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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Aug 11. 2015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38

Vang Vieng, Laos to Luang Prabang, Laos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버스는 9시이고 8시 반까지는 준비를 하라 했으니 7시에 일어나서 짐을 싸고 아침을 먹으러 나온다. 오늘은 긴 이동이 예정되어 있으니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한다. 이동할 때는 중간에 휴기실을 들린다 하더라도 웬만하면 제대로 식사를 못 하다 보니 아침식사가 그만큼 더 중요하다.

7시 반인데 식당들이 식당들이 아직 준비가 덜 됐다. 이 시간이면 아침 손님 받을 준비가 끝났어야 하지 않나. 큰 길로 걸어가다 열린 식당이 하나 보이길래 들어간다.

방비엥에는 특히 좌식 식당이 많다. 이곳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서양인들은 양반다리를 하고 앉지 못하는데도 이런 좌식이 많은 이유를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편하니 잘됐다.

2만킵 짜리 조식 세트와 5천킵 커피를 한잔 시킨다. 생각해보니 카톡 계정이 끊긴 후 부모님에게 연락을 안 했어서 어머니 번호를 등록하여 연결을 하고 어제 블루라군에서 뛰어내리는 오징어 한마리의 사진과 걱정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사진을 보시더니 나보고 말랐단다. 저게 어찌 마른 거로 보이나요. 역시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는 관점은 독특하다.

음식이 나온다. 이 음식은 샌드위치의 구성품을 따로 주니 알아서 합체해 먹으라는 걸까. 빵과 베이컨, 계란 그리고 각종 야채가 따로 나온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이곳은 바게트가 굉장히 많이 보인다. 일단 바게트 가운데를 칼로 잘라서 주어진 재료들을 다 쑤셔 넣는다. 그리고 케첩을 뿌리고 크게 한입 베어서 뜯어낸다.

아침으로 나쁘지 않다. 야채, 고기, 그리고 계란까지 들어가 있어서 영양도 조화롭다. 커피와 함께 마지막 한입까지 싹 다 정리한다. 배가 든든한 게 마음에 든다. 여행은 근본적으로 체력을 소비하는 활동이니 연료인 밥을 잘 채워줘야 한다.

숙소로 돌아오니 여기저기 청소 중이시다. 방으로 돌아와서 짐을 정리한다. 나는 짐을 정리할 때 뭘 가방에 넣는지를 체크하지 않고 그냥 보이는데로 다 쑤셔 넣은 다음에 방 곳곳을 보며 안 넣은 게 있는지 확인한다. 방에 내 물건이 하나도 안 보이다면 놔두고 가는게 없는거다.

8시 반이 되자 가방을 짊어진다. 여기는 며칠 안 있었지만 은근히 정이 들었다. 조용한 분위기도 마음에 들고 대행사장님의 품성도 무척 좋았다. 잠시 집에 왔다가는 듯한 기분이다. 물론 그러만큼 불면증도 따라왔었지.

밖에서 잠시 앉아있으니 뒷문 쪽으로 미니버스가 한대 온다. 웬일로 시간을 딱 맞춰왔다. 대행사장님이 안보여서 찾으니 안쪽에서 나오신다. 여기서 편안한 시간 잘 가졌습니다. 작별 인사를 하니 버스 타는 곳 까지 나와서 배웅을 해주신다. 시실리 게스트하스가 계속 이곳에서 방비엥을 지켜주고 있으면 좋겠지만, 이틀 동안 손님이 나 하나뿐인 거 보면 앞으로 힘들겠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버스에 올라타니 사람들이 꽤 많다. 슬쩍 보니 한국인 여성분도 두어 명 보인다. 일단 조용히 앞자리에 앉는다. 방비엥으로 오는 차편에서는 부단히도 사람들과 떠들었었는데 오늘은 수면부족에 피곤하기도 해서 조용히 가고 싶다. 책 좀 보다 잠들었으면 좋겠지만 버스에서 잠든 적이 손에 꼽을 정도라 크게 기대는 안 한다.

