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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Aug 11. 2015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39

@ Luang Prabang, Laos (Kwang Si)

확실히 에어컨이 없으면 덥고 습하긴 하다. 하지만 워낙 피곤해서인지 잠은 잘 잘 수 있었다. 도미토리도 나쁘지 않긴 하지만 이 정도면 굳이 이동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오늘도 그냥 하루 더 이곳에 머무는 것으로 잠정 결정한다.

화장실을 가니 옆의 다른 샤워실에서 샤워하는 소리가 난다. 드디어 나 말고 다른 손님이 생긴 걸까? 나와서 보니 사장님 딸이다. 그럼 그렇지. 아침 인사를 나누고 다시 방으로 돌아온다.

어제 한국인 일행들은 저녁에 카톡 연결이 되어서 오늘 1시에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 앞에서 보기로 했다. 그게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 말 그대로 투어리스 인포이니 찾기 어려울리는 없겠지. 오전 시간이 비니 그시간을 활용하여 내일 떠날 배 혹은 버스를 알아보고 어제 글도 올리면서 아침이나 먹어야겠다.

오후에 폭포로 떠나기 전에 어차피 숙소로 다시 돌아와야 할 듯해서 수영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외출한다. 그러고 보니 이따 출발하기 전에 빨래를 해서 미리 널어놓으면 저녁에 돌아와서 입을 수 있겠다.

이곳 게스트하우스의 와이파이가 나쁘지는 않은데 문제가 방에서는 신호 한 개가 겨우 잡혀서 어제 글을 올리지 못했다. 글을 못 올리면 항상 숙제를 하지 않은 듯한 찝찝함이 있다. 아침은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 먹으면서 글을 올려봐야겠다.

일단 강가로 가보지만 아직 7시가 조금 안된 시각이라 그런지 문 연 곳을 찾기가 힘들다. 강가에서 불어오는 새벽 바람이 마음에 들어서 천천히 거닐어본다. 강가 쪽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었을 거 같다. 다소 비쌌겠지만 확실한 뷰가 보장된다면 가치를 인정해줄 만하다.


강가 쪽에서는 조식을 해결할 만한 적당한 곳을 찾지 못해서 결국 메인길로 다시 나온다. 하지만 메인길도 아직 하루가 시작되지 않은 것은 매한가지다. 걷다 보니 어느새 메인 길의 끄트머리에 있는 National Museum까지 온다. 밥 먹고 더워지기 전에 여기나 한번 들어가볼까? 이 뮤지엄에 이 도시가 루앙프라방으로 불리게 된 이유를 제공한 불상인가 사원이 있다는 얘기를 론리에서 봤었다.


박물관 바로 옆에 입간판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16,000킵에 커피와 피자 혹은 빵이 주어진단다. 강가에서는 기본이 3만킵이던데 괜찮다. 카페 이름을 보니 'Pilgrim's Cafe', 어제 TripAdvisor에서 본거 같다. 들어가서 와이파이를 물어보니 된단다. 오케이, 아침은 여기로 결정!

결론적으로 와이파이는 실패하지만 아침은 성공한다. 숙소와 마찬가지로 신호가 1칸 잡히기에 인터넷은 되지만 사진 업로드까지 될 정도는 아니다. 티스토리는 예민한 아이라 조금만 접속이 불안정해도 업로드가 안된다. 신호 세기를 보니 공유기가 주방에 있는 듯 한데 그 안에 침입할 수는 없지 않나. 대신 아침으로 선택한 피자는 훌륭하다. 저렴하게 제공하다 보니 역시 고기는 하나도 없고 야채로만 만들었지만 일단 비주얼적인 면에서 훌륭하다. 물론 맛도 상당히 괜찮다. 비싼 재료를 안 써도 제대로 만드는 것이 요리의 묘미 아니겠는가.

그래도 인터넷은 가능하니 앞으로의 여행 계획 조사를 좀 해본다. 내일은 여기서 Nong Kiaw로 이동을 하고 그 이후에는 Muang Ngoi Neua, 그리고 거기서는 Muang Khua까지 강을 따라 올라간다. 모두 같은 강가에 있는 도시이니 배를 이용해서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Muang Khua에서는 드디어 국경도시인 Dien Bien Phu를 통하여 베트남으로 넘어간다. 베트남에서는 아직 하노이, 사파, 다낭만 염두에 두고 있고 나머지는 가 봐야 알 거 같다. 여행 다니다 보면 근처를 가면 정보는 자연스레 얻어지고 계획도 스스로 만들어진다.

라오스에서는 그러면 루앙프라방을 제외하고 앞으로 도시 3곳에 더 머물게 된다. 라오스에서 아직 일주일이 남았으니 어찌 보면 시간이 많지만 시포에서만 일주일을 머물렀던 것을 생각하면 또 그리 여유 있지도 않다. 상황 봐서 도시 하나 정도는 당일로 넘어가버릴까 싶기도 하다.

떠나기 전에 여행책자를 볼 때는 이름조차 외우기 힘들었던 도시들이 근처에 오면 이렇게 생명을 가지고 살아나는 것이 항상 신기하다. 그 어려운 도시의 이름들이 일부러 외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인식이 된다. Muang Ngoi Neua 같은 경우는 몇일 전까지만 해도 도저히 이름을 외우기가 버거웠는데 지금은 라오스에서 가장 가고 싶은 도시가 되어버렸다. 계획 없는 이런 자연스러운 이동이 좋다. 지금도 베트남에서의 첫번째 도시인 Dien Bien Phu는 이름조차 생소하지만 걱정 안 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근처에 가면 그 도시가 내 안에 의미를 잡기 시작할 거다.

