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RI Aug 17. 2015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45

Muang Khua, Laos to DBP, Vietnam

"띠디디딩~"

고요한 방에 울려 퍼지는 커다란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순식간에 일어나서 알람부터 끈다. 알람 소리에 일어난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불안함은 무슨, 불면증은 무슨... 아주 자알 잤다. 몸이 이보다 개운할 수 없다. 언제나 잘 자지만 어제는 특히나 잘 잤던 거 같다. 이불에 이상한 벌레 죽은 게 서너 개 보일 때만 해도 좀 찝찝했는데 걷어내고 패딩을 덮고 모기장을 침대에 펼친 이후에는 완전 아늑한 잠자리가 되어버렸다.

밤새 정전이었다. 계속 잤으니 별로 상관은 없지만 이 때문에 핸드폰 충전이 제대로 안되었다. 오늘 핸드폰은 오로지 글 쓸 때만 이용해야겠다. 아직 정전이기에 손전등을 꺼내고 두루마리 휴지를 손에 들고 몸을 깨끗이 하기 위해 화장실로 향한다.

근심도 말끔히 비워낸다. 몸이 여행에 최적이 되어버린 걸까. 오늘 하루 시작이 아주 좋다. 오래 이동하는 날 아침에 모든 것이 이리 잘 풀리면 기분마저 상쾌해진다.

짐을 싸가지고 강가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는다. 이제서야 정전이 풀리고 전기가 들어온다. 조금이라도 충전을 더 하게 핸드폰을 꼽아놓고 여사장님을 부른다. 계산을 해야 한다. 어제 저녁부터 계속 계산한다고 해도 나중에 하라고 하셔서 못하고 있었다. 지금도 안 나오셔서 몇 번을 불러서 나오시게 한다. 돈을 내고 싶어도 받아야 내지.

어제 방값, 아이스커피 한잔, 물 한통, 맛 없던 호박 수프와 밥, 그리고 비어라오 한병까지 적어놓고 계산을 하신다. 암산을 해보니 71,000킵이다. 헌데 91,000킵이라고 하신다. 내가 다시 일러드리니 '아 그러네'라는 표정으로 웃으시면서 71,000킵이라고 하신다. 이 사장님 성향상 일부러 그런 건 절대로 아니고 그냥 산수가 익숙하지 않으신 거 같다. 그러고 보니 내가 라오스 초반에 겪었던 잔돈 실수도 다 이렇게 산수의 문제였을까? 왠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아침 6시다. 6시 반 정도까지 가보라고 했으니 조금 밍그적거리다가 가방을 메고 일어난다. 여사장님이 버스가 없으면 11시 버스 타야 하니 다시 돌아오라고 얘기 하신다. 물론 의사소통이 잘 안되니 손짓 발짓 동원해가며 겨우 얘기한다.

오늘 7시 버스가 있을까? 7시 차를 타야 오후 1시 정도 도착이니 만사가 잘 풀린다. 7시 버스는 여기서 출발하는 버스고, 11시 버스는 우돔사이에서 오전에 출발해서 여기를 거치는 버스, 그리고 2시 버스는 퐁살리에서 출발하는 버스라고 한다. 결국 베트남으로 갈려면 이 동네는 무조건 거쳐야 하나보다.

나오는데 길에 예쁘게 차려입고 손에 밥을 들은 아낙네들이 많이 보인다. 어? 말로만 듣던 탁발인가? 궁금해서 한번 서둘러 가보니 앞쪽에 스님들이 모여있고 아직도 탁발을 진행하고 있다. 루앙프라방에서도 안 봤던 탁발을 이곳에서 우연히 보게 된다.

아낙네들이 한줄로 꿇어앉아있고 스님들이 줄지어서 지나가면 밥을 조금씩 드린다. 밥을 받은 스님들은 줄 서서 감사의 인사로 경전인가를 읊어준다. 이 탁발을 위해서인지 현지 주민들이 이곳에서 보기 힘든 깨끗하고 예쁜 옷을 갖춰입고 나와 있는 것이 보기 좋다. 이런 순수한 모습은 좋다. 사진을 남기고 싶지만 여기에 카메라를 들이댈려니 뭔가 아닌 거 같아서 살짝 두어 장만 찍고 지나간다.

