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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Aug 03. 2015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31

Ko Lipe, Thailand to Bangkok, Thailand

불편함에 익숙함이 필요하듯이 편안함에도 익숙함이 필요하다. 이곳에서의 첫날은 그리 잠을 설치더니 럭셔리에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어제는 매우 편안함 잠을 잘 수 있었다.

31일 여행기에서 드디어 대망의 31일에 도착했다. 제목을 바꿔야 하나. 아니다. 제목이란 처음 떠날 때의 마음을 얘기하는 거니 그대로 두련다. 오늘로서 1부가 끝날뿐이다. 원래 계획 상으로는 오늘 저녁 9시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거였으니 그 시간 이후로 2부가 시작될 뿐이다.

7시에 나와서 일단 리셉션으로 간다. 남은 돈이 얼마 안남았으니 일단 정산부터 다 해야지 마음이 편하다. 가서 정산해달라니 계산을 하고 있기에 2,750바트라고 내가 얘기를 해준다. 한참 계산하더니 맞다고 한다. 헌데 여기서 나가는 배값 50바트가 빠졌다며 포함해서 2,800바트라고 한다. 역시 내가 미리 계산한 거에서 이런 추가적인 돈이 조금씩 더 나갈 줄 알았다. 태국을 떠날 때까지의 예산을 딱 맞춰놓은지라 오버될까봐 살짝 걱정이다.

오늘은 무척 피곤한 하루가 될 예정이다. 이곳에서 오전 8시 반에 배를 타고 빡바라 항구로 가면 대략 11시, 그곳에서 11시 반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면 1시 정도가 된다. 하지만 방콕으로 가는 내 비행기는 오후 5시 반이다. 4시간 정도를 공항에서 보내야 한다. 가끔 보면 공항에서 컨센트 근처에 배낭여행객들이 거지처럼 누워있는 게 보였는데, 그게 오늘은 내가 되지 싶다.


언제나 아침은 든든하게 먹는 편이지만 오늘은 이동이 많은 날이니 특별히 더 든든하게 먹는다. 언제나와 같이 오늘도 1등으로 나왔기에 조식을 먹기 위해 바다가 보이는 가장 좋은 자리에 앉는다.


바로 뒤에 수영장이 참 사람을 아쉽게 만든다. 이번 여행에서 이런 수영장 딸린 리조트는 이제 마지막이겠지? 아침에 마지막으로 한번 들어갈까 싶지만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아쉬울 때 돌아서야 다음에 또 오는 법이다.


아침을 먹는데 테이블 밑에 개 한 마리가 자꾸 낑낑거린다. 밥을 달라는 거겠지. 스태프가 소시지를 많이 가져다줬기에 한 개 던져주니 좋다 하며 받아먹는다. 그 이후로 내가 어디를 가든 따라온다.



소문이 났나. 갑자기 두 마리가 더 나타난다. 그중에 한 마리의 왼쪽 귀가 접혀 있는 게 처음에 만났던 걔 같다. 이름 괜히 지어줬다. 인연이 될 줄 알았는데 못 됐으니 이름은 이미 잊은지 오래다. 그래도 옛정이 있어서 소시지 하나를 던져준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라는 말을 정말 실감하게 된다. 여행은 수많은 만남과 수많은 이별의 연속이다. 이곳은 시포 같이 강렬한 인상을 주는 곳은 아니지만 다른 의미에서 기억에 많이 남을 곳 같다. 어제 한 스노클링은 내 인생에서  손꼽을 정도로 좋은 경험이었다. 배를 타고 가지 않고 해변에서 한 스노클링으로는 단연 첫 번째다. 어제 그 아저씨한테 고마워해야 할듯하다. 그 장소가 의외로 찾기 힘든 곳인가보다. 어제 만난 인도네시아 커플한테 물어보니 이곳에서 스노클링을 했지만 그런 곳은 못 봤단다. 오늘의 팁, 꼬리빼에 오면 Z-Touch 리조트 앞쪽으로 스노클링을 해볼 것!


이틀 동안 잘 쉬었다. 정말 말 그대로 휴양을 했다. 총 4박 5일을 있었지만 마지막 2박 3일이 가장 기억에 남을 거다. 다이빙은 상대적으로 좀 실망이었다. 돌이켜 보면 3번째 다이빙을 안 한 것도, 포라리조트를 나와서 이쪽으로 온 것도 다 좋은 선택이었다. 선택 하나하나가 이어져서 여행이 된다. 좋은 추억이 되기도 하고 안 좋은 기억이 되기도 한다.

