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RI Aug 08. 2015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36

@ Vang Vieng, Laos (Motorbike Tour)

저 닭대가리들을 다 비틀어버리든가 해야지. 다른 동네에서의 닭소리는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는데 왜 유독 방비엥에서만 이렇게 신경을 거스를까. 오늘 아침도 결국 정말 끊임없이 10초 간격으로 우렁차게 울어대는 닭울음소리에 결국 아침잠을 설쳤다. 내가 아침잠이라 함은 새벽 4시부터를 말한다.

어젯밤에 범죄를 저질렀음을 먼저 고백한다. 내가 계약한 방은 팬방임에도 벽에 에어컨이 설치되어있다. 저번에 물어보니 에어컨은 4만킵을 더 줘야 한다고 해서 일단은 안 하고 있었다. 헌데 어제 저녁에 자세히 보니 에어컨 밑에 스위치가 보인다. 한번 스위치를 켜보니 전원이 들어오면서 에어컨이 켜진다. 아마도 켜진 상태에서 메인 전원을 내렸기에 전원을 올리니 상태를 기억하고 리모컨 없이도 켜지나 보다. 아 이러면 안되는데, 싶으면서도 유혹적으로 퍼지는 차가운 공기에 항복하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혹시 밖에서 누가 알고 들어올까 봐 노심초사하며 잤다. 그러다 새벽 2시에 영 찝찝해서 결국 꺼버렸다. 그깟 4만킵 내버리면 그만인데... 오늘 어찌 할지 생각해봐야겠다. 죄짓고 사는 건 수명을 단축시킨다. 그러게 왜 이리 허술하게 해놓은 것이냐!

어제 글 업로드를 눌러놓고 그냥 잠들어버렸다. 하루 종일 그리 바쁘게 돌아다녔으니 피곤할만 하다. 그 와중에도 새벽 중간에 한번씩 깨서 에러난 업로드를 다시 이어갔으니 정말 대단한 정신력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푹 잔 느낌이 아니다.

이곳은 내가 애정하는 수동 비데가 설치되어 있기에 하루를 깔끔히 시작한다. 7시쯤 방을 나와서 어제 빨아서 테라스에 말려놓은 티셔츠와 수영복을 보니 꽤 말랐다. 아침 산택을 하고 오면 오늘 입을 수 있을 거 같다. 그리고 그 빨래의 뒤로 옆집에서 사는 우리의 주적인 닭들이 보인다. 반죽을 입히고 양념을 묻혀서 기름에 튀긴 후 맥주와 같이 먹어버릴 놈들! 아 치킨 먹고 싶다.

뒤편으로 가니 방비엥 뒷산(?)이 무협지에 나오는 산처럼 몽환적으로 펼쳐져있다. 고산지라 그런지 구름이 산에 걸쳐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배산임수는 아니지만 산과 물이 모두 있으니 휴양지로서는 최적이다. 물만 조금 더 깨끗했으면 좋겠지만 완벽할 수는 없겠지.

방에서 나오면서 혹시나 싶어 죄책감을 숨기며 로비를 지나가는데 아무도 없다. 역시 죄짓고 사는 건 정말 할 짓이 아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정말 달콤했다. 새벽 2시에 껐어도 찬 기운이 아침까지 이어졌었다. 에어컨은 위대한 발명품이다.

땀냄새 풀풀 풍기는 옷이 아닌 깔끔한 옷을 오랜만에 입고 나오니 기분까지 상쾌해진다. 오늘은 어떻게든 돈을  송금받아야 한다. 달라로 아직 200달러가 있긴 하지만 이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한 비상금으로 놔두고 싶다. 이마저도 없으면 정말 위급한 상황에 너무 불안할 거 같다. 카드를 취소할때 현금을 인출할 카드 하나는 놔둘걸 그랬나.

그렇게 한국인이 많은 방비엥이지만 어제 좀 돌아다녀본 결과 의외로 한국 여행사는 잘 안 보인다. 오늘은 무작정 다닐 수만은 없기에 검색을 좀 해보니 '폰트러블'이라는 곳의 사장님 부인이 한국인이라 한인 여행사와 같단다. 그런데 지도에 검색하니 그 여행사의 본사인 비엔티안만 나온다. 결국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간다. 메인 거리에 자그마하게 있는 것을 드디어 발견하지만 아직 시간이 이른지 문을 안 열었다. 아침을 먹고 다시 와봐야겠다.

어제 어여쁜 한인 처자 둘한테 돈 송금을 좀 부탁할걸 그랬나. 워낙 사람들한테 부탁 못하는 것도 병이다. 해주는 건 좋아하는데 받는 거는 항상 뭔가 꺼려진다. 이것도 자만심과 오만이 다른 방식으로 표출되는 거겠지. 이번에 혹시 한국인하고 인연이 닿으면 한번 부탁해봐야겠다고 다짐한다. 헌데 이미 여행사를 통해야 하는 그룹 액티비티는 어제 해버렸는지라 그런 인연이 쉽게 생길까 싶다.

지금 현재 킵으로 2,500킵과 달라로 10달러가 있다. 노여사가 준 돈 중에 100달러를 제외하고 다 쓴 상황이다. 비상사태니 이해해주렴. 오토바이를 빌리는 가격이 수동 4만킵, 자동 8만킵이다. 수동이 모는 재미가 더 좋고 파워도 세던데 작동이 불편해서 싼 걸까. 난 당연히 수동으로 몰 거다. 미얀마에서 수동 바이크를 계속 몰고 다닌 경험이 여기서 빛을 발한다.

바이크를 빌리면 돈을 추가로 송금받을 때까지 쓸 수 있는 돈이 대략 4만킵 정도다. 아침을 먹기에는 충분하다. 돌아다니다 이곳에 굉장히 많이 보이는 바게트 샌드위치 집에 자리를 잡는다. 라오스가 예전에 프랑스 식민지였어서 그런지 바게트가 정말 많이 눈에 띈다. 어찌 보면 다른 동남아와 구별 짓는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가 바게트 아닐까 싶다.

10달러를 써야 해서 달라를 받냐고 물어보니 된단다. 역시 8000킵 환율이다. 자리를 잡고 햄, 치즈가 들어가는 샌드위치와 바나나 커피를 주문한다. 아직 8시가 안된 이른 시간인데도 이 거리는 분주하다. 내가 어제 갔었던 카약 투어를 떠나려고 모여든 사람들과 카약을 열심히 들어서 쌩따우에 올리는 스태프들로 잠시도 조용할 틈이 없다. 그 한가운데서 조용히 밥을 먹고 있으니 사람 사는 느낌이 나서 좋다.


