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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Jul 05. 2015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4

@ Pai, Thailand

론리에서 이곳을 카오산로드와 비교하더니 비슷한 구석이 확실히 있다. 어제 저녁에 서양히피들이 저녁 12시가 넘어가도록 놀아서 시끄러워 죽는 줄 알았다. 숙소가 가까운 게 좋은 줄 알았더니 이런 단점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이어폰을 끼고 누웠다. 침대가 푹 꺼진다. 아 여기 처음에 기분 업되서 들어왔는데 영 아닌 거 같다. 이불도 감촉이 너무 찝찝해서 결국 한국에서 들고 온 패딩을 꺼내서 입고 눕는다. 내가 이럴 정도면 진짜 심한 건데... 오늘 잘 수 있을까? 몸은 피곤한데 워낙 민감해놔서 걱정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푹 잠들고 아침에 눈을 뜬다. 역시 피곤에 장사 없는 법인가 보다. 사실 좀 늦게 한 새벽 2시쯤 잔 거 같은데 7시에 일어났다. 그런데도 푹 자서 그런지 몸이 상쾌하다.

어제 저녁에 Lai와 Lan, 두 싱가포르 총각들과 메일로 잠깐 얘기를 나눴었다. 오늘 아침 7시 반에 투어 간다고 같이 가자길래, 일단 나는 아침에 숙소부터 알아봐야 해서 안된다고 했다. 대신에 시간 나면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하긴 했는데 wifi 끊기면 연락이 안돼서 어찌 될지는 두고 봐야겠다. 안되면 왠지 미얀마에서도 우연히 한번쯤 만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참고로 노여사는 인도, 네팔, 태국을 3달 여행하면서 어떤 한 남자를 약속도 없이 4번인가 만났다. 그것도 나라를 바꿔가며. 그놈이 나보다 더 인연이었을려나... 사실 여행지에서 여행자들이 가는 곳이 어느 정도 제한되어 있어서 이런 영화 같은 이야기가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래도 생각나니 기분이 좋진 않군. 쳇.

해우소에서 근심을 털고 아침을 시작할까 했는데 욕심이었나 보다. 나중에 아침 먹고 다시 와야겠다. 일단 오전에 분위기도 좀 보고, 아침도 먹고, 커피도 한 잔 하러 옷을 갈아입고 나온다. 그러고 보니 안 씻었군. 이미 나왔으니 별 수 없다.

너무 일찍 나왔나? 가게들이 다 문을 닫았다. 약간 홍대 오전을 보는 느낌이다. 저녁에 다 한바탕 달리고 오전에는 쉬나 보다. 돌아다니면서 방 있나를 보는데 좀 괜찮다 싶으면 한결 같이 Full이 붙어 있는 것이 이곳의 인기를 실감하게 한다. 게다가 어제 경험으로 이 거리를 피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앞에 깔끔해 보이는 게하가 보여서 들어가서 방 가격을 물어본다. 2500바트라고 한다. 잘못 들었나 싶어서 다시 물어보니 맞다. 가끔 샤넬 매장에 흥미 삼아, 관광 삼아 갔을 때 짓는 그 표정을 끄집어낸다. '나는 충분히 살 수 있지만 뭔가 이곳 분위기가 아방가르드한 내 스타일과 맞지 않군' 뭐 이런 표정. 종업원의 반응을 확인하지 않고 서둘러 도망치듯 그곳을 나온다.

빠이, 현지인들한테도 인기 많다더니 무시할 수 없는 곳이구나. 어제 자기 전에 태사랑에서 어떤 사람이 자기 지금 있는 숙소를 올린걸 본 기억이 문득 난다. 350바트라고 했던가? 그쪽이나 한번 가볼까 싶어서 걸음을 언덕으로 향한다.

식당들은 다 문을 닫았는데 길거리에 가두식 식당 하나가 열려 있다. 마침 배고픈데 잘됐다. 아메리칸 스타일로 먹으려던 생각을 접고 앉는다. 여긴 중국 사람이 꽤 있다. 근데 뭐 사실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주문한 닭죽이 나와서 먹는데 중국 여자 둘이 와서 앉는다.

습관적으로 "hello"라고 인사를 하는데 씹힌다. 아 그런거군. 중국인들은 뭔가 좀 배타적인 분위기가 난다. 그래도 인도에서 같이 다녔던 중국 여자애는 안 이랬는데. 하긴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 외국에서 한국 사람을 통틀어서 싸잡아 얘기하면 사실 말이 안된다 생각하면서 우리네도 항상 그러는 거 같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 이미지는 뭐지? 정은 많지만 다소 억지 부리는...?

중국 사람들이 가고 어느 나라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중국 사람은 아닌, 남녀 한쌍이 자리를 잡고 앉는다. 또 습관적으로 "hello"하며 인사를 한다. 앗, 저 남자의 눈빛은... 여행 와서 타지인과의 대화를 원하는 그 눈빛이다. 느낌이 좋아서 얘기를 계속 풀어본다.