버스 시간도 문제지만 도대체 어디서 기다리는지 알 수가 없다. 그냥 큰 가방을 들고 길가에 서 있으면 버스가 알아서 멈춘다는 건가? 뭔가 불안하다. 하지만 이런 불안함이 또 어찌 보면 여행의 매력이다. 여행 책자 어디에도 없고, 인터넷을 검색해도 없는 정보를 내 발로 탐험하는 이런 느낌이 배낭여행만이 갖는 스릴 아닐까. 그래, 한동안 이런 스릴이 좀 부족했었다.

큰 길로 나와서 두리번 거리며 쳐다보니 왼편 은행 앞에 버스 여러 대가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어? 저건가? 너무 쉬운데? 혹시나 하면서 그 앞으로 가니 아저씨들이 여러명 앞에 테이블을 놓고 앉아있다. 그분들에게 이 버스가 베트남 가는 버스냐고 물어보니 맞단다. 하, 어제부터 꽤나 걱정했던 건데 너무 쉽게 해결됐다. 이래서 걱정은 의미 없다. 그 순간이 되면 길들이 알아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걱정이 아닌 준비다.

버스값은 6만킵이다. 아직 15만킵이 남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많이 남겼다. 뭐 Dien Bien Phu에서도 라오스로 넘어가는 여행자들이 있을 테니 그들하고 바꾸면 된다. 라오스돈도 있고, 베트남 돈도 있으니 마음이 편하다.

뒤편에 자리를 잡는다. 이 차도 역시 현대 자동차다. 차 상태를 보아하니 쉬운 버스 여행은 아닐 듯하다. 중간에 한두 번 망가지지 않는다면 라오스에 있는 현대 버스라고 할 수 없다.

오늘은 이동을 해야 해서 아침도 안 먹고 탔다. 물도 가능하면 안 마신다. 혼자 여행 다니다 보면 가방을 봐줄 사람도 없기 때문에 가능하면 자리를 안 비우는 게 최고다. 타는 사람들을 보니 나같은 외국인 여행자는 단 하나도 없고 다 현지인들이다.

40분쯤 되니 표를 판매하기 시작한다. 나도 나가서 줄을 서서 표를 산다. 아까 얘기한 데로 6만킵이다. 표를 사며 보니 여기도 운무가 쫙 깔려 있다. 라오스 북부지역에서는 어디든 아침에 운무를 볼 수 있다. 6만킵으로 표를 사고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조금 있으니 갑자기 아까 표 팔던 아저씨가 나한테 표를 하나 더 가지고 온다. 뭐지? 나 표 있다고 꺼내 보여드리니 혼란이 오신 듯하다. 아마 나는 외국인이라 표를 사러 안 나오고 자리에 있었다고 생각했나 보다. 이래서 표를 받으면 절대 버리면 안된다. 무슨 상황이 생길지 모른다.

7시가 좀 넘으니 사람들을 가득 태운 버스가 드디어 출발하려 한다. 버스 안의 사람들의 모습과 언어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고 낯설다. 그도 그런 것이 이 사람들의 반 이상은 베트남 사람으로 보인다. 내 옆 자리가 비어 있어서 누군가 앉으라고 가방을 치워주지만 아무도 안 앉으려 한다. 해치지 않아요. 결국 마지막에 탄 청년 하나가  불쌍하게 딱 한자리 남은 내 옆에 앉는다.

결국 외국인은 이 안에 나 혼자다. 아, 아직 라오스이니 베트남 사람들을 외국인으로 취급한다면 반 이상이 외국인이겠다. 이런 분위기에서 한국인이나 일본인, 혹은 다른 어떤 여행자라도 한 명 만났으면 엄청 친해졌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괜찮다. 나도 생긴 게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달 반 동안 진행된 현지화 프로젝트가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버스가 출발하고 베트남 음악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나도 모르게 조금씩 들뜨기 시작한다. 미국을 유일하게 이긴 나라, 생맥주의 나라, 베트남으로 나는 떠난다!

사실 약 8년 전에 회사 출장으로 베트남을 한번 간 적이 있었다. 물론 힐튼호텔에서 자고 3박 4일 일정이었으니 '여행'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그때 부장님과 과장님들과 함께 저녁에 바에 들렸었다. 나는 사실 바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진정한 이 사람들의 문화를 체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때 좀 친해진 바텐더였던 여성분에게 딜을 했었다.

"우리는 친구니까, 내일 하루 나한테 이 도시를 보여줄래? 대신 내가 먹는 것과 경비를 다 지불할께.'