아침을 먹고 있으니 문을 닫고 에어컨을 틀어주신다. 오 횡재다. 땀을 좀 식혀야겠다. 여기 커피도 마음에 든다. 음식들이 퀄리티가 좋다. 박물관이 8시에 문을 연다니 그때까지 여기 있어야겠다. 유명한 곳인지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는데 아까 그 조식 세트는 의외로 잘 모르는 듯하다. 이 세트가 밖에 입간판에만 쓰여있고 안에 메뉴에는 없으니 그럴만하다. 다른 메뉴들은 대략 커피를 제외하고도 2-3만킵으로 꽤나 비싸다. 역시 사람은 눈이 좋아야 한다. 참고로 난 시력이 2.0이다. 부모님, 감사합니다.

노여사와 카톡으로 아침 인사를 하는데 나보고 쌩뚱맞게 '베트남은 어때?'라고 묻는다. 이것이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도 모른단 말이냐. 아직 가보지도 않은 베트남이 어떤지 내가 어떻게 아냐. 이런 무심함이 노여사의 매력이긴 하다. 예전에 LOL 잠시 할 때 게임한다고 전화 안받으면 다른 여자친구들은 난리가 나는데 노여사는 그냥 자버린다. 친구들이랑 술 먹다가 늦게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나를 믿기 때문이겠지? 편하긴 한데 가끔은 섭섭하기도 하다. 그럴 때는 새벽에 어김없이 전화해서 깨워서 주정을 부린다. 그리고 다음날 오라지게 혼난다. 그래도 내가 7살 오빠인데... 하지만 우리는 서로 이름을 부르기 때문에 노여사한테 '오빠'라는 호칭을 들은 적이 한번도 없다. 그리고 오래 만나면 나이차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남자는 무조건 지게 되어 있다.

카페에 앉아있으니 바깥으로 스님들이 많이 다니는 게 보인다. 아 이곳이 아침에 스님들한테 공양하는 탁발로 유명한 곳이었지. 근데 현지인들 보다는 관광객의 도시인듯한 이곳에서 이런 건 그냥 퍼포먼스 아닐까. 그다지 보고 싶은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이 도시 자체가 나한테는 뭔가 자연스럽지 않고 인위적으로 느껴진다. 물론 실제로 그런건지는 아직 알 수 없고 지극히 개인적인 내 느낌이 그러하다.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으니 몸이 나근해진다. 아 더운데 나가기 싫다. 그냥 있을까. 하지만 영원히 있을 수도 없는 거고, 시원해진 몸을 일으킨다. 여기 괜찮아서 내일 떠나기 전에 한번 다시 오고 싶은데 좀 멀어서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와서 바로 옆에 박물관을 간다. 앞에 티켓 판매하는 곳이 있어서 물어보니 3만킵이다. 뭐 이리 비싸. 혹시나 해서 그냥 둘러보는 것도 돈을 내야 하냐고 물으니 그건 무료고 건물 안에를 들어갈 때만 티켓을 제시하면 된단다. 흠 그럼 일단 한번 둘러볼까나. 티켓을 살지 말지는 그 이후에 정해야겠다.

정면에서 보이는 건물 하나와 오른쪽에 있는 사원 비스무리한 하나가 이 뮤지엄의 전부인 거 같다. 정면에 보이는 건물은 정확히 뭔지 모르겠지만 오른쪽 사원이 그 유명한 Pha Bang이라 불리는 부처상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이 도시 이름이 이 부처상에서 유래되었단다. 론리를 보니 이 불상을 태국한테 뺏기기도 하고 다시 찾아오기도 하는 등 험난한 길을 걸어왔다고 한다. 아마 3만킵은 이 불상을 보기 위해 내는 걸거다. 그렇다면 난 패스. 불교 교인도 아니고 불상은 하도 봤더니 그다지 감흥이 업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깔끔히 잘 되어 있어서 공원을 거닐듯 아침 산책을 하니 나쁘지 않다. 왼편으로는 연못도 보이길래 다가가 본다. 근처에 가니 앞에서 뭘 팔고 있다. 현지 여성 두 명이 사는걸 보니 물고기 밥이다. 연못에 있는 물고기한테 주나 보다.

다가가서 연못 안을 내려다보니, 이것은 아름다운 붕어가 몇 마리 거니는 그런 연못이 아니다. 물고기들이 정말 개미 때처럼 모여서 입만 뻥긋뻥긋하고 있다. 물고기 밥을 처자들이 던지니 아주 난리가 났다. 이건 아름답다기 보다 징그럽다. 어찌 보면 좀 비정상적인 생태계인 듯 한데 먹이를 주다 보니 생긴 게 아닌가 싶다.

유일한 먹이가 사람이 주는거일려나. 내가 옆으로 걸어가니 내 움직임을 보고 물고기들이 따라온다. 야, 나는 거지라 너네 밥 사줄 돈이 없어. 그럼에도 나를 보며 뻥긋거리는 물고기들을 보니 배가 많이 고픈가 보다.

누가 루앙프라방을 머물기 좋은 동네라고 했던가. 시간 보내며 한적하게 있기 좋은 동네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막상 와보니 좀 다르다. 이곳은 지갑을 여는 이에게만 자기를 보여주는 곳이다. 모든 것이 비싸다. 나 같은 거지가 마음 편안히 있기 좋은 곳은 아니다.