나를 태운 미니버스는 다른 여행자들을 태우고자 방비엥 시내를 한바퀴 돈다. 덕분에 마지막으로 시내를 눈에 한번 더 담을 기회가 주어진다. 한쪽에서는 어제 온듯한 한국인 관광객들이 깔끔한 복잡으로 여전히 길거리에서 바게트 샌드위치를 먹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어제 심하게 과음한듯한 서양인 여행객들은 아침을 먹으며 속을 달래고 있다. 역시 이곳도 나 하나 있고 없다고 해서 변화는 것은 없다. 하지만 나에게도 이곳은 정을 준 곳이 아니라 그저 즐긴 곳이기에 쿨하게 이별한다. 오래 머물렀던 방비엥이지만 내 본처 자리를 밀어내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버스는 기름을 채우더니 드디어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길에 오른다. 길 양쪽으로 라오스의 절경이 이어지지만 이제는 이런 경치도 많이 익숙해져서 그다지 감동이 없다. 좋은 자극이든 나쁜 자극이든, 모든 자극은 익숙해지는 법이다.

6시간 정도 가게 되니 시간이 많다. 일단 라오스에서의 일정을 한번 점검해보고자 여권을 꺼내 비자 만료시기를 본다. 6월 6일 만료니 9박이 남아있다. 생각보다 길지 않다. 물론 연장이 가능하긴 하지만 이번 여행을 두 달 이상 끌 생각은 없다. 베트남에서 15일을 생각한다면 라오스는 15일 이상 있어서는 안된다.

북부로 베트남으로 넘어가는 길이 있지만 확실하게 알아보지 못했다. 다니면서 알아볼 생각이다. 그렇다면 조금 시간적인 여유를 두고 북쪽으로 이동하는 게 좋다. 루앙프라방은 1박 혹은 2박만 해야겠다. 물론 모든 것은 막상 도착하고 결정할 생각이다.

라오스는 소들이 길을 잘 먹는다. 경적을 울려도 피하지 않기에 차가 알아서 피해가야 한다. 지금까지 라오스의 이미지를 5 단어로 표현하자면, 소, 나비, 산, 강, 바게트이다. 하지만 사실 아직 진정한 라오스를 안다고 하기에는 방비엥만 있었기에 부족하다.

아저씨 근데 너무 과속하시는 거 아니에요? 커브에서 속도도 안 줄이시고 마구 달리신다. 먼길인건 알지만 이런 곳에서 죽고 싶지는 않다. 눈치 안채게 조용히 안전벨트를 맨다. 언제나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

출발한지 얼마 안돼서 화장실을 가라고 차를 세운다. 한 시간도 안 지났구먼 뭔 벌써 화장실이냐. 어쨌든 사람들이 내리니 길을 비켜준다.

멈춰 있는 동안 앞의 한국 여자분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넨다. 방비엥을 떠나서 그런지 이 버스에서 한국인은 나랑 이 둘이 전부다. 비율적으로 확실히 줄어들었다. 7일 여행을 오셔서 비엔티안, 방비엥, 그리고 루앙프라방을 보신단다. 나쁘지 않은 일정이다.

이 아저씨 우리 화장실이 아닌 자기 식사를 위해 멈춘 듯하다. 아침은 좀 먹고 오지, 게으르시다. 아저씨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모두가 기다려준다.

다시 출발이다. 산을 올라가는지 길이 커브가 많고 험난하다. 이 아저씨 이니셜디 광팬이신가 보다. 뭔가 배경음악으로 이니셜디 OST가 들리는 듯하다. 커브 진입속도를 이만큼 올려도 타이어 마찰력의 임계치를 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이라고 하고 싶으신지 엄청난 속도로 커브를 도신다. 원심력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들은 목만 흔들리는 인형처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계속 왔다 갔다 한다. 지금까지 여행 중 가장 험한 길은 아니지만 가장 험한 운전은 맞다. 이 속도로 진입하면 전복되지 않을까 싶은데 또 문제없이 잘 나오긴 한다.

그 와중에도 나는 꾸벅꾸벅 졸고 있다. 잠에는 장사 없다. 문득 눈을 떠보니 창문에 물이 번져 있다. 또 비가 오나? 밖을 바라보니 비가 아닌 구름이 나와 눈높이를 같이 하여 사방으로 펼쳐져있다. 우리는 지금 운무를 지나가고 있다.

산꼭대기에 오르더니 차를 잠시 세우신다. 이번에는 또 뭐지? 갑자기 "포토포토!"라고 외치신다. 이런 포토타임 서비스까지 있다니 나름 낭만적인 이동이다. 다 같이 내려서 사진을 찍는다. 구름에 반쯤 가려진 라오스의 자연은 상상할 수 있는 만큼 웅장하고 멋있다.