양복을 입은 남자가 와서 이리 제안하니 그녀가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난 정말 순수하게 외국인들이 혼자서는 가기 힘든 도시의 구석 구석을 보고 싶었다. 두 명이 이 제안에 좋다고 합의를 해서 다음날 결국 만났었다.

원래 과장님 한분도 같이 하루 다녀보자고 제안 했었지만 결국 그분은 무섭다고 안 오게 되서, 하루 종일 나 혼자 여인 두명과 다니게 되었다. 두 여인의 스쿠터 뒤에 타고 일반적인 여행에서는 정말 하기 힘든 경험을 많이 한 거 같다. 길거리 아이스크림도 먹어보고, 개구리 뒷다리도 찡그리며 먹어보고, 어느 동네의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가서는 베트남의 전통주도 살 수 있었다. 저녁에는 샤브샤브 같은 것도 먹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번에 빠이와 루앙프라방에서 먹은 그 동남아식 BBQ가 아니었나 싶다. 저녁 12시가 넘어가면서 불법이라며 가게 문을 닫아 잠그고 먹다가 경찰이 지나가는 소리가 나면 불을 끄고 걸리지 않도록 손님들이 다 같이 합심해서 조용히 있었던 건 즐겁기도 했지만 사실 약간 무서운 경험으로 기억된다. 인도 여행도 가기 전이라 이런 여행이 생소해서 사실 좀 불안하고 무서운 하루였지만 아마 이때부터 자유로운 여행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물론 다음날에는 호텔에 처박혀서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진짜 '무서웠다'. 뭐가 그리 무서웠을까. 그 여인 둘 중 하나는 뭔가 나한테 다른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내가 너무 순수하게 노니까 흥미를 잃었는지 연락이 끊겼고 다른 여성분은 한국 와서도 전화도 오고 한동안 연락을 했었다. 하지만 영어를 잘 못하셔서 대화가 안 통하니 결국 연락이 끊겼었다.

8년 만에 그 베트남에 돌아간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나지만 다른 나다. 이번에는 스쿠터 뒤에 탈 필요도 없고 현지인들을 무서워할 필요도 없다. 그때는 대한항공을 타고 갔지만 이번에는 8천 원짜리 버스를 타고 넘어간다. 그때는 30만 원짜리 힐튼호텔에 머물렀지만 이번에는 아마도 5천 원짜리 방에서 지내게 될 거다. 나에게 이번 여행에서 주어진 오늘부터 15일간의 마지막 여행에서 진정한 베트남을 느껴보자.


'이동'은 여행에서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괴로운 경험이 아니다. 이동 자체가 여행의 일부분이다. 비행기를 타고 한시간만에 빠르게 갈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조금씩 변해가는 사람들과 주변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국경지대 근처의 도시로 가면 두나라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Muang Khua에서만 봐도 베트남 음식을 파는 곳이 많이 보이고 베트남 언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할 줄 안다. 그리고 그걸 떠나서 대여섯 시간의 이동이 어찌 보면 생각을 가장 많이 하게 하는 철학의 시간이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10시쯤 돼서 갑자기 차가 멈추며 모두 내리라고 한다. 보아하니 라오스 국경에 도달한 거 같다. 황급히 여권을 챙기고 혹시 몰라서 지갑도 함께 가지고 버스에서 내린다.

내려서 보니 깔끔한 건물이 하나 있고, 한쪽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가까이 가보니 여기가 Passport Control인 거 같다. 다른 사람들 사이에 껴서 나도 여권을 제출해놓는다. 어떤 사람들은 사진도 가지고 온 게 비자가 필요한가 싶다. 근데 베트남하고 라오스 사람들 밖에 없는 것 같은데 비자가 필요할게 있으려나.

어떤 사람들은 돈도 내는 거 같은데 나는 별 얘기 없어서 그냥 있는다. 조금 기다리니 내 여권에 라오스 출국 도장을 찍고 나에게 돌려준다. 돈 달라는 소리가 없다. 안 내는 건가? 달라는 말이 없는데 굳이 내가 먼저 물어볼 필요는 없지.

차는 빈차로 국경을 지나오고 출국 수속을 마친 우리는 걸어서 국경을 지난 후 다시 모두 차에 탑승한다. 혹시 몰라서 베트남 입국 도장은 다음 세우는 곳에서 받는 거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역시 라오스 입국할 때 한번 경험했던 것처럼 출국과 입국을 나눠서 한다.