이곳에 앉아있으니 나도 모르게 지난 결정들이 떠오른다. 사업을 6년 동안 하면서 좋은 시기도 많았지만 막판 1년은 굉장히 어려웠다. 50%를 넘게 차지하던 일본 고객들이 엔화 가치의 갑작스러운 저하로 반 이상 줄어들고, 막판에는 세월호 사건의 여파로 한국인 손님마저 줄어들면서 매출이 무섭게 하락하기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6년을 자식처럼 키워온 사업이라 정리하는 마음을 먹기 힘들었다. 그때 마음을 정리하고자 제주도로 보름 동안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돌아와서 정리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사업을 접으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책임감을 느낀 것이 직원들과 투자자들이다. 직원들은 나를 믿고 따라왔기에 그들의 앞길을 내가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 미안했고, 투자자는 나 하나만 보고 자신의 소중한 자산을 맡긴 분들이라 그들의 신뢰를 배신한다는 게 가장 힘들었다. 그래서 당연한 얘기이기도 하지만 정리 수순에서 직원들의 퇴직금을 최우선으로 잡았고, 투자자들한테 돌려줄 돈을 그 다음으로 잡았다. 동업한 우리의 지분율이 50%를 넘었지만 결국 우리 지분율은 다 포기하고 그 금액을 이들에게 전부 나누어주는 결정을 하였다.

가끔은 이게 잘한 건가 싶다. 지분율이 반 이상이었으니 만약 다 챙겼으면 다음 계획을 준비할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을 거다. 개인적인 손해도 몇억 단위를 넘어가는 상황에서 우리 지분율까지 다 포기하게 되니, 다음 도약을 할만한 여력이 없어져버렸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정산해보니 빚은 다행히 안 남았지만 전재산이 700만 원 정도가 되었다. 38살에 말 그대로 무일푼이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돈은 없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을 했다는 마음에 후회는 없다. 아마 더 할 수 있는 게 있었다면 그리 했었으리라. 수중에 돈은 없지만 양심은 깨끗하다.

뭐 그렇게 나는 소위 말하는 데로 망했다. 남은 재산 700만 원에서 이번 여행에 200만 원 이상을 쓰는 거니 전재산의 1/4 이상을 이번 여행에 투자하는 셈이다. 사업을 하기에는 자금이 부족하고 사실 현실을 생각한다면 그냥 바로 취직해서 돈이나 벌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노여사가 200만 원 정도는 지금 쓴다 해도 굶어 죽는 건 아니라며 나를 이번 여행에 떠나보냈다. 무슨 결정을 한다 할지라도, 그리고 설사 그 결정이 지금과 달라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한 달 이상을 떠나 있으면서 천천히 생각해보라며 주저하는 내 어깨를 밀어주었다. 6년을 만났기에 이제 우리의 미래도 생각해야 할 때에,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한 푼이라도 더 필요한 이 시점에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오히려 쓰라며 소심해져 있는 나에게 보다 큰 그림을 그려주었다. 어찌 이 여인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나.

그래서 나는 돈이 없고, 그래서 나는 루앙프라방이 싫은가보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굳게 믿지만 가끔은 그럼에도 그 돈이 필요하다는 현실을 느낄때면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해진다. 돈이란 사람이 지닐 수 있는 여러 가치 중 하나일 뿐인데 현대 세상에서는 그 가치가 너무 과대 포장되어 있다. 돈은 사실 최종 가치가 아니라 거쳐가는 가치일 뿐이다. 그 돈으로 막상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다면 아무 의미 없다. 물을 쓸 곳이 없음에도 댐을 지어서 일단 물부터 모으는 꼴이다. 그래도 공부는 그럭저럭 해서 학교는 잘 갔으니, 명문대를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환경상 무슨 일을 하든 굶어 죽지는 않을 거다. 다만 아직은 그 돈을 벌 이유를 정하지 못했다. 지난 6년간의 꿈이 깨버린 지금, 이제 다시 무슨 꿈을 꿔야 하는 걸까. 가치를 저장하는 수단이 돈이라면, 그 돈으로 최종적인 어떤 가치를 이루어야 할까.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어제 그 뚝뚝 아저씨를 다시 만난다. 여전히 인당 3만킵을 얘기하시길래 5명이니 15만킵에서 2만킵만 더 빼서 13만킵에 하자고 제의해본다. 잠시 고민하시더니 그러자고 하신다. 비수기라 손님 자체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다만 가능하면 다른 여행자들을 더 태우시겠다고 해서 그거야 아무런 문제가 안된다고 그러시라고 한다. 이왕이면 우리도 저렴하게 가고, 이 아저씨도 돈을 버시는 게 좋지.

숙소로 돌아와서 리셉션에 앉아서 잠시 게스트하우스 여사장님과 담소를 나눈다. 내가 폭포까지 뚝뚝을 인당 2만6천킵에 가기로 했다니까 황당한 눈빛으로 그 가격을 어떻게 네고했냐고 놀래서 나에게 묻는다. 나는 한 거 없는데. 그냥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네고를 해준다. 현지인처럼 보이고 거지처럼 보이는 게 네고할때는 확실히 유리하다.

오늘은 수영복을 입고 다닐 테니 샤워를 하면서 가능한 모든 옷을 빨아서 널어놓는다. 그리고 점심을 먹으러 나가기 전에 잠시 누워서 쉰다. 쉬는 와중에 일행들이 카톡으로 연락이 되어 오후에 폭포로 떠나기 전에 통성명도 할 겸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제의한다. 이 친구들은 이제서야 일어났단다. 어린 친구들이라 아침 잠이 많구먼. 이따 12시 반에 만나서 식사를 같이 하기로 일단 약속을 잡는다.

