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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Aug 09. 2015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37

@ Vang Vieng, Laos (Blue Lagoon)

방비엥에서 맞이하는 3번째 아침이다. 어제 다소 과음을 해서 새벽에 약간의 두통에 시달리긴 했지만 좀 누워있으니 꽤 사라졌다. 마신 양에 비하면 그래도 깔끔하다. 오늘 행동에 지장은 없을 거 같아서 다행이다.

여기는 말만 도미토리지 거대한 내 개인방이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푹 잤다. 닭이 극성인건 이곳도 마찬가지지만 그들과 나 사이에 문이 두개나 있어서 그런지 나의 잠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찌 보면 라오스에 온 이후 가장 제대로 된 잠을 잤다.

어제 내리기 시작한 비는 아침까지도 멈추지 않는다. 그래도 곧 멈추겠지? 일단 잠이 깨버려서 키보드를 들고 어제 열심히 부어라 마셔라 달렸던 마당 의자에 나와 앉는다. 어제 술 마시느라 글을 못 써서 이제부터 밀린 숙제를 해야 한다.

쓰고 싶은 말은 많은데 몰아서 쓰다 보니 이것저것 넘어가게 된다. 이래서 몰아서 쓰는 걸 안 좋아하지만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 다 쓰고 시계를 보니 어느덧 9시다. 한 시간 이상을 글 쓰는데 소비하였다.

어느새 비는 그쳤다. 역시 동남아 비는 끈질기지 않다. 화끈하게 쏟아지지만 또 순식간에 사라진다. 오늘은 돌아 다닐 때 밀봉이 되는 비닐팩을 하나 같이 챙겨갈 생각이다. 비가 오면 몸이 젖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돈과, 카메라, 핸드폰, 키보드는 그 안에 넣어서 지켜야 한다.

어제 반납한 오토바이에 기름이 좀 남은 거 같기에 렌트샵에 내가 다시 가지러 올 거니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말고 따로 좀 챙겨달라고 부탁을 해놨다. 9시니 이제 오토바이를 빌리러 가야 한다. 아침이라 그런지 인터넷 속도가 생각보다 꽤나 나온다. 글 업로드를 눌러놓고 핸드폰은 놔둔채 렌트샵으로 나선다. 이번에는 사진이 꽤나 많아서 50장이 넘지만 속도를 보아하니 큰 무리 없이 올라가지 싶다.

밤새 내린 비의 영향으로 거리는 축축하고 분위기는 한산하다. 이 시간이면 쏟아지던 관광객들이 오늘은 안보인다. 하지만 비가 그쳤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 또 어느 순간 쏟아져나올 거다.

한국인을 몇 명 보지만 이제 익숙하게 무심히 지나친다. 어제 술을 함께 마신 그분이 얘기하시길, 처음 날 봤을때 한국인이 아닌 게스트하우스 현지 스태프의 친구인가 했단다. 말만 안 했으면 계속 현지인줄 알고 있었을 거라며 어제 술 마시면서 얘기해주셨다. 당당하게 현지인인척 하며 다녀볼까? 하지만 뚝뚝 기사님들이 나에게 "뚝뚝"을 계속 외치는 거 보니 진짜 현지인들은 내가 외국인임을 귀신같이 알아챈다.

오토바이를 빌릴 수 있는 곳이 시실리 게스트하우스 근처에도 많지만 다 지나쳐서 멀디 먼 어제의 그곳으로 기어코 간다. 어제 올 때는 몰랐는데 지금 가려고 하니 거리가 생각보다 꽤 멀다. 해장이 되는지 배가 고파지지만 일단 오토바이를 빌리고 짐을 챙기고 나와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어제의 그 오토바이 렌트샵에 드디어 도착하니 남자 몇 명이 있는데 오늘따라 영어를 조금이라도 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 어제 빌린 그 오토바이를 다시 받는 게 아니라면 굳이 이 먼곳에서 대여할 이유가 전혀 없기에 손짓 발짓 동원해가며 설명한다. 한참을 설명한 후에야 직원 하나가 뒤편으로 가더니 따로 빼놓은 오토바이를 꺼내온다. 어제 나와 동고동락을 한 그 놈이 맞다. 그래도 어제 그 직원이 잘 챙겨놨나 보다.

4만킵을 지불하고 오토바이에 올라선다. 출발하고 뭔가 허전해서 생각해보니 헬멧을 안 가져왔기에 다시 돌아가서 가져온다. 언제나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

숙소로 돌아오니 대행사장님이 일어나 계셔서 아침인사를 한다. 하루 더 있을 거라고 하고 3만킵을 드린다. 4천 원 정도로 숙박을 하는 거니 정말 저렴하다. 대행사장님이 옥수수를 먹으라고 하나 주신다. 이거 이 가격 받으면서 이렇게 퍼주셔도 되려나 모르겠다. 미안한 마음에 거절하지만 한사코 주셔서 받아와서 껍질을 까고 먹어본다. 꽤나 맛있다.

방에 들어와서 핸드폰을 열어보니 역시 오류 한번 없이 글은 깔끔하게 올라가 있다. 매번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속도가 빠른 김에 사진도 백업을 좀 해볼까 싶어서 접속해보니 다시 속도가 느려진다. 대행사장님이 낮에는 토렌트라도 돌리시는 걸까. 이따 저녁에 자기 전에 백업을 걸어놓고 자야겠다.