다시 출발이다. 또 엄청난 속도로 드라이빙을 즐기신다. 하지만 중간에 속도를 줄여야 하는 구간이 있는지, 한번씩 또 많이 느리게 이동하신다. 이런 모습을 보면 나름 베테랑 같아서 조금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안전벨트는 잊지 않는다.

이 아저씨, 운전도 험하게 하지만 참 자주도 쉰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운전을 과격하게 하려면 집중이 필요하니 자주 쉬어주는 게 좋을 듯 하긴 하다.

이번에도 또 쉬는가 싶었는데 표지판을 보니 루앙프라방에 도착하였다. 오늘 오후 3시나 도착 예정이었는데 1시 조금 넘어서 도착해버리니 당황스럽다. 그렇게 빨리 운전하더니 역시나 빨리 목적지에 당도하였다.

새로운 도시에 오니 또 어리둥절이다. 한 달을 여행했건 일 년을 했건 새로운 도시에서는 모두 초짜가 된다. 여행에 익숙한 사람의 다른 점은 당황하지 않는다는 거다. 길은 언제나 열리게 되어 있다. 급할 것도 없으니 쉬엄쉬엄 분위기 파악부터 하면 된다.

같이 타고 온 처자 두 명 하고 같이 여기가 어디인지를 고민해본다. 3G가 안 잡히니 지도를 보며 파악이 불가능하다. 일단 그 두 분이 여행 책자가 있어서 같이 보면서 여기저기 물어본다. 대충 알아보니 여기서 시내 중심까지는 약 5키로 떨어져 있고 뚝뚝을 타면 인당 2만킵을 줘야 한단다.

뭐 많은 가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네고를 좀 해본다. 뚝뚝을 9명 가득 채우면 인당 15,000킵까지 내려주기로 협상한다. 사람 채우는 거야 여기 사람들 모으면 되니 금방이다. 그때 마침 미니버스가 한대 더 도착하고 그 안에서 한국인들이 우루루 내린다.

이 한국인들은 같이 온 두 처자들하고 아는 사인가보다. 방비엥에서 같이 어울린 사이란다. 잘됐다. 내리자마자 이리저리 얘기해서 전부 합류시키니 딱 9명이다. 조금 더 협상해볼까 싶지만 나쁜 가격 같지는 않아서 그냥 다 같이 뚝뚝에 올라탄다.

정신없이 올라타고, 뚝뚝이 출발하고 나서야 인사를 한다. 내 앞에는 한 어머니와 아들로 보이는 여행자가 있다. 물어보니 정말 어머니와 아들이란다. 보고 있나 한여사. 다른 어머니들은 저리 잘 다니는구먼 왜 우리 어머니는 이리 겁을 먹는지 모르겠다. 효도 한번 하기 힘들다.

시내까지 5키로라더니 금방 내린다. 내리고 나니 이제 어째야 하냐는 눈빛으로 다들 나를 바라본다. 라오스에는 이상하게 장기 여행자가 별로 없어서 내가 좀 튄다. 다들 나만 따라가면 사기는 안 당할 거 같다고 얘기한다. 하긴 방비엥에서 오는 같은 버스도 다른 사람들은 전부 10만킵을 주고 왔다. 난 8만킵을 주고 왔으니 차이는 있지만 사실 2만킵 정도는 그럴 수 있다. 그 정도를 아끼고자 단기 여행자가 가격을 물어보고 다니는 게 오히려 사치다. 시간과 돈 어떤게 더 희소한 자원인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

어머니, 아들 커플과, 처자 두 분은 호텔이 같은 거 같다. 뭐 딱히 할 일도 없고 동네 분위기도 볼 겸 한바퀴 돌려고 했으니 이들을 한번 따라가 본다. 어미니와 대화도 하면서 뒤에서 따라간다.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하고 있는 아들도 기특해서 마음에 든다. 짧은 순간이지만 모두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다.

조금 걸어서 호텔에 도착한다. 겉에서 딱 보기에 호화로운게 이곳은 내가 머물 곳은 아니다. 처자분은 예약 변경을 했는데 잘 됐는지 모르겠다며 영어 지원을 부탁한다. 스태프에게 물어보지만 오히려 영어를 너무 제대로 하면 못 알아듣는다. 콩글리쉬가 동남아에서는 더 잘 통한다.

이분들은 대략 40$ 이상을 내고 예약했다. 혹시나 싶어 물어보니 나한테는 35$에 주겠단다. 하지만 그래도 비싸기에 의미 없는 할인이다. 건물을 보는 순간 이미 이곳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그냥 알겠다고 한다.