물어보니 베트남에서 왔단다. 나는 어디서 왔냐고 묻기에, 믿기지 않겠지만  한국이야,라고 대답해준다. 그런데 그 순간 여자애 눈빛이 초롱초롱해진다. 남자애가 이 여자가 한국 드라마 마니아라고 부연 설명을 해준다.

드디어 이번 여행에서 한류를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다. 제일 좋아하는 배우가 증던겅 이라길래 누군지 한참 묻다가 장동건인걸 깨닫는다. 잘생기고 봐야 하는 건 하늘, 땅, 바다, 강 넘어 만국 공통이다. 아 드러워서... 그래도 뭐 나정도면...?

나는 아이유 팬이라고 당당하게 얘기해준다. 잘 모른다. 지은아... 너도 한류 좀 타고 뻗어나가자. 친절히 설명해준다. 삼촌의 이 마음을 우리 이유가 알아줄는지...

이 두 사람 굉장히 친절하다. 내가 어제 왔다니까 이곳 괜찮은 곳을 막 설명해준다. 스쿠터는 꼭 빌리고, 폭포 어디 하고 선셋뷰 좋은 곳도 알려준다. 커피 마시기 좋은 카페랑 들릴 만한 곳 등등을 지도에 표시해준다. 그리고 그 지도를 나에게 건네준다.

[이경훈님이 지도 아이템 1개를 습득하였습니다. 탐험 +1, 경험치 +300]

그냥 한번 해보고 싶었다....

고마워서 나도 한국인들만 아는 고급 비밀 정보를 건네준다. 다른 드라마 보지 말고 '연애시대'와 '네 멋대로 해라'를 보거라. 진짜 고급 정보인양 막 검색해보더니 열심히 받아 적는다. 근데 한국 드라마 붐의 이유는 뭐지?  재미없는 건 물론 아닌데 그 정도의 퀄리티인가? 하긴 나도 미드 보다가 한드 보면 또 엄청 재미있을 때가 있긴 하다.


숙소 탐험 원정이 아직 안 끝났기에 이만 이별 인사를 한다. 기념 사진을 찍자고 해서 찍어준다. 나와도 기념 사진을 찍다니... 진짜 한류팬인가 보다. 둘이 아직은 커플이 아니라길래, 언젠가는 될 거야 라며 축복을 해준다. 여자애 표정은 썩소고 남자애는 환해진다. 어떤 관계인지 대충 그림이 나오는군.

인사를 하고 어제 봤던 '빠이린'을 찾아서 천천히 걸어가 본다. 이곳에는 왠 개가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걸어가다 보니 똥개들 사이에서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는 군계일견 한 마리가 보인다.



역시 외모지상주의... 다른 개들은 무시하다가 얘한테는 다가가서 만져주고 인사도 나눈다. 좀 도도한 개다. 꼬리도 안 흔들고 무시하길래 그냥 일어난다. 역시 개보다는 고양이지.


근데 이 개, 내가 일어나는걸 보더니 갑자기 따라 일어나서 내 앞을 걸어간다. 마치 나를 인도하는  듯하다. 인도에서도 이런 경험이 있다. 일단 따라가 본다. 이 개, 가다가 내가 오는지 뒤를 보면서 확인까지 하면서 간다. 그러면서도 여기 저기 영역표시는 참 부지런하게도 한다. 많이 심심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좀 걷다 보니 앞에 다른 똥개 집단이 나타난다. 그때서야 군계일견이 가던 길을 멈춘다. 영역이 여기까지 인가 보다. 거 그냥 오줌 한번 찍 싸면 자기 영역이 되는 건 아닌가 보다. 돌아서는 도도한 아이에게 인사를 하고 나는 내 가던 길을 마저 간다.


'빠이린'은 메인 거리와 약간 떨어져 있다. 딱 좋다. 걸어서 올 수 있는 거리이면서 조용한 것이 숙소로는 제격인 듯하다. 물어보니 하루에 350바트이다. 이틀 하면 할인 안되냐고 물어보니 어머니 질색하시면서 안된단다. 뭐 여러 가지 괜찮아 보이기에 일단 하루만 계약을 한다. 혹시 샴푸 있냐고 물으니 샴푸는 없지만 비누는 있단다. 다행이다. 어제 숙소에 비누가 없어서 고생했다. 노여사가 쓰라고 준 바디로션은 진짜 바디로션이었다. 난 당연히 바디샴푸인 줄 알고 아무리 거품을 내도 거품이 안나더라. 아니 나보고 바디로션으로 뭘 어쩌라고 준건지. 설마 바르고 다닐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결국 어제는 샴푸로 샤워까지 했다. 샴푸 피부에 안 좋다던데...