차가 다시 출발한다. 그렇다면 이곳은 공동경비구역인 건가? 버스에 올라타 라오스 국경에서 베트남 국경으로 이동한다. 15분 정도 가더니 다시 차를 세우고 모두 내리라고 한다.

이번에는 베트남 입국 수속을 한다. 베트남은 확실히 라오스에 비해 뭔가 깐깐함이 보인다. 공무원들 표정도 좀 굳어 있고, 총을 들고 다니는 군인들도 간혹 보인다. 이러니 내가 8년 전에 베트남을 무서워했겠지.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다른 사람들 여권 위에 내 것을 올려놓는다. 내 위에도 여권이 몇 개 쌓인다. 공무원이한명 들어오더니 하나씩 처리하는데 위에 것부터 집어 든다. 늦게 낸 사람이 이익인 셈이다. Last In First Out의 시스템이다. 난 꽤나 늦게 냈기에 좋아라 하는데 내 차례가 되니 여권을 한번 스윽 보더니 옆으로 집어던지고 다른 걸 먼저 처리한다. 에잇, 아마 외국인이라 마지막에 처리하려나보다.

한참을 앉아서 기다리다 다시 가보니 내 차례가 와간다. 드디어 내 여권을 짚더니 한참을 뒤적 뒤적인다. 다른 사람들꺼는 금방 처리하더니 왜 내것만 가지고 그러지? 비자를 찾나? 한국인은 베트남 입국할때 15일까지는 비자가 필요 없다. 한참을 보더니 옆의 다른 공무원한테 넘긴다. 옆 사람도 한참을 여권의 빈 종이까지 샅샅히 뒤진다. 뭔가 불안해진다. 지난번 베트남 입국할때 돌아오는 표가 없어서 거절되었던지라 혹시 몰라서 비행기표를 볼 수 있게 핸드폰 배터리도 남겨놨다. 이번에는 한국 가는 비행기표까지 미리 예약해놨으니 못 들어갈 이유가 전혀 없다.

두근거리며 보고 있는데 순간 여권 도장을 찍더니 날짜를 적어준다. 비행기표를 달라는 얘기도 없다. 한참 뭔가를 찾은 것이 생각해보니 최근에 베트남 입국 기록이 있는지 찾는 거였나 보다. 태국과 다르게 베트남은 한번 입국하면 3달간 입국 금지라고 들은 거 같았다. 여권에 찍힌 출국 날짜를 보니 6월 19일이다. 라오스는 14박 15일이더니 여기는 15박 16일인 건가? 그렇다면 어제 넘어왔어도 될뻔했지만 뭐 큰 상관없다. 그냥 예정대로 18일에 귀국할 거다.

버스는 다시 빈차로 넘어가고 여권을 들고 국경을 걸어서 넘어가니 한 군인이 사람들을 한 명씩 체크하면서 통과시킨다. 모두가 올라타자 버스는 다시 출발한다. 이제는 진짜 베트남이다!


사실 국경을 통과했다고 풍경이 변하는 건 없다. 국경은 사람이 그은 선이지 자연이 그어놓은 선은 아니다. 바뀌는 건 사람들과 문화뿐이다. 이 차이는 도시를 들어가야 확실히 느껴질 거다. 퍼와 생맥주를 마시는 그 순간이 내가 베트남에 도착한 순간이다.

버스는 그 이후로도 한 시간 정도를 더 달리더니 큰 도시에 들어선다. 도시를 들어서니 바로 고대하던 Bia Hoi라는 간판이 수 없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 드디어 그 유명한 베트남 생맥주를 먹게 되는 건가.

Diem Biem Phu 버스터미널에 버스가 정차하니 모두가 자기 짐을 챙기느라 분주하다. 나도 가방을 챙기고 혹시 놔두고 내리는 건 없는지 한번 더 확인 후에 내린다. 이제 본격적인 베트남 여행의 시작이다.

버스에서 내리니 왠 할머니들이 잔뜩 와서 호객행위를 하신다. 하지만 문제가 이분들이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시니 뭐라고 하시는지 알 수가 없다. 그중 한분이 명함을 주는걸 보니 아마도 게스트하우스 홍보를 하는 거 같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숙소를 정하기 전에는 일단 좀 둘러봐야겠다.