아침부터 먹구름이 잔뜩 껴있다. 오늘 이동을 많이 해야 하는데, 비가 올려나. 됐다. 동남아 날씨 안 믿는다. 방콕에서 비를 피해 왓포까지 정신 없이 급하게 갔더니 비가 오긴 오되 정말 눈곱만큼 왔던 추억(?)이 떠오른다. 그게 언제였지? 이제는 이번 여행에서 겪었던 일도 추억으로 기억된다. 시간은 참 잘도 흐른다.

3만킵을 식사값으로 지불한다. 생각보다 비싸긴 하다. 하지만 퀄리티가 워낙 좋아서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든다. 그리고 그 앞의 렌트샵에서 4만킵을 내고 오토바이부터 빌린다. 9시에 한인 여행사가 오픈할 때까지 돌아다니면서 동네 지리라도 좀 파악해놔야겠다. 오토바이를 빌리면서 헬멧도 하나받아온다. 이 동네에서는 헬멧 쓰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못 봤지만 내 몸 중에 내가 가장 아끼는 부분인 이 커다란 머리는 지켜줘야 한다. 팔이 하나 없어도 나는 나지만 두뇌가 없어진다면 내가 내가 아니게 된다.


오토바이를 타고 일단 기름을 채우러 간다. 지도를 보고 가면서도 조금 해메지만 한번 정도 물어서 그럭저럭 쉽게 주유소를 찾는다. 얼마를 넣을까? 고민하다가 직원의 의견을 듣고 25,000킵 어치를 넣는다. 이걸로 오늘 하루는 충분히 버티겠지. 많이 싸돌아다녀서 이 기름 다 쓰고 말리라.

자, 이제 9시도 넘었으니 아까 봐 뒀던 한인여행사, 폰트래블로 향해본다. 오토바이를 타니 어디든 금방이다. 미얀마에서 익숙해진 수동 오토바이는 내 몸의 수족같이 잘 따라준다. 한국 가면 기필코 자격증을 꼭 따두리라.

폰트래블에는 이미 한국인 손님 네다섯 명이 와있다. 벽에는 다 한국말만 있고 손님은 한국인만 있는 것이 완전히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여행사 같다. 현지 직원이 한 명 앉아있길래 상황을 설명하고 부탁을 해본다. 자기는 권한이 없다고 주저하길래 그럼 여기 한국인 여사장님한테 전화라도 할 수 없냐고 부탁해본다. 내가 직접 얘기해보겠다고 하니 전화번호를 한참 찾더니 다이얼을 돌린다.

연결이 되고 바꿔줘서 사장님과 잠시 대화를 해본다. 상황을 설명하고 애처롭게 부탁을 해보지만 느낌이 안 도와주실 거 같다. 얘기를 들어보니 본사는 비엔티안인데 거기서 한국돈을 받고 이곳의 지점에서 라오스킵으로 주게 되면 둘 사이에 회계적인 문제가 생긴단다. 듣고 보니 그럴 수 있겠다. 하지만 내가 절실하니 살짝 섭섭하다. 사실 이걸 섭섭해 하는게 문제다. 부탁하는 주제에 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되지. 내가 절실한 거지 다른 사람들이 절실한 건 아니다. 그래도 사장님이 친절하게도 이곳에 있는 한인 식당과 게스트하우스를 알려주며 그곳으로 한번 가보라고 하신다.

그래도 덕분에 다른 방법이 생겼다.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은 후 오토바이에 올라 헬멧을 쓴다. 시동을 걸고 사장님한테 설명 들은 한인 식당부터 찾아 나선다. 생각해보니 처음 왔던 게스트하우스 건너편에서 본거 같다.

지리를 아니 금방이다. 스윽 들어가니 한국인처럼 보이시는 분이 한분 서 있다. 한국말로 말을 건네 보니 한국인 맞으시다. 하지만 사장님이 아니시란다. 사장님은 오늘 오후에나 돌아오신다는데, 나는 지금 없으면 비상금을 환전해야 하니 역시 문제다. 그 분이 상황을 들으시더니 다른 한인 게스트하우스를 알려주신다. 그래도 모두가 외면하지는 않으시고 조금이라도 도와주시려고 한다.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서 이번에는 일러준 그 한인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나선다. 여기는 내가 모르는 곳이라 쉽게 못 찾는다. 한참 헤매다가 어떤 식당 앞에 그 게스트하우스 지도가 있는 것을 보고 겨우 찾아간다. 멀리서 '시실리 게스트하우스' 표지판을 보고 들어간다.

한 현지 여성분이 앉아있다가 나를 보시더니 "오빠~"라고 소리를 질러서 남자분을 호출한다. 남편분이 한국분이시고 사장님이신 거 같다. 자다 일어나셨는지 부시시하게 나오신 사장님한테 또 다시 내 사정을 설명드린다. 이분 잠시 고민하시더니 해주신단다. 아, 드디어 자금 압박에서 해결되나 보다. 너무 고맙다. 수수료는 얼마를 드려야 적당하냐고 여쭈니 그냥 환율대로 하고 수수료는 필요 없으시단다. 오랜만에 동포의 정을 느낀다.

40만 원을 바꾸기로 한다. 하루에 3만 원씩 예산을 잡으면 보름 정도를 다닐 수 있는 금액이니 라오스에서는 괜찮을 듯하다. 더 필요하면 하노이에서 한인 여행사를 한번 더 들려서 다시 한번 부탁해야겠다. 노여사한테 송금을 부탁하고 기다리면서 게스트하우스 구경을 해보니 이곳은 게스트하우스뿐만 아니라 식당도 같이 운영하시는 것 같다. 슬쩍 숙소 가격을 물어보니 도미토리가 3만킵이다. 괜찮은 가격이다. 수수료도 안받으셨는데 이곳으로 옮기고 식사도 한 끼 먹는 게 예의 아닐까 싶다. 절대로 어제 쓴 에어컨이 찝찝해서 옮기는 거 아니다. 남아있으면 오늘 저녁 에어컨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돼서 옮기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소주 가격을 물어보니 30,000킵이란다. 이리 얘기하면 비싸 보이지만 막상 3천 원이 조금 넘는 돈이다. 한국에 있는 식당에서도 그 정도 받으니 그다지 비싼 게 아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오늘 저녁은 소주 한 병을 마셔볼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군침이 돈다. 이거 답례를 위해 먹는거 맞나.