시간이 애매하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아침을 먹으려니 뭔가 사치스럽다. 차라리 11시까지 쉬다가 조금 이른 점심을 먹고 돌아다녀야겠다고 생각하고 침대에 엎어진다. 도미토리에 아무도 없으니 정말 이보다 편할 수가 없다. 에어컨이 없어도 날씨가 시원해서 하나도 덥지가 않다. 그리고 한인 게스트하우스답게 깔끔하고, 무엇보다 방에서는 벌레가 안 보인다.

이제 밥을 먹으러 가자. 오토바이에 올라서 헬멧 쓰는 걸 보시는 대행사장님이 이곳에서는 굳이 헬멧 안 써도 된다고, 안 잡는다고 하신다. 잡힐까 봐 쓰는 거 아닌데... 멋 없어 보이는 건 알지만 나이 드니 소심해져서 조금이라도 안전장비를 해야 한다. 안전 제일!

일단 기름부터 채우러 간다. 기름통을 열어보니 어제 남긴 것이 조금 있긴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어제 26,000킵 치를 채우고 다녔으니 오늘은 20,000킵 치만 넣어도 될 거 같다. 주유소에 들려서 2만킵을 넣어달라고 하니 어딜 갈거냐며 더 필요하다고 한다. 아저씨, 저 어제 이미 하루종일 다녀서 대충 알아요. 그냥 2만킵만 넣어달라고 한다.

오늘의 점심은 지나다니면서 눈여겨본 호텔의 부속 레스토랑으로 정했다. 메뉴를 보니 그렇게 크게 비싸지 않으면서 왠지 맛있을 거 같은 분위기였다. 위치를 떠올리며 오토바이 쓰로틀을 당긴다.

도착하니 아무도 없다. 11시 반이면 점심 먹기 조금 이른 시간이긴 하지. 뭘 먹을지 고민하다가 조금 비싸지만 라오스식 스테이크와 아이스커피를 주문한다. 해장하려면 단백질 섭취가 필요하다.

맛있겠지? 기대에 차서 기다리는데 5분도 안돼서 요리가 나온다. 신뢰가 갑자기 확 하락한다. 빨리 나오는 음식 치고 맛있는 음식을 본 적이 없다. 스테이크가 어떻게 이리 빨리 나온단 말인가.

그래도 일단 한번 먹어본다. 밥은 예전에도 본 적 있는 짚으로 만든 통에 담겨 있다. 밥을 떠 먹으려 하니 딱딱하게 굳어있다. 미리 만들어놓은 밥이겠지.

고기는 미디엄 정도의 굽기이다. 그래서 빨리 나올 수 있었나? 의외로 고기는 나쁘지 않다. 매콤한 소스와 어울린다. 일단 지금은 먹는 것이 중요하기에 밥과 함께 걸신 들린 듯이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간다.

"야옹"

또 한놈 왔구나. 야 오늘은 나도 좀 먹어야 해. 이거 양도 얼마 안되는데 못 줘. 절대 못 줘!

하지만 애원하는 고양이의 표정에 결국 두어 점 내어준다. 내 피와 같은 고기들인데... 이리 덕을 베풀면 혹시라도 우리 애들이 길거리에 나앉게 되어도 누군가에게 얻어먹을 수 있겠지.

내가 고기를 주는걸 본 고양이 2마리가 더 몰려든다. 늦었다 이놈들아. 이제는 정말 못 줘. 혹시라도 마음이 약해질까 봐 고기들을 내 몸속 깊숙한 곳에 재빠르게 저장해놓는다. 물론 씹어서 말이다.

옆에서 그리 애교 떨던 고양이는 고기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귀신같이 사라진다. 하도 겪다 보니 익숙하다. 이러니 너희가 라이벌인 강아지보다 인기가 없는 거야. 개들은 애프터서비스로 먹을게 없어도 주변에 앉아서 애교도 떨고 하는데 너희는 너무 상업적이야. 진정 고양이들의 미래가 걱정된다.

밥을 먹었는데 허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스커피를 마셔도 갈증은 지속된다. 한 끼 더 먹어야 하나? 돌아다니다가 간식할만한 거라도 있으면 좀 먹어야겠다.

56,000킵을 계산한다. 뭐 이리 많이 나왔지? 혹시나 싶어 계산해보니 맞다. 숙소 가격이 3만킵이라는걸 생각하면 비싸게도 먹었다. 라오스는 숙소는 전반적으로 저렴한 듯 한데 식사가 의외로 비싸다.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이번에는 어제 못 간 동굴부터 향해본다. 아마 이 큰 길에서 왼쪽으로 쭉 가라고 했었던 것 같다.

한참을 가니 또 어제와 같은 비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여기 맞나? 방향이 산에서 멀어진다. 동굴은 산에 있을텐데. 왠지 아닌 거 같다. 조금 더 가보다가 산에서 계속 멀어지기에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 돌아선다.

돌아오면서 유심히 보니 오는 중에 들어가는 길을 하나 지나쳤음을 발견한다.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확인차 한번 물어보니 그쪽이 동굴로 가는 길이 맞단다. 잘못하면 크게 헤맬뻔했다.

여기도 여전히 비포장 도로다. 조금 들어가니 입장료 내는 곳이 나온다. 입장료를 내는 거 보니 여기가 확실히 동굴이 맞다. 입장료로 5,000킵을 드린다. 어제 폭포는 10,000킵이더니 생각보다 저렴하다.