내려오면서 커피 한 잔 마실 곳을 찾는다. 오늘은 오전에 좀 쉬다가 짐을 싸들고 점심을 먹으러 간 후, 스쿠터를 빌려서 숙소로 체크인 후에 좀 놀러 다녀야겠다. 스쿠터 타는 거 자체는 그다지 걱정이 안되는데 딱 하나 걱정인 것이 태국은 좌측통행이라는 점이다. 운전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게 은근히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오늘은 천천히 최대한 안전하게 좀 돌아다녀야겠다. 혹시 냇가에 들어갈 수도 있으니 아예 수영복을 입고 다닐까 싶기도 하다.


숙소 근처에 커피집을 찾아 들어간다. 아직도 문을 연 곳이 그리 많지 않다. 그것도 그런 게 아침에 꽤나 많은 일을 했는거 같음에도 이제서야 9시다. 늙어서 잠이 없어진 건지 여행 다녀서 그런 건지, 뭐 둘 다일 수도 있겠다. 아까 베트남 여자애 페북 친구 요청이 왔길래 수락한다. 조금 있다 사진이 올라왔다고 해서 확인해보니 아까 찍은 기념사진이다. 아니 굳이 내 태그까지 붙여서 올릴 건 없잖아. 내 초상권은 어디에... 강제 인증이 되어버렸다. 커피 한 잔 마시며 오전 얘기를 글로 마무리하는데 그 분이 오신다.


흠... 슬슬 근심을 털어낼 때가 됐군. 정리하고 일어나서 숙소로 향한다. 오늘도 깔끔하게 근심을 털고는 시간이 좀 일러서 침대에 좀 누워있다가 살짝 잠이 든다. 깨어나니 11시. 이제는 나갈 시간이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 나선다. 짐이 그다지 없으니 짐 싸는 건 순식간이다. 그냥 가방에 쑤셔 넣으면 된다. 하나 문제는, 빨래할 속옷과 새 속옷이 섞여버려서 어떤 게 어떤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냥 입지 뭐. 새삼스레.


나오는데 마이랑 눈이 마주친다. 어색하게 인사를 한다. 마이, 미안한데 여기는 정말 아닌 거 같아. 이 시설에 300바트는 솔직히 너무 비싸... 게다가 전원 꼽는 곳에 플러그를 꼽을 때마다 불꽃이 튀는 게 너무 불안하다. 전자과 출신으로서 합선의 위험성이 다분한 곳은 불안해서 안되겠다. 미안.


나가서  고민하다 스쿠터를 빌려주는 AYA로 향한다. 사실 정식 면허가 없는지라 굉장히 찝찝한 상황이지만 이틀 동안 이곳을 보려면 어쩔 수 없다고 자기 합리화를 한다. 대부분 그리하긴 하지만 그래도 사실 이건 옳지 않은 일이다. 그냥 다음번에 오게 될 때면 정식 면허증을 따고 와야겠다고 다짐한다.


서류를 작성하고 제일 싼 놈으로, 파손보험만 포함하여 하루에 140바트, 이틀에 280바트에 빌린다. 헬멧은 반드시 필요할 듯해서 100바트 디파짓을 맡기고 고르러 안쪽에 있는 헬멧 백화점(?)으로 들어간다.

서양 오라버니들은 대충 아무거나 써도 어울리는데, 난 무엇을 쓰더라도 찐따 같아 보인다. 그렇다고 안 쓸 수도 없고... 그 나물에 그 밥이지만 그래도 게 중에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놈으로 고른다. 쓰고 거울을 보니 왠 오징어 한 마리가... 그래도 하나 좋은 점은 'ㄴ' 머리를 가려준다는 거. 그래 봤자 찐따 A에서 찐따 B로 수평 이동하는  것뿐이겠지만.

스쿠터를 타고 일단 아까 예약한 빠이린 숙소로 간다. 길은 익숙하고 한번 가봤던 곳이라 큰 어려움은 없다.


빠이린에 들어가니 아까 봤던 마음씨 좋아 보이는 사장님이 반겨준다. 그런데 앞에 돼지만한 고양이가 한 마리 누워있다. 빠이에서 처음 본 고양이다. 이곳은 길개들은 많은데 길고양이는 없다. 오랜만에 본 고양이에 순간 반가워서 사장님한테 나도 고양이를 키운다는 묻지도 않은 말을 하며 쓰담쓰담 만져준다.



열쇠를 받고 짐을 놔두러 내 방으로 가는 길에 고양이 뭉텅이를 발견한다. 아 이 귀여운 놈들. 물어보니 사장님 동생이 키운단다. 아가 같아서 만져주려고 보니 임신해 있다. 얘가 얘네 전부의 엄마인가 보다. 물론 아빠는 다 다른 듯 싶다. 제일 동안인 애가 엄마였다니...


한놈이 완전 우리 둘째 고양이랑 똑같다. 아까 그 돼냥이는 경험이 없어서 서툴렀지만 이쪽은 내 전공 분야다. 공략 포인트를 슬쩍 슬쩍 만져주니 바로 '그르르' 거리면서 좋아라 한다. 배 발라당 해서 턱밑도 만져주고 좀 놀아준다. 고양이 장난감 하나 기똥찬 거 만들 줄 아는데 내일 한번 만들어볼까 싶기도 하다.