내일 사파를 가기 위해 버스표를 먼저 좀 알아본다. 여기도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신다. 숫자도 모른다. 이 나라에서 의사 소통하기 꽤나 어렵겠다. 오늘 당장 베트남어로 숫자 정도는 빨리 외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겨우 의사소통이 돼서 사파는 내일 아침 6시 반에 출발하고 210,000동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표를 살까 하다 혹시나 해서 일단 밥을 먹고 다시 오기로 마음 먹는다.

베트남의 첫인상은 라오스보다 훨씬 선진국으로 보인다. 사람들도 그러하고 거리의 모습도 그러하다. 이곳이 수도가 아닌 북부의 한도시임에도 대도시의 냄새가 물씬 난다. 라오스에서는 수도인 비안티엔에서마저 잘 느끼지 못했던 그 모던한 냄새다.

어차피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니 숙소는 가까운 게 최고라 그냥 터미널 앞에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본다. 첫번째 게스트하우스에 가서 가격을 물어보니 200,000동이란다. 올 때 대충 알아보니 베트남 돈은 대략 20으로 나누면 한국돈이 된다. 그렇다면 10,000원이다. 하루 잘건대 좀 비싸다. 옆집으로 가본다. 여기는 100,000동이다. 5천 원이다. 아주 적당하다.

방을 보여달라고 하니 어두컴컴한 독실과 넓고 베란다가 있는 2인실 두개가 비어있다며 하나씩 보여준다. 2인실은 도미토리라고 해야 할까나. 침대 큰 거 두개에 화장실 하나이니 도미토리는 맞다. 잠시 고민하다 큰방으로 선택한다. 굳이 독방을 쓸 필요도 없거니와 2인실에 들어가봤자 오늘 누가 더 올려나 싶다. 안 오면 같은 가격에 이 큰방을 내가 독차지한다.


자, 이제 베트남에서의 첫 식사를 하자. 멀리 갈 거 없이 이 게스트하우스 1층의 식당이 좋아 보인다. 손님도 계속 많고 쌀국수를 포함한 다양한 메뉴가 있어 보였다. 바로 1층으로 내려와서 자리를 잡는다.

여기 사장님도 정말 영어는 숫자밖에 모른다. 이제 베트남 사람들은 영어를 못한다고 결론을 내려버린다. 진짜 오늘 저녁에 베트남어를 조금이라도 공부 해야겠다. 일단 뭐 볼 거 있나, 쌀국수를 달라고 한다.

조금 기다리니 제대로 된 쌀국수 한 사발이 나온다. 그래, 이게 진정한 쌀국수다. 고수도 따로 갔다 주신다. 고수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감사할 따름이다. 팍팍 집어넣는다. 거기에 몇 가지 양념을 더 넣는다. 하지만 한국의 베트남 쌀국수집을 가면 항상 있는 그 두 가지의 이상한 양념은 막상 이곳에는 안 보인다. 한국인이 개발한 걸까.

한입 떠 먹어보니, 그래 역시 이 맛이다. 숟가락으로 국물을 담고 그 위에 국수를 올려서 한입에 같이 먹는다. 국물이 시원하다. 이제 보름 동안 주구장창 이 퍼를 먹어야 한다. 최소한 하루에 한번은 먹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앉아서 먹으면서 식당 안에 사람들을 지켜본다. 왠 순대 같은 것는 사람들도 있고 전골 같은 것도 안주 삼아 먹는다. 저거 전부 다 꽤나 맛있어 보인다. 이따 저녁에 한번 시도해볼까. 베트남의 첫인상이 너무 좋다. 음식이 마음에 들면 일단 반은 먹고 들어가는 거다.

캔맥주 하나도 시켜서 같이 먹는다. 하지만 맥주는 생맥주가 아니다 보니 그다지 감흥이 없다. 괜히 시켰다. 배부르게 먹고 계산하니 50,000동, 2500원이다. 나쁘지 않다.

밥을 먹고 은행을 찾아 나선다. 사파로 가면 작은 동네라 환율이 안 좋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최대한 환전을 해놓는 게 좋겠다. 게다가 아까 국경에서 남은 라오스 킵을 환전한다는 걸 깜박했다. 환전할 곳이 있기나 했나? 안 찾아봐서 어디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여기는 국경 근처니 라오스 돈을 환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헌데 가게들이 문을 다 닫았다. 은행마저 닫았다. 오늘 주말인가? 혹시나 싶어 요일을 찾아보니 목요일이다. 뭐지? 국경일인가? 일단 어쩔 수 없다. 사파까지 가서 하루 이틀 머물 돈은 있으니 나중에 환전해야겠다. 그래도 어제 숙소에서 여행자들과 베트남 돈을 바꿔놔서 정말 다행이다.