주차장 같은 곳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기다란 다리를 걸어서 건너간다. 근데 아무런 표지판이 없다. 저 샛길로 들어가는 건가? 그냥 눈에 보이는 오솔길로 한번 들어가보니 소들이 한 군데 모여서 다 같이 나를 멍하니 쳐다본다. 여기 맞는 거야 아닌 거야. 그래도 표지판은 있어야 할거 아니냐.

좀 더 들어가보니 갑자기 왠 개가 낯선 나를 보더니 엄청나게 짖는다. 누구에게나 꼬리 흔드는 개들만 보다 집을 지키려는 의지를 가진 개는 라오스에서 처음 만난다. 야, 너 왜 이리 짖니, 여기 아니야? 개가 대답할리가 없다. 안쪽에 누군가가 개한테 조용하라고 소리 지르기에 스윽 보니 할아버지가 실오라기 걸치지 않으시고 씻고 계신다. 죄송합니다. 의도치 않게 불경을 저질렀다.

여기는 확실히 아닌 거 같다. 다시 돌아서 나온다. 나와보니 왼쪽으로 큰 길이 있는 게 이쪽 방향인 것 같다. 꼭 한번은 헤매고 나서야 제대로 찾는다. 그러니 이정표를 좀 세워놓을 것이지.

길을 따라 쭉 들어가니 공원 같은 곳이 보인다. 공원 앞 테이블에서는 사람들이 앉아서 음료수도 마시고 책도 보고 있다. 그리고 위쪽으로 쭉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여기 맞는 거 같다. 한편에는 연못처럼 물이 고여 있어서 다가가서 보니 굉장히 깨끗한 파란색 물이 보인다. 블루라군이 파래서 블루라군이었던가? 여기도 비슷한 물인가 보다. 일단 원래 목적인 동굴을 갔다온 후에 이 물속도 한번 들어가봐야겠다.

아까 입장료는 공원 입장료였나 보다. 동굴 입장료는 별도로 15,000킵을 또 받는다. 어쩐지 아까 너무 싸다 싶었다. 사실 그래 봐야 2천 원 정도니 부담되는 금액은 아니다. 돈을 지불하고 표를 받아서 들어간다.

동굴로 올라가는 계단이 하늘까지 이어질 기세다. 성산일출봉이 떠오르게 한다. 보아하니 고생 좀 할 듯해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하나하나 계단을 차근차근 오른다. 역시 꽤나 힘들다. 고개를 수그리고 헥헥 거리며 겨우겨우 계단의 언덕을 오른다. 체력이 진짜 저질이다.

꼭대기에 오르니 한국 여인이 두 명이 나와있다. 내가 헥헥 거리며 한국말로 인사하니 웃으면서 안에는 시원하다고 말해준다. 그들이 내려가고 뒤를 돌아보니 높이 올라온 보람이 느껴진다. 방비엥 전체가 한눈에 시원하게 들어온다. 역시 라오스는 어디서든 뷰가 끝내준다.

동굴을 들어가볼까? 동굴을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만 서도 안에서 불어오는 시원하다 못해 서늘한 바람이 확 느껴진다. 올라오느라 더웠는데 예상치 못한 시원함에 기분이 좋아진다. 본격적으로 동굴 안으로 들어서니 에어컨을 틀어놓은 정도로 공기가 차갑다.

큰 기대 안 하고 들어간 동굴은 엄청난 크기로 나를 맞이한다. 생각보다 굉장히 크다. 여기저기 켜져 있는 조명들이 이 큰 동굴의 분위기를 신비하게 연출한다. 이런 외딴 곳에 어찌 이런 동굴이 있지? 한번 안쪽으로 쭉 들어가본다.

내가 들어가자 안에 있던 동남아 여행자 두어 명이 나간다. 그리고 이제 아무도 없다. 이 넓은 동굴에 나혼자 덜렁 있으니 살짝 무섭다. 여자는 지금처럼 혼자 있으면 꽤나 무섭고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안쪽으로 계속 들어가보지만 끝이 안 보인다. 다만 불이 없는 곳은 어두워서 더 이상 들어갈 수가 없다. 이 정도 동굴이면 사람이 실제로 살기에도 충분해 보인다. 문득 신조협려에서 소용녀가 살던 동굴이 이런 곳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곳에 앉아있으면 왠지 양과와 소용녀의 알콩달콩 동굴 로멘스가 눈에 보일 것 같다. 혹시 동굴 안을 구석구석 뒤져보면 나도 기연이라는 것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한쪽 방향의 탐색을 끝낸 후에 이번에는 반대편으로 가본다. 그쪽으로도 꽤나 깊게 길이 뚫려있다. 쭉 가다 보니 이 시원한 곳에서 갑자기 약간 더운 바람이 느껴진다. 그 바람을 따라가보니 세상으로 수줍게 열려 있는 틈이 나타나고 그안에 홀로 외로이 서 있는 정자와 마주한다. 이 신비로운 곳에 정자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만약 누가 여기 살았다면 이 정자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공간이 아니었을까 상상해본다.

잠시 정자에 앉아서 넓게 펼쳐져있는 방비엥을 바라본다. 오늘 다시 한번 방비엥에 감탄한다. 방비엥에는 정말 없는 것이 없다. 여행지의 백화점 같다. 동굴도 있고, 강도 있고, 산도 있으며 폭포도 있다. 서양 여행자들은 이런 동굴보다는 튜빙과 블루라군에 집중되서 그런지 이 넓은 동굴 속에는 아직도 나 혼자다.