11시 반쯤 돼서 방을 다시 나선다.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준비할게 있다. 일단 내일 Nong Khiew로 갈 버스 편을 구해야 하고, 혹시 모르니 환전도 여기서 해두는 게 좋을 거 같다. 거기에 심카드 충전도 해야 한다. 조금 검색해보니 지난번 심카드 충전을 하고 등록을 제대로 안 해서 효율적으로 이용 못한 거 같다.

일단 나와서 앞에 여행사에 가서 물어보니 이미 알아본 대로 Nong Khiew까지 배 편은 댐이 건설되면서 끊겼기에 이동이 버스로만 가능하다. 버스비는 얼마냐고 물어보니 7만킵이다. 어제 물어본 거와 같고 게스트하우스 여사장님한테 미리 물어본 가격과도 동일한 것이 바가지는 아니다. 버스는 아침 9시에 출발하고 8시에 뚝뚝으로 픽업해서 터미널까지 데려다준단다. 이곳은 내일 떠나는 게 맞겠지? 잠시 고민하지만 결국 지갑을 열어 돈을 지불하고 표를 산다. 그래, 이곳은 뜨자.

다음은 환전이다. 어제 한바퀴 돌아보니 환율을 가장 잘 쳐주는 곳이 우리 숙소 앞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곳이 센터에서 거리가 좀 떨어져서 그런가 보다. 그곳으로 가서 8100 환율로 100달러를 바꾼다. 사실 그래 봐야 1만킵 정도 이익 보는 거라 그리 큰 차이는 아니다.

다음은 심 충전이다. 의외로 충전할 곳을 찾는 게 쉽지 않다. 강가 쪽으로 가니 희한하게 레스토랑 아주머니가 판매를 하고 있다. 10,000킵 충전카드를 달라고 얘기하니 앞치마를 들추더니 안에서 쿠폰을 꺼내 주신다. 쿠폰을 긁고 전화를 걸어서 충전을 한다. 충전 방법을 몰라서 이전에는 현지인들에게 부탁했는데 막상 해보니 쉽다. *122*(쿠폰번호)# 하고 전송하면 끝이다. 헌데 8000킵만 충전됐다. 전에 좀 미리 당겨 썼나? 어쩔 수 없이 하나 더 사서 충전한다.

여기서 끝내면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효율적이지 않다. 일반적인 사용등록이 되어버려서 전화, 데이터 모두 쓰는 기준으로 등록되는데 나는 전화가 필요 없다. 인터넷 전용의 만킵 패키지로 등록하면 전화는 못 쓰지만 대신 데이터는 훨씬 많은 250메가를 준다. 이 패키지를 등록하는 방법을 현지인들도 몰라서 아까 낮에 잠시 구글링을 했다. 이것도 알고나니 쉽다. *10#, 그리고 전송하면 끝이다. 데이터 250메가가 채워졌다.

시간이 좀 남았지만 약속 장소인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 빌딩 앞으로 조금 일찍 온다. 와서 보니 오늘 우리를 태울 뚝뚝 기사님은 여전히 다른 사람을 더 채우고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영업 중이시다. 기사님한테 몇 명 도 모았냐고 여쭤보니 우리 이외에는 한명도 못 구했단다. 이왕 가는 거 좀 더 구하시면 좋을 텐데. 이따 봐서 좀 도와드려야겠다.


기사님 옆에 앉아서 키보드를 핀다. 이제 사람들하고 같이 다니면 글을 못 쓸 수도 있으니 미리 좀 써놓는 게 좋다. 그러고 보니 여행 다니면서 어떤 액티비티를 한국인하고 같이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요즘 뭔가 중기 여행자의 허세가 슬쩍 나오는 거 같아서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장기여행도 아니고 중기여행자 주제에 조금만 방심하면 자만과 허영심이 뛰쳐나온다. 나라는 인간도 참 별 수 없다.

12시 반인데 일행들이 안 온다. 혹시 투어리스트 센터 안에서 만나기로 한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봐도 없다. 일단 자리로 돌아온다. 뭐 조금 기다리면 오겠지.

이때 멀리서 네 명 일행이 보인다. 점심은 뭐 먹으러 갈까나. 한국인들하고 식사를 같이 하는 것도 이번이 그러고 보니 처음이다. 난 참 혼자 잘 다녔다. 오늘은 한번 이들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보자.

모두 모여서 뚝뚝 아저씨과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인 출발 이전에 점심을 먹으러 떠난다. 어디로 갈까? 내가 늘상 먹는 그런 허접한 곳으로 데려가도 될까 싶다가 또 이들도 이런 여행을 왔으면 그런 경험도 나쁘지 않을 것도 같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나도 아직 이 도시를 모른다는 게 문제다. 여기서 맛있는 것을 먹어본 경험이 없다.

일단 어제 점심을 먹은 강가의 그 레스토랑은 무조건 안된다. 대충 보니 강가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퀄리티가  형편없다. 그래도 일단 강가 쪽으로 향하는데 골목 우측 편에 괜찮아 보이는 현지 좌판 식당이 보인다. 여기 괜찮은데? 일단 킵해두고 더 가본다.