다시 버스 정거장으로 돌아온다. 매표소의 직원이 바뀌었길래 다시 물어보니 사파 가는 버스가 저녁 6시에 있단다. 어, 그럼 아침에는 없는 건가? 영어가 안 통하니 얘기가 정말 힘들다. 하지만 어렵게 얘기를 해서 아침에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어차피 사파까지는 10시간의 긴 여정이니 아침이 낫다. 저녁 6시에 출발하면 새벽 4시에 도착해서 참 애매한 시간이 된다.

여행 와서 처음으로 편두통이 온다. 한국에서는 자주 있던 편도통이지만 여행 와서는 한 달 반만에 처음이다. 어제 저녁을 제대로 안 먹어서 그런 걸까? 더위를 먹어서 일수도 있겠다 싶다.

숙소로 와서 물을 하나 사가지고 올라간다. 방문을 열어보니 방에 다른 사람이 와있다. 한 현지인 할머니와 손녀다. 여기는 외국인 위주가 아닌 현지인들도 방문하는 호텔인가 보다. 하긴 그러고 보니 외국인이 안 보인다. 육로로 요즘은 잘 안 다니나? 여하튼 이런 상황이 나름 신선하다.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한다.

일단 서울에서 가지고 온 타이레놀을 한알 먹는다. 몸이 안좋으니 오후에는 좀 쉬어야겠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할머니는 자고 있고, 손녀는 심심한지 혼자 멀뚱 멀뚱이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무서운지 확 돌린다. 안보는 척 하며 글을 쓰다가 고개를 홱 돌려서 보면 나를 물끄러지 쳐다보다가 안 봤다는 듯이 또 급하게 고개를 돌리고 모른척한다. 내가 아무리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도 이 얼굴에 무섭지 않기는 힘들 거다.

약을 먹었는데도 머리가 계속 아프다. 아무래도 좀 쉬어야 할 듯해서 눈을 감고 있는데, 옆에 할머니가 갑자기 일어나신다. 그리고 짐을 싸시더니 손녀를 데리고 나가신다. 뭐지? 숙박하러 오신게 아니었나? 분명히 내가 들어올 때 양쪽 침대 중에 고르라고 한 거 보면 나보다 늦게 들어오신 건 확실하다. 그렇다면... 무전취침 혹은 대실이라는 얘긴데, 베트남에도 대실이 있나?

그래도 방은 역시 혼자 쓰는게 좋다. 이 큰방에 혼자 있으니 기본이 좋긴 한데 머리는 계속 아프다. 일단 좀 자야겠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5시다. 잠을 푹 못 자긴 했지만 그래도 아까보다는 상태가 조금은 낫다. 하지만 여전히 머리가 조금은 아프다. 약 먹으면 보통 괜찮던데 왜 이러지. 그리고 배도 고프다. 아무래도 어제 저녁을 조금 먹고, 아침은 스킵하고, 점심은 쌀국수 하나만 달랑 먹어서 그런 거 아닌가 싶다. 잠도 잠이지만 뭐라도 먹어야겠다.

일단 내려가서 밖을 나가 본다. 먼저 심카드를 하나 산다. 이 나라는 영어도 안 통하는데다가 이제는 가이드북도 없는지라 내일 버스 타고 10시간 가는 동안 인터넷을 검색해서 언어와 문화를 좀 익혀야겠다. 5만 동을 주고 심카드를 사고 또 5만 동으로 그 심카드를 충전도 한다. 유심을 넣으니 인식을 못 하길래 가위를 달라고 해서 마이크로 유심 크기로 자른 후에 넣으니 인식이 된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기본 유심에도 어느 정도 충전 금액이 있다고 들었는데 5만동을 충전해도 그냥 5만 동만 있다고 나온다. 뭔가 찝찝하지만 그냥 5만 동을 추가로 하나를 더 사서 충전해버린다. 어떤 패키지로 신청할지는 숙소에서 와이파이로 검색 좀 해봐야겠다.