이제 다시 나간다. 어서 나가서 공원에서 봣던 파란색의 그 깨끗한 물에 들어가고 싶다. 내가 동굴에서 벗어나니 그때서야 대여섯 명의 동남아 관광객이 들어온다. 나 혼자 천천히 보라고 이제 들어오나 보다.

계단을 내려가서 아까 사람들이 앉아있던 그 공원에 의자에 앉아서 잠시 글을 쓴다. 헌데 벌레가 너무 많다. 라오스는 다 좋은데 숲이 많아서 그런지 벌레가 많아서 어디서 앉아서 책을 보거나 그러기가 너무 힘들다. 모기 두어 방 물리니 더 이상 못 참겠다. 일단 물에 들어갔다 오자. 땀이라도 씻어내야 이놈들이 나에게 좀 덜 몰려들거다.

물 속에 아까는 몇 명 있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또 아무도 없다. 왜 내가 가는 곳 마다 사람이 없지? 내가 사람을 밀춰내나? 뭐 난 한적하니 좋다. 짧게 이어진 다리를 건너서 물속으로 내려가는 사다리 앞으로 간다. 가방을 벗어놓고 티셔츠를 벗어서 그 위에 살짝 둔다. 이제는 벗는거가 너무 익숙하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가서 발을 조심스럽게 살짝 담가본다.

물이 차갑다. 계곡물이라 그런지 매우 차갑다. 자연스레 뛰어 들어가려다 한기에 놀래 멈추고 몸에 물을 차례차례 적셔준다. 그리고 입수!

물이 차지만 정말 깨끗하다. 어제 들어갔던 갈색 강물과는 천지차이다. 혼자 이 연못에 있으니 신비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왠지 선녀들이 목욕을 하던 그런 곳 같다. 물이 꽤나 깊어서 수영을 좀 해본다. 앞에 보니 작은 동굴이 하나 있는데 그 안에서 물이 나오는 것이 여기 물의 원천으로 보인다. 수영해서 동굴로 조금 들어가보지만 물의 흐름이 반대쪽이라 역류해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영 쉽지 않다. 조금 들어가다 다시 나온다. 무서워서 나온거 아니다.

라오스는 이상하게 나비가 많다. 어제도 강가에서 나비를 굉장히 많이 봤는데 여기도 연못 속에 앉아있으니 아름다운 나비들이 내 주위를 맴돈다. 라오스의 분위기를 신비롭게 하는데 얘네들도 일조한다. 차가운 물에 잠시 앉아서 더위를 식힌다. 흘러내렸던 땀도 씻어낸다.

이제 나오려고 하니 어린애 두 명이 이곳으로 온다. 진짜 신기하게도 항상 내가 떠나야 사람들이 온다. 나와서 몸의 물기를 좀 말리고 옷을 챙겨입는다. 다시 아까 그 공원에 앉아서 글을 쓰니 갑자기 사람들이 우루루 와서 시끄럽게 수영을 한다. 내가 들어갔을때는 그리 조용했던 곳이 지금은 다이빙 소리에 시끌시끌해진다. 나한테는 정말 나홀로 바이러스라도 퍼지나 보다.

확실히 땀을 씻고 오니 벌레들이 덜 모여든다. 사실 어제 강물은 들어갔다오니 벌레들의 접근이 더 심했었는데 여기는 물이 깨끗해서 그런지 진짜 목욕을 한 느낌이다. 잠시 앉아서 사람들이 수영하는 모습을 보며 글을 쓴다. 이곳에 앉아서 책도 좀 보고 싶은데 몸의 물기가 마르니 슬슬 다시 벌레들이 모여든다. 라오스는 딱 하나 벌레가 여행을 방해한다.

어차피 2시니 슬슬 일어나야겠다. 이제는 그 유명한 블루라군으로 슬슬 향해볼까 싶다. 거기서도 수영도 하고 앉아서 쉴 곳도 있지 않을까? 짐을 싸들고 일어난다. 다이빙도 끊임없이 하며 신나게 노는 아이들을 뒤로 하고 오토바이로 돌아온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다 마주치는 바람에 렌트샵에서 받은 방비엥 지도가 날아간다. 에이 뭐 지도 없어도 대충 찾아가면 되지. 일단 큰 길로 대략 나온 이후에 아무 곳으로 달려본다. 시간이 아직 많으니 좀 헤매면서 모험을 해도 좋다. 큰 길을 따라 가다 보니 왼쪽으로 길이 열려 있다. 멀리서 보니 어떤 다리로 이어진다. 이곳은 어디지? 에이 모르겠다. 그냥 한번 가보자.

여기도 입장료 10,000킵을 받는다. 그래도 입장료까지 낸다면 어디 좋은 곳으로 이어지나 보다.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물으니 여기도 동굴로 이어진단다. 블루라군으로 가려고 했는데. 뭐 어디든 가면 가는 거지.

오토바이를 타고 조심히 다리를 건넌다. 이 건너편에는 서양 여행자들도 많이 보이는 거 보니 그래도 뭔가 볼만한 게 있을것 같다. 길을 따라 운전하니 험한 길로 이어진다. 라오스에는 정녕 험하지 않은 길이란 없는 것일까.