이제 숙소로 가본다. 아 여기 좋다. 테라스에 있는 의자도 환상적이고 바로 뒤가 숲이라서 분위기, 경치, 공기 다 좋다. 침대는 왜 두 개지? 붙어있는 것도 아니고... 이틀 있을 생각이니 하루에 한 침대씩 자면 청소는 안 해도 되겠군.




창문이 다 열려 있어서 좋긴 한데 벌레 걱정이 든다. 이대로 두고 나가면 저녁에 벌레 사파리 한복판에서 잘듯 해서 문을 다 닫고 나온다. 좀 아쉽다. 열어 놓았을 때는 경치가 죽였는데 닫으니 평범한 숙소가 되어버렸다.

스쿠터를 몰고 길을 나선다. 일단 좀 익숙 해질 겸 동네를 한참 돌고 돈다. 여기가 어디지? 길을 잃어버린 듯 한데 조금 돌다 보면 또 익숙한 장소가 나타난다. 걸어 다닐 때는 금방 지리가 익혀졌는데 타고 다니니 감이 달라서 쉽지 않다.

돌아다니다가 기름 넣는 곳이 보여서 주차한다. 기름을 50바트에 파는데 그냥 병을 준다. 어쩌라는 걸까? 어버버하고 있으니 오토바이 의자를 재껴서 들더니 기름통에 기름을 넣어준다. 하긴 저 정도 넣는데 차 주유소 같이 되어 있을 필요는 없다.

슬슬 배가 고파진다. 일단 밥을 먹으려고 적당한 곳을 찾고자 계속 헤맨다. 대부분 캡틴아메리카 같이 생긴 서양오라버니들이 진을 치고 있다. 중국인들이 판친다더니 어찌 된걸까. 사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오히려 서양 히피들이 난 더 싫다. 저녁에 너무 시끄럽게 논다. 놀러 왔으니 노는 건 좋은데 피해는 안 주면서 놀았으면 좋겠는데... 그게 이쪽 문화인가 보다.


레드커리를 시켜서 밥과 함께 먹는다. 아무 생각 없이 두부 야채 들어간 것이 싸서 시켰는데 이거 의외로 맛있다. 뭐 나한테 맛 없는 게 뭐겠냐만은, 약간 된장찌개 느낌도 나고, 무엇보다 두부의 식감이 우리나라 것보다 약간 단단한 게 아주 맛나다. 인도 빠니르였나? 그거와 좀 비슷한 느낌이다. 배고팠는지 또 밥과 함께 폭풍 흡입한다.

밥 먹고 좀 쉬고 있는데 'Lai' 한 테 메일이 온다. 내가 아까 시간 되면 같이 점심 먹자는 걸 지금 봤단다. 숙소도 옮겼고 밥도 먹었다고 미안하다며 저녁 일몰이나 같이 보자고 한다. 그럴까? 첫 일몰이긴 한데, 어차피 일몰은 여러 명이 가도 다 개인적으로 보게 되어서  상관없을 거 같기도 하다. 6시쯤 아까 베트남 친구들이 알려준 Pai Canyon에 있을 거니까 날 보고 싶으면 그쪽으로 오라고 한다. 근데 의도하지 않았는데 남자들만 이어지는 이유가 있으려나. 그렇다고 아쉽다는 건 아니다.

밥을 먹었으니 빠이 읍내를 좀 벗어나서 주변을 찬찬히 돌아봐야겠다. 헬맷을 쓰고 무조건 안전운전을 한다. 여행 다닐 때는 첫째도 둘째도 안전이다. 다치면 어떤 좋은 경험도 순식간에 안 좋은 기억이 되어버린다. 문득 수건과 우비를 깜박하고 안 챙긴게 떠올라서 숙소로 돌아간다. 숙소에 돌아온 김에 누워서 잠깐 쉰다. 이대로 좀 잘까? 약간 귀찮아져서 밍그적 거리다, 그래도 일어난다. 가는 길에 카페 유명한 집 있다고 들은 거 같은데 들려서 아메리카노나 한 잔 때려야겠다. 폭포가 있다길래 일단 바지를 수영복으로 갈아입는다. 사실 수영복인지 바지인지 아무도 모른다. 나를 유심히 보는 사람도 없으니 어차피 상관도 없다.



나가는 길에 엄마냥이를 좀 만져주고 스쿠터에 오른다. 이제 좀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지도를 꺼내서 길 좀 보고 길을 나선다.

이 길이 맞나? 일단 대충 가본다. 중간에 경찰들이 헬멧 안 하고 있는 청년들을 단속한다. 거의 다 안 하고 있던데 뭔가 불시검문의 느낌이다. 나야 당연히 간지헬멧을 쓰고 있으니 무사패스이다.