식당에 앉아 있는데 어제 나를 니모로 이끈 분이 나타나서 인사를 한다. 이분 여기 스태프였었나? 들어보니 말레이시아 분인데 누나가 이 리조트에서 일을 하기에 자주 여기로 온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의 숨겨진 명소들을 잘 아나보다. 어제 우리가 갔던 포인트도 작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산호초가 나날이 자라나라고 있단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다면 더욱 더 자라나겠지. 이분한테 고마워서 어제 찍은 사진을 보내주려고 이메일 주소를  하나받아둔다.

얘기를 하다 보니 8시다. 8시 반까지 나오라고 했으니 이제 마지막 정리를 하러 들어가야 한다. 이분한테 인사를 하고 방으로 돌아간다.


에어컨을 껐음에도 아직 시원한 공기가 남아있는 나의 1,500바트짜리 숙소는 여전히 아늑해 보인다. 시간이 얼마 없어서 서둘러 마지막 짐을 챙긴다. 사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다지 챙길 것도 없다. 다 챙긴 후 마지막 점검으로 놔두고 가는 거는 없는지 화장실부터 쭉 한번 돌아보고 냉장고를 열어서 물을 하나 챙겨 든다. 챙길 건 다 챙겨야지.



숙소를 나와서 키를 반납하니 여기 사장님이 이곳 앞에 선착장까지 나를 데려갈 롱테일 보트를 손수 챙겨주신다. 약간 중국계처럼 보이시는 이 사장님, 매우 친절하시다. 어찌 보면 약간 억지로 저렴하게 묵는 나임에도 하나하나 꼼꼼히 챙겨주시고 부족함이 없는지 항상 물어보신다. 이곳 마음에 든다. 다음에 오게 돼도 하루 이틀 여기서 머물고 싶다.


롱테일 보트에 올라타니 바로 출발이다. 떠날 때는 이별의 시간이 항상 부족하다. 떠나는구나 싶으면 순식간에 이별이다. 그래서 이별은 전날 저녁에 해야 한다.


올때와 마찬가지로 롱테일 보트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선착장으로 이동한다. 선착장에 올라와서 아까 사장님이 일러준 대로 가서 영수증을 표로 교환한다. 사람들이 배를 기다리면서 앉아있기에 나도 옆에 가서 앉는다. 내가 처음에 왔을 때 그냥 멍하니 있던 사람들이 다 이 사람들이었구나. 주민들이 여행자들을 이동시키면서 50바트를 벌게 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해변의 수위가 낮아서인지는 몰라도 이곳의 선착장 두개는 이 섬을 들어오고 떠나는 중간 정류장의 역할을 한다.


9시가 되니 배에 짐을 실은 후 사람들을 태운다. 주어진 번호표 순서대로 배에 올라타야 한다. 나는 16번이다. 내 번호를 부르기에 표를 주고 배에 올라탄다. 그리고 바로 출발이다. 내 뒤로 꼬리뻬가 사라지지만 고속 모토보트에 올라타 있으니 보이지 않는다. 잘 있어라, 꼬리뻬.


이렇게 또 하나의 여행지를 뒤로 한다. 카오산로드부터 시작해서 빠이, 치앙마이, 다시 방콕, 미얀마로 넘어가서 만달레이, 바간, 다시 만달레이, 그리고 시포, 핀요린, 만달레이, 핫야이, 그리고 오늘 그 리스트에 꼬리뻬를 추가한다. 이곳은 정말 그림 같이 아름다운 해변으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수많은 고급 리조트로 인하여 저렴한 방갈로들은 죽어가고 있기에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게는 언젠가 올 수 없는 곳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약간의 돈을 들여서라도 며칠 지내면서 휴양할 가치는 충분하다. 성수기에 오면 비수기 가격의 두배인 듯 하니 비수기를 노리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아쉽지만 나에게는 이번이 꼬리뻬의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다음번에 온다면 원래 계획했던 꼬수린을 반드시 가보고 싶다. 이번에는 노여사와 같이!