이분들이 체크인을 끝내고 나도 떠날 시간이다. 여행 다니다 보면 정말 짧은 시간임에도 정이 가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는 어머니를 봐서 마음이 갔나? 뭔가 정이 많이 간다. 저녁이라도 같이 먹자고 할까 하다가 지금 시간도 이르고 연락할 방법도 없기에 그냥 인사하고 헤어진다. 좁은 동네니 인연이 되면 자연스레 만나게 되겠지. 어머니는 특히나 안전한 여행하세요.

이제 내 숙소를 찾을 차례다. 이분들을 따라오며 슬쩍 봤더니 이 동네 구조가 대충 파악된다. 강가를 중심으로 비싼 곳이 있는 거 같고 그 건너편이 여행자 골목,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게스트하우스들이 배치되어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가격도 내려갈거다.

어제 검색해서 한 군데를 봐놓긴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냥 대충 여기저기 기웃기웃거리며 다닌다. 몇 군데 가격을 물어보니, 루앙프라방이 만만한 동네가 아님을 깨닫는다. 저렴한 팬방이 웬만하면 10만킵이다. 방비엥에서의 에어컨방 가격 수준이다. 시실리 도미토리가 3만킵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차이가 꽤나 크다.

여기서 비싼 곳에 머물 생각은 전혀 없다. 수영장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조금의 편리를 위해 돈을 쓰는 건 사치다. 이제는 대충 가격을 알았으니 좀 허름한 곳 위주로 둘러본다.

이름 모를 한 곳에서 5만킵의 숙소를 처음 찾는다. 5만킵이면 방비엥에서 두 번째 묵었던 그곳과 같은 가격이니 엄청 나쁜 수준은 아니지만 여기서는 일단 제일 저렴한 가격이다. 역시 화장실이 외부에 있는 팬방이란다. 어쩌지? 화장실이 밖에 있는걸 개인적으로 좀 싫어하긴 하지만 일단 방을 보여달라고 한다.

방은 그냥 예상한 데로 딱 죄수 수용소 같다. 하지만 나름 깔끔하고 무엇보다 여사장님이 친절한 게 마음에 든다. 그리고 화장실이 외부라지만 어차피 이 전체 게스트하우스에 오늘은 나 혼자 있는 거 같다. 어제 도미토리에서 그 큰방을 혼자 독차지했듯이 이곳도 아마 혼자 차지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분위기를 보니 더 할인이 안될 거 같지만 그래도 버릇처럼 한번 물어보니 역시 안된단다. 그냥 5만킵을 내고 하루 계약을 한다. 하루 있을지 이틀 있을지는 오늘 동네를 좀 둘러보고 생각해봐야겠다.

좀 쉴겸 리셉션에 앉아서 여사장님과 대화를 나눈다. 라오스 말을 몇 개 물어봐서 리스트에 추가한다. '나'는 '코이', 이름은 '슴'이다. 방비엥에서 만난 태국 애들이 '나'가 '라오'라고 했는데 그건 여성들만 쓰는 단어라고 알려주신다. 이것들 지네가 여자라고 나한테 그걸 알려주면 어쩌니.

방비엥에서 만났던 벨기에 친구 기욤이 나한테 며칠 안 있을 건데 언어를 자꾸 왜 배우려 하냐며 의아아했었다. 언어는 문화와 연관이 크다. 언어를 알아야 문화를 알 수 있고 문화를 알아야 언어를 진정으로 배울 수 있다. 게다가 배우려는 그 자세부터가 현지인들의 마음을 열게 한다. 단순한 몇 마디 말로 사람들의 환심을 살 수 있다는 점도 물론 무시 못한다. 요즘 숫자를 익힌 후에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음을 몸서 체험하고 있다.

이것저것 하다 보니 벌써 2시가 넘었다. 점심을 먹어야 한다. 여사장님한테 인사를 하고 거리를 또 거닐기 시작한다. 아마 오늘은 계속 거닐게 될 것 같다. 새로운 도시는 발로 익혀야 한다.

처음에 보자마자 시장처럼 보였던 곳이 있는데 거기부터 가보니 또 바게트 샌드위치다. 여기도냐. 방비엥에서 수도 없이 봤고 아침에 이미 하나 먹고 왔기에 오늘은 패스한다. 메인 길을 다녀보는데 이곳은 현지 현지 식당보다는 유럽음식점이 더 많다. 게다가 가격도 꽤나 비싸다. 이곳은 그냥 내일 떠나야 하려나.

