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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Aug 16. 2015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44

Muang Ngoi Neua to Muang Khua, Laos

역시 최고의 수면제는 피곤이다. 어제 무리를 하며 걸었더니 그냥 곯아떨어져버렸다. 눈을 뜨니 아침 7시다. 오늘은 므앙응오이 누아를 떠나는 날이다. 그래, 떠나기로 했었지.

여행지에 정이 들었든 안 들었든, 속 시원한 마음으로 떠난 적은 없다. 안 좋았던 여행지는 있을지언정, 싫었던 곳은 없었다. 이곳은 심지어 안 좋다고 하기도 애매하다. 그냥 내 마음이 이곳에 대한 준비를 못했을 뿐이다.

아침을 먹으러 가자. 그나저나 오늘 혹시 Muang Khua로 가는 배가 있으려나? 밥을 먹으러 가기 전에 티켓 사무소에 가서 리스트 확인부터 해본다. 그쪽이 길의 거의 끝이라서 가면서 조식 뷔페를 보니 오늘도 안 열었다. 결국 저건 못 먹고 가게 되겠다.

리스트에는 여전히 내 이름만 외로이 적혀 있다. 이곳에 여행자 자체를 다 합쳐도 10명이 될까 말까일 테니 사실 큰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럼 결국 농키아우, 우돔싸이 , 무앙쿠아를 거쳐서 넘어가는 기나긴 코스를 가야 하는 것인가. 그래도 비자 만료 기간이 3일이 남았으니 길을 돌아간다 하더라도 시간은 충분해서 다행이다.

아침은 어디서 먹을까. 이쪽으로 오면서 둘러보니 현지인들이 펼친 길거리 간이 식당이 두개 보였다. 성수기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비수기라 그러한 건지 이곳은 현지인과 여행자의 구분이 너무나도 명확하다. 4일을 있는 동안 여행자가 현지인 식당이나 길거리에서 식사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오기가 생긴다.

수다를 신나게 떨던 아주머니들이 내가 앉으니 갑자기 당황하면서 말이 끊긴다. 그래도 성수기에는 여행자들이 꽤나 이렇게 먹을 듯 한데, 뭘 놀라신데. 앉아서 얼마냐고 물어보니 5,000킵이다. 역시 저렴하다. 한 그릇 달라고 한다.


야채 위주의 국수다. 그냥 물로 헹구고 행주로 스윽스윽 닦은 그릇에 담아주신다. 원래 위생적인 거는 그다지 크게 신경 쓰지 않기에 상관없다. 국수에 배치되어 있는 여러 양념을 넣어서 최적의 맛을 만든다.

맛이 나쁘지는 않은데, 사찰음식의 느낌이다. 완전히 야채만 있고, 그 야채들이 좀 질기다. 그래도 먹을 만은 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익숙하게 국물까지 다 들이킨다.

마지막 날에 보는 이곳의 거리는 이전과 느낌이 사뭇 다르다.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다. 안보이던 작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팽이를 돌리며 놀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 고여있는 물에서 목을 적시는 강아지들의 몸놀림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은 떠날 때야 혹은 떠나서야 소중함을 아는 법이다.

숙소로 돌아와서 잠시 쉬다 8시 반이 되어서 짐을 싸기 시작한다. 항상 가지고 다니던 노란색 우비는 버려버린다. 이곳은 우기라도 우비를 쓸일은 없다. 우산은 비를 피하는 게 아니라 해를 피하는 용도이다. 어차피 비가 오면 심하게 오기에 우산을 쓰는게 아니라 지붕 밑으로 잠시 피해야 한다. 짐이 희한하게 갈수록 늘어나는게 아니라 작아지는 거 같다. 다니면서 잃어버린 옷들이 있어서 그러려나.

남은 돈을 계산해보니 90만킵이 넘게 남았다. 100달러가 넘는 돈이다. 결국 마지막에 형님들한테 환전한 100달러는 건드리지도 않은 셈이다. 여기서는 돈 들여서 액티비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워낙 좋은 가격에 환전을 해주셔서 나한테는 나쁘지 않다. 남은 킵은 베트남 국경에서 모두 환전해야겠다.