운전석 바로 뒷자리가 가장 좋아 보여서 앉았더니 제일 좁은 자리였다. 시작부터 잘 안 풀리는군. 다행히 옆에는 아무도 안 앉아서 편하게 자리를 잡아본다. 발등에 탄 자국을 보니 정말 많이 탔다는 게 실감된다. 지금 이대로 서울 가면 사람들이 날 어찌 보려나.


배가 엄청 흔들려서 뭘 할 수가 없다. 스피드 보트니 어쩔 수 없다. 돈 주고 이런 스릴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동에 이 정도는 즐겨도 충분하다. 근데 배 위에 파리가 한 마리 보인다. 지금 바다 한 가운데에 있으니 이놈은 배 바깥으로 나가면 죽는 거겠지? 꼬리뻬에서 평생을 나고 자랐을 파리가 순간의 욕망에 이끌려 뭍으로 나가게 되었다. 잘 살아가겠지.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자.









한참을 가던 배가 슬슬 속도를 줄인다. 벌써 도착인가? 시계를 보니 10시 반이 조금 안됐다. 2시간 정도 걸리지 않았었던가? 느낌 때문인지 정말 돌아오는 길은 항상 빠르다.


내려서 가방을 짊어지고 나간다. 잠시 화장실을 들려서 내 모습을 거울로 보니 여행에 찌든 모습이 뭔가 이상하게 마음에 든다. 일부러 그러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레 후질근한 여행자의 느낌이 난다.


이제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육해공을 모두 하루에 타게 된다. 이것도 나름 신선한 경험이다. 바다를 건넜으니 이제 땅을 건너기 위하여 버스 탈 곳을 찾는다. 아까 리조트의 사장님이 위치를 그림까지 그려주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었기에 바로 찾는다. 떠나는 사람에게도 친절을 보여준 리조트 사장님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다.


너무 일찍 왔다. 버스가 11시 반 출발인데 아직 10시 반이다. 다행히 안쪽에 에어컨 나오는 방이 있기에 거기로 들어가서 기다린다. 컨센트도 보이길래 바로 핸드폰 충전도 한다. 눈치 볼 거 없다. 언제나 할 수 있을 때 하는 거다. 근데 신호가 살짝 온다. 아침에 충분히 비우고 왔는데... 공항까지만 버티자 애들아. 아직은 때가 아니다.


이렇게 기다리는 시간이 많을 때는 언제나 책이 친구가 되어준다. Good Earth 3편 중에서 첫 번째는 이미 다 봤고 어제부터 보기 시작한 두 번째 편을 편다. 오늘 책 볼 시간 정말 넘치고 넘친다.

잠시 앉아있으니 나를 공항으로 데려다 줄 미니버스가 도착한다. 기다리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올라탄다. 몇 명 없는 거 같더니 어디선가 사람들이 나타나서 결국 버스는 사람들을 가득 채운체 출발한다.


여행지를 찾아 올 때는 들뜬 마음이지만 떠날 때는 항상 마음이 허하다. 바깥의 풍경이 바다에서 시골로, 또 다시 도시로 바뀌는 것을 멍하게 바라본다. 머리 속에 아무 생각이 없다.

1시가 되어서 핫야이 공항에 도착한다. 꼬리뻬에서 9시에 출발했으니 4시간이 걸린 셈이다. 여기서 방콕까지 비행기로 한 시간 반이다. 그나마 나야 에어아시아 덕으로 비행기를 타고 가니 상관없지만 버스를 타고 오간다면 꼬리뻬도 찾아오기 상당히 힘든 곳이다.


핫야이 공항에 5일 전에 왔을 때는 비가 엄청나게 쏟아질 때여서 정신없이 떠났었다. 지금은 여유가 있으니 찬찬히 바라본다. 여기도 국제공항이다. 태국에는 국제공항이 도대체 몇 개나 있는 걸까. 규모도 크고 나름 사람들도 많다. 만달레이 공항이나 씨엠립 공항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공항에서 환율을 보니 1달러에 33바트가 넘는다. 역시 섬에서 환전을 하면 안되는 거였다. 내 무지로 300바트를 손해 봤다. 300바트면 오늘 저녁을 한끼 거하게 먹을 수 있는 돈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부터는 절전모드 돌입이다.

5시간이나 비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식당들이 보이니 문득 밥을 안 먹었다는 것이 생각난다. 아침을 제대로 먹어서인지 배고프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와이파이가 되는 식당을 찾아보니 한 곳이 보인다. 메뉴를 보니 대충 100바트가 조금 넘는다. 이 정도 밥을 먹어도 되는 건가? 헷갈린다. 그 앞에서 지갑을 꺼내고 돈 계산을 좀 해본다.  대충 될듯하다.

