 이 가방을 맡기고 '쇼핑'을 좀 하려고 하는데 어디 둘데가 있나요. 물론 '쇼핑' 따위는 생각도 없지만 그래도 왠지 그리 얘기해야 조금이라도 더 당당해질 수 있을 거 같다. 일단 내려가 보라고 해서 내려간다.


밑에 층에서 어느 경찰에게 묻고 있는데 옆에 어떤 아주머니가 갑자기 관심을 가지더니 친절히 알려주신다. G층으로 가보란다. 여기는 1층 밑이 M층, G층이다. 뭐의 약자이지? G는 왠지 Ground를 뜻할 거 같다. 일단 아주머니의 말대로 무작정 가본다.


가는 길에 다시 두어 번 물어서 드디어 발견한다. 역시 명품관이라 그런지 이런 서비스가 예상대로 있다. 가방 맡기는 데 얼마냐고 물으니 "Free"라고 대답해준다. 무료라니! 이건 뭐 생각할 것도 없다. 세컨드 백을 다시 분리시키고 필요한 물건들만 뺀 후 메인 가방을 맡긴다. 저녁 10시에 문 닫는다고 하니 이곳을 떠나기 직전에 찾아가면 될 듯하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다시 자유가 됐다. 하지만 이제 나를 외국인으로 봐줄지 걱정이다. 일단 밥도 먹고 시간도 때워야 하기에 조금 편안한 씨암 센터로 돌아간다. 씨암 파라곤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여긴 진짜 너무 화려하다.

핸드폰 충전도 해야 하고, 와이파이도 필요하기에 카페 위주로 찾아본다. 스타벅스, 커피빈이 보인다. 스타벅스는 물어보니 와이파이가 무료가 아니라 추가로 150바트를 내야 한다. 쪼잔한 놈들. 커피빈은 한 시간이 무료라고 한다. 난 무료가 좋다. 당연히 커피빈으로 간다.


199바트짜리 브런치 및 커피 세트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는다. 여기는 한국과 다르게 자리로 가져다준다. 인터넷을 연결하니 속도가 그래도 꽤나 나온다. 밀린 여행기를 하나 올려볼까? 저장해놓은 여행기를 불러들여서 올리면서 오늘의 글도 써본다.

이놈의 티스토리 진짜 한번에 올라가는걸 본 적이 없다. 두장 올라가고 끊기는 것이 계속 되지만 끊기 있게 재시도한다. 어차피 시간도 많고 딱히 갈 곳도 없고 여유롭다.

총 38장의 사진 중 30장이 올라가고 8장이 남았다. 그리고 더 이상 접속이 안된다. 야,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왜 그러냐. 한 시간이 지나서 와이파이가 끊겼다고 안내 메시지가 나온다. 하, 돈보다는 노력과 시간이 아까워서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나머지 8장은 3G로 전환해서 올린다. 그래 봤자 20메가도 안된다. 오늘 하루에만 쓸 수 있는 게 1.2기가이니 사실 충분하다.

생각보다 시간은 금방 간다. 어느새 1시가 되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드디어 어벤저스를 보러 간다! 이거 스포 피해 다니느라 힘들었다. 생각보다 별로라는 얘기가 많지만 그래도 어벤저스는 어벤저스다. 음하하.


극장으로 오니 아까보다 사람이 훨씬 많아졌다. 헌데 핸드폰 배터리가 간당 간당하다. 기차에 컨센트가 있을까? 왠지 없을 거 같다. 오늘은 장기 이동을 하니 배터리를 가득 채우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영화 보기 전에 혹시 맡겨서 충전해도 되는지 한번 물어봐야겠다. 어차피 저렴한 폰이다 보니 록시라도 없어질 걱정을 안 한다. 이걸 누가 가져가겠냐.


하지만 물어보니 역시 안된단다. 하긴 이걸 된다고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할 수도 있겠다. 일단 조금이라도 전원을 아끼고자 핸드폰을 끄고 가방에 넣은 상태로 극장에 들어선다.