큰 길을 따라 쭉 달린다. 날씨가 좀 흐린 게 비가 올려나 싶다. 우기에는 반드시 꼭 하루에 비가 한번씩은 오는 건가? 나중에 섬에 가면 어쩌지 싶다. 근데 진짜 이 길이 맞나. 일단 뭐 가봐야겠다.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왼쪽에 스쿠터가 잔뜩 서 있고 외국인이 서 있는 곳이 눈에 들어온다. 호기심이 생긴다. 일단 나도 주차를 하고 합류해본다. 여기가 지도에 있던 스트로베리 뭐시기인가 보다. 근데 어쩌라는 거지? 아무것도 볼게 없다. 아마도 비수기라 그런듯 싶다. 여기 그럼 왜 모여있는 거지? 사진 찍고 놀고 있는데 사진 찍을 것도 사실 없다. 희한하구먼.


다시 출발하고 얼마 안가서 카페가 나타난다. 여기가 원래 오려던 그 카페인가 보다. 일단 길은 잘 들어왔다 싶다. 카페인 섭취도 할 겸 주차하고 들어와서 아메리카노를 시킨다. 35바트, 한국이라면 이런데 있으면 가격 차이가 꽤 날 텐데 읍내와 차이가 없다. 이건 좋네.


여긴 중국인이 꽤나 보인다. 엽서도 전시되어 있다. 아차, 원래 노여사한테 가는 곳에서 하나씩 엽서를 쓰기로 했는데 잠시 잊고 있었다. 방콕이야 다시 돌아가니까. 엽서가 20바트라 하나 사면서 이거 우표값은 따로 안 줘도 되냐고 물어본다. 부치면 14일 후면 중국으로 배달해준단다. 중국으로 가면 안되는데... 현지인 취급에서 이제는 중국인인 건가. 나라는 놈, 도대체 몇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사실 경치가 아주 좋은 건 아닌데, 음악도 좋고 커피도 마시니 마음이 평온해진다. 앉아서 엽서를 쓰고 노여사한테 회사 주소를 물어본다. 저번에 보내려고 했더니 회사로는 절대 못 보내게 하던데... 너도 사회적 이슈인 오피스 와이프 뭐 이런 건 아니겠지. 가끔 이런 거 보내서 이 여자 내 여자니까 건드리지 마!라는 무언의 경고를 해줘야 한다.


답변이 안 온다. 이러기 있기 없기. 집으로 보낼까 하다 엽서를 그냥 들고 길을 나선다. 돌아오는 길에 들려서 넣고 가지 뭐. 


원래 자동차 운전도 그다지 안 좋아하고 스릴을 즐기는 편이 아닌데 아무도 없는 시골길을 달리는 건 나름 묘한 매력이 있다. 원래 목표로 했던 폭포로 계속 향한다. 


꽤 들어간다. 다 좋은데 안경을 하나 사야 하나 싶은 게 계속 먼지가 눈에 들어간다.  한 삼십 분에서 한 시간을 가니 드디어 폭포에 도착한다. 드디어 수영 한번 해보는 건가? 들뜬 마음으로 계곡으로 가본다. 어라? 똥물이네? 웬만하면 그냥 들어갈 텐데 이건 좀 심한데?


현지 아이들 몇 명이 빤스만 입고 수영하고 있다. 인도에서 그 더럽다는 갠지스강도 수영해서 건넌 나이지만 굳이 여기를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안 생긴다. 이거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좀 허무하다. 


서양 훈남훈녀 커플이 위에서 내려온다. 사실 남자 생긴 건 잘못 봤는데 여자분은 방콕의 그 분처럼 또 어마어마하다. 현지애들 난리 났다. 같이 놀던 현지 여자애들은 남자들 또 저런다며 자기들끼리 비웃는다. 남자들은 도대체 왜 이리 가슴을 좋아하는 걸까? 그깟 지방 덩어리. 뭐 나도 다르진 않겠지만. 

스쿠터를 타고 다시 내려온다. 이제 희망은 선셋 포인트로 잡은 캐널뿐이다. 시간이 좀 이르지만 다시 길을 나서 본다. 

내려오다 아까 올 때 무심코 지나쳐온 호수? 저수지? 가 눈에 들어온다. 소들이 워낭소리를 내면서 풀을 뜯어 먹고 있는데 그 소리가 워낙 좋아서 오타바이를 잠시 세우고 내린다. 


사진을 찍으러 가니 다른 외국인도 몇 명 찍고 있는게 보인다. 소들, 다 먹은 건지 귀찮은 건지 이곳을 떠난다. 이게 아닌데. 방해하고 싶었던 게 아닌데 무지 미안하다. 좀 떨어진 계단에 앉아서 잠시 쉰다. 


갑자기 저쪽에 있던 개 하나가 전투적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야 오지 마, 줄 거 없어. 그래도 와서 얼굴을 비비며 들이대길래 좀 만져준다. 근데 진짜 줄 거 없는데. 