어제 운전을 안 했으면 이 길도 쉽지 않았겠다. 하지만 어제 삽질하며 연습을 충분히 해서인지 이제 이 험한 비포장도로도 꽤나 익숙해졌다. 큰 구멍을 회피해가며 계속해서 달리다 보니 왼쪽으로 동굴 표지판이 나타난다. 동굴에 수영장이 있다고 표지판에 쓰여있는데 그 밑에 누군가가 수영장은 없다고 사기치지 말라고 적어놨다. 수영장이 있든 없든간에 일단 그래도 동굴이라니 한번 그쪽으로 들어가본다.

라오스의 모든 길이 험하지만 동굴로 향하는 이 좁은 길은 그 중에서도 더 험하다. 이건 사고 날까 걱정이 될 정도이다. 어떻게 어떻게 꾸역꾸역 가지만 들어갈때보다 돌아 나오는 게 걱정된다. 길 중간에는 비가 와서인지 웅덩이도 고여있어서 진짜 좀 위험하다. 몇 번 넘어질뻔하지만 겨우 균형을 잡는다. 바이크로 이런 길을 간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앞에 진짜 커다란 웅덩이가 나타난다. 아무래도 여기는 아닌 거 같다. 안전제일인 나의 여행에서 이런 위험은 어울리지 않는다. 잠시 멈춰서 고민하다 오토바이를 되돌린다. 이 동굴은 내 인연이 아니다.

예상한 데로 돌아가는 길이 더 힘들다. 겨우겨우 넘어지지만 않고 돌아온다. 오토바이와 내가 둘다 만신창이가 되었다. 정말 위험한 곳이었다. 라오스의 길은 절대 친절하지 않다.

이제는 진짜 블루라군으로 가보자. 여유를 가지고 있었지만 슬슬 기름도 걱정되기 시작한다. 근데 길을 되돌려 아까의 다리로 다시 나오려고 보니 더 안쪽의 산으로 들어가는 뚝뚝과 오토바이가 상당수 보인다. 혹시 블루라군이 이 안쪽에 있는 건 아닐까?

지나가던 사람한테 물어보니 내 예상대로 안쪽이 맞단다. 역시 내 감은 틀린 적이 없다. 되돌아가고자 돌렸던 오토바이를 다시 되돌려서 안쪽으로 방향을 잡고 쭉 들어간다. 길은 역시나 갈수록 험해진다. 하지만 아까같이 운전 못할 정도의 길은 아니다.


꽤나 운전해서 간다. 이 정도 갔으면 나와야 할 텐데. 계속 기름이 걱정된다. 가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이보다 멀면 돌아올 때 기름이 떨어질 위험이 있다. 걱정하며 가는데 드디어 멀리서 블루라군 표지판이 나타난다. 그 유명한 블루라군에 돌고 돌아 결국 이제서야 도착한다. 감개무량하네.

블루라군도 예외없이 10,000킵의 입장료를 받는다. 입장료도 찔끔 찔끔 내다보니 은근히 큰돈이 되어가고 있다. 입장료를 지불고 안쪽에 오토바이를 주차시킨다.

블루라군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어디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가야 나오는는 줄 알았더니 의외로 주차장 바로 옆이다. 냇가처럼 물이 고여있는 곳이 있어 여러 사람들이 다양하게 이 곳을 즐기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물 안쪽에 앉아서 쉬고 있고, 어떤 자들은 멋지게 다이빙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다이빙하면서 물이 튀는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진다. 보는 것만으로도 자유로움과 열정이 느껴진다. 다른 곳들은 정적이었다면 블루라군은 확실히 동적이다.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하면서 기대감에 벅차오른다. 그 말로만 듣던 블루라군은 어떤 곳일까? 다리를 건너 들어가려고 하니 아까 샀던 입장권을 제출하란다. 이거 어디 뒀더라. 무의식적으로 버렸을까 걱정하는데 가방을 뒤지니 다행히 나온다. 다리를 건너서 드디어 블루라군에 입장한다.

강 위에 커다란 나무가 길게 건너편으로 뻗어있다. 사람들은 그 나무 위로 올라가서 주춤주춤하더니 소리를 지르며 점프를 한다. 뭐 기다릴거 있나. 바로 짐을 근처에 던져 넣고 상의를 습관처럼 벗어버린 후 바로 점프대로 향한다.

나무 다이빙대에 다가가니 앞에 서양 여자 두 명이 이미 있기에 뒤에서 내 차례를 기다린다. 여인 둘은 손을 잡고 멋지게 뛰어내린다. 이제 내 차례다. 밑에를 보니 살짝 무섭지만 어제 몇번이나 뛰었던 그 릴 점프대 보다는 높이가 낮다. 이정도는 껌이지. 망설이지 않고 뛰어내린다.

여기 물의 깊이가 5미터가 넘는다더니 꽤나 높은 곳에서 뛰었음에도 강바닥에 발이 안 닿는다. 물속에서 상쾌한 기분으로 헤엄쳐서 뭍으로 올라온다. 이제 블루라군의 그 유명 점프를 나도 한 건가? 그때 사람들이 "오오오~" 하는 소리가 들리길래 그들이 바라보는 방향을 보니 아까 내가 뛰었던 그 점프대 위로, 약 두배 높이의 두번째 점프대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어쩐지 너무 쉽다 했다. 아까 그 점프대가 끝이 아니었다. 그 위에 진정한 블루라군의 점프대가 있었다. 저기는 정말로 높아 보인다. 어쩌지? 고민은 잠시, 이번에도 바로 계단을 향해 다가간다. 