들어가서 주문하고 앉아서 사진 백업부터 해본다. 와이파이 속도가 거북이다. 그래도 공용 와이파이가 아닌 사설이라 좀 나을 줄 알았더니 엉망이다. 사진 백업을 해야 기존 사진을 지우고 용량 확보가 가능한데 큰 일이다.


일단 밥이 나와서 먹는다. 제일 싼걸 시켰더니 뭔가 느끼하니 맛이 그저 그렇다. 그럴 때는 매운 양념을 팍팍 치면 된다. 돈 좀 아끼겠다고 물도 안 시켰더니 목이 마르다. 괜찮다. 오늘 아침에 호텔에서 가져온 물이 있으니 그걸 마시면 된다. 절전 모드에서는 딱 필요한 만큼만 소비를 해야 한다.

좀 오래 앉아있으려고 했는데 눈치 없이 신호가 자꾸 온다. 얘는 좀 때와 장소를 가려서 오면 좋을 텐데 참 이기적이다. 그래, 그게 네 잘못이겠니. 와이파이 속도도 그지 같은데 그냥 일어나자.

페이크였다. 이제 내 몸이 나에게 페이크도 거는구나. 뭐 그래도 희한하게 몸이 편안해졌다. 이제 육해공 중에 마지막 공을 정복하러 가자.



체크인하기 전에 남은 물을 원샷하고 버린다. 그리고 Security Check에 가방을 올려놓고 기다리는데 또 엑스레이 검사에 걸린다. 이제는 경험이 많다 보니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스윽 웃음을 보여준 후 세면도구를 꺼낸다. 세재를 꺼내 보여주며 의기양양하게 '이거 맞지?'라는 표정을 지어준다. 너무 당당해서인가. 약간 당황하신듯하더니 다른걸 집어드신다. 이거 맞잖아. 그래 그건 로션이야. 한동안 뒤척뒤척이더니 그냥 가라고 한다. 빼지도 않을걸 자꾸 왜 보는것이다냐.


이제 게이트 앞으로 들어온다. 시간을 보니 2시 반, 대략 3시간이 남았다. 뭐 생각보다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일단 와이파이를 확인해보니 무료 와이파이 신호가 여기저기 잘 잡힌다. 그렇다면 컨센트 확보가 관건이다. 스윽 둘러보니 텔레비전 근처에 컨센트들이 집중되어 있다. 그 옆에 앉아서 자리를 잡는다.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 오랜만에 왔으니 개인정비를 좀 해야겠다.


일단 집 나스에 사진 백업을 조금 해본다. 호, 속도가 꽤 나온다. 200KB/s면 빠르다고 하기는 애매하지만 오랜만에 이 정도 속도를 경험하니 황홀하다. 꼬리뻬에서는 딱 1/10인 20KB/s 정도 나왔었다. 이 정도면 아에 여행기도 올려볼까?


여행기는 이미 사진까지 붙여서 정리를 하고 임시저장을 해놨기에 불러와서 올리기만 하면 된다. 꼬리뻬에서 와이파이가 너무 느려서 안올린지 5일이 지났다. 실시간 여행 기라는 말이 무색하다. 물론 나는 실시간으로 계속 써왔기에 당당하다.

이전에 쓴 글을 불러들이고 올려본다. 잠시 지켜본다. 첫 번째 사진도 못 올리고 실패한다. 속도는 꽤 나오는데 왜지. 다시 시도해본다. 실패한다. 한번 더! 역시 실패한다. 나스에는 사진 20장도 ftp로 금방 올리더만. 무슨 프로토콜로 만든 거야 티스토리. 보아하니 조금만 핑이 안 좋아도 그냥 실패하는 듯하다. 에잇 안 해. 오늘 숙소 가서 올려야겠다.