좀 다녀보지만 적당한 곳이 안 보인다. 아까 킵해놓은 그 식당으로 다시 돌아온다. 간판 하나 없이 허접스럽게 펼쳐져 있는 것이 왠지 맛이 있어 보인다. 관광객 상대만 아니면 대부분 맛이 나쁘진 않다. 먹고 빠지는 전형적인 관광객 대상 식당만 잘 피하면 된다.

의자가 없어서 달라고 얘기를 하고 5명이 한테이블에 같이 앉는다. 메뉴를 달라고 하니 당연하게도 영어를 아무도 못한다. 더 마음에 든다. 메뉴도 세개밖에 없다. 이런거 무척 마음에 든다. 선택과 집중이 확실한 곳이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달라고 한다.

빨간 국물의 메뉴가 먼저 하나 나온다. 장유유서, 어머님한테 먼저 드린다. 그 빨간 국물의 국수는 하나 더 나오더니 더이상 없단다. 대신 나머지 음식들은 하얀 국물로 나온다. 빨간 국물을 먹어보니 약간 육개장스러운 맛이고 하얀 국물은 어제 내가 강가 식당에서 점심으로 먹었던 그 요리다.

하지만 퀄리티는 어제 점심과는 비교가 안된다. 깊은 국물 맛이 속을 시원하게 덮혀준다. 어제 먹은 그 허접한 국수가 원래 이런 맛이었다니. 아무 생각 없이 들어온 식당에서 비엔티안을 떠난 이후 가장 맛있는 국수를 먹는다. 이 일행과의 시작이 좋다.

먹으면서 통성명을 한다. 어머니를 모시고 다니는 총각은 28살, 여자분 한분은 그 총각과 동갑, 다른 한분은 더 어려서 나랑 띠동갑이다. 오빠라고 부르길래 부담스럽다고 차라리 아저씨라고 하라고 한다. 하지만 꿋꿋이 오빠라고 한다. 내버려둔다. 오빠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다 먹고 이제 뚝뚝을 타러 걸어간다. 이 뚝뚝 기사님 나한테는 매우 친절하셔서 착하게 봤는데 아까 총각 얘기를 들어보니 자기한테는 인당 10만킵을 제시했다고 한다. 누누이 얘기하지만 바가지와 사기는 다르다. 나한테는 3만킵을 제시하면서 이들은 관광객 같아 보인다고 10만킵을 제시했다는 것은 바가지의 수준을 넘어서는 사기다. 아저씨 실망스럽게 왜 그러셨어요.

돌아오니 아저씨는 그래도 4명의 다른 여행자들은 더 포섭해놨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기사님을 처음처럼 좋은 감정으로 바라보지는 못하겠다. 이런 사기에 언젠가 어떤 관광객은 당하게 되겠지. 누군가는 당하니 계속 시도를 하는 거다.

뚝뚝에 모두 오르고 드디어 콴시 폭포로 출발한다. 어제 길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팸이 블루라군보다 좋다며 적극 추천한 곳, 루이프라방에서 유일하게 추억이 될 잠재력이 있는 그 유명한 콴시 폭포로 향한다.

같이 뚝뚝에 오른 서양 여행자들하고 잠시 얘기를 해보니 스페인 애들 3명과 프랑스 아이 한 명이다. 이들은 라오스 이후의 다음 목적지가 미얀마란다. 아 반갑다. 추억의 미얀마, 내 마음 속 고향 미얀마. 행선지를 들어보니 양곤으로 들어가서 바간, 컬러, 인레호수를 갈 예정이란다. 국민코스다. 모험을 하지 않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북부 쪽으로 가면 더 좋을 수도 있을 텐데. 조언을 조금 해주지만 모든 여행자의의 여행은 자기만의 것이다. 사람이 모두 다르듯이 성향도 모두 다르기에 여행지를 추천하는 것은 어찌 보면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나에게 좋은 추억이었던 곳이기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러한 좋은 추억이 되었으면 하는 욕심이다.

가까운 줄 알았던 콴시폭포는 뚝뚝을 타고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이리 먼데 너무 저렴하게 가는 건가? 비수기라 할인을 해주긴 했지만 마지막 할인을 더 한 게 좀 걸린다. 그래도 아저씨도 먹고살아야 하는데... 다른 여행자를 4명 더 채웠으니 그래도 괜찮을 거라고 위안을 삼아 본다.

가는 동안 시간이 좀 걸리니 한국인 일행들과도 얘기를 나눈다. 일단 모두 각자 여자친구, 남자친구가 따로 있다. 좋군. 여자분 두명은 3주 이상 여행도 많이 해봤단다. 그러면서 왜 자꾸 내 여행이 부럽데. 자유로운 여행이 아니었다고 아쉬워하지만 모든 여행은 그만의 추억과 즐거움이 있다. 분명 좋은 경험을 하고 왔을 거다.

폭포에 도착한 후 몇시에 다시 돌아와서 이곳을 떠날지를 서양 여행자들과 합의한다. 4시에 보잔다. 지금이 2시 반인데 장난하나. 우리는 수영하고 다이빙할 준비를 다 하고 왔다. 무조건 5시에 보자고 주장하니 그러자고 한다. 이 먼곳까지 왔는데 너희도 좀 즐기다 가렴.

들어가는 입장료는 인당 2만킵이다. 일행이 생겼으니 매번 돈을 걷기 애매해서 한 명이 내고 나중에 정산하기로 한다. 원래 남자 총각한테 부탁을 했으나 현금이 부족하단다. 오늘 환전까지 마친 내가 오늘의 총무가 되기로 한다.