도미토리에 들어가서 한번 확인해본 후 옮기기로 마음 먹는다. 환전해주실 때 숙박비인 3만킵을 아예 빼고 달라고 부탁드린다. 필요한 정보를 적어놓고, 부인분이 돈을 준비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신다기에 일단 짐을 옮기기 위해서 숙소로 돌아온다. 오토바이가 있을 때 뭐든 해놔야 편하다. 약간 거리가 있음에도 오토바이를 타고 오니 순식간이다.

그래도 도미토리로 옮기면 사생활의 방해를 받으니 이곳에서 11시까지 글도 정리하면서 평화롭게 쉬어준다. 어쩌다 보니 방비엥에서는 매일 숙소를 옮기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한인업소는 이번 여행에서 처음 가게 된다. 이런 경험도 여행 다니면서 필요한 거겠지. 너무 병적으로 한국인을 피하는 것도 문제다. 이곳에서는 나름 한국인처럼 생활해봐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시간이 돼서 가방을 챙기고 방을 나선다. 아예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온다. 이 숙소는 그래도 에어컨 바람이 있는 시원한 저녁을 선사해준 양계장 넘버2였다. 시실리 게스트하우스에도 닭이 있으려나. 아 이놈의 닭들 징그럽다. 열쇠를 넘기고 7.5키로를 등에 울러맨채 오토바이에 올라선다.

시실리 게스트하우스는 희한하게 후문은 찾기 쉽더니 정문은 영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어떻게든 정문을 찾아보기 위해 한번 구석구석 들어가서 드디어 발견한다. 사장님 앞쪽에도 간판 하나 크게 다셔야겠다.

들어가서 사장님과 얘기하고 환율 1,160원 정도로 340달러 정도에 합의한다. 사실 정확히 모르니 알아서 달라고 한다. 조금 남기셔도 사실 괜찮다. 100달러 3장과 나머지는 킵으로 8000으로 계산해서 받는다.

돈이 들어오니 드디어 마음이 좀 편해졌다. 고마워요 미스노. 한국 가면 꼭 갚을게요.

도미토리를 가보니 한분이 이미 있는지 짐이 보이지만 지금은 안 계신다. 비수기라 그런지 그분과 내가 단둘이 이 큰 방을 사용하게 될 거 같다. 침대 중에서 컨센트가 근처에 있는 곳에 둥지를 튼다. 이곳에서는 며칠을 자게 될까.

나와서 평상에 앉아서 잠시 글을 쓰고 있으니 물어보지 않았음에도 사장님이 오셔서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알려주신다. 확실히 한국분이 사장님이니 여러모로 편하다. 언어 말고 문화의 동질감에서 오는 심적인 안정감이 있다. 꼬리뻬의 호화 리조트와는 다른 의미로 여기서도 좀 정신을 쉬어갈 수 있을 거 같다.

근데 얘기를 들어보니 이분은 여기 사장님이 아니시란다. 사장님은 지금 어디를 가셨고 잠시 대신 봐주고 계실뿐이란다. 그런 이유로 식당도 지금은 운영을 안 한다. 저녁에 고기와 소주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라면만 된다고 한다. 라면에 소주라도 마셔야 하려나. 이건 뭔가 막장 느낌인데.

대행사장님한테 이 근처에 갈만한 곳을 추천받는다. 그 유명한 블루라군 말고도 몇 군데 있다. 오늘은 오토바이가 있으니 이동이 자유롭다. 일단 큰 방문지는 정해놓되 늘상 그랬듯이 그냥 가다가 땡기는 곳에서 쉬면서 여유롭게 다녀야겠다. 어제와는 다르게 일정이 자유로운 나만의 투어다.

앉아있는데 이놈의 닭울음소리는 여기도 울려 퍼진다. 양계장 넘버 3가 될 가능성이 짙다. 외부 환경을 못 바꾸면 내가 바뀌어야 하는 법, 저 소리가 자장가로 들리도록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한 시점이다.

수영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 수건 한 장도 챙기고 오토바이 시동을 걸어 오늘의 드라이브를 시작한다. 시작은 사장님이 일러주신 루앙프라방으로 향하는 길로 달려본다. 미얀마에서는 수동 오토바이가 익숙하지 않아서 드라이브를 즐기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익숙해져서 그런지 경치도 충분히 즐기면서 달린다. 방비엥의 산은 정말 눈길이 자연스레 갈 정도로 너무 멋있다. 아름답다라는 표현보다는 멋있다는 말이 어울린다. 여성적인 산이 아닌 남성적인 무게감이 느껴진다.


담고 싶은 풍경이 나타나면 중간중간에 서서 사진을 찍으며 시원하게 달린다. 아 멋지다. 한 30분을 달리다가 그냥 이유 없이 산 쪽으로 나 있는 작은 길로 방향을 틀어본다. 비포장 도로를 조심스레 달려서 안쪽으로 들어오니 냇가가 나타나며 시원한 바람이 느껴진다. 나무로 만든 다리가 보이고 건너편에는 몸을 물에 담그고 식사를 하는 현지인들이 보인다. 아무 생각 없이 왔는데 꽤 괜찮아보인다.

어제 카약을 타고 지나가면서 본 수많은 장소 중 하나이지만 오늘 나에게는 특별한 장소가 된다. 점심도 먹어야 하는데 이곳에서 잠시 머물러볼까? 물 속에 있는 저 평상이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보인다. 이 유혹을 넘어가면 여유를 즐기는 여행자라 할 자격이 없다.


다리를 건너 강 건너편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메뉴부터 본다. 생각보다 그리 비싸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곳이라면 자고로 모든 가격이 두배는 될 듯 하지만 여기는 대략 계산해보니 4만킵, 5천 원 정도면 식사와 음료를 해결할 수 있다. 바로 주문을 하고 아래 평상으로 내려온다.

평상에 앉아 발을 물에 담그니 시원함이 온몸에 전달된다. 어제 카약으로 올때는 굉장히 더러워 보였던 강물이 지금 보니 생각보다 깨끗하다. 날도 더운데 한번 몸을 담그고 올까? 잠시 고민하다 티셔츠를 벗어재끼고 물속으로 홀로 들어간다.

아 이곳이 진정 천국이구나. 여기는 얕은지라 물이 발목까지 밖에 안 와서 바닥에 거의 엎드려서 몸을 집어넣는다. 이미 안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던 현지인이 그런 나를 보더니 웃으면서 라오스 말로 뭐라 뭐라 한다. 저 라오스 사람 아니에요. 한국인이라고 하니 그래도 라오스 말로 뭐라 한다. 나도 웃으면서 꾸준히 영어로 대답해준다. 이건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니다. 대충 "좋지?"라고 하는 듯해서 나도 "좋아!"라고 해주는 뭐 그런 시추에이션이다.