8시 반이 좀 지나서 나갈 준비를 한다. 오늘은 험난한 하루가 될 거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하고, 하롯밤을 잔 다음에는 또 긴 시간동안 버스를 타야 한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배낭을 어깨에 맨다.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게 나쁘지 않다.

Latkeo 게스트하우스, 꼬리뻬의 그 돈지랄했던 곳을 제외하면 여행 중 만났던 숙소 중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었다. 물론 얘도 단점은 있다. 컨셉트가 딱 하나 밖에, 그것도 침대와 떨어진 곳에 있어서 충전이 어려웠고, 해먹의 높이가 좀 낮아서 그네 타듯이 누워있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다 제외하고도 아름다운 풍경과 상대적으로 적은 벌레들, 그리고 아늑한 침대까지 여행지의 숙소로서는 거의 완벽한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뷰를 감상해본다. 내 마음만 준비가 되어 있었다면 훨씬 더 이곳을 즐길 수 있었을 건데, 아쉽다. 베트남에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를 만날 수 있을까.

할머니한테 인사를 하고, 라오스의 강아지 답지 않게 통통한 두 귀요미들과도 이별을 한다. 방이 5개밖에 없는 곳인데 내가 오늘 떠남으로써 모두 비어 있게 되었다. 확실히 비수기는 비수기다. 그러니 나도 저렴한 가격에 있을 수 있었겠지.

메인 거리로 나간다. 천천히 길 끝에 있는 보트 티켓 판매소로 간다. 안 그럴 줄 알았는데 뭔가가 마음속에서 울린다. 왜지? 여기는 그리 정이 안 들지 않았나? 친해진 사람도 없고, 친해진 식당도 없으며, 심지어 친해진 동물도 없는 곳이었다. 헌데 왜 울컥하는 걸까.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여행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

티켓 사무실로 가니 몇 명이 앉아서 배를 기다리고 있다. 아저씨한테 혹시 농키아우에서 우돔싸이로 가는 버스가 몇 시에 있는지 아냐고 여쭤보니 11시에 있단다. 배를 타고 농키아우로 도착하면 그래도 바로 우돔싸이로 넘어갈 수는 있을 듯 싶다.

그리고, 없겠지만 혹시나 해서 Muang Khua로 가는 배는 없냐고 그냥 한번 슬쩍 물어본다. 아저씨 갑자기 '아 맞다!'라고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여긴다. 오늘 떠나는 배가 있단다! 아 그런 건 좀 먼저 얘기하시지. 심봤다!

근데 나 혼자 가게 되면 아마 20만킵을 지불해야 할거라고 한다. 원래 혼자 가면 100만킵이었으니 그래도 저렴한 거긴 하지만 비싸긴 하다. 어쩌지. 우돔싸이로 가서 무앙쿠아로 가면 가격은 이보다 저렴하겠지만 시간을 많이 버리게 된다. 게다가 이번 이동은 꼭 배로 가고 싶기는 했다.

15만킵이면 가겠다고 한다. 아저씨 좀 고민해보더니 그러자고 한다. 원래 일반적인 가격이 10만킵이니 이 정도면 훌륭하다. 졸지에 돌아가려던 계획이 쉽게 풀려버렸다. 거기다 얘기를 들으니 시간만 맞으면 오늘 바로 베트남으로 넘어가는 것도 가능할 수도 있단다. 이제 가는구나, 베트남!

시간이 좀 남아서 배를 기다리는 다른 여행자들과 얘기를 나눈다. 베트남에서 이쪽으로 넘어온 사람들도 있다. Muang Khua에서 여기로 온 사람들은 전부 20만킵을 주고 왔단다. 비수기니 메인 루트에서 떨어진 이런 배는 정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나도 운이 안좋았으면 못 탔을거다. 여행자 중 한 명이 미얀마에 다녀왔다며 그곳을 극찬한다. 미얀마 찬양에 내가 빠질 수는 없지. 나도 같이 합류해서 극찬한다. 그 친구가 하는 칭찬과 내가 하는 칭찬이 거의 비슷하다. 라오스 사람들도 많이 친절하긴 하지만 미얀마는 차원이 다르다. 이건 가봐야지만 알 수 있다. 듣고 있던 다른 한 여행자는 우리가 극찬하는 것을 듣더니 솔깃해하는 것이 조만간 가지 싶다.