그래도 그냥 가기 무안한지 내 뒤에 엎드려눕는다. 그냥 심심했던 거일까나? 여기는 관광지도 아니고 해서 사람도 없으니 뭔가 놀고 싶었나 보다. 


좀 놀아줄까 싶어서 막대기를 하나 집어서 던져본다. 개가 '너 뭐하니' 라는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이거 아니구나. 미안해. 그냥 가만히 있을게. 


역시 정해진 관광지보다 이렇게 아무데서나 아지트를 잡는 게 뭔가 더 내 장소 같고 좋다. 근데 다 좋은데 여기 이 똥물은 어찌 못할까나. 


바람이 선선하고 좋다. 근데 이 수영복이 뭔가 민망하다. 그냥 원래 입던 바지 입고 올걸 그랬나 싶다. 본격적으로 속옷도 벗고 입고 온 건데. 후..

비는 안 오려나보다. 슬슬 캐년 쪽으로 가볼까 싶어서 일어난다. 근데 여기서도 와이파이가 잡힌다. 빠이는 정말 와이파이 안 되는 곳 찾기가 더 힘들구먼. 단절을 위해 올 곳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떠나가는데 이놈의 개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사실 이 개 입장에서도 이렇게 이곳에서 맨날 새로운 사람과 만남을 가지고 이별을 가지려면 마음이 공허할 거다. 그럼에도 매번 사람을 보면 반갑게 달려드니 개는 참 인간의 친구이긴 하다. 나도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지만 아예 입양을 안 한다면 모를까 한번 데리고 오면 어떤 핑계를 댄다 하더라도 버리는 건 가족도 버리고 자기 자신도 버리는 거다.

다시 길을 나선다. 이제 드라이빙은 조금 즐기게 된다. 그래도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 생각보다 그리 많이 가지 않아서 캐년이 나타난다. 여기 진짜 오전에 베트남 남녀가 얘기한 것처럼 일몰 보기 좋은 곳일까? 빠이 자체가 고지대라 일몰 포인트가 거의 없어 보이는데.

일단 들어가 본다. 이곳은 좋은 게 어딜 가도 입장료가 없다. 그만큼 관리도 안된다는 얘기긴 하겠지만 이편이 여행 오는데 있어서는 좋다. 길은 그래도 정돈되어 있어서 따라서 들어가 본다.


아 이게 그냥 산이 아니구나. 난 왜 그냥 산을 생각했지? '캐년'이라는 이름에서 연상할 수 있는데 말이지. 내가 바보였다. 생각보다 꽤나 장관이다. 보고 깜짝 놀랬다. 자연의 신비가 느껴지는 게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이 정도면 그랜드 캐년은 얼마나 더 위대할까?


깎아 지른 절벽을 따라 좀 들어가 본다. 다른 외국인들은 안에까지 쑥 들어가는데 난 아무래도 슬리퍼라 자제한다. 안전제일! 갈 수 있는 데까지만 들어갔다가 나온다.


사진이나 찍을까 하고 있는데 아까 폭포에서 봤던 그 훈남훈녀 커플이 지나간다. 일부러 찍은 건 아닌데 우연히 카메라에 들어온다. 아까부터 계속 만나는 게 뭔가 인연 같은데 이건 나만의 생각이겠지.


한 백인 소녀가 절벽 끝에 서기를 시도한다. 오, 그래 젊음이란 좋은 것이지. 마음 속으로 응원하면서 사진을 찍는다. 사진이 의외로 근사하게 잘 나온 거 같다. 이거 전달해주고 싶은데 연락처 달라고 하면 또 나만 천하의 나쁜 놈이 되겠지? 뭐 저 소녀가 운이 없는 거다.


엽서 모양으로 구멍을 뚫어놓고 사진을 찍게 한 곳도 있다. 흠, 일단 찍어놓고 합성해야겠군. 누구를 합성하나... 그건 이따 봐서 생각해봐야겠다.


그나저나 여기 멋지긴 한데 여기서 무슨 일몰을 보라는 거야. 일단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오후 4시 현재 이미 해는 그 뒤로 넘어갔다. 일몰을 4시쯤 보라는 소리였나? 게다가 가로등도 없어서 해지면 위험해 보인다. 깎아 지른 절벽에 빛도 없으면... 베트남 커플들, 내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었나?

차라리 잘됐다. 초행길인데 어두워져서 헤드라이트 키고 귀가하기 좀 걸렸는데 이만 돌아가야겠다. 아무래도 빠이는 일출 일몰 보기에 적당한 곳은 아닌 거 같다. 그래도 라이딩 한번 제대로 하긴 한다. 가는 길에 아까 못 보낸 엽서나 보내고 가야겠다. 이걸 쓰는데 뒤에서 한국말이 들린다. 갈때가 되었다.