식사가 나오기에 물에서 일단 나와서 평상으로 돌아온다. 이거 물에 한번 들어갔다 왔을 뿐인데 옆에서 가족단위로 놀러온 현지인들과 자연스레 분위기가 친숙해졌다. 확실히 소통은 언어보다는 문화를 공유함으로써 이어진다.

평상에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튜브를 탄 여행자들이 우리 앞을 천천히 지나간다. 서양인도 지나가고 한국인도 지나간다. 내 쪽으로 손을 흔들길래 나도 무심코 흔들어준다. 어? 이거 내가 현지인인줄 알고 있는걸까? 옷도 벗은 상태라 충분히 그럴 듯하다. 장난기가 생겨서 해맑게 웃으며 손을 더 크게 더 열심히 흔들어준다.

식사를 먹어본다. 매콤한 게 마음에 든다. 헌데 괜히 따뜻한 차를 시켰나 싶다. 시원한 콜라를 시킬걸 그랬나? 밥을 먹으며 앉아있는데 이번에는 오른쪽 멀리서 모토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쭉 빼고 바라보니 모토보트 20여 대가 우루루 오고 있다. 이건 뭐지? 이런 투어도 있나?

자세히 보니 우리 어머님, 아버님들이 햇빛에 몸이 닿을까 온몸을 감싸고 앉아계신다. 한국분들 아니랄까봐 어떤 분은 양산까지 쓰고 계신다. 근데 이분들 다 좋은데 왜 지나가면서 또 나한테 또 손을 흔드는 걸까. 우린 같은 동포잖아요.

수 많은 보트가 우루루 지나가더니 내가 앉아있는 곳을 조금 지나서 유턴을 하더니 돌아온다. 이분들 역시 또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지나가신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손을 같이 흔들어준다. 근데 이거 그냥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이 투어의 전부인건가? 이걸 왜 하지? 차라리 카야킹을 하시지. 하긴 체력이 안되셔서 어쩔 수 없을 수도 있겠다.

조금 더 있으니 이번에는 카약도 지나간다. 다들 바쁘게 노를 저으면서 순식간에 스윽 지나가버린다. 앉아서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계속 보고 있으니 여러 생각이 든다.

항상 얘기하듯이 여행에는 여러 방식이 있다 믿지만 개인적으로는 여행에서는 이동하는 것 보다 머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바쁘게 이동하다 보면 전체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막상 하나도 제대로 보기 힘들다. 한 곳에 머물러야 그곳이 품는 의미를 비로서 마음속에 온전히 담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것도 시간이 있어야 하는 거겠지.

앞에 다른 평상에 있는 현지인 분들이 나에게 맥주를 권한다. 얼음이 동동 띄워진 맥주를 보니 유혹이 엄청나다. 하지만 오토바이가 있기에 거절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럽고 창피한 부분을 고백한다. 나는 2009년 회사를 그만둘 시점에 음주운전으로 걸려서 면허 정지에 막대한 벌금을 낸 적이 있다. 회식자리에서 한잔은 괜찮아, 두 잔은 괜찮아 하던 습관이 버릇이 되어 결국 그리 되고 말았다. 기업 영업을 하던 시기고, 그날 회사의 전용 대리운전을 불렀지만 금요일이라 밀려서 사람이 없었고 그 때문에 잠시 기사님이 오실만한 곳으로 옮기려던게 그리 됐다는 변명을 스스로에게 해보지만 음주운전은 음주운전이다. 뭐라 변명해서는 안된다. 개인적으로는 술 한두 잔에 운전하는 게 나도 모르게 익숙해지던 때라 오히려 이렇게 걸린 게 하늘의 보살핌이라 생각한다. 돈은 잃었지만 사람을 다치게 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벌금 몇 푼으로 용서받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용서받을 생각도 없다. 그냥 내 업보이고 부끄러운 과거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은 이를 통해 내가 변하거다.

그 이후 면허는 다시 땄지만 최대한 운전을 하지 않으려 한다. 서울에서는 사실 운전을 하는 것이 피곤하기만 하지 좋을 것이 없다. 시외로 이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에서 차는 정말 필요 없다. 게다가 술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은 그냥 운전을 안 하는 것이 오히려 속 편하다. 혹시 운전을 하게 되더라도 병적으로 술과 운전은 분리시킨다. 동남아에서는 술이 만취되고도 오토바이를 모는 것이 만연하지만 나에게는 이미 원죄가 있기에 허락되지 않는다. 그래서 술은 무조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인 숙소 근처에서만 스스로에게 허락된다.

그런 이유로 웃으면서 맥주 한잔의 유혹을 예의 있게 거절한다. 사실 여기는 맥주가 그다지 필요 없다. 뒤에서는 나비들이 너닐고, 차가운 바람이 몸을 흝고 지나다니는 여기 자체가 알코올이며 마약이다. 차 한잔이면 충분하다.

밥을 먹고 누워 있다 보니 목표가 갑자기 생겼다. 어제 카약킹하면서 처음 보고 멈추고자 했지만 일행들이 주저하여 지나갔던 그 점프대를 찾아가보자! 강가로 찻길이 나있는 것이 아니라서 찾기 쉽지는 않아 보이지만 딱히 다른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니 급할 것도 없다. 블루라군을 가보고 싶기는 하지만 다른 곳에서 즐기다가 못 가게 되면 또 그것도 좋다. 미얀마에서 인레호수도 안가 놓고서는 여기라고 뭐 다를소냐.

근데 이 식당은 왜 현지인만 오는 거지? 관광객들도 오면 충분히 좋아할 거 같은데. 여기 말고도 좋은 곳이 많아서 그러려나. 건너편에 보니 어제 우리가 갔던 바가 바로 보인다. 튜브를 타고 있는 여행자들은 다 저기로 향한다. 여기는 음악을 현지 음악을 틀어서 여행자들을 유혹 못하는걸까. 정취 있고 더 좋은데 혼자 즐기자니 아쉽다.

식사를 다 하고 좀 앉아서 쉬다가 일어난다. 어제 미스터리의 그 점프대를 찾는 모험을 떠나야 한다. 계산할때 몇 번 사기를 당한 적이 있는지라 정산할 때면 유심히 지켜본다. 4만킵 맞다. 5천 원가량으로 잘 쉬었다.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다시 또 드라이브를 나선다. 아까 대행사장님이 알려주신 루앙프라방으로 향한다는 그 길로 다시 나가서 달려본다. 오늘 해가 아주 성났다. 강한 햇볕에 발등이 따가워질 지경이다. 더 시꺼메지고 있다는 신호다. 뭐 어차피 타는건 이미 포기했다. 그래도 설마 끊임없이 까매지겠어. 어느 정도 선이 되면 한계치가 오겠지. 사실 이미 그 한계치에 온 거 아닌가 싶다.