9시 반이 돼서 배를 타러 간다. 농키아우에 가는 사람들도 일제히 일어난다. 농키아우행 배는 만석이다. 한국인들도 몇 명 보이는 게 어제 이곳으로 온 사람들도 있었나 보다. 다들 어디 있는지 안보이더니 배를 탈 때만 나타난다.

내 배는 메인배가 아닌 옆에 작은 배다. 두 분의 현지인들이 먼저 올라타신다. 이 배는 나를 위한게 아닌 화물을 수송하는 데 내가 꼽사리를 끼는 거 같다. 올라타니 사람이 앉을 자리도 적절하지 않다. 인간 수송이 목적인 배가 아니다.

헌데 수송하는 화물도 안 보인다. 배 뒤편에는 나 혼자 뿐이다. 뭐지? 자세히 보니 뭔가 자그마한 상자를 들고 오신다. 무슨 모터 같은데, 내 주먹만 하다. 저걸 옮기기 위해서 두 사람이 이 배를 타고 4시간을 간다는 건가? 일종의 택배인 셈 일려나. 아니면 그쪽에서 또 돌아오는 뭔가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나야 배가 운행하니 횡재한 거다. 좀 불편하면 어떠랴, 갈 수 있으면 되는 거지.


앉아서 키보드를 핀다. 이렇게 이동하면서 글을 쓸때가 제일 좋다. 그래서 일부러 이동할 때는 쓸 글을 남겨놓기도 한다. 좋은 경치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여유 있게 글을 쓰고 있으니 기분이 좋다. 글은 솔직하다. 즐겁게 쓴 글은 즐거우며 울적하게 쓴 글은 울적하다. 다시 즐거운 글을 쓰고 싶다.


배를 타기 잘했다. 라오스의 마지막 경치를 우강을 따라 올라가며 감상해본다. 지금은 이동수단일 뿐이지만, 이 경치를 보기 위해 액티비티로 돈을 내는 사람도 분명 있을 거다. 깎아 지른 절벽들과 나무가 빼곡히 있어서 올라갈 길 조차 없는 산들, 그리고 강이 이루는 전경이 한 폭의 그림 같다. 라오스는 온통 푸르다.

어제 시작한 'Tuesday with Morrie'를 편다. 이 책은 아껴서 읽기로 결심했다. 하루에 30분씩만. 속독이 아닌 정독을 하고 싶다. 지금 이 책을 읽기에 여기보다 좋은 곳은 없어 보인다.

사람은 모두 죽어가고 있다. 빠르게 죽느냐, 느리게 죽느냐의 문제일 뿐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걸 인지해야 오늘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낀다. Memento Mori와 Carpe Diem.

오늘 뜻하지 않은 행운으로 이곳에 있게 되었다. 라오스에서 나를 떠나보내는 이 배에는 아저씨 둘과 나, 그리고 작은 소포 하나뿐이다. 저 소포 덕분에 나도 이곳에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행운이 그리 쉽게 올까. 전세 낸 듯이 뒤에 홀로 앉아서 아무도 신경 쓸 필요 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경치를 감상한다. 여행은 소중한 순간의 연속이다. 그리고 일상도 그러한 순간들의 연속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 시간 정도 간 배는 갑자기 어떤 마을에 멈춘다.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애들이 강에서 튜브 하나 가지고 놀다가 배가 들어오는걸 보고 비켜선다. 아이들이 나를 보더니 서로 귓속말로 하는 게 외국인임을 알아보는 거 같다. 고맙다 애들아.

여기서 학생 하나와 아저씨 하나를 더 태운다. 이 배가 버스 같은 건가. 가면서 사람들을 태우나 보다. 빈 배로 가는 것 보다는 좋지 뭐.