나도 들뜬건지 왠지 이 모습은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진다. 주변을 둘러보니 한국인이 반이다. 그 중 마음씨 좋아보이는 어머님에게 다가가 카메라를 드리고 내가 뛸때 사진 한장만 찍어달라고 부탁드린다. 어머님, 내가 너무 중대한 임무를 맡기셨다고 생각하시는지 이런 중요한 사진을 자기가 찍어도 되냐고 손사래를 치시며 걱정하신다. 대충 나와도 된다고 아무렇게나 찍어달라고 말씀드린다. 사실 잘 나오는 것 보다 흐릿하게 나오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두번째 다이빙대는 계단을 올라가는 것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내 앞에 있던 한국 아저씨는 맨 위까지 다 올라와 놓고서는 아래를 보고 못 뛰겠다며 사색이 되어서 계단으로 다시 내려오신다. 이 위에가 좁아서 그렇게 내려가시는게 사실 더 위험해보이신다. 그분이 포기하시고, 그 다음은 한국의 한 어머님 아버님 한쌍이다. 이분들 연세도 있어 보이시는데 뛸 수 있을까? 어머님은 심지어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 것이 수영도 못하시는것 같다. 한참을 앞에서 주저주저하시던 어머니가 용기를 내서 옆의 아버님 손을 잡고 과감하게 뛰어내리신다. 높이가 있으니 떨어지는 시간도 꽤 걸린다. 두분의 용기에 구경하던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쳐준다. 이제 드디어 내 차례다.


점프대에 서서 드디어 밑에를 보니 이거 정말 만만하지 않다. 인간이 가장 큰 공포를 느낀다는 높이를 초과한 10미터의 높이다. 아파트 층수로 치면 3층 정도 높이는 족히 되어 보인다. 다리가 마구 떨리기 시작한다. 이건 유흥이 아니다. 담력 테스트다. 쉬운 마음으로 올라왔는데 갑자기 주저주저해진다. 내가 이럴 줄은 몰랐다. 난 이런거 처음이다. 이거 뛸 수 있을까. 정말 장난이 아니다. 내 뒤에 차례를 기다리던 한국 남성분이 그런 나를 보더니 생각을 안 하고 뛰어버려야지 생각할 수록 뛰기 더 힘들어진다며 조언해준다. 정말 그런 거 같다. 오래 있을수록 못 뛰겠다. 그래, 그래도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데 부끄럽게 계단으로 내려갈 수는 없잖냐. 난 할 수 있다! 이를 한번 꽉 물고 발을 떼어 드디어 뛰어내린다.


높이가 높이인지라 다른 점프와 다르게 공중에 떠 있는 그 체공시간이 몸서 느껴진다. 손을 휘저으며 블루라군의 물속에 몸이 잠긴다. 물에 빠지는 순간 팔 양쪽으로 통증이 확 느껴진다. 물 속에 깊숙이 들어간 몸은 공기를 갈구하는 내 의지에 따라 천천히 위로 올라온다. 높은 곳에서 뛰었으니 물 속 깊이 들어갔기에 한참을 올라온다.


고개를 내밀고 보니 사람들은 이미 내가 아닌 다음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나한테도 사람들이 박수를 쳐줬을까? 이 순간 왜 이게 궁금한거지? 알 방법이 없다. 수영을 하며 뭍으로 올라오는데 내 뒷 사람이 뛰면서 사람들이 내지르는 환호성이 들린다.

이거 한번은 했지만 두 번은 안 하련다. 이런 과한 스릴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롯데월드의 자이로드랍을 처음 탔을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한번은 하되 두 번은 할 필요도 없고 하기도 싫다. 과하다.

아까 사진기를 맡긴 분한테 가니 아주머니가 본인을 못 믿겠는지 결국 남편분한테 카메라를 맡겨놨다. 아버님이 제대로 타이밍을 포착했다며 자신 있어 하신다. 일단 나중에 확인을 해야겠다 싶어서 감사하다고 말씀을 드리고 카메라를 받아온다. 그래도 같은 동포가 있으니 좋은 점도 많다.

아무래도 높이가 높이다 보니 떨어지면서 팔 쪽이 물과의 마찰로 벌겋게 부어올랐다. 아까 다이빙할때 느꼈던 팔쪽의 통증이 이거였나보다. 팔과 다리를 몸에 딱 붙이고 뛰었어야 했나? 그래도 심하지는 않아서 조금 기다리니 가라앉는다. 잠시 쉬고 글도 쓰기 위해서 옆에 있는 테이블로 가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계속 뛰어내린다. 어떤 어머니 아버님은 아까 어머님 처럼 구명조끼를 입고 점프대에서 뛰어내리신다. 의지의 한국인들이다.

블루라군에서는 젊음이 느껴진다. 자연이 만든 천연의 점프대 하나로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있다. 라오스를 왔다면, 방비엥을 왔다면 이곳은 꼭 한번 오기를 나도 추천한다. 서양인, 동양인, 자유여행자, 패키지 여행자 모두 다 여기서는 구분 없이 젊음을 즐긴다.

테이블에 앉아서 사진을 확인해보니 역시나 멋대가리 없다. 내가 그렇지 뭐. 어차피 뛸 거 좀 멋있게 뛰지 자세가 저게 뭐시다냐. 나와 멋은 함께 갈 수 없는 게 확실하다. 사진 초점이 어긋났지만 오히려 그래서 다행이다. 그래도 인증 사진이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이따 노여사한테나 보내줘야겠다. 다른 어딘가에 보여줄 사진은 못된다.