길 왼쪽으로 펼쳐져 있는 산이 정말 멋지다. 산의 굴곡에 따라 햇볕이 차등적으로 산을 통과하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무협지에 나오는 무당산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상상해본다.

한참 가니 길이 강을 가로질러 지나간다. 왠지 이쯤에서 되돌아가야 할거 같다. 지금까지 온 이 길 안에 오늘나의 보물섬인 점프대가 있지 싶다. 돌아오는 길에 대충 어림잡아 한 길로 들어서니 길이 험해진다. 오토바이가 있으니 그래도 한번 가본다. 쭉 들어가니 길이 사라져서 옆에 오솔길로 들어선다. 갈수록 길이 험해진다. 이거 큰 길로 이어지는 걸까? 길 방향이 동그랗게 둘러서 나오는게 쭉 가면 다시 큰길이 나올 듯 하긴 한데 영 불안하다. 한참 들어가니 그래도 내 길눈이 아직 죽지는 않았는지 다시 큰 길이 나온다.

자 저 길은 아닌 걸 알았고 이제 99개 남았다. 쭉 가다 대충 분위기를 보고 강가로 향한다 싶으면 들어가본다. 여기도 아니다. 한번 더! 가다 또 느낌이 나는 곳이 있어서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번 들어가본다. 길 끝까지 가니 왠 음악 소리가 크게 나면서 식당 같은 게 나온다. 여기도 아닌가 보다. 그래도 여기는 뭔지 궁금해서 한번 식당 안으로 들어가본다.

식당 안쪽을 보니 강가를 향해 높게 서 있는 구조물이 보인다. 이거는 사람들이 그냥 여기서 다이빙하고 뛰는 건가? 좀 높아 보이는데. 한번 볼까 싶어서 가까이 가니 그 구조물의 가운데로 줄이 시작해서 강 반대편까지 이어져있고 손잡이까지 있는 것이 보인다. 찾았다, 오늘의 보물섬! 아니다 싶어서 그냥 나갈뻔했는데 포기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온 것을 보니 그래도 아직 운이 남아있나 보다. 세 번 만에 찾다니, 나는 정녕 행운아인가.

이 주변에는 희한하게 정말 아무도 없다. 이거 해도 되는 거겠지? 줄 옆에 수영할지 모르면 뛰지 말라는 경고문이 붉은 글씨로 써 있다. 난 언제나 수영은 자신 있다. 계단을 타고 위로 조심스레 올라가 본다. 올라가보니 손잡이가 줄에 묶인 채로 난간에 묶여있다. 근데 여기 꽤나 높다. 고개를 내밀고 밑에를 보니 뭔가 아찔하다.

아 할 수 있을까? 아냐, 난 할 수 있어! 아무도 없으니 뭔가 더 오기가 생긴다. 마음 먹은 건 해야지! 그래도 증거를 남기고자 카메라를 놓을 곳을 찾아본다. 사진은 혼자 찍을 수가 없으니 동영상으로 찍어야 한다. 근데 영상에서 사진을 어떻게 뽑아내지? 핸드폰이 너무 안 좋아서 아마 쉽지 않을 텐데.

난간에 조심스레 올려놓고 동영상 시작을 누른다. 손잡이를 잡고 난간 끝에 선다. 밑에를 보니 다리가 덜덜 떨린다. 이거 시간이 지날수록 더 무서워질 거 같다. 그냥 뛰어야 한다! 두 눈 딱 감고 뛴다.

"으아아아아악!"

줄이 좀 느슨해서 처음에 천천히 가다가 확 당겨지면서 속도가 붙는다. 괴성을 지르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들을 사람도 없다. 끝에쯤 가서 손을 놓고 강에 뛰어든다. 몸이 중력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게 느껴지지만 금방 발부터 물속으로 스며든다. 강 속으로 강하게 빠지면서 물이 코로 들어오는 게 느껴지며 숨을 멈춘다. 산소를 갈구하는 몸의 목소리를 듣고 손발을 휘둘러 물 위로 고개를 빼든다.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며 머리를 흔들어 물을 털어내고 환호를 지른다.

아 이거 재미있다! 스릴감이 최고다! 영상은 잘 찍혔으려나? 강물의 흐름이 바깥으로 향하고 있어서 힘들여 거꾸로 수영하여 뭍으로 올라온다. 올라오자마자 서둘러 카메라부터 확인해본다. 영상 재생을 누른다. 내가 손잡이를 잡으러 가는 게 보인다. 그리고 끝난다. 메모리 부족으로 거기서 끝났다. 아 장난해!

한동안 백업을 못해서 사진을 못 지웠더니 용량 부족이다. 하필 이럴때! 백업은 무조건 이중으로 해야 한다는 지론을 깨고 한군데라도 백업되어 있는 사진을 주저 없이 싹 다 지워버린다. 지금 흥분했다. 상황 가릴 때가 아니다. 게다가 일단 한군데는 백업되어 있으니 괜찮다.

다시 한번 카메라를 세팅 해놓고 난간에 선다. 이게 막상 뛰면 재미있지만 난간에 서면 다시 공포감이 눈을 뜬다. 그래도 눈 딱 감고 다시 한번 손잡이를 잡고 뛰어든다.

"으아아아아악!"

두 번째임에도 또 다시 같은 소리를 지르며 뛰어든다. 이번에는 그래도 조금 더 여유 있게 물속으로 들어간다. 다시 또 헥헥 거리며 수영을 하고 뭍으로 기어오른다. 올라오자마자 사진을 보니 이번에는 그래도 찍히긴 했다. 하지만 난 왜 뭘 해도 이리 멋이 없을까. 점프할때 다리를 붙이는게 그리 어려운 걸까... 마음에 안 든다. 한번 더!

"으아아아아악!"

소리 안지르고 뛸 수는 없는 걸까? 난 어쩔 수 없나 보다. 올라와서 영상을 보니 이번에는 구도가 마음에 안 든다. 그런데 3번 뛰니 몸이 지쳤버렸다. 이제는 더이상 못하겠다. 항상 체력이 문제다.