돌다 보니 강가까지 왔다. 강가에 포장마차식으로 펼쳐져 있는 식당이 있기에 슬쩍 메뉴 가격을 보니 나쁘지 않다. 일단 뭐라도 먹어야겠기에 들어와서 앉는다. 강가라 그런지 불어오는 바람이 꽤나 시원하다.

2만킵 국수와 1만킵 오바틴차를 주문한다. 비엔티안 말고는 어디든 음식 가격이 비싸다. 저녁은 제대로 먹을계획이니 점심은 그냥 때운다고 생각하며 저렴한 애들로 주문한다.

국수가 나왔다.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더니 퀄리티가 안 좋다. 좀 짜게 하고 고수를 써서 맛을 가리고 있지만 깊은 맛이 전혀 안 느껴진다. 국수에서는 육수가 생명이거늘. 어차피 큰 기대 안 하고 있었던지라 식사라기보다는 영양분이라 생각하며 먹는다.

다 먹고 잠시 앉아 있다 일어난다. 이 동네가 아직까지 정감이 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첫날이니 여행자로서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자. 한바퀴 돌면서 네 매력이 뭔지 한번 찾아봐주마.

강가를 따라 쭉 걷는다. 루앙프라방 하면 유네스코에 등재된 곳으로 유명한 곳인데 난 건축에 큰 관심이 없어서 그런지 그냥 그렇다. 원목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게 예쁘다면 예쁘지만 우리 한옥이 진짜 백배는 더 예쁜 거 같다. 이걸 제외한다면 루앙, 넌 또 어떤 다른 매력이 있는 거니?

강을 따라 식당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 비수기라 그런지 사람은 그다지 없지만 꽤 맛있어 보이는 곳도 많다. 아까 거기서 먹지 말고 좀 더 들어와서 먹을걸 그랬다. 뭐 저녁이 있으니 아쉬워말자. 오늘 저녁은 오랜만에 한번 제대로 먹어볼까나.

강가에서 한 스쿠터가 갑자기 멈추더니 나한테 누군가 인사를 한다. 누구지? 자세히 보니 아까 같이 뚝뚝을 타고 왔던 분들 같다. 바깥쪽에 앉으셔서 나는 잘 못 봤지만 내 인상은 워낙 강하니 먼저 알아봐주셨을거다. 여행지에서는 역시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 스쿠터를 대여하셨길래 얼마냐고 물어보니 15만킵을 주셨다고 대답해주신다. 방비엥에서는 4만킵이었는데 이 터무니없는 가격차는 무엇이란 말인가. 여기서는 스쿠터를 대여할 일은 없을거다. 두 분은 아직 숙소를 찾고 계신다기에 먼저 보내드린다. 차마 내가 잡은 숙소를 추천하지는 못하겠다.

쭉 가다 강가길을 벗어나서 메인길로 들어가본다. 사원이 하나 있는 듯 하지만 태국, 미얀마, 그리고 앙코르와트까지 본 지금의 나로서는 웬만하여서는 사원은 아무런 감흥이 없다. 그 앞에는 시장길이 쫙 펼쳐져 있는 것도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이 동네의 매력은 안느껴진다.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닌가.

일단 좀 씻고 쉬다가 저녁에 다시 나와야겠다. 숙소 돌아오는 길에 아까도 봤던 뚝뚝 기사가 자꾸 따라오며 나에게 흥정을 한다. 네고를 안해도 나를 한번 더 볼 때마다 가격이 알아서 내려간다. 이곳에 유명한 콴시폭포를 보러 갔다 오는데 인당 3만 밧까지 내려갔다. 5명이 채워지면 간단다. 가격이 좋고 혹시 가게 될지도 몰라서 일단 얘기를 들어보고 아저씨의 마수에서 벗어난다. 방비엥에서 좋은 곳을 많이 봤더니 여기 호수가 과연 얼마나 좋으려나 싶기도 하지만 또 태국 여인 팸이 페이스북으로 꼭 한번 가보라고 나한테 얘기를 한 거 보니 땡기기도 한다. 고민해봐야겠다.

숙소로 향하는데 멀리서 익숙한 얼굴들이 보인다. 거참 작은 동네라지만 이리 쉽게 만날지는 몰랐다. 아까 같이 왔던 그 어머니와 아들 커플과 버스타고 같이 넘어온 두 처자다. 내가 처자들을 알아보고 먼저 말을 거니 갑자기 깜짝 놀랜다. 가까이 왔을때 까지도 내가 현지인줄 알았단다. 그래... 그래...