2시 시작인 영화가 2시 반까지 광고를 한다. 안 그래도 긴 영화인데 더 길어지게 생겼다. 광고 중에 한류를 격하게 느낀다. 한국 관련된 얘기가 계속 나오더니 아예 태국 아이들이 한국에 와서 좌충우돌하는 영화도 곧 개봉한다며 예고편이 나온다. 예고편에 닉쿤이 나오니 나도 모르게 반가운 마음이 든다.

여기 극장의 특이한 점은 광고가 다 끝나고 실제 영화가 시작하기 직전에 태국 국왕이 나오고 태국 국가가 극장에 울려 퍼진다. 이때 모두 일어서야 한다. 뭣 모르고 앉아 있다가 모두 일어서기에 어리둥절하며 일어섰더니 국왕의 일대기에 대한 짧은 내용의 다큐멘터리가 방영된다. 지금 국왕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 위에 사람이 있다는 느낌은 매우 불편하다. 그래도 이곳에 왔으니 이곳 문화를 따라야 한다.

어벤저스 2, 정말 돈 쏟아부은 영화라는 느낌이 팍팍 온다. 출연 배우부터 마블 시리즈의 조연들까지 모두 투입하고, 액션신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국씬은 보기에 따라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난 그럭저럭 만족했다. 하지만 아쉬운 건 기존에는 마블 영화에 리얼리티가 그래도 살아있는 느낌이었다면 이번부터는 진정한 코믹스의 세계관으로 간 거 같다.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소 현실감이 떨어지는 거 같아서 개인적으로는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벌써 5시다. 광고 포함하여 영화를 3시간 본 셈이다. 시간이 애매하다. 여기서 밥을 먹고 거닐다가 한 시간 전인 7시에 출발할까? 아니다. 초행길은 일단 무조건 그 앞으로 가서 쉬어야 한다. 그 앞으로 가서 사전답사까지 하고 쉬든지 말든지 해야 마음이 편하다.


지도를 보니 생각보다 기차역이 가깝다. 지하철을 타면 한번 갈아타야 해서 결국 60바트 이상이 나올 듯하고, 거리로 보니 택시를 타도 100바트 이하일 듯하다. 고민하다, 그냥 택시를 타러 간다. 물론 택시를 타러 나가기 전에 맡겨놨던 가방을 찾는다. 공짜 서비스이지만 매우 잘 활용했다.

이곳은 택시를 타는 사람이 워낙 많은지 탑승하는 곳이 따로 있다. 헌데 줄이 엄청 길다. 방콕이 대중교통이 안 좋던가? 왜 다들 비싼 택시를 타려고 할까. 다른 방법이 없기에 나도 이들 뒤에 슬그머니 가서 줄을 선다.


30분 정도를 기다려서 택시를 탄다. 타기 전에 목적지인 후아람퐁 기차역을 스태프에게 얘기하니 들어오는 택시들에게 미리 스피커로 안내를 한다. 그리고 합의한 운전수의 택시에 타면 되는 시스템이다. 괜히 가느냐 안 가느냐, 얼마냐, 등의 협상이 필요 없어서 편하다. 게다가 공항은 50바트를 추가로 부과하는데 여기는 그런것도 없다.

방콕에서는 교통이 혼잡해서 가까운 거리도 꽤나 오래 걸린다. 차도 많이 막히고, 길도 다소 희한하게 구성이 되어 있다. 일방통행이 많은 느낌이다. 4키로 정도 거리지만 30분이 걸려서 도착한다. 요금은 80밧가 조금 안 나와서 내 예상과 어느 정도 맞아 떨어진다.

내리자마자 기차를 탑승하는 곳부터 확인해둔다. 괜히 헤매지 않고 인포메이션 센터가 보이길래 그냥 물어본다. 5번 플랫폼에서 타면 된단다. 어디 있는지 찾아가서 눈으로 확인을 해둔다. 이리 해야 나중에 문제가 안 생기고 마음이 편하다.