몸을 말리고 흥분을 가라앉히며 쉬다가 일어나기 전에 잠시 앉아서 글을 쓴다. 아직까지도 이 근처에는 아무도 없다. 몸이 좀 말라서 셔츠를 입고 앉아있으니 그때서야 카약들이 강에서 이 앞을 지나간다. 왜 내가 뛸 때는 없고! 자랑하고 싶은데 못한 어린아이처럼 혼자 삐친다. 그래도 내가 봤으니 괜찮다. 나 그래도 이거 했다. 어제 카약투어에서는 그냥 지나쳤지만 결국 다시 돌아와서 뛰었다. 내가 증인이다!

다시 어른으로 돌아오자. 정신과 함께 짐을 챙기고 일어난다. 이제 어디로 가지? 첫 번째 목표는 성공했으니 다른 목표를 잡아야 하는데 딱히 정해놓은게 없다. 일단 저 방향에 있다는 동굴로나 한번 가봐야겠다.

큰 길을 따라 쭉 운전해서 방비엥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왼쪽에 폭포로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를 지나친다. 폭포? 갑자기 삘이 돋아서 오토바이를 멈추고 되돌린다. 이정표 앞에서 1분 고민하다 그쪽 길로 빠진다.

근데 6키로라고 쓰여있었던 거 같은데, 그럼 꽤 멀지 않나? 에이 몰러. 일단 가보자. 길이 꽤 험하다. 처음에는 안전을 우선으로 하여 차분히 가다가 익숙해지면서 살짝 속도를 올려본다.

이거 근데 길이 끝도 없이 간다. 이 길이 맞는 걸까? 길이 험하니 운전도 쉽지 않다. 10분마다 이 길이 진짜 맞는건지 고민이 든다. 아니면 어때, 라오스 시골 구경하고 좋다고 생각하자.

30분을 가도 안 나온다. 이정표도 없다. 진짜 여기가 아닌가? 지금이라도 다들 간다는 블루라군으로 되돌리는 게 맞지 않을까?

험난한 길을 한 시간 쯤 운전하니 쌩뚱맞게 왠 마을이 나타난다. 이 길이 아닌 것은 거의 확실하다. 오는 길에 나 말고 다른 오토바이도 거의 못 봤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마을로 한번 들어가본다.

우연히 만난 이 마을은 외지손을 타지 않은 듯하다. 사람들이 사방에서 나를 신기하게 쳐다본다. 미얀마 이후로 이런 눈빛 오랜만이다. 오토바이를 천천히 몰면서 올라가 보니 한편에 아이들이 잔뜩 모여서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어릴때 문방구에서 어린아이들이 모여있던 것과 비슷해보인다. 뭐지? 뽑기 같은 건가? 같이 합류해서 기다려볼까 하다가 일단 지나친다.

막상 기름이 걱정된다. 아까 기름 넣을 때 풀로 안 넣고 26,000킵만 넣었다. 어제 기욤의 의견을 듣고 그리한 건데 오늘 이동을 꽤 하다 보니 괜찮을까 싶다. 하지만 오토바이에 있는 게이지는 아직도 여전히 풀이라고 나온다. 이렇게 이동을 많이 했는데 풀이라니. 안 믿는다. 마을을 벗어나기 전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의자를 들어서 기름통의 뚜껑을 열고 눈으로 확인해본다. 어? 진짜 풀이네? 풀이여. 이게 어찌 된거지. 기적의 연비를 보이는 스쿠터다. 이걸로 하루 더 다닐 수도 있겠다.

자 그럼 다시 힘을 내보자.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다시 헬멧을 쓴다. 근데 한 시간 이상을 흙탕길 위에서 보냈더니 힘이 없다. 일반 길을 운전하는 거와 이런 험한 길을 운전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게다가 이게 맞는 길인지를 모르겠으니 더 힘들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만 더 가보자.

마을을 벗어나니 또 다시 험한 길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앞에는 이런 험난한 길 중에서도 익히 본 적 없는 돌맹이 가득한 험한 길이 기다리고 있다. 경훈아, 이건 아니지 않을까? 문득 머리 속에 목적지를 바로 앞에 두고 의심을 하여 되돌아온 수많은 얘기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또 허황된 꿈을 가지고 끝없이 가다가 늙어 죽은 얘기들도 떠오른다.

이 험난한 비포장 길 앞에 잠시 세워서 고민을 한다. 벌써 1시간 반가량 이 길을 달렸다. 6키로라고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나와야 하는 게 맞을 거다. 어디선가 길이 틀어진 것이 확실하다. 돌아가자. 여기는 나와 인연이 없는 거 같다.

지금부터라도 블루라군을 가봐야겠다. 오토바이를 돌리고 되돌아 가니 아까의 그 마을이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아까 그 아이들도 역시 다시 보인다. 궁금증에 오토바이를 멈추고 스윽 보니 애들이 모두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저거 뭔지 모르지만 한번 먹고 가볼까?

내려서 그 옆에 쪼그리고 앉는다. 사람들이 당황하지만 재밌어하는 눈빛이다. 슬쩍 얼마냐고 손발을 동원해서 물어본다. 여기는 숫자마저 영어로 할 줄 아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 하지만 난 이미 숫자는 라오스말로 전부 마스터했다. 라오스말로 숫자를 계속 읊으면서 얼마냐고 물으니 내 의사가 겨우 전달된다. 1,000킵이란다. 120원 정도다.

나도 하나 달라고 한다. 그리고 쪼그리고 앉아서 다른 아이들과 같이 기다린다. 애들이 굉장히 신기하게 보지만 말이 하나도 안 통하니 뭔 얘기를 할 수 없다. 동네 아주머니들도 신기한지 몇명 모여든다. 다 큰 총각이 초등학교 애들하고 같이 쪼그리고 앉아있으니 안쓰러워 보였는지 한분이 의자도 하나 가져다주신다.

이거 꽤 오래 걸린다. 우리나라 풀빵과 비슷한 거 같은데 화력이 약한지 한참을 기다린다. 여기서는 아이들이 애를 본다. 갓난아기를 어떤 여자애가 골반을 쫙 틀어서 그 위에 올리고 안고 다니며 내 주변을 서성인다. 애가 귀여워서 내가 안아보려고 손을 내미니 언니는 웃으며 건내주지만 애가 갑자기 울려고 한다. 너 왜 그러니? 나 헤치지 않아.

아주머니들이 왜 우냐며 달래며 나한테 애를 주려고 합심하지만 애는 그러니 더 무서운지 이제는 그냥 본격적으로 서럽게 운다. 나와 눈만 마주쳐도 운다. 주변의 주민들은 그런 모습을 보며 또 다들 웃어댄다. 나 원래 동물들과 아기들한테 언제나 인기 많은데, 유별난 아이다. 나도 너 싫다. 쳇.