조금 가더니 방금 탔던 아저씨는 어느 마을에 내려준다. 그리고 또 가다 금방 다른 마을에 멈춘다. 하지만 이번에는 타는 사람이 없다. 자세히 보니 어떤 젊은이가 잡은 고기를 이 배에 팔고 있다. 고기를 저울로 배 위에서 무게를 재더니 바로 구매한다. 옆에서는 언제나 그렇듯이 아이들이 물 속에서 놀다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쳐다본다. 여기는 아이들이 많은 거 보니 좀 큰 마을인가 보다. 근데 이 아저씨 물고기 도소매도 하는건가. 지나가다 물고기만 보이면 세워서 좀 협상을 한 후 구입을 한다. 어떤 아주머니는 엄청나게 큰 물고기를 지니고 계시다 우리 배를 보더니 들어서 보여주신다. 보아하니 물고기를 잡으면 이렇게 강가에서 배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판매하는 듯하다. 배는 그걸 사가서 큰 도시에서 판매하여 수익을 남기겠지.

오늘 베트남을 넘어가려면 비행기표가 있어야 한다. 어제 예매를 했지만 혹시나 해서 화면 캡쳐해놓은 것을 찾아본다. 어? 근데 17일인 줄 알았던 비행기가 18일이다. 17일 아니었나? 이게 문제가 되는 게 배행표가 18일이면 오늘 베트남으로 넘어가면 안된다. 오늘이 3일이니 오늘 넘어가면 15일 기간의 비자가 17일에 만료되서 하루를 더 있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시간을 여유 있게 잡고 출발했더니 오히려 남는다. 뭐 큰 상관은 없다. 오늘 Muang Khua에서 하루 자면 된다. 라오스를 너무 급하게 떠나는 거 같아서 아쉬웠는데 어찌 보면 잘됐다.

멍하니 경치를 보고 있으니 잠이 와서 바닥에 드러눕는다. 머리가 배겨서 가방에서 패딩을 꺼내 배게로 삼는다. 잠이 솔솔 오는 게 좋다. 누워도 되냐고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상관없겠지.


어디선가 배가 멈추길래 잠에서 깬다. 잠시 잠들었었나 보다. 아까 같이 탔던 학생이 여기서 내린다. 내리면서 돈 내는걸 보니 30,000킵이다. 현지인들에게 저정도를 받는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10만킵이나 15만킵이 그렇게까지 비싼 건 아니지 싶다.

여기서 두 명을 더 태우길래 그런가 보다 했는데 강 건너편으로 가서 바로 내려준다. 이 배로 강을 건너는 서비스도 하나보다. 이 배 하나 타고 가면서 이곳의 삶을 많이 체험한다. 역시 타기를 잘했다. 버스 타고 갔으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타고 아무런 경험 없이 내렸을 거다. 이 배를 통하여 시간도 단축되고 시원하고 경치 좋고 문화 체험까지 가능하니 이보다 훌륭할 수 없다.

1시에 도착한다더니 생각보다  오래간다. 이제 다시 우리 세명밖에 남지 않았다. 졸리면 자고, 깨면 책을 보고 하다 보니 멀리서 큰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간상 이거는 Muang Khua일 수밖에 없다.

누워있다 슬슬 일어나서 물어보니 역시 Muang Khua가 맞다. 시계를 보니 1시 반이 조금 넘었다. 9시 반에 출발했으니 4시간 정도 온 거다. 나쁘지 않다.

기사님들한테 인사를 하고 배에서 내린다. 라오스 사람들이 미얀마 사람 같이 특출나게 친절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동남아 다른 곳에 비해서는 꽤나 친절하다. 기사님들이 영어를 한마디도 못해서 서로 웃으며 그냥 눈빛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부두에서 올라오는 길을 보니 확실히 큰 도시에 왔음이 느껴진다. 이곳에서는 무앙응오이 같은 아기자기함이 안 보인다. 요즘 이 동네가 발달하고 있는지 새로 올라가고 있는 콘크리트 건물도 두어개 보인다. 큰 도시라 그런지 므앙응오이누아와 다른 또 하나는 거리가 거기 만큼 깨끗하지 않다.