은행을 한번 가볼까? 슬쩍 지나가 보니 열려있다. 1시에는 닫혀있으면서 6시에 여는 건 또 무슨 상황이지? 들어가 보니 환율도 쓰여 있는 것이 환전이 되나 보다. 기쁜 마음으로 환전을 부탁하니 영업시간이 아니란다. 언제까지 영업하냐고 하니 5시 반이라고 알려준다. 지금이 5시 45분이다. 이런 슬픈 일이. 사파에 은행이 있을까? 근데 베트남은 잠깐 겪어보니 꽤나 발달한 나라라서 왠지 있을 듯하다.

8년 전에 베트남에 왔을 때는 완전히 비 발달된 나라로 여겼는데 이번에 미얀마, 라오스를 돌고 오니 이곳이 달리 보인다. 지금 숙소에만 와이파이가 3개가 있고 속도도 잘 나온다. 버스도 이층 버스들이 계속해서 돌아다닌다. 역시 사람의 인식은 상대적이다.

일단 다시 숙소로 돌아온다. 아까 낮에 본 돼지창자로 만든듯한 순대 비슷한 것을 먹고 싶어서 찾아보니 안 보인다. 손으로 아무리 동그랗게 말면서 설명을 해도 말이 안 통한다. 이거 꼭 먹고 싶었는데 아쉽다. 뭐 아직 첫날이니 시간은 많다. 결국 또 퍼와 롤을 하나씩 주문한다.

데이터는 검색 좀 해보니 MiMax가 7만 동에 600메가까지 하이 스피드, 그리고 그 이후에는 낮은 속도로 무제한을 제공한다고 한다. 여기는 어디 가나 와이파이가 잘되는 듯해서 이 정도면 될 듯하다. 근데 그러면 3만 동이 남긴 하는데... 뭐 다니다 보면 또 충전할 일이 있겠지.

쌀국수는 역시 맛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구장창 이것만 먹으면 분명히 질릴 거다. 여기는 그냥 스쳐지나 가는 도시니 어쩔 수 없고, 사파 가면 베트남 음식에 대한 집중적인 탐구를 해봐야겠다. 오늘은 컨디션도 안 좋으니 비어호이도 내일 저녁으로 미룬다. 10시간 버스를 타고 가서 지친 상태에서 생맥주 한잔을 먹으면, 캬, 그보다 행복할 수 없을 거다.

식사값으로 5만 동을 지불한다. 2500원 정도니 식사는 확실히 라오스보다 저렴하다. 방도 오늘 잔 곳을 보면 라오스보다 가성비가 좋은 것 같다. 지금 있는 돈이 250달러 정도인데 한번 더 한국에서 받을 필요가 있을까? 하루에 2만 원씩 쓴다고 해도 15일이면 30만 원에, 트레킹 같은 걸 하려면 조금 더 필요할 거 같다. 딱 100달러만 더 있으면 될 거 같은데 이걸 받을 방법이 참 애매하다. 그러고 보니 라오스돈 9만킵도 바꿔야 하는데... 다니다가 라오스 가는 여행자가 있으면 얘기 잘 해서 바꿔야겠다. 이것도 나름 만원이 조금 넘는 돈이다.

시간이 아직 6시 반 밖에 안됐지만 일찍 방으로 들어온다. 샤워하고 침대에 눕는다.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아서 일찍부터 쉬어줘야겠다. 여행 다닐 때 아픈 것만큼 안 좋은 게 없다. 오늘만 해도 약간의 두통 때문에 그 좋아하는 생맥주도 못 마셨다. 그러니 아플 때는 최대한 빨리 낫는 게 중요하다. 한 달 반 여행을 했으니 한번 아플 때도 되긴 했다. 뭐 사실 이 정도가 아프다고 하기는 민망한 게 인도에서는 열나고 하루 정도 몸져누워있었던 것 같다. 장기 여행을 할때는 꼭 한번 아프게 되는것 같다. 여하튼 몸에 징조가 나타나면 바로 푹 쉬어야 한다.

내일은 모든 여행자들이 칭송하는 사파에 입성한다. 라오스에 므앙응오이 누아가 있다면 베트남에는 사파가 있다. 여행자들의 입소문이 사내 메신저만큼이나 빠르다 보니 이곳은 또 지금 어떤 상황일지 궁금하다. 오늘은 베트남의 입성한 것 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확실히 여행에서는 먹는 게 반인게 음식이 좋으니 나라도 마음에 든다. 진정한 베트남 여행이 시작되는 내일을 기대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4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