기다리면서 혹시나 싶어 아까 포기하고 왔던 길을 가리키며 "Waterfall?" 하고 물으니 맞단다. 어? 영어를 잘못 들으셨나? 다시 물어도 맞단다. 이 길이 맞아? 하, 그럼 또 다시 가야 하려나. 왜 맞는 거니. 포기하고 나니 마음이 편했는데 결국 이 간식을 먹고 다시 한번 가봐야겠다.

더위도 식힐 겸 옆의 슈퍼에서 콜라도 하나 사먹는다. 대화가 안통하지만 그냥 지갑을 드리니 알아서 빼가시고 잔돈을 거슬러주신다. 진짜 미얀마의 순박한 사람들을 보는 거 같아서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는 사이 드디어 그 과자가 다 익어서 콜라와 함께 먹어본다. 뜨거워서 불어가며 먹으니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주위 아이들이 깔깔 거리며 웃는다. 이 과자의 맛은 밀가루와 계란, 그리고 연유를 섞은 딱 그 맛이다. 그래도 나름 맛있다.

자 먹었으니 그래도 다시 한번 가보자. 폭포가 있다고 하잖니. 사람들과 웃으며 작별 인사를 하고 헬멧을 다시 머리에 쓴다. 말이 안통하니 이 이상의 인사는 할 수가 없다. 시동을 걸고 아까 포기했던 그 길로 다시 간다. 이번에도 그 험한 길이 여전히 나타나지만 이번에는 돌아가지 않고 조심스레 넘어간다. 이런 길을 하도 운전했더니 운전 실력은 확실히 일취월장했다. 오토바이 운전은 이제 정말 자신이 생겼다.

그곳을 지나서 5분 정도 가니 거짓말처럼 폭포 표지판이 나타난다. 진짜 목전에서 돌아갈뻔했다. 그래도 이 깊숙한 곳 까지 왔는데 폭포를 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폭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한분이 입장료 1만킵을 받고 있다. 여기 아무도 안 올 거 같은데 입장료를 받는 사람까지 있다니.

주차장에 바이크를 주차하고 걸어가 본다. 여기서도 또 계단이 나오고 한참 올라간다. 얼마나 대단한 폭포가 나오려고 이리도 가는 길이 힘들다냐. 잠깐 다른 길을 빠졌다가 여기까지 온 내가 웃겨서 황당한 웃음마저 지으며 그 계단을 꾸역꾸역 올라간다. 그러고 보니 이 폭포 이름도 모른다.

메인폭포 전에 작은 폭포부터 하나 나온다. 이 폭포는 그냥 동네 뒷동산에 있을법하다. 그래 서브니까. 메인은 다를 거야. 이 정도를 보려고 여기까지 온건 아니다. 무시하고 올라간다.


땀이 범벅이다. 폭포가 나오면 그냥 뛰어들어야겠다. 여기 때문에 블루라군을 포기해야 할 것도 같지만 그래도 나만의 보물 장소니 더 의미 있겠지. 슬슬 기대심을 품으며 한발 한발 내딛는다.

드디어 메인 폭포다! 스윽 보니 안에 서양 커플이 이미 하나 와있다. 여기까지 오는 미련한 사람이 나 말고도 있단 말이냐.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폭포를 올려다본다.

폭포를 올려다본다. 폭포는 어디 있을까. 이건 폭포가 아니잖아. 콸콸콸을 예상했는데 쪼르르다. 이게 무슨 폭포야! 내 2시간 돌려줘!

이미 있던 두 명한테 "Is this it?!!"하고 절망의 소리를 지르니 얘네도 네 마음 안다는 심정으로 나를 허하게 쳐다보며 웃는다. 블루라군을 포기하고 왔는데 이게 뭐야. 자세히 보니 예전에는 영광의 날들이 있었는지 꽤 컸을듯한 흔적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우기 초입이라 그런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동네 개울가 수준의 물을 쓸쓸히 뿜고 있을 뿐이다.

먼저 와 있던 커플은 황당해 하는 나를 보더니 그래도 여기가 나름 평화롭고 좋다며 마음껏 즐기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하, 그래, 그래도 왔으니 일단 앉아보자. 하지만 앉으니 이번에는 벌레들의 엄청난 공격이 시작된다. 아까 더러운 강에 뛰어 들어갔다 나왔고 땀도 바가지로 흘렸으니 아마도 자기들과 익숙한 냄새가 나나보다.

더 이상 못 참고 일어난다. 여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다. 차라리 블루라군을 지금이라도 가보자. 엄청 서두르면 되지 않을까? 마음이 급해져서 짐을 급하게 챙기고 다시 퀵하게 내려간다.

내려오면서 시계를 보니 이미 4시가 넘었다. 돌아가면 5시 반은 될 텐데, 너무 늦다. 어쩌지 고민하는데 문득 연금술사 책을에 나온 내용이 떠오른다.

'목적지'가 목적이라면 실패도 하게 되고 실망도 하게 된다. 하지만 '과정'이 목적이라면 그 길 자체가 중요하기에 실패도, 실망도 할 수 없다. 나는 여기 폭포를 보러 온 걸까, 내 경험을 만들기 위해 온 걸까? 폭포는 못 봤지만 라오스 시골의 전경도 봤고, 아이들과 같이 쪼그리고 앉아서 맛있는 과자도 먹었다. 경훈아, 그거면 된 거 아닐까. 여기 폭포가 세상에 없는 절경이었다면 몰론 좋았겠지만 또 아닌들 어떠하랴.

마음을 달리 먹으니 순식간에 조급함이 사라진다. 블루라군, 안 봐도 된다. 아니면 내일 봐도 된다. 언제부터 내 여행이 그리 목적을 가지고 달렸다고 이제 와서 이러냐. 내려가는 길에 작은 내울가에 몸을 잠깐 담근다. 머리 식히고, 몸을 식히고 천천히 돌아가자.

오토바이에 타고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내려간다. 아까는 목적을 가지고 오느라 보지 못했던 것들이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내려오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경치가 너무 아름답다. 조금 내려가다 견딜 수 없어서 오토바이를 멈추고 잠시 멍하니 바라본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시동을 끈다. 시끄러운 엔진의 소리가 사라지면서 자연의 소리가 오늘 처음으로 귀에 들어온다. 한쪽에서는 소가 풀을 뜯고 있고 새소리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다. 잠시 그렇게 서서 바라보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아까의 그 마을을 다시 지나친다. 아까 그 아주머니는 아직도 풀빵을 굽고 계시기에 머리를 숙여 인사하니 웃으시면서 인사를 받아주신다. 그렇게 그 마을을 지나친다.