올라오면서 보니 게스트하우스들이 조금 보이긴 하지만 좀 더 들어가서 다른 숙소들도 찾아보기로 한다. 버스 터미널의 위치도 확인을 좀 하고 싶다. 내일 당장 떠날 곳이니 오늘 시간 있을 때 최대한 조사를 해놔야 내일 편하다.

큰 길로 올라서니 이제 지나온 동네들과 확연히 다른 점들이 보인다. 농키아우보다도 큰 마을인 게 은행만 해도 두세 개가 눈에 들어온다. 다섯 시간 배를 타고 위로 올라왔을 뿐인데 이렇게 분위기가 다르다는 게 어찌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북쪽 지역이라 그런지 특이한, 아니 익숙하지 않은 복장을 한 소수민족들도 꽤나 보인다.

어디로 갈까? 게스트하우스 표지판이 보이긴 하지만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때 표지판에 화살표와 함께 NamOu Guesthouse라고 예쁘게 서 있는 게 보인다. 뭐지? 걸어가는데 계속해서 그 표지판이 나타난다. 한번 가볼까?

표지판을 따라가니 어느 음침한 골목에 당도하게 된다. 이거 괜찮은 곳 맞을까? 돌아설까 싶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한번 가보기로 한다. 들어가서 아니다 싶으면 그냥 돌아서서 나오면 그뿐이다.

강가에 구석진 곳까지 들어간다. 들어가는 입구를 보니 여기는 왠지 아닐 거 같다. 주저하면서 입구 같지 않은 입구를 들어서니 후질근한 식당과 건물이 나타난다. 헌데 식당에 서양 여행자들이 서너 팀 보이는 게 뭔가 이곳에 대한 신뢰감을 들게 한다.

주인이 안보여서 불러본다. 여사장님이 나오길래 방값을 물어보니 3만킵이다. 아 싸다. 시설은 당연히 좋지 않겠다. 화장실도 별도란다. 방을 한번 보자고 한다. 올라가 보니 예상한 수준의 시설이다. 어쩔까? 고민을 잠시 하다 그냥 머물기로 한다. 어차피 내일 일찍 베트남으로 떠날 텐데 좋은 숙소는 그다지 필요 없다.

내려오면서 화장실을 물어보니 1층이란다. 가보니 문이 안 잠긴다. 그래, 하루인데 그냥 잘 넘기자. 샤워할 때 누가 들어오지는 않겠지? 내일 먼길 가야 하니 장을 깨끗이 비워야 하는 게 좀 걸리지만 이제는 적응돼서 웬만한 곳에서는 큰 문제가 안된다.

메인 가방을 놔두고 작은 가방만 들고 나온다. 방문은 굳이 안 잠근다. 저 가방에 훔쳐갈 거는 아무것도 없다. 내려와서 여사장님한테 버스정거장을 물어보니 나가서 왼쪽으로 가란다. 영어를 못하셔서 이 정도 이상의 정보는 얻기 힘들다. 가다 보면 뭔가 나오겠지.

나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서 'Kao Soy'를 먹는다. 왠지 이 육개장 비스무리한 것을 먹으면 루앙프라방에서 하루 놀았던 그 한국 친구들이 떠오른다. 지금쯤 다 한국에서 일상으로 돌아갔겠지.

시간이 늦었으니 저녁 먹을걸 생각해서 간단히 쌀국수로 배를 채우고 1만킵을 내고 일어선다. 이제 답사를 해야 한다. 아까 게스트하우스 여사장님이 일러준 방향으로 걸어보는데 너무 막연해서 뭐가 나올지 모르겠다. 가면서 사람들한테 물어보지만 다들 영어를 못해서 뭐가 뭔지 모른다.