앉아서 글을 마저 쓰면서 베트남에 대한 검색도 좀 한다. 나스도 접속이 수시로 끊기는 거 보니 공용 네트워크라 속도는 그럭저럭 나오지만 연결이 불안정한가 보다. 그래도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컨센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텔레비전 옆에 자리를 잡다 보니 텔레비전 소리가 귀를 아주 거슬리게 한다. 역시 모든 것은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그냥 배경음이라고 생각해봐야겠다. 캄보디아에서 삐끗했던 왼쪽 목 근육이 아직까지 뻐근하다. 며칠이 지났는데... 이거 언제까지 이럴 거냐. 살짝 졸리다. 자리 텅텅 비어 있는데 저 뒤에 숨어서 한숨 잘까? 아직은 검색할 것들이 꽤 많으니 이따 생각해봐야겠다.


4시 반이 지나니 인터넷이 안된다. 공항 무료 인터넷에 하루 제한 2시간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어차피 백업도 거의 못 했고 글도 못 올리니 큰 상관없다. 베트남 하노이는 좀 검색해보니 꽤나 저렴하게 다닐 수 있지 싶다. 게다가 내일 아침 8시에 도착이라 시간이 많으니 굳이 예약하지 않고도 발을 좀 고생시키면 될 듯하다.

그러고 보니 이틀 좋은 곳에서 쉬었다고 더럽던 발바닥이 깨끗해졌다. 이게 깨끗해지기도 하는구나. 문득 손을 보니 그 심하던 습진이 거의 사라졌다. 좋은 음식을 먹은 것도 아닌데 이틀 좋은 곳에서 그냥 쉬었다고 몸 상태가 이리 달라진다는 것이 꽤나 신기하다. 피부는 뭐가 문제였던 걸까. 씻는 물이 문제였을까 침대가 문제였을까. 뭐 어차피 지금부터 다시 또 시작되겠지. 며칠 편하게 쉬었으니 이제 또 다시 제대로 된 배낭여행을 시작할 때다. 물론 오늘 밤까지는 편히 쉴 듯하고 내일부터 본격적인 2부의 시작이다.

진에어는 오늘 노쇼를 해야 해서 혹시 내 이름을 공항에서 불러댈까 봐 노여사한테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항공사에 전화까지 해서 물어보니 노쇼면 그냥 탑승때 없으면 된다고 한다. 원래대로라면 오늘 한국을 가는 날이구나. 갑자기 시간이 지난 것이 실감된다. 정말 31일이 순식간에 지나간 거 같다. 하루는 길지만 한 달은 짧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그러하기에 이제부터 시작되는 또 다른 여행도 순간 순간을 내 안에 자세히 담고싶다.


생각보다 4시간이 금방 간다. 앉아서 기다리니 보딩을 시작한다는 안내가 나온다. 짐을 싸들고 비행기로 향한다.


이로서 오늘 하루에 육해공을 모두 아울렀다. 오늘은 운 좋게도 창가 자리를  배정받지만 여행 한 달 동안에 타는 9번째 비행기라 그런지 그다지 감흥은 없다. 이동이 피곤했는지 비행 내내 잠이 든다.


누군가 뭐라 하는 소리가 나서 잠이 깨니 스튜어디스가 나한테 뭐라고 하고 있다. 태국말이다. 오늘따라 왜 이리 나한테 태국말 하는 사람이 많지? 아까 식당에서도 그러고 공항 들어올 때도 그러더니 3번째다. 이번 섬에서 한껏 더 갈색 피부를 열심히 만들었더니 이제 진짜 현지인처럼 보이나 보다. 베트남은 어떻려나.

태국말도 자꾸 듣다 보니 늬앙스가 전달이 되나보다. 눈치껏 이제 착륙하니 창문을 열라는 소리임을 깨닫는다.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니 벌써 해는 지고 방콕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또 다시 왔구나 방콕, 지겨운 방콕. 대충 세보니 한 달 동안 돈므앙 공항에만 8번을 오는 거 같다. 빌어먹을 에어아시아.

내려서 원래 가던 길로 익숙하게 터벅터벅 걸어간다. 짐을 들고 쪼리를 신고 가고 있으니 진짜 몰골이 거지 같다. 옷도 한 달 입었더니 헤지고 색이 바랬다. 하지만 새로 살 생각은 없다. 이 옷은 이번 내 여행을 상징한다.

오늘은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 택시를 대비해서 어제 열심히 영어 및 태국 주소를 적어놨다. 근데 막상 공항에서 택시는 처음 타다 보니 택시 타러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공항을 나가니 익숙한 A1 셔틀 버스가 보인다. 오늘도 저 버스는 여행객들을 태우고 모칫역으로 향하겠지만 이번에는 난 아니다. 둘러보니 택시 표시가 있어서 한번 따라가 본다.