한국 사람들과 같이 다니니 나름 마음이 편하고 좋다. 아무래도 언어가 더 편하고 무엇보다 문화의 동질감이 주는 심적인 안정감이 있다. 그리고 처음부터 마음에 드는 친구들이었어서 내가 다른 여행자들에게 항상 가지는 특유의 거부감이 안생긴다. 젊은 친구들이라 에너지도 넘쳐흘러서 나까지 좋은 영향을 받는 것 같다.

5명이서 대화를 나누며 걷다보니 폭포가 나타난다. 오, 꽤나 장관이다. 저 위에서부터 몇 단계를 거치며 폭포가 아래로 이어지고 있다. 팸이 꼭 가보라고 한 이유를 알겠다. 산과 물이 시간이라는 도구로 만든 이 멋진 풍경을 사진을 담아보려 한다.

헌데 수영하는 곳이 안 보인다. 팸이 페이스북에 분명히 다이빙하는 사진을 올려놨는데 왜 없지? 밑의 웅덩이는 물은 깨끗하지만 수영하지 말라고 표지판에 경고가 쓰여 있고 수영하고 있는 자도 아무도 업다. 좀 올라가야 있는 걸까? 위를 보니 위쪽 웅덩이에서 아래를 보며 손을 흔드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 모습에 희망을 품어본다.

밑에서 풍경을 눈에 충분히 담고 이제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올라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밟는 돌은 맨들맨들하니 미끄럽고 밟을 수 있는 공간 자체도 적다. 게다가 생각보다 많이 올라간다. 처자 둘은 결국 신발을 벗고 맨발로 오르기 시작한다. 미끄러워서 나도 그럴까 하다가 아직은 버틸만해서 신발을 신고 오른다.

어머님 걱정을 가장 많이 했는데 등산을 평소에 꽤나 하셨는지 내 걱정과는 반대로 가장 여유가 넘치신다. 이곳 저곳 척척 밟으시면서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이다. 등산의 나라 대한민국 출신이라 그러신가? 오히려 내가 가장 뒤쳐진다. 최선을 다해 올라간다. 길이 험해도 올라가는 건 그럭저럭 가긴 하는데 내려오는 길은 더 위험할까 걱정이다.

중간에 쉬고 있는 현지인들이 보인다. 여기를 쉬지 않고 한번에 올라가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린 등산의 피가 녹아있는, 민족의 반은 전문 등산장비를 갖춘 한국인들 아닌가. 단 한번도 쉬지 않고 정상을 밟는다. 대한민국 만세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뷰는 멋있다. 하지만 내 다이빙은 도대체 어디 간 걸까. 여기는 뷰를 보러 온 게 아니다. 내가 어제 단체 카톡으로 수영복 챙겨오라는 얘기까지 굳이 했는데 수영을 할만한 곳이 절대 안보인다. 팸, 어찌 된 거야!

뷰는 마음껏 감상하지만 입수를 못하는 욕구 불만은 쌓여간다. 등산하면서 땀도 많이 흘렸더니 시원하고 깨끗한 파란 물에 풍덩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정상에서 자세히 보니 안쪽으로 길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풍덩의 명소를 찾아 그쪽으로도 포기하지 않고 들어가본다. 안쪽에서 나오는 여행자들에게 슬쩍 물어보니 이 안에도 그저 풍경만 좋지 수영할만한 곳은 없단다. 팸, 너 진짜 나에게 쓰레기를 준 거니?

마지막 기대를 하며 안으로 들어가 보지만 여지없이 기대는 무너진다. 헌데 아까 밑에서 본 위에서 손 흔들던 사람들은 어디를 어떻게 들어간거였까? 확실한건 여기는 절대 아니다. 뭔가 우리가 모르는 숨은 공간이 있는 걸까. 팸의 사진만 봐도 뭔가가 반드시 있을 것만 같다. 미스터리를 품은 콴시 폭포다.

일단 위에서 할 일은 없기에 밑으로 다 같이 내려간다. 미련이 남아서 이곳 저곳 뒤지며 내려가지만 다른 길은 안 보인다. 다들 젊어서 그런지 엄청나게 잘 내려간다. 나는 등산할때 언제나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힘들었다. 내려갈때는 신발까지 벗고 맨발로 따라가 보지만 쉽지 않다. 어머니는 쑥쑥 내려가시더니 어느새 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역시 대단하다.

다소 뒤쳐져서 내려가는데 밑에서 웅성웅성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환호성이 들리는 게 뭔가 그 비밀의 공간을 찾은 거 아닌가 싶다. 흥분되어서 나도 발걸음을 빨리 하여 내려가 본다.

한 곳에서 우리 일행들이 서양인들 몇 명 하고 얘기를 하고 있다. 한쪽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이들의 말에 의하면 그 안쪽의 연못이 정말 정말 좋지만 들어가는 길이 정말 정말 험하니 갈려면 각오를 하란다. 어쩌지,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이미 일행들은 출발했다. 역시 젊음은 좋다. 나도 뒤따라 간다.

아까 그 사람들이 길이 험하다고 한건 순화시킨 표현이었다. 원래 길이 나있는 것을 무슨 이유에서인가 막은듯하고 이를 돌아가자니 암벽등반을 하는 수준이다. 순간 어머니가 걱정돼서 보니 역시나 이미 저 앞에 가고 계신다. 내 주제에 누구 걱정을 하느냐. 내 한몸이나 잘 간수하자.