이 일행들은 자전거나 스쿠터를 빌려서 오늘 하루 돌아다닐 생각이라고 한다. 역시 부지런하구나. 문득 아까 뚝뚝이 5명 기준으로 얘기했다는 것이 떠오른다. 내일 혹시라도 갈려면 혼자서는 힘들고 이 사람들하고 같이 가면 서로 편할 수도 있겠다. 한국인에게는 처음으로 내일 일정을 같이 하기를 권해본다. 야, 나도 많이 변했다. 병적으로 혼자 다니기를 원하더니 이제는 그런 집착도 벗어나나 보다.

진작부터 나를 흥정의 도사로 보고 있는 분들인지라 내 제의를 반겨하신다. 내일 오전에 사원을 하나 보고 오후에는 폭포로 갈 계획을 하고 계셨다고 해서 그러면 나는 오후에 합류하는 건 어떤지 묻는다. 앙코르와트 이후 사원은 어디든 이제 보고 싶지 않아졌다. 오전에 아침 먹고 강가에서 느긋하게 쉬다가 오후에 폭포를 보러 가면 될거다.

일단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정할 수는 없기에 카톡 아이디를 받아놓는다. 그러고 보니 난 아직도 끊겨진 내 예전의 카톡 계정을 연결하지 못했다. 고객센터에 문의했더니 전에 번호를 모르면 연결시킬 수 없다는 정말 원론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 대답을 원하면 굳이 개별 문의를 왜 하겠니. 한국 가서 직접 얘기하든지 해야 풀릴 듯 싶다.

이분들은 오후 관광을 즐기시라고 하고 나는 숙소로 돌아온다. 돌아와서 방에 들어왔는데 뭔가 '윙'하는 소음이 들린다. 창문을 열어보니 바로 바깥에 물탱크가 보인다. 저기서 나는 소리다. 이거 뭔가 신경 쓰일 듯해서 여사장님한테 가서 방을 옮겨달라고 부탁한다.

안쪽으로 방을 옮기고 다시 짐을 푼 후 충전을 하려고 보니, 이번에는 방에 콘센트가 없다. 내가 살다 살다 전원 꼽을 곳이 없는 방은 처음 본다. 황당한 웃음을 혼자 짓고 다시 사장님한테 가서 이 사태를 말씀드린다. 사장님, 쿨하게 기다란 전원 연장선을 꺼내 오시더니 화장실 앞에서 방까지 이어주시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돌아가신다. 그래, 전원만 있으면 됐지 방식이 뭔 상관이랴.

역시 비싼 동네는 방이 문제다. 만약 내일 투어를 하게 되면 이곳에 하루 더 있어야 할 듯 한데 찾아보니 옆에 있다는 도미토리로 옮길까 고민된다. 헌데 또 만약 내일 투어를 하면 여기는 그냥 잠만 자는 곳이라 그럴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다. 도미토리나 여기나 가격은 매한가지다. 일단 너무 더워서 샤워를 하러 간다.

방을 옮기면서 샤워실이 가까워진 건 좋다. 헌데 샤워실에 가서 옷을 벗고 물을 트니 이번에는 물이 안 나온다. 설마, 그래도 물은 나오겠지. 샤워호스를 머리 위로 올리니 물이 안 나오지만 호스를 허리쯤으로 내리니 그때서야 졸졸졸 시냇물처럼 약하게 나온다. 압력이 낮은 듯하다. 가지가지한다. 그래도 어쩌겠냐. 씻기는 씻어야지.

나는 터미네이터가 된다. 미래에서 현재로 온 터미네이터가 나체로 수그리고 있던 그 모습 그대로 앉은채 샤워기를 머리에 댄다. 그래야만 물이 나와 머리를 감는 것이 가능하다. 여행하면서 웬만한 상황은 겪어본 거 같지만 터미네이터 샤워는 또 신선하다. 이따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 도미토리를 무조건 알아봐야겠군, 속으로 오만번 다짐하며 겨우 샤워를 마친다. 샤워하기가 이리 힘들다는것을 처음 깨닫는다.