공항 안으로 표시를 따라가니 엄청난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게 보인다. 무슨 택시를 타려고 이리 줄을 서지. 공급보다 수요가 많은가보다. 그럼 비쌀 텐데. 안내문구를 보니 미터기를 기준으로 가는데 대신 50바트를 추가로 내면 된단다. 어제 좀 찾아보니 오늘 숙소가 공항 근처라 택시비가 많아야 150바트 나온다는데 추가로 50바트를 준다는 건 너무 사치 같다. 조금 고민하다가 나온다.

차라리 큰길로 나가서 직접 택시를 잡아야겠다. 공항 바깥으로 계속 걸어가는데 나가는 길이 애매하다. 공항으로 들어오는 택시들은 무조건 아까의 그 사람 많던 곳으로 가야 하는지 내가 아무리 불러도 안 선다. 하긴 50바트를 추가로 그냥 벌 수 있는데, 나같아도 안 서겠다. 여기가 만약 인천공항처럼 동떨어진 곳이면 길에서 택시 잡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걱정이다.

일단 큰길로 나오니 택시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공항 안으로 들어가는 택시가 아닌가 또 걱정된다. 세워주려나 의심쩍은 마음으로 손을 흔드는데 택시 한대가 서준다. 그래도 마지막 날에 헤매는 일은 없게 생겼다.

기사님이 거의 영어를 못하셔서 적어온 태국 주소를 보여드린다. 한참을 보시고 검색도 하시더니 알겠다는 표정으로 출발하신다. 나도 꽤나 현지인처럼 보이니 사기는 안치시겠지? 뭔가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지도가 없고, 있다 해도 어차피 GPS가 안되니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 혹시 몰라서 남은 태국 동전을 좀 만지작 만지작 거리며 소리를 일부너 낸다. 나 동전도 있는 사람이에요, 초보 아니니 우리 사기는 치지 맙시다, 뭐 이런 항의라고나 할까.

방콕에서 이 시간에 처음 택시를 타다 보니 이리 막히는 것도 처음 알게 된다. 생각해보니 지금이 저녁 7시 반 즈음이니 다들 퇴근할 시간이라 막히는 것이 정상이다.

어두운 골목을 구석 구석 찾아가신다. 미터기가 아직 100바트도 가리키지 않았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오늘의 택시비는 150바트로 예산을 잡아놨으니 그것만 넘지 않으면 된다. 헌데 미터기의 숫자가 81바트를 가리키는 순간 기사님이 다 오셨다고 얘기해주신다. 생각보다 멀지 않은데?

주변을 봐도 아나. 오늘의 목적지인 Gems Park 호텔이 보이는지 열심히 쳐다보니 앞에 커다란 호텔이 보인다. 이건가? 이거 이런 정상적인 진짜 '호텔'에서 자도 되는 건가? 일단은 기사님한테 81바트를 지불하고 차에서 내린다. 정직한 기사님을 만나는 덕분에 돈도 예상보다 적게 나오고 오늘 목적지에 쉽게 잘 도착했다.



내려서 호텔을 보니 지금까지 보던 게스트하우스들과 차원이 다르다. 10층 정도 되는 화려한 건물에 입구도 진짜 '호텔'이다. 이거 위화감 드는데. 이런 거지꼴로 들어가도 되는 건가 싶다. 그래도 난 외국인이니 당당하게 들어가보자.

들어서니 한 청년이 카운터에 있다. 당당하게 인사를 하고 Booking.com으로 예약을 했다고 하니 여기저기 들춰보며 예약번호를 알려달라고 한다. 그럴 줄 알고 다 적어왔다. 여권도 달라고 해서 같이 주니 한참을 이것저것 하더니 사이트에 나와있던 데로 750바트를 달라고 한다.

750바트를 제출하고 내일 공항 가는 차편을 물어보니 이전에 원래 있었던 50바트 셔틀은 없어졌단다. 그거 때문에 왔는데 이러면 곤란하다. 대신 택시를 불러준단다. 그게 어떻게 해서 대신이니. 뭐 어쩔 수 없어서 택시비는 얼마 나오냐고 물어보니 많이 나와야 100바트라고 한다. 하긴 오늘 올때를 보면 그럴 듯하다.