운전도 나름 재미있다. 복싱 배울 때 하수는 팔을 쓰고 고수는 허리를 쓴다고 했던가. 운전도 핸들을 틀어서 방향을 바꾸는 게 아니라 하체의 체중이동으로 방향을 틀어야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길이 험하지만 요리저리 움직이며 드라이브 자체를 즐겨본다.

들어올 때는 한참 같았는데, 순간순간을 즐기며 오다 보니 금방 큰 도로로 나온다. 이제 아스팔트 위를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순식간에 방비엥에 돌아온다.

달리는 오토바이 위에서 생각을 해본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방비엥에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곳은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이니 나 같은 자유롭고 '제대로 된' 여행자한테는 맞지 않아. 나는 이곳을 마음에 들어하기에는 너무 특별하니까.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냐. 인정하기 싫든 좋든 간에 내 마음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나는 방비엥이 마음에 든다.

이곳에 하루 더 머물기로 마음 먹는다. 한 여행지를 떠날 때는 떠날 때가 왔음을 항상 은연중에 알게 된다. 방비엥은 아직 그 느낌이 안 온다. 아직 떠날 때가 아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먹구름이 잔뜩 끼고 폭풍이 올 듯하다. 또 페이크일까? 일단 혹시 몰라서 서둘러 오토바이를 렌트샵에 돌려주고 걸어서 시실리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온다. 그리고 가방을 침대에 내려놓자마자 폭풍우가 시작된다.

도미토리에는 그새 다른 한분이 와있다. 그분과 인사를 잠깐 나누고 일단 씻으러 들어간다. 그런데 물이 안 나온다. 나와서 대행사장님한테 여쭤보니 지금 비 때문인지 잠시 안 나오는 거 같다고 하신다.

물이 나오길 기다리며 앉아서 이곳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한인 게스트하우스이니 한국인이 와서 얘기하기가 편하다. 오늘은 도미토리에 이 남성분과 나, 단 둘이 독차지할 거 같다. 이분은 얘기를 들어보니 이 게스트하우스에만 여러 번 오신 듯 싶다.

물이 다시 나온다는 소리에 다시 씻으러 들어간다. 일단 오늘 입은 수영복과 티셔츠를 빤 후에 몸에 비누칠을 하는데 이번에는 갑자기 불이 꺼져버린다. 불이 꺼지면 물도 꺼지는 걸까? 틀어보니 졸졸졸 나오긴 한다. 비누칠은 씻어내야 하기에 급한 마음으로 후다닥 씻으려 하지만 샤워기 물은 이제 안 나온다. 세면대 물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오기에 그 물로 비누칠을 씻어내려고 아둥바둥 노력한다.

그때 다시 불이 들어온다. 비가 오니 정전이 쉽게 되는 거 같다. 물은 다시 제대로 나오지만 또 언제 바뀔지 몰라서 급하게 씻고 나온다.

비가 너무 심하게 온다. 폭풍우다. 저녁은 어쩌지? 고민하고 있는데 이미 밥상을 차려주시고 있다. 여기 머무는 듯한 여성분이 고등어를 굽고 김치와 된장찌개를 해주시고는 식사라고 나를 부른다. 물론 무료다. 여행 떠나서 한국인의 제대로 된 '정'을 처음 느낀다.

앉아서 숟가락을 뜨니 다른 남자분이 소주를 들고 오신다. 이거 다 공짜로 먹어도 되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예의가 아닌 거 같아서 돈을 좀 드려야 하지 않겠냐고 물어보니 오늘은 나랑 같이 도미토리 쓰시는 분이 사시는 거란다. 그분은 내일 떠난다며 나 보고는 미안하면 다음 여행자들한테 한번 사란다. 너무나도 익숙하고 정겨운 한국문화다.

앉아서 소주를 한잔 두 잔 마시다 보니 어느새 다른 분은 다 사라지고 나랑 도미토리를 쉐어 하는 그 분만 남는다. 다른 분들은 어제 과음을 해서 오늘은 못 드시겠단다. 한국 사람들끼리 모이면 술을 안마실 수가 없으니 여기 오래 있으면 그럴  수밖에 없겠다.

이분과 빗소리를 들으며 앉아서 여러 얘기를 나눈다. 6시에 시작한 술자리는 한잔 두 잔 마시다 보니 10시까지 이어진다. 어느새 4병의 소주 빈병이 우리 앞에 놓여 있고 새로운 맥주병이 테이블 앞을 채우고 있다.

결국 저녁 10시가 되서야 자리를 파하고 자러 들어간다. 같이 마시던 그분은 여기 말고 다른 숙소에도 방을 잡아놓으셨다고 그쪽으로 비틀거리며 가신다. 코를 심하게 골아서 자기는 도미토리에 있으면 민폐란다. 여기는 단순히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도미토리의 한 자리를 잡으셨나 보다. 많이 취하신 듯 한데 괜찮을까? 괜찮다고 하도 그러셔서 그냥 보내드린다.

이 넓은 도미토리를 결국 혼자 쓰게 됐다. 방비엥에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늘어서 이런 한인 게스트하우스들도 훨씬 잘될 줄 알았는데 오늘 얘기를 들어보니 의외로 반대란다. 이런 환경 때문에, 관광객이 아닌 여행자들한테는 방비엥이 오히려 기피해야 할 곳이 되어서 손님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정작 늘어나는 관광객들은 호화로운 호텔로 몰리니 이런 게스트하우스는 갈수록 손님이 줄어들고, 결국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단다. 여기 시실리도 올 8월에 문을 닫을 가능성이 크다고 슬쩍 얘기를 해주셨다.

내가 느낀 방비엥은 여행자, 관광객이 모두 같이 어울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시실리 게스트하우스의 벽에 붙어 있는 사진들을 보니 옛날 여행객들이 다녀간 흔적과 추억이 나에게도 느껴진다. 이런 곳이 사라진다니 너무 아쉽다. 이것도 어쩔 수 없는 세월의 변화 일려나.

오늘은 예상치 못하게 과음을 좀 했다. 내일은 다시 한번 오토바이를 빌려서 이번에는 유명한 동굴과 블루라군을 한번 가볼까 싶다. 어쩌다 보니 방비엥에 4박을 하게 된다. 하루하루 이어지더니 그렇게 되어버렸다. 미얀마에서의 시포 이후 가장 오래 있는 곳이다. 그만큼 맘에 든다는 얘기겠지. 여기 시실리도 오기를 잘한 거 같다. 마음이 편안한 게 오늘 밤 잘 잘 수 있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3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