라이딩이 익숙해져서 돌아오는 길은 즐기면서 온다. 바람도 시원하고 왼편으로 해가 지는 광경도 꽤나 보기 좋다. 갈 때는 꽤나 간 것 같은데 돌아올 때는 순식간이다. 상대성 이론도 아닌데 항상 가는 길보다 돌아오는 길이 빠른 느낌이다. 익숙한 것의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아까 올 때 들렸던 카페에 다시 들어간다. 이 쯤이면 주소가 와 있겠지? 와이파이 연결하니 카톡으로 주소가 와 있긴 한데... 보내지 말란다. 회사로 보내면 눈치가 보인다나. 또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래서 이거 하나만 보내고 나머지는 집으로 보낸다고 한다. 주소를 적고 우편번호를 찾아야 하는데 이게 왜 또 검색이 안된다냐. 에잇, 어차피 받는 사람도 안 반기는데 번호 안 적고 우체통에 넣어버린다. 인연이 있으면 가겠지 뭐.


그리 얘기했더니, 또 그건  아니지,라고 한다. 자기 엽서 내놓으라고 뭐라 한다. 뭐지? 여자의 마음은 알 수가 없다. 예전에 생일이었던가, 회사로 꽃을 보낸 적이 있다. 부담스럽다며 자기는 이런 거 좋아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라고 한참 뭐라 하더니, 지난달에는 또 자기 팀장님이 남편한테 꽃 받았다고 되게 부러운 커플이란다. 뭐지? 왜 이런 거죠? 여자도 모르는 여자의 마음을 어찌 남자가 알란 말입니까.

근데 태국어로 '걔시발'이 뭘까? 우체통 앞에 있는데 현지인들이 계속 '게시발', '계십알' 이래서 깜짝 놀랜다. (맞춤법은 언어순환을 위한 자체 검열) 이거 급 궁금해지는데... 언젠가 누구한테 함 물어봐야겠다.


날이 어두워질까 봐 일단 숙소로 돌아온다. 중간에 양갈래가 나와서 살짝 당황하지만 세워놓고 지도를 얼핏 보고 바로 방향을 제대로 잡는다. 역시 한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숙소에서 내 방으로 올 때마다 고양이들이 눈에 밟혀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아 여긴 천국인가...

아까 나갈 때 벌레 때문에 창문을 다 닫았는데 너무 답답하다. 결국 다 열어버린다. 그리고 홈매트를 꼽는다. 홈매트의 시련은 시작됐다. 과연 이 상황에서도 자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미 서너 방 물렸는데 그건 홈매트 시스템 가동 전이니 논외로 친다.

노여사와 얘기하다 오늘이 금요일임을 깨닫는다. 하, 내가 월요일에 출발했는데 의외로 시간이 빨리 흐른다. 진짜 여행 다니다 보면 날짜 감각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사라진다. 특히 요일은 알려고 해도 알 수가 없다. 들어도 금방 까먹는다.

싱가포르 애들하고 저녁에 시간 맞으면 맥주나 한 잔 하자고 했는데 될런가 모르겠다. 목욕을 할까, 빨래를 할까 고민된다. 그러려면 세재를 사와야 하는데... 목욕도 지금 하면 저녁에는 어쩌지? 두 번 하는 건 인간적으로 말이 안되잖아? 일단 수영복이나 갈아입자. 쩝.

아 근데 여기 모기들 진짜 독하다. 인도에서 속칭 '오두방정'으로 불리던 '오도모스'가 그리 효과가 좋았는데 여기도 팔런가 모르겠다. 저녁 먹으러 나가면 함 찾아봐야겠다. 산모기라 그런지 간지러움의 강도가 브레니윰급이다. (아... 어벤져스2 보고 싶다. 노여사도 보지 말라고 막아놨는데.)


그래도 인간적으로 빨래는 해서 말려놓고 밥 먹으러 가야겠다 싶어서 지갑하고 카메라만 들고 나가 본다. 나가면서 고양이를 보니 엄마만 외로이 있다. 가서 또 쓰담쓰담. 내 필살기 콧잔등 쓸기! 흠 근데 얘 누워있는 자리 걸레 맞나...? 이거 이거... 괜찮은데? 우리 애들도 함 해줘 봐야겠다.


슈퍼를 이 근처에서 본듯한데... 위쪽으로 좀 올라가니 바로 발견한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문을 닫았다. 뭐 난 시도했다. 다음에 하지 뭐. 포기는  빠를수록 좋으니 숙소로 발길을 돌린다.


들어오는 길에 무심코 지나쳤던 예술을 발견했다. 저 아주머니 세분의 살아있는 표정, 마치 우리 어머니가 고스톱 칠 때의 포스가 느껴진다. 뭔가 다양한 감정을 품고 있는 듯한... 이거 어머니 하나 사드릴까? 쥐어터지겠지?