남은 돈에서 내일 택시비 100바트를 제외하고 돈을 세보니 오늘 저녁 실사로 쓸 수 있는 돈이 250바트나 남았다. 이거 왜 이리 많이 남았지. 아마도 부족할까 봐 걱정돼서 조금씩 아껴온 게 이리 됐나 보다. 아, 오늘 저녁 한번 거하게 먹을 수 있겠다.

오늘 태국에서의 마지막 날이라 250바트를 다 써야 한다, 좋은 식당을 알려달라고 하니 청년이 영어가 딸려서 왠 길거리 음식점을 알려준다. 그래, 내 몰골을 보면 그렇게 알려주는 게 이해가 되긴 하는데 오늘은 나 부자야, 다시  알려줘,라고 실랑이 하고 있으니 매니저로 보이는 여자가 한 식당을 알려준다. 나가서 왼쪽으로 가면 유명한 식당이 하나 있다고 한다. 그래 이런 걸 바란거지. 일단 방으로 올라가서 가방을 놔두고 나와야겠다.



엘리베이터다. 한 달만에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으니 뭔가 기분이 묘하다. 그래도 아직 엘리베이터 타는 방법은 잊지 않아서 내 방인 4층까지 무사히 올라간다.


카드키다. 여자가 남자와 처음 모텔 갔을 때 절대 여는 방법을 아는 척 하면 안된다는 그 카드키다. 그것도 꼽는 방식이 아니고 RFID 인지 앞에 대고 있으면 자동으로 열리는 시스템이다. 이거 왠지 내가 올 곳이 아닌 곳에 있는 것 같다. 태사랑에서 누군가 추천했길래 왔는데 살짝 부담스럽다.


방은 예상했던 바와 같이 깔끔하다. 에어컨도 나오고 화장실도 오래간만에 보는 진정한 양변기다. 딱히 막 화려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다. 사실 그냥 오늘 저녁에 잠만 자면 되니 큰  상관없다.


짐을 풀고 밥을 먹으러 내려온다. 어디로 가라고 했더라. 일단 큰 길로 나와서 왼쪽으로 튼 후 세븐일레븐을 지나라고 했지. 이놈의 나라는 뭔 세븐일레븐이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건너편에도 두개가 있는데 이쪽도 하나가 또 있나 보다. 조금 가니 세븐일레븐이 역시나 보인다. 그곳을 지나서 계속 길을 간다.


왼쪽에 뭔가 식당이 하나 보이긴 하는데 너무 현지 식당 느낌이다. 설마 여기인가? 그래도 에어컨 나오는 실내 식당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헷갈린다. 뭔가 자리도 많은 게 맞는 것도 같은데 생각보다 허름하다. 조금 더 가볼까.

지나서 걸어가보니 더 이상 제대로 된 식당이 나올 분위기가 아니다. 아까 거기가 맞나 보다. 다시 돌아가서 자세히 보니 맛집이 맞는 거 같다. 메인 가게가 가운데 있고 양 옆으로 확장하듯이 비슷한 크기로 두개가 더 열려 있다. 맛이 있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오늘의 4번째 태국말을 듣는다. 왜 자꾸 나를 현지인과 헷갈리는 거지. 딱 봐도 외국인처럼 생기지 않았니. 어떤 소녀가 너무나 당연하게도 태국 메뉴판을 주며 뭐라 하다가 내가 영어를 하니 화들짝 놀라며 어쩔 줄 몰라한다. 그래 나 외국인이야. 믿어줘.

영어 하는 사람이 없나 보다. 그래도 한 명은 있는지 저쪽으로 막 달려가서 누군가를 데리고 온다. 공항 근처인데 외국 사람이 별로 안 오나. 영어 메뉴판을 구석에서 꺼내오는 거 보니 아예 없는 건 아닌가 보다.

종업원에게 나의 사정을 얘기한다. "나 오늘 태국에서의 마지막 날인데 쓸 수 있는 돈이 250바트야. 맥주 한 병을 일단 주고 메뉴는 네가 알아서 잘하는 걸로 이 예산만 안 넘게 좀 가져다줘." 이 말을 10분 만에 이해시킨다. 그냥 내가 대충시킬걸. 이런 주문이 더 어렵다. 종업원이 고민하면서 종이에 주문을 슥슥 적더니 주방으로 사라진다.