커다란 다리가 나오기에 건넌다. 근데 버스 정거장이 엄청 멀리 있는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게스트하우스를 이쪽에 잡은 것이 경솔했나? 좀 고생하더라도 버스터미널을 확인하고 근처에 잡았어야 했나 싶다. 가는 길에 젊은 여인들이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길래 이번에는 온갖 바디랭귀지를 동원하여 다시 한번 길을 물어본다. 방향을 알려주는데, 엄청 멀단다. 내 신발을 가리키며 그걸로 갈 수 없을 정도의 거리라고 한다. 뭐지? 얼마나 먼 걸까.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은 만약 이렇게 많이 멀다면 도대체 길은 왜 가르쳐준 거지.

잠시 고민하다 돌아선다. 무작정 가다가 오히려 문제가 될 거 같다. 아까 Tourist Information을 얼핏 본 듯 하니 거기를 들러서 한번 물어봐야겠다 싶다.

다시 아까 그 거리로 돌아와서 Tourist Information을 찾아간다. 간판만 떼면 폐가 같은 안내소에 당도한다. 들어서니 사람이 없어서 옆방에 물어보니 2층으로 가란다. 가보니 직원 두 명이 있다. 그리고 드디어 영어가 통한다! 할렐루야!

영어가 통하니 쌓여있던 질문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내 놓는다. 하나씩 차근 차근 대답을 들어보니 이거 은근 난감한 상황이다. 일단 버스 터미널은 이쪽에 없단다. 있어도 거기서 타는 건 아니다. 여기서 2분 정도 가면 있는 삼거리가 버스를 타는 곳이다.

버스는 하루에 두 번 7시와 11시에 오는데, 문제는 버스가 있을지 없을지를 모른단다. 결론은 7시에 가보고 버스가 없으면 다시 11시에 가고 그마저도 없으면 다음날 가야 한다. 아무래도 이 육로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게 아닌 현지인들이 보통 베트남으로 넘나드는 수단인 거 같다.

정보는 현장을 와봐야 확실하게 아는 것이 이곳에 오기 전에는 아무리 구글에서 검색을 해도 이런 내용이 없었다. 현장에 와서 직접 겪어야 이런 디테일한 정보를 알 수가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일단 방법이 있다면 됐다. 이런 정도의 난관은 오히려 무료할 수 있는 여행에서 활력소가 된다.

확인차 직원이 얘기한 그 삼거리로 가보지만 버스 정류장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내일 와봐야 알게 되겠지. 이번 숙소는 머무는 곳이 아닌지라 귀가 하기 전에 어디 가서 음료수라도 마실까 하다가 아까 서양 여행자들을 본 게 기억나서 숙소로 돌아온다. 혹시 모르니 정보를 더 얻어봐야겠다.

레스토랑는 커플이 하나 앉아있다. 이 커플, 순정만화에서 방금 튀어나온듯한 훈남, 훈녀다. 앞머리에 저 굴곡진 웨이브를 봐라, 저게 인간이냐. 뭐 나도 대한민국 훈남이니 동서양 훈남 훈녀끼리 얘기 잘 통하겠네.

먼저 말을 걸고 물어보니 이 커플은 베트남에서 내려오는 길이란다. 라오스는 오늘 처음 왔단다. 정보를 얻으려고 내가 먼저 말을 걸었지만 결국 한참 내 정보를 풀게 된다. 이런 자리에서 여행자들을 만나면 서로 정보를 얻으려고 혈안이다. 이 커플은 내가 온 길의 딱 반대방향으로 간다. 무앙응오이의 숙소를 알려주고 방비엥에서 혼자 다이빙한 곳, 그리고 루앙프라방 콴시폭포에 대해서도 모두 알려준다. 희한한 게 콴시폭포에서 우리가 찾은 그 비밀의 장소는 이미 알고 있다. 회사에서 소문이 놀라울 정도로 빨리 퍼지듯이 여행자 사이의 소문도 정말 순식간에 퍼진다. 메신저의 도움도 없는데 말이다.