이런 와중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끊임없이 뛰어내린다. 한 여인이 위로 올라갔지만 못 뛰고 주충주춤하고 있으니 구경하던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며 격려해준다. 거기에 힘을 받은 겁 많던 여인도 결국 용기를 내서 점프를 한다. 그 광경에 다 같이 환호한다. 이 점프가 뭐라고 이거 하나로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한다.

한편 다리 반대쪽에는 사람들이 자유로이 수영을 하기도 하고, 구명조끼의 의존하여 둥둥 떠나니기도 하며 쉬고 있다. 아까는 정신 없어서 못 봤는데 자세히 보니 물에 물고기도 엄청나게 많다. 참 신기한 곳이다. 자연이 스스로 만든 놀이터에 사람의 손길을 살짝 얹어서 이렇게 근사한 곳이 생겨났다.

조금 더 머물까 고민하다 그냥 떠나기로 한다. 왠지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편하게 쉬기가 힘들다. 게다가 기름에 대한 걱정도 있다. 빨리 간다고 기름이 더 생기는건 아니지만 걱정이 머리속에 들어가니 여유있게 있기가 힘들다. 여기는 본 것으로 만족하자.

살짝 아쉬움을 남긴 채 블루라군을 떠난다. 오토바이에 올라타 가다 보니 계기판에는 기름이 반 정도 남았다고 표시가 나온다. 저거 믿으면 안된다. 어제도 끝까지 기름이 Full이라고 나왔었다. 그러니 오히려 반 남았다고 하는 것이 더 불안하다.


돌아가는 길은 역시나 험하지만 이제는 익숙해서 그다지 어려워하지 않고 달린다. 동남아 여행 와서 오토바이 하나는 제대로 배웠다. 이제 슬슬 돌아갈 시간인지 사람들을 가득 실은 쌩따우도 여러대 나와 같은 방향으로 시내로 돌아간다. 한 쌩따우가 지나가기에 올려다보는데 아까 내 사진을 찍어준 분과 눈이 마주쳐서 살짝 목례를 한다. 나를 바라보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실까? 쟤는 왜 한국인도 아닌 것이 한국말을 저리 잘한데, 이런 생각하시려나?


다행히 중간에 기름이 바닥나는 대참사는 면한다. 방비엥 시내로 돌아와서 오토바이를 반납하고 맡겨놨던 여권을 잊지 않고 돌려받는다. 이제 숙소에 가서 좀 쉬다가 저녁 먹으러 나와야겠다. 방비엥에서의 마지막 저녁인데 뭐 먹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보이는 여행사마다 들려서 다음 목적지인 루앙프라방 가는 버스 시간과 가격을 물어본다. 대부분 아침 일찍 떠나고 가격은 100,000킵 정도이다. 몇군데 물어보니 90,000킵 정도가 최저가인 거 같다. 뭐 이리 비싸. 아무래도 비엔티안보다 멀어서 가격도 더 비싼 거 같다. 5시간 좀 넘게 걸린다는데 그럼 오후 서너 시나 되야 도착하겠다. 루앙프라방에서는 며칠이나 머물까.

어제 저녁에 소주를 마시면서 그분께 여러 여행지에 대한 고급 정보를 얻었다. 일단 라오스에서는 북쪽의 므앙응오이 누아가 그리 좋다는 소문이다. 어차피 베트남으로 넘어가려면 북쪽으로 가야 하니 그곳을 라오스의 최종 목적지로 생각하기로 했다. 베트남의 사파도 좋다는 소문에 한번 가볼까 한다. 마지막으로 베트남의 휴양지이며 노여사가 꼭 가보라고 한 다낭에 대한항공이 취항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차피 마일리지로 가는 거니 가격은 상관없고, 그곳을 이번 여행의 마지막 도시로 잡으려고 한다. 휴양지이니 마지막 쉼터로 제격이다.

숙소로 돌아오니 아무도 안 보인다. 도미토리로 오니 어제 그분 짐도 이미 사라졌다.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벌써 떠나셨나 보다. 안전한 여행하시기를.

강에 들어갔다 왔으니 일단 씻고 오늘 입은 옷과 수영복을 빨아서 널어놓는다. 오늘도 도미토리는 나 혼자 쓰게 되겠다. 편해서 좋긴 한데 이리 여행자가 없으니 사장님이 수지타산이 안맞아서 사업을 접으신다는 것이 이해가 된다. 여기 분위기가 매우 마음에 들었는데 아쉽다. 세대교체는 항상 아쉬움을 동반한다.

일단 좀 쉬다가 7시쯤 저녁 먹으러 나가야겠다. 가는 길에 내일 버스표도 구매해놓을 생각이다. 4박 5일을 머물렀던 방비엥에서 드디어 내일 떠난다. 생각보다 오래 머물렀지만 전혀 아깝지 않다. 하고 싶은 건 다 했으니 여한 없이 떠날 수 있어서 오히려 좋다.

7시쯤 되어 이제 슬슬 나가 볼까 하는데 밖에서 갑자기 엄청난 천둥소리가 이어진다. 뭐지, 또 비 오려나? 밖으로 나와보니 천둥, 번개가 5초마다 한번씩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방비엥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방구석에 숨어있을 수는 없다. 이 정도 천둥에 무서워서 못 나간다면 우기에 동남아 여행을 다닐 자격이 없다.