그래도 인간적으로 먼지를 하도 뒤집어써서 샤워는 해야겠다. 수영복 입고 물에는 못 들어가고 하루 종일 뭘 한 거야. 얘를 입고 샤워를 할까? 그럼 조금이나마 수영복의 맺힌 한을 풀어줄지도...

샤워를 하고 좀 쉬다가 나가기로 한다. 아까 들어올 때 보니 이 바로 앞에도 괜찮은 식당이 있어 보이긴 하는데 세재도 사러 나가는 김에 빠이의 저녁 거리는 어떤 매력이 있는지 보기로 마음 먹는다.

혹시 술을 마실지 모르니 스쿠터는 놔두고 걸어가기로 한다. 여기서 대리를 부를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팟타이에 맥주 한 잔 먹고 싶은데 먹을만한 데가 있을런지 모르겠다.


태국 오면서 받은 미션 중 하나를 드디어 클리어 한다. 샴 길고양이 발견! 가는 길 왼쪽에 멀리서 품격 있는 아이가 보여서 다가가니 샴이다. 첫째 고양이가 샴이인 지라 내가 네 조상 꼭 만나고 오마 했는데 드디어 보게 되었다. 근데 우리 첫째 되냥이와 다르게 얘는 색깔도 훨씬 뚜렷하고 뭔가 얄상한게 멋지게 생겼다. 얌아... 너 순종은 아니었나 보다. 순종보다 잡종이 건강하다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큰 길에 들어서고 일단 편의점을 들린다. 세재 작은 거를 하나 사고, 몸에 바르는 모기 퇴치크림도 하나 산다. 오도모스는 역시 안보이는데 다른 거는 효과가 있을는지 모르겠다.


나와서 버스 정류장 앞길을 가니 거리가 환하다. 여기도 카오산처럼 낮져밤이인가 보다. 아, 여기는 낮도 그리 나쁘진 않으니 낮이 밤이인건가. 낮에는 안보이던 가두식당들이 잔뜩 늘어서 있다.

태국 음식을 먹으면서 뭔가 답답한 게 양이 계속 부족한 거였다. 나는 보통 하루 세 끼만 딱 먹는 스타일인데 뭔가 먹어도 배가 안찬다. 그래서 힘도 안 나고. 근데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여기서는 한 끼를 먹는 게 아니라 주구장창 적게 자주 먹어야 한다는 것을. 뭐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배가 차게 먹어봐야겠다.


길을 걷다가 일단 만두 비스무리한 게 보여서 들고 다니면서 먹으려고 산다. 20바트, 저렴하군. 소스를 뿌리고 먹으면서 길을 걷는다. 이때 한국인 그룹이 앞에 가는 걸 포착한다. 10명 정도 되는 듯하다. 빠이에서 느낀 건데 하나의 공간에 뭔가 묘한 경계가 나누어진 거 같다. 무협지에 비유하자면 가장 큰 소림사로 중국 사람들이 있고, 두 번째로 큰 세도외파인 서양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화산파 같은 작은 그룹의 한국인 및 다른 인종들이 있다. 일단 저 메인 두 파는 절대로 웬만하여서는 다른 그룹과 뭉치지 않아 보인다. 나머지는 가끔 뭉쳤다가 해쳐졌다가 유두리 있긴 하다. 뭐 온지 얼마 안됐지만  카오산부터 시작해서 서양인과 동양인이 남녀가 아닌 경우 같이 있는 것을 단 한번도 못 봤다. 굳이 여행 와서도 왜 이런 경계가 생기는 걸까? 세계의 평화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일단 조금은 배를 채웠으니 제대로 주식을 먹어야 한다. 노여사가 팟타이에 맥주가 그리 좋다는데 문제는 팟타이는 현지인 식당에서 먹고 싶은데 맥주를 같이 안 파는 경우가 많다. 그럼 결국 또 따로 먹어야 하나. 적당한 곳을 찾는다고 거리를 크게 돌아본다.


경훈아 쫌! 또 선택의 병이 도졌나 보다. 거진 한 시간을 걸으면서도 들어갈 곳을 못 찾는다. 이거 연료 효율이 너무 안 좋다. 차라리 아까 만두를 안 먹고 그냥 아무 데나 들어가는 게 효율적으로는 더 좋았을 거 같다. 관광객 위주의 식당은 가격도 가격이지만 왠지 싫고, 현지인 식당은 또 맥주가 없고...


결국 돌다가 원래 시작 장소 근처의 현지인 시설로 내 속에서 멋대로 분류되는 곳을 들어간다. 뭔가 팟타이가 맛있어 보인다. 가격도 50바트로 다른데 80바트에 비하면 저렴하다.

새우 팟타이로 시키고 자리에 앉는다. 사람이 많은 게 맛집인가 보다. 역시 맥주는 안 파는 듯하여 나중에 먹어야지 생각을 한다. 앉아서 음식을 기다리는데 뒤에서 뚜렷한 한국말이 들린다.

한국 남자 하나와 여자 둘이다. 뭔가 나를 의