가는 동안 남는 3G로 글도 올리고 조사도 좀 하려고 했는데 핸드폰 배터리가 너무 부족하다. 1.2기가의 데이터 중에서 200메가도 못 썼는데 이대로 국경을 넘을 수는 없다. 저녁을 어차피 먹어야 하니 이때 충전을 해야겠다. 먹는 것보다는 충전할 수 있는 곳을 중점으로 두리번 거리며 찾아본다. 일단 KFC가 보이기에 딱인 듯 싶어 들어가보지만 컨센트에 전기가 안 들어와서 다시 나온다. 아마도 사람들이 충전을 많이 필요로 하니 막아놓은 듯하다. 그럼 그냥 차라리 유료 충전 서비스를 두던가 할 것이지.

그러다가 바깥 쪽에 현지 식당에서 선풍기가 몇 대 돌고 있는 게 보인다. 의외로 저기에 있을 듯해서 들어가보니 하군데 빈 곳이 있다. 등잔 밑이 어두웠다. 서둘러 콘센트를 꼽아보니 충전이 된다. 한 시간 반 정도 시간이 있으니 여기서 최대한 충전을 하고 기차를 타야겠다.

이 식당에서 40바트에 국수를 팔기에 주문한다. 조금 더워서 땀이 나지만 동남아 여행하면서 더위에는 이미 몸이 적응했다. 땀 따위는 나에게 아무런 방해가 안된다.


아주머니가 국수를 가져다주시며 내가 충전하고 있는 것을 보더니 그거는 별도로 20바트를 내야 한단다. 야박하지만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20바트면 얼마 안되기에 그러겠다고 한다. 오히려 돈을 지불하면 마음이 편해져서 눈치 안 보고 쭉 충전을 할 수 있어서 좋다.


8시 기차라서 7시 반까지 최대한 충전하고 떠나려고 했는데 7시가 지나니 사람들이 꽤나 식당에 들어찬다. 의외로 기차역 주변에 먹을 곳이 없어서 모두 이쪽으로 오나보다. 그깟 20바트 냈다고 자기가 없음에도 그냥 무시하고 충전하고 있기에는 눈치가 보여서 7시가 좀 지나서 일어난다. 하나는 가득 충전했고 하나는 20% 정도 충전했는데 충분할지 모르겠다. 핸드폰이 안 좋다 보니 충전은 느리고 방전은 빠르며, 배터리 용량은 적다. 서울 가서 좋은 핸드폰 쓰면 정말 신세계를 경험하는 느낌일 거다.


기차에 오르기 전에 화장실을 찾아 들어가는데 3바트를 내야 한단다. 3바트를 주니 영수증을 끊어준다. 3바트면 100원인데 영수증을 두장이나 끊어주면 이거 남기는 하는 걸까. 참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들어가서 보니 역시 영수증은 쓰레기가 되어 바닥에 뒹굴고 있는데 도대체 왜 끊는 걸까.


7시 반이 아직 조금 안됐지만 기차로 가본다. 아까 확인할 때는 5번 플랫폼의 선로가 비어있었는데 지금은 내 목적지인 태국 국경 Nong Khai까지 가는 기차라는 안내와 함께 기다란 기차가 서 있다. 지금 바로 탈 수 있는지 경찰에게 슬쩍 물어보니 표를 확인하고 몇번 기차에 타라는 것까지 알려준다. 태국 사람들 그러고 보면 은근히 친절하다.


기차에 올랐다니 밑에 자리가 두개가 있고 위에 침대가 하나 있다. 2층 자리가 더 저렴해서 나는 2층으로 샀었다. 근데 그럼 지금부터 올라가 있어야 하는 건가? 위에 짐들이 매트리스 같은 게 가득 있어서 지금 못 올라갈 거 같아서 스태프에게 한번 물어본다. 영어를 잘 못해서 알아듣기 쉽지 않지만 올라가라고 하는 것 같다. 아무리 봐도 아닌 거 같은데. 밑에 의자 두개에 각각 번호가 있는 게 잘때만 올라가는 거라고 혼자 추측해본다. 인도에서 슬리핑 기차를 탈 때도 그러했으니 맞을 거다.