계단 없는 비탈길을 아슬아슬하게 내려가더니 이번에는 가파른 언덕을 나무 줄기를 잡고 겨우 올라간다. 평상시 안전 제일이 여행 수칙인 나라면 이런 길을 마다할 텐데 일행이 있으니 서로 잡아주고 밀어줄 수 있어서 또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 한바탕 어드벤쳐를 하고 나니 눈 앞에 신비로운 천국이 나타난다.

그림 같은 곳이다. 동화에서나 있을법한 곳이 실제 눈앞에 펼쳐져 있다. 선녀들이 내려와서 목욕을 한다면 반드시 이곳으로 올 거다. 윗 폭포와 아래 폭포 사이에 넓게 웅덩이가 아름답게 펼쳐져서 천연의 수영장을 형성하고 있다. 오는데 정말 고생했지만 그 고생이 두려워 이곳을 포기했다면 정말 억울할 뻔했다.

일단 얼마나 깊은지 확인하고자 수영을 가장 잘하는 내가 먼저 들어가본다. 깊은 곳은 키를 넘어서지만 대략 평균적으로 목 근처까지만 온다. 다만 입수하는 그 위치는 깊어서 발이 안닿고 안쪽으로 들어가야만 수심이 낮아진다. 수영을 할 줄 아는 처자 하나는 알아서 잘 들어가고, 총각은 수영은 못하지만 키가 있고 겁도 없어서 알아서 개헤엄으로 안전지역으로 잘 건너간다. 남은 건 막내 처자와 어머니, 둘 다 수영을 못한다. 내가 서서 팔을 내밀고 건너편으로 인도해준다. 서로 임자 있는 분이기에 스킨십은 최소로, 매너모드를 장착한다.

웅덩이가 아래 위로 나누어져 있다. 밑에 웅덩이에서 좀 노닐다가 위에 웅덩이로 올라가본다. 위쪽은 더 좋다. 바로 앞에 절경의 폭포가 우리만을 위한 쇼를 보이고 있다. 우리만을 위한 청정 수영장도 그 앞에 존재한다. 그 어떤 비싼 리조트를 가도 이런 곳은 찾지 못하리라. 단언하건대, 내 이번 여행에서 만난 최고의 장소이다.

폭포 뒤 공간까지 수영해서 가보려 하지만 물이 날카롭게 튀니 겁이 나서 돌아온다. 다시 시도해서 옆의 벽만 겨우 찍고 온다. 나는 이리 조심스럽게 다가서는데 수영을 못한다는 총각은 개헤엄을 하면서 다이빙도 하고 폭포 밑으로도 갔다 온다. 겁이 없다. 여기는 그리 깊지 않고 여차하면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이 많으니 괜찮지만 그래도 좀 걱정된다. 여행은 첫째도, 둘째도, 그리고 셋째도 안전이다. 헌데 또 겁이 없어서 대범하게 행동하니 그다지 위험해 보이지는 않는다. 물에서 사고가 나는 거는 보통 수위 때문이거나 수영을 못해서라기 보다는 물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평정심을 잃고 발악을 하다 발생한다. 이 친구처럼 물을 무서워하지 않으면 웬만하여서는 사고가 안 난다. 그래도 수영부터 배우자 이놈아!

한 곳에 둥지를 트고 누워있는다. 비가 살짝 내리는 게 운치를 더한다. 투명한 파란 물에 누워서 폭포를 바라보며, 등에 전달되는 시원한 물을 느끼고 있으니 정말 더 이상 바랄게 없다. 이 순간, 이곳에 존재해본다.

한참을 누워있다가 4시 15분이 돼서 일어난다. 길이 험하니 5시까지 내려가려면 슬슬 출발해야 한다. 다들 아쉬워하며 일어선다. 찾기 어려웠던 곳이어서 그런지 이 곳에 애정이 담긴다. 사람들은 쉬운 길을 가면 좋을 거 같다고 항상 생각하지만 막상 기억에 남고 자기 안에 남는 것은 한발 한발 어렵게 간 곳이다. 그 여정 자체에 내 땀이 있기 때문에 목적지가 더 큰 의미가 있다.

내려가기 전 반대편 끝으로 가보니 폭포의 1층(?)리 한눈에 들어온다. 물살이 그리 세지 않고 밑에 별도의 공간이 또 있어서 생각보다 위험하지는 않다. 밑에 사람들이 보이기에 손을 흔들어준다. 아, 아까 우리가 밑에서 본 손 흔드는 사람들이 여기에 있었던 사람들인가 보다. 참 잘들도 찾아온다. 우리는 이곳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운좋게 마주치지 못했다면 절대 이곳에 들어오지 못했을 거다.

마지막으로 타이머를 활용하여 단체 기념사진도 찍는다. 이런 단체사진도 역시 내 이번 여행에서 처음이다. 이들과 다녀서 운도 좋았고 즐거웠다. 이 곳은 나 혼자만의 공간이 아닌 우리의 공간이다.

시간이 지체돼서 이제 서둘러 아름다운 이 공간을 떠난다. 왔던 역순이라고 해서 길이 덜 험한 것은 아니다. 통나무를 넘고, 절벽을 기어 올라가고 또 내려간다. 어머니가 먼저 길을 트시고는 나무 막대기를 뻗어서 우리를 도와주신다. 어머니가 이러시면 부끄럽잖아요. 하지만 나는 그 나무막대를 의지하며 겨우 오른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내 체력은 저질이다.