아직 낮시간이라 그런지 방이 덥다. 선풍기를 세게 틀어나도 덥다. 마오네부터 치앙마이, 방비엥까지 항상 새로운 동네에 입성한 후 처음 가는 게스트하우스는 좋은 적이 없었지만 이곳은 그중에서도 으뜸이다. 왜 계속 기록을 경신하는 걸까. 제발 밤에 덥지만 않기를 기원해본다.

시포에서 만난 프랑스 친구들, 알봉과 요한이 페시으북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방콕에 도착했다며 그날 사진을 보냈다. 사진을 보자마자 빵 터진다. 이것들이 내가 술 취해서 뻗어있는 그 뒤로 온갖 기념 사진들을 찍어놨다. 물론 기억은 안난다. 이런 굴욕이... 다음에 혹시 이들을 보게 된다면 꼭 술 잘 마시는 친구 하나를 데리고 가서 한국인의 주량을 보여줘야겠다.

이 친구들과는 하루 같이 있었을 뿐인데 왜 이리 정이 많이 가는지 모르겠다. 여행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마음이 간다. 내가 좋아하는 시포에서 만나서일까, 아님 내가 시포를 좋아하게 된 이유도 사실 이 친구들 때문일까. 여행지에서의 인연은 하루가 한 달과 같다. 언제 한번 꼭 다시 보고 싶지만 인연이 닿을지 정말 모르겠다. 자신의 짧은 팔 하나를 절대 부끄러운 게 아닌 자랑이라고 얘기해주던 당당한 알봉과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강남스타일을 추던 요한, 이번 여행에서 가장 그리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숙소에서 좀 쉬다 7시쯤 나온다. 낮의 그 한국 총각에게 카톡을 보내 놨는데 아직 답장이 없어서 좀 기다리다 나갈까 생각 해보지만 결국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서 그냥 나와버린다. 그나저나 유심 충전을 어제 했는데 왜 3G 연결이 안되는 걸까? 미스터리다.

나오면서 혹시 몰라서 샤워실에 다시 가본다. 지금은 물이 콸콸 잘 나온다. 어제 시실리에서처럼 물이 안 나오는 시점에 내가 샤워를 했었나 보다. 그렇다면 이동하지 말고 그냥 있을까? 잠시 고민하지만 일단 원래 찾아봤던 도미토리가 있다는 그 게스트하우스를 한번 가본다. 내가 지금 있는 곳에서 한골목만 안으로 들어가면 있다.

바깥에 서양인들이 당구를 치고 있는 게 여기는 좀 자유로운 게스트하우스 냄새가 난다. 들어가서 얼마냐고 물어보니 도미토리가 4만킵이다. 역시 도미토리라 상대적으로 저렴하긴 하다. 어쩌지? 일단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운만 띄우고 결제는 안 하고 돌아온다. 내일 상황 돌아가는 거 봐서 옮기든지 해야겠다.

거리를 나서 보니 내가 자리를 비운 몇 시간 안에 다른 세상이 펼쳐져있다. 거리 곳곳에 좌판대가 펼쳐져있고, 옷과 장신구 등 다양한 제품들과 각종 음식이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흡사 치앙마이의 선데이 마켓에 다시 온 느낌이다.

첫 번째 골목으로 들어가본다. 여기는 먹자골목이다. 식당들이 비슷한 컨셉이다. 15,000킵에 십여 가지 음식 중에서 한 그릇에 담을 수 있는 최대한을 담아서 먹을 수 있단다. 이거나 먹어볼까?

알단 구경을 좀 더 하려고 골목을 나오다 아무래도 이건 그냥 넘기기 힘든 유혹 같아서 다시 돌아간다. 뷔페 한 접시와 비어라오 작은 것을 주문하여 선불로 25,000킵을 준다. 그리고 음식들을 찬찬히 담아본다.

막상 담으려고 보니 왜 저렴한지 알겠다. 고기가 없다. 유일한 단백질은 계란과 두부이다. 일단 여기서 탄수화물과 식이섬유를 섭취하고 거리에서 소시지 꼬치 하나를 추가로 먹어야겠다.

너무 욕심 내지 않고 이것저것 먹을 만큼만 담는다. 남기면 처치 곤란이다. 큰 기대 안 하고 먹어보지만 기대를 안 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맛은 부족하다. 싼 거 치고 좋은 건 본 적이 없다. 매번 겪는 단순한 진리다. 그래도 남기지 않고 한 그릇을 해치운다.