일단 버스표부터 사볼까 싶어서 아까 봤던 최저가샵으로 가는데 천둥 소리가 갈 수록 커진다. 살짝 걱정된다. 비를 맞는 거야 상관이 없는데 내일까지 옷이 마를까? 내일 떠나야 하니 그게 문제다.

아까 그 여행사에 와서 다시 가격을 물어보니 9시에 출발하는 게 8만킵이다. 아까는 9킵이더니 그새 내린 건 아닐 테고 아마 아까 그 여직원이 잘 모른 게 아니었나 싶다. 헌데 라오스 돈으로 잔돈이 부족하다. 물어보니 이 여행사에서 환전도 8000킵에 해준다고 해서 그냥 같이 환전해버린다. 조금 손해이긴 하겠지만 따져보면 큰 차이도 아니다. 버스는 내일 9시에 시실리 게스트하우스로 픽업하러 온단다.

계산을 하고 있는데 '후두두' 소리와 함께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한다. 안돼! 아직은 아니야! 빨리 계산을 하고 표를 들고 나오니 이미 비는 오고 있다. 다행히 아직 많이 오지는 않는다. 일단 급한데로 바로 옆에 식당으로 들어간다.

방비엥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는 좀 맛있는데 가고 싶었는데 뭐 어쩔 수 없지.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낮에 먹었던 라오스식 스테이크와 맥주를 하나 주문한다. 스테이크는 낮에 실패했으니 다른 제대로 하는 곳에서 다시 한번 먹어보고 싶었고, 맥주는 어제 과음해서 좀 쉴까 하다가 그래도 마지막 날이라 같이 주문한다.

맥주와 음식이 나온다. 이거 근데 왜 스테이크라고 하는 걸까? 그냥 제육덮밥의 느낌이다. 여행 다니면서 음식을 보며 깨달은 하나가 토마토를 음식 재료로 쓰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는 거다. 거의 모든 음식은 토마토가 들어간다.

밥을 먹으면서 노여사와 오랜만에 오랫동안 채팅을 한다. 오랜만에 나누는 대화에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만약 여행을 빨리 접고 한국을 일찍 들어 간다면 노여사를 보고 싶다는 단 하나의 이유일 거다. 노여사, 아침에 출근할 때 여행기 보는 재미가 솔솔 하다고 돌아오지 말고 여행이나 다니란다. 너는 내 독자니, 여자친구니.

항상 그림을 배우고 싶어 했던 노여사가 학원이 꽤 비싸다고 부담스럽다고 한다. '편리를 위한 돈은 아껴도, 행복을 위한 돈은 아끼지 마. 그렇다면 돈을 버는 이유가 없잖아'라고 대답해준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반대로 살고 있다. 편리를 위한 돈은 아낌없이 쓰면서 막상 행복을 위한 돈은 매우 아낀다. 여행 다닐 때 숙소는 나에게 대부분 편리를 위한 곳이라 최대한 아끼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이빙이나 트래킹 같은 돈을 아끼면 안된다. 잠이야 좀 불편하게 자도 되지만 여기서만 할 수 있는 것을 안 한다면 그건 여행 온 이유가 없어지게 된다.

비가 좀 그친다. 우기의 비는 제멋대로라 가늠할 수가 없다. 또 이러다가 마구 쏟아질 수도 있다. 남은 맥주를 원샷하고 숙소로 향한다. 내일 긴 이동이 기다리고 있으니 오늘은 좀 일찍 푹 자야겠다.

저녁 값으로 50,000킵을 계산한다. 라오스에서는 식사비로 생각보다 많이 쓰게 된다. 그래도 숙소가 저렴하니 예산오버는 아닐거다.

비는 거의 안 오지만 천둥 번개는 쉬지 않고 꾸준히 내려친다. 다급히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과일가게에서 발걸음이 멈춘다. 동남아 여행 다니면서 두리안을 꼭 한번 먹어봐야지 했는데 아직 한번도 제대로 못 먹었다. 물어보니 1키로에 25,000킵이라고 한다. 하나를 저울에 달아보니 1키로가 조금 넘어서 32,500킵이다. 좀 비싸지만 하나 달라고 한다. 라오스말로 숫자를 얘기하면 사람들이 항상 호의적으로 바뀐다.

잘 다듬어진 두리안을 오른손에 들고 속소로 돌아온다. 시실리 게스트하우스에는 일찌감치 완전한 정적이 왔다. 닫혀이는 철문을 조심스레 열고 방으로 들어간다. 오늘은 나 혼자 있기에 어제처럼 술파티가 열리지는 않을 거다. 문득 이곳이 문 닫으면 여기 있던 직원들은 어찌되나 걱정된다. 내가 사업을 정리할 때 직원들한테 느꼈던 책임감이 다시 한번 떠오른다. 다들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는지.

오늘은 두리안을 먹으며 오래간만에 책도 좀 보면서 잠을 청해봐야겠다. 방비엥은 액티비티 천지라 바쁘게 돌아다니는 바람에 한동안 책을 못 폈었다. 이제 동적인 방비엥을 떠나니 다시 조금은 정적인 여행으로 돌아와야겠다. 이곳에서 5일을 있지만 단 하루도 화려하지 않은 날이 없었던 것 같다. 매력적인 마을, 방비엥에서의 마지막 밤은 이렇게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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