하도 험한 공간을 올라오고 내려가서 그런지 나머지 길은 상대적으로 쉽다. 내려오는 길에 총각이 맥주를 두병 산다. 나도 뭔가 들뜬 마음이라 한잔 하고 싶다. 맥주를 들고 아래로 내려오니 아까 비밀의 길에서 마주쳤던, 우리에게 그 장소를 알려줬던 사람들이 보인다. 이들 때문에 우리도 이곳에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고맙다고 큰소리로 인사를 한다.

뚝뚝에서 같이 왔던 4인을 찾아보니 바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 왠지 좀 지루해 보인다. 하긴 우리도 그곳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이 시간까지 심심했을 거다. 불러서 이제 그만 가자고 얘기한다.

다시 뚝뚝에 올라타고 이제 루앙프라방으로 돌아간다. 나를 제외한 일행들은 오늘이 라오스에서의 마지막 공식적인 일정이다. 그런만큼 오늘의 발견에 다들 더욱 더 신이 나있다. 나도 한 달 여행에서 가장 특별한 곳 중 하나로 기억될 테니 일주일 여행온 이들에게는 정말 소중한 추억일거다. 같은 추억을 공유해서 그런지 이들과 나 사이도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돌아갈 때도 생각보다 꽤 걸린다. 돌아오는 길에 살짝 저녁을 같이 먹을까 제의를 해본다. 어찌 보면 당연한 제의일 수도 있으나 혹시 몰라서 물어보니 좋다고 한다. 오늘은 오랜만에 좀 달릴 듯하다.

젊은 친구들이라 그런지 내리자마자 바로 가잔다. 야, 그래도 씻어야지. 아무리 깨끗한 물이라도 강물인데. 미안, 난 그렇게 쿨하지 못해. 도착하니 시간이 6시라 씻고 정비하고 한시간 후인 7시쯤 보자고 하고 숙소로 돌아온다.

돌아와서 익숙하게 티셔츠와 수영복부터 빨아서 널어놓는다. 목욕을 하고 나니 시간이 좀 남어서 아까의 경험을 글로 남긴다. 감정이 최대한 남아있을 때 써야 한다.

7시가 되어서 이들과 강가에서 만난다. 지나다니면서 봤던 고기뷔페에 가자고 내가 먼저 제의를 한다. 왠지 빠이에서 갔던 그 뷔페와 비슷해 보여서 볼 때마다 가고 싶었다. 빠이에서는 혼자였지만 이곳에서는 5명이다.

식당에 들어가보니 역시 그때 그곳과 시스템이 똑같다. 거기서는 태국식 BBQ라더니 여기는 또 라오스식 BBQ라고 하고, 아마 베트남에도 있을 거 같다. 일행들한테 물어보니 이들도 방비엥에서 이런 바베큐를 이미 두 번이나 먹었단다. 아 그럼 얘기를 하지. 다른 곳 갈걸 그랬나 싶지만 두 번 다 맛있어서 괜찮다고 어머니가 얘기해주신다.

이제부터는 마시며 노는 시간! 오늘 하루 만에 이들이 내 마음속 한공간에 작게나마 자리를 차지하였다. 마음이 동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술자리는 언제나 즐겁다. 오랜만에 원없이 먹는 고기도 당연히 즐겁다.

배부르게 먹은 후 이번에는 2차로 맥주를 마시러 바로 이동한다. 어머니는 이쯤에서 피곤하시다며 숙소로 돌아가신다. 혹시 못 볼지도 모르니 인사를 미리 해둔다. 서울까지 안전하게 잘 가세요.

루앙프라방의 모든 곳은 11시면 문을 닫는다. 이 친구들이 어제 이미 조사해놨다며 한 바로 나를 안내한다. 이 바가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11시 반까지 운영을 한다. 하지만 그 시간도 부족하다. 즐겁게 마시며 얘기를 하다보니 벌써 11시반이다. 내일 일정을 생각하면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하는데 뭔가 부족하다. 아직 헤어질 때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이번에는 그들의 숙소로 옮긴다. 맥주도 파는 곳이 없어서 총각이 어디선가 가지고 왔다는 Jack Daniel Honey를 마신다. 호텔방 바닥에 다같이 편하게 앉아 술 한두 잔에 서로의 가치관에 대한 얘기부터 연애관, 그리고 여행관까지 속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마음이 동하는 얘기는 시간을 빨리 흐르게 한다. 어느새 새벽 3시가 되어버렸다. 내일 7시에는 일어나야 하니 지금 들어가서 자야 그나마 4시간이라도 잘 수 있다. 이제 충분히 얘기를 한 걸까? 아직도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떠날 수는 있을 것 같다. 이들과 이렇게 밤 늦게까지 얘기를 하다 보니 내가 그동안 얼마나 사람의 정에 굶주려있었는지를 알게 된다.

혼자 가려 하는데 바래다준다고 굳이 따라와서 같이 강가를 따라 걸으며 마지막 얘기를 나눈다. 내 숙소에 도착하고 이제 진짜 우리가 함께 한 여행은 끝이 난다. 반나절이었을 뿐이지만 즐거웠고 행복했던 경험이었다. 서울에서 언젠가 또 볼 수 있기를.

술에 잔뜩 취해 방에 들어와서 씻지도 않고 자리에 눕는다. 새벽 4시다. 평소의 나라면 다음날 이동하는 날에 이런 행동을 절대 하지 않았겠지만, 오늘은 후회가 없다. 분명 내일 하루 몸이 고생하겠지만 그 정도의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이러한 좋은 사람들과의 추억이 아니라면, 여행을 다니는 의미가 무엇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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