큰 길로 나가는 길에 남은 맥주를 들고 소시지 꼬치를 1만킵에 하나 산다. 먹어보니 이것도 별로다. 오늘 식사는 망했다. 한번 먹으면 배불러서 더 못 먹는데, 선택들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난 절대 음식은 버리지 않는다. 약간 역겨울 정도로 먹기 힘들지만 걸어 다니면서 꾸역꾸역 다 해치운다.

치앙마이에서 조차도 선데이 마켓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 축소판인 여기를 좋아할 리가 없다. 하지만 딱히 다른 목표가 없기에 서성서리며 돌아다닌다. 혹시 아까 그 한국인들 일행을 만나려나 싶어서 주변을 두리번 거려보기도 한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사람을 잘 만난다 하여 막상 찾는 사람을 우연히 마주친 적은 없다.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웃긴건 찾지 않는 사람은 의외로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항상 나타난다.

저 앞에 저 여자, 낯이 익은데 누구지? 옆에 서양 남자를 보는 순간 반가움에 먼저 다가선다. 그때 팸이 먼저 나를 보고 "리!"라며 소리를 지른다. 루앙프라방에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약속 없이 여행자들을 이리 만나는 건 아무리 해도 참 익숙해지기 힘들다. 방비엥에서 같이 투어를 했던 이들을 다시 만날 줄을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이렇게 만나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길에 서서 대화를 좀 나눈다. 이들은 내일 배를 타고 남부로 가서 태국 국경으로 간단다. 나는 여기서 배를 타고 북부로 갈 계획이니 방향이 정 반대가 되는 셈이다. 팸은 한손에 과자가 잔뜩 들어있는걸 보니 숙소로 돌아가는 길인가 보다. 그 봉지에 역시나 맥주는 없다.

둘이 오붓한 시간을 보내라고 악수하며 떠나보낸다. 좋은 인연이지만 지금 술 한잔을, 또는 차 한잔을 하기에는 애매하다. 아마도 이들과의 인연은 여기까지 일 거다. 문득 둘 사이는 어떤 관계인지 궁금해지지만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겨둔다.

시장의 한쪽 끝까지 쭉 가본다. 하지만 역시 내가 관심 있어할 만한 건 없다. 동남아를 돌다 보니 이제 시장, 사원 같은 자주 보이는 거에 무심해졌다. 지금은 오로지 자연과 음식만이 내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이제 돌아갈 때가 된 건가. 그래도 남은 라오스와 베트남이 자연 경관으로 유명한 곳들이라 다행이다.

이 길 끝까지 온 김에 아까 그 한국인 일행들이 머물던 숙소에 가서 숙소 이름을 알아온다. 아까 카톡 친구 추가가 잘된 건지 확신이 없어서 혹시 연락이 안되면 아침에 이 리조트로 전화를 해보든가 해야겠다.

한 시간 정도를 돌아다니니 지친다. 아무래도 루앙푸르방은 나와 궁합이 맞지 않는다. 만약 내일 투어가 예정되어 있지 않다면 바로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내일 오전에 북쪽으로 가는 배 편과 버스 편을 좀 알아보고 오후에 팸이 극찬했던 폭포를 그래도 구경하면서 이곳에서의 마무리를 해야겠다.

오늘 땀 흘린 거에 비해 수분 섭취가 부족해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1만킵에 망고, 바나나, 그리고 파인애플이 믹스된 주스를 하나 사서 마신다. 바나나를 괜히 넣었다. 식이섬유가 강한 바나나를 넣으면 음료가 청량감이 떨어지고 텁텁해진다. 오늘 저녁에 시도한 음식은 결국 모두 실패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샤워부터 한다. 물이 콸콸콸 나오니 너무 행복하다. 있다가 없으면 그 소중함을 안다고 이런 작은 거에 감동하게 된다. 터미네이터 샤워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 숙소에 하루 더 머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 잠자는 것을 보고 결정하자.

여기 와이파이는 창문에 딱 붙어야 그나마 속도가 나온다. 여행기에 사진까지 포함시켜 올릴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안되면 내일 밥 먹으러 와이파이 잘 되는 곳에 가서 올리지 뭐.

방비엥에서 신나게 놀다가 루앙프라방에 떨어진 후부터 기운이 영 안난다. 이런 곳은 머물면 안된다. 유네스코 마을이고 유명한 사원이고 간에 여행지는 궁합이 맞아야 한다. 내일 하루 사람들과 어울린 다음 진정한 내 목적지인 북쪽으로 떠나 보자. 그래도 지금 몸은 피곤해서 오늘 밤은 잠이 잘 들 수 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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