1등급도 아니고 그 아래 등급 기차인데 꽤나 깔끔하다. 에어컨도 시원하게 나오고, 이 정도면 오늘 여기서 숙면을 취할 수 있지 싶다. 그러고보니 오늘 새벽 비행기를 타기 위하여 어제 4시간만 자고 나왔고 하루 종일 뜻하지 않게 돌아다녀서 무척 피곤하다. 너무 정신없이 다니다 보니 피곤한지도 모르고 있었지만 아마 이곳에서 잠자는 데에는 오히려 도움이 될 거 같다.



조금 앉아서 라오스 비앙티앙의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보고 있는데 시간이 되었는지 기차가 움직인다. 이제 드디어 라오스로 간다! 방금전까지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갑자기 뭔가 신난다. 라오스가 꽃청춘 방송 이후에 많이 알려진 곳이 되어서 갈지 말지 고민하긴 했었지만 분명히 나만의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거다.

오늘부터 경주로 혼자 여행을 떠난 노여사는 갑자기 평소보다 두배 연락이 자주 온다. 오랜만에 혼자 여행 가니 뭔가 외롭지? 아마추어 같으니라고. 내가 연락하면 여행에 집중하라고 구박하더니 내 이럴 줄 알았다. 그렇다고 똑같이 복수하다가는 뼈도 추스리기 힘들다. 자상한 남자친구가 되어준다.

하루 종일 브런치 하나와 국수 하나를 먹었더니 뭔가 기운이 없다. 기차에서 먹든지, 아니면 내일이라도 하루 동안은 또 다시 제대로 먹어줘야겠다. 밥을 제대로 먹어야 힘이 나는 법이다.


오늘 어디로 갈지 조사를 하다보니 30%가 남은 배터리는 다 사용해버렸지만 다른 배터리는 아직 80%가 남았다. 데이터도 쓸겸 어제 글을 3G로 올려버린다. 와이파이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빠르게 올라간다. 사진이 쑥쑥 올라가는 게 아주 속이 다 시원하다. 배터리가 허락한다면 오늘 글도 그냥 여기서 올려야겠다. 아마 그래도 1.2기가를 다 못 쓰지 않을까나.



9시가 되니 승무원이 나타나 자리를 모두 피고 침대로 만들어준다. 그냥 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매트에 시트를 씌우고 배게의 시트도 새로 바꿔준다. 이불은 비닐 봉지 안에 밀봉되어 있는 것을 쓰는 것이 꽤나 깔끔해 보인다. 인도의 지저분한 슬리핑 기차를 생각하다 여기를 보니 완전 신세계다. 이건 탈만하다. 내가 워낙 지저분한걸 신경 안 쓰지만 여기는 누가 와도 크게 신경 안 쓰지 싶다. 하지만 컨센트는 안보인다...


의자가 침대로 변신하는 동안 옆으로 피해있다가 완성이 된 후에 2층으로 올라선다. 2층은 더 싸서 그런지 침대가 1층보다 좁다. 하지만 떨어지는걸 방지하는 안전 줄도 있어서 그리 불안하지는 않다. 이 정도면 2층도 내 기준에서는 훌륭하다.

어쩌다 떠나게 된 라오스행 기차이지만 꽤나 마음에 든다. 기차여행의 낭만도 있고 자고 일어나면 바로 라오스 국경이라는 사실도 뭔가 효율적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선택해서 이리로 향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든다. 지금까지도 모두 나의 선택이었지만 에어아시아의 틀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이번 여행에서 이번 행로는 처음으로 아무 제약 없이 가는 길이다. 여러 의미로 여행은 참 재미있다.


오늘 잘 잘지 설칠지는 나도 감이 안 잡힌다. 내일이 되면 알게 되겠지. 벌써 저녁 9시 반이다. 오늘은 이만 잠을 청해보려 한다. 이 시간이면 어차피 내가 보통 잠이 들 시간이기도 하다. 태국에서 잠이 들지만 라오스와의 국경에서 눈을 뜨게 될거다. 오늘 하루는 그다지 한 거는 없지만 이번 여행에서 가장 신나는 하루 중 하나였다. 사람은 무엇을 하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그리고 왜 하냐가 중요하다. 어떤 길을 간다 하더라도 자기의 선택으로 가는 길이라면 행복하지 않을까? 흔들거리는 좁은 침대에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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