이번에는 내가 정보를 얻는다. 버스는 만약에 직행으로 가면 베트남까지 4시간 정도지만 중간에 하도 멈춰서 6시간은 걸린단다. 자기들도 저 삼거리에서 내리긴 했다는데 어차피 나랑 반대 방향이니 정확한 탑승장소는 알 수가 없다. 베트남에서는 사파가 제일 좋았단다. 그놈의 사파, 여행자들한테 하도 들어서 안 가도 간 거 같다. 라오스에서는 믕앙응오이를 모두 얘기하더니 베트남은 모두 사파를 얘기한다. 한 국립공원도 좋았다고 얘기를 해준다. 그리고 기차가 버스보다 5배 정도 비싸다고 웬만하면 버스를 타라는 얘기도 해준다. 베트남에서 남쪽으로 이동할 때 기차를 타려고 했는데 가면 고민 좀 해봐야겠다.

문득 좋은 생각이 난다. 베트남 돈 혹시 남은 거 있냐고 물어보니 조금 있단다. 잘됐다. 서로 처분하기 힘든데 라오스 돈과 맞교환하자고 한다. 은행을 통해서 교환하면 서로 손해이기에 이게 최선이다. 그 친구 들도 좋다 하며 있는 돈을 다 바꾼다. 뭐 그래 봐야 25달러다. 여기 다른 여자애가 하나 자고 있는데 얘가 베트남 돈이 꽤 많다고 저녁에 한번 얘기해서 바꾸라고 이 커플이 나에게 일러준다. 난 오늘 저녁 그리고 내일 버스비만 남기면 전부 바꿔도 된다. 근데 그게 얼마 일려나.

그래도 이 게스트하우스를 오기 잘했다. 다들 나처럼 낚인 건지 아니면 여기만 오픈한 건지 모르겠지만 모든 여행자가 이리로 오는 듯하다. 물론 그래 봐야 10명도 안된다. 그래도 환전도 하고 정보도 얻을 수 있으니 나쁘지 않다. 시설이 좋은 것 보다 이게 훨씬 중요하다. 문득 국경지대에 아예 대놓고 이렇게 정보 교류도 하고 환전도 서로 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만드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사업 아이디어인걸?

이 친구들은 내일 응오이 가는 배를 알아본다고 나가고 혼자 남아서 글을 쓴다. 갑자기 마른 하늘에 천둥이 치기 시작한다. 바람에서 습기가 느껴지는 게 비가 오겠다 싶더니 또 순식간에 비가 오기 시작한다. 물론 그래놓고는 순식간에 멈춘다.

이곳에 앉아있으니 계속해서 여행자들이 모인다. 나도 정보를 얻으려니 좋긴 한데 모두 라오스는 지금 들어오는 친구들이라 했던 얘기를 계속 다시 하게 된다. 므앙응오이 누아의 Latkeo 할머니는 내일 갑자기 손님이 마구 들이닥쳐서 놀랄 듯하다. 헌데 진짜 콴시 폭포의 두 번째 숨겨진 장소는 '알려진 비밀의 장소'인가 보다. 아예 그냥 '비밀의 장소'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다. 우린 어렵게 찾은 곳인데, 괜히 아쉽다. 물건을 저렴하게 샀는데 물어보니 여기저기 다 그 가격임을 알았을 때의 기분이라고나 할까. 돈이 필요한 친구들도 많아서 모두 환전해준다. 더 해달라고 하지만 내일 버스 요금은 필요할 듯해서 20만킵 정도는 남겨놓는다. 순간 사설 환전센터가 되었었다.

사람들에게 나만의 '비어라오수치' 판별법도 알려준다. 라오스에서는 식당을 가면 일단 메뉴판을 열어 비어라오의 가격을 본다. 비어라오 큰 거가 1만킵이면 현지 가격 수준의 저렴한 식당이다. 12,000킵이면 적당한 수준이다. 15,000킵이 넘어가면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비싼 식당이다.

나도 많은 정보를 얻는다. 베트남 여행 전반에 대해서 얘기를 듣고 사람들이 트레킹을 같이 했던 가이드의 전화번호도 받아놓는다. 가격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얘기를 해준다. 한 명이 해주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한번씩 얘기를 한다. 베트남 화폐의 개념이 아직 없어서 키보드를 꺼내고 일단 무작정 받아 적는다. 역시 론리플래닛 같은 가이드북은 없어도 그만이다.