유명한 식당이라더니 그냥 길 가운데에 간이 테이블과 의자를 펼쳐져있는 형태다. 하지만 길가에서 그냥 앉아 먹는 게 우리나라 포장마차를 연상시켜서 오히려 분위기는 더 좋다. 큰 길 옆이라 차들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지나다니고 매연도 많지만 오히려 이런 곳이 편하다.

잠시 앉아있으니 아까 그 종원이 오더니 볶음밥 하나와 수프, 그리고 맥주까지 해서 190바트로 주문을 넣었다고 알려준다. 250바트라니까, 맞추기가 힘들었나 보다. 아니면 내일 공항 가서 뭐라도 사먹으라는 배려인지도 모르겠다.


음식이 나온다. 볶음밥은 정체를 모르겠지만 스프라는 것은 딱 보니 똠얌꿍이다. 태국 음식 중 제일 적응 못한 게 똠얌꿍인데 태국에서의 마지막 식사로 또 먹게 되었다. 이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인 걸까. 그래 한번 먹어보자. 여기 유명한 집 같으니 다를 수도 있겠지.

언제나 그렇듯이 키보드를 펼치고 글을 쓰면서 나온 요리를 먹어본다. 볶음밥은 꽤나 맛있다. 사실 이것만 해도 한 끼인데 양이 넘칠지도 모르겠다. 똠얌꿍에는 건더기가 굉장히 많다. 한 숟가락 떠보고 감탄한다. 아까 나보고 돼지, 닭, 해산물 못 먹는 거 있냐고 묻기에  그 고기 중 하나를 정해서 나오는 줄 알았더니 그냥 모든 종류가 다 나왔다. 돼지 내장이 들어간 똠얌꽁은 처음 본다. 새우도 커다란 놈이 대여섯 개 이상이 보이고 무슨 부산 돼지국밥을 보는 느낌이다.


고기가 많아서 식감이 좋으니 맛도 상당히 좋다. 물론 그놈의 나무는 도대체 왜 먹는지 이해가 안돼서 옆으로 빼놓는다. 내가 판다도 아니고 왜 대나무 같은 것을 먹으라고 주는 건지 이해가 안된다. 하지만 그것만 잘 재끼고 먹으니 굉장히 훌륭하다. 키보드를 치면서 먹다가 이건 이렇게 한눈 팔며 먹을 음식이 아니라는 생각에 다 접고 집중해서 밥만 먹는다.


역시 맛집은 괜히 맛집이 아닌가 보다. 10시까지 영업이고 지금 9시가 넘었음에도 새로운 손님이 계속해서 온다. 이거 건더기가 정말 장난 아니다. 한참 먹었는데도 아직도 상당한 양이 나온다. 진짜 양질의 고기가 끝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걸 이렇게 만들지 말고 수육으로 만들었으면 더 맛있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걸 보니 난 확실히 똠얌꿍 취향은 아닌가 보다. 그래도 얘는 맛있다.


맛있게 먹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오늘은 할 일이 많아서 이렇게 여유 있게 있을 수는 없다. 200바트를 지불하고 10바트 거스름돈을 받으려다가 그냥 나온다. 어차피 내일 이거 다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준 곳에 대한 나만의 정말 소심하고 소박한 팁이다.

숙소로 돌아오니 10시다. 어서 씻고 와이파이를 연결한다. 블로그에 올릴 밀린 글이 무려 5개다. 여기는 속도가 잘 나올려나? 하나를 올려보니 사진이 30장인데 3장 올라가다 에러가 난다. 하, 여기도 쉽지 않구나.

그래도 밀린 숙제를 하듯이 하나하나 꾸역꾸역 올린다. 어제 여행기는 나중에 올린다 치고 29일까지 올리다 보니 11시가 넘었다. 내일 4시에 일어나야 하니 이제는 자야 한다.

이렇게 다소 정신없게 31일 여행기의 31일이 끝이 난다. 내일은 대망의 여행 32일째가 된다. 100점 만점에서 120점을 매기는 듯이 다소 어색한 숫자이지만 그만큼 새로운 경험이 시작되리라 기대를 해본다. 베트남, 8년 전쯤 회사 출장으로 이틀 정도 간 적 있었는데 배낭여행으로 가는 느낌은 어떨까? 그리고 에어아시아의 족쇄에서 벗어나 다니는 여행은 어떤 모험을 가지고 올까? 살포시 기대심을 가지고 이번 여행에서의 진정한 1부를 끝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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