라오스,  베트남뿐만 아니라 전체 여행에 대해 얘기도 나눈다. 모이다 보니 영국인 커플 하나, 미국인 여자애 하나, 그리고 이스라엘 커플 모두 6명이다. 다들 6개월 이상 여행한 사람들이다. 나도 이제는 장기 여행자들하고 얘기를 할 때가 더 편한 거 같다. 어쩌다 보니 나를 중심으로 얘기를 나눈다. 결국 두 명은 미얀마로 일정을 바꾸게 만들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내가 얘기를 할 때 눈빛이 반짝였나 보다. 정말 열심히 듣더니 순간적으로 일정을 조정하겠다고 한다. 그 조정을 하면서 그들의 여행에서 한국이 빠진다. 나 잘한거 맞나?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7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보를  주고받고 대화를 나눈거 같다. 더 얘기를 하면 좋겠지만 나는 8시면 잘 준비를 하는 사람이다. 일단 샤워를 하고 와야겠기에 얘기를 하고 욕실로 간다. 여기 화장실은 정말 최악이다. 여기 시설은 진짜 안 좋은데 왜 다들 여기로 모인 걸까? 미국 여자애도 나와 같은 종류의 방에서 자는데 도저히 샤워를 거기서 못하겠는지 영국 커플 방에 가서 샤워한다. 들어보니 5만킵 짜리 방은 화장실이 실내에 있단다. 그냥 그걸로 할걸 그랬나. 내가 가난해 보였는지 그 방 얘기 자체를 안 해서 생각도 못했다. 뭐 하룻밤이니까.

씻고 나오니 애들이 밥을 먹으러 나갈 거라고 같이 가자고 얘기한다. 재미는 있을 거 같긴 한데 라오스에서의 마지막 밤은 시끄럽지 않게 혼자서 보내고 싶다. 그렇게 얘기를 하니 여행자들이라 그런지 내 기분을 쉽게 이해해준다. 사람들이 나가기 전에 내가 아는 라오스 음식에 대해 설명해준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찰밥은 손으로 먹을 것. 숟가락으로 먹다가는 한세월이다.

애들이 떠나고 맥주와 음식을 주문하고 혼자 자리에 앉는다. 조용하니 좋다. 나쁘지 않은 라오스의 마지막 밤이다. 사람들과 정보를 주고받으니 정리하는 느낌이 든다. 다들 베트남에 대한 애정도 보여서 다음 여행도 기대가 된다. 아, 영국 남자애는 생맥주가 베트남 여행 중에 최고였다고 해서 내 기대치를 높여놓는다. 나는 라오스를 소개해줬고, 그들은 나에게 베트남을 소개해줬다. 나에게는 큰 사랑을 받지 못한 라오스였지만, 나쁜 아이는 아니니 사랑해주길 바라.

주문한 호박국과 밥이 나온다. 이거 양이 뭐 이리 많냐. 이건 아무리 나라도 도저히 못 먹겠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음식을 남긴다. 내가 생각 없이 주문을 많이 한 건지 이곳에서 너무 많이 준건지 모르겠다.

오늘은 좀 일찍 자려고 숙소로 올라온다. 다시 봐도 여기가 워스트 게스트하우스 넘버 1이 확실하다. 그래도 여러 정보를  주고받았으니 이해해주련다. 하지만 오늘 잘 잘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왠지 귀신이 나와도 놀랍지 않을듯한 비주얼이다.

내일은 아침 7시 버스를 기다리고, 안 오면 11시 버스를 기다리고 또 안 오면 2시 버스를 기다리고 다 없으면 하루 더 머물 게스트하우스를 찾아야 하는 기나긴 날이다. 그래도 잘만 풀리면 내일 저녁에 베트남에서 생맥주를 먹을 수 있다! 이 생각 하나만으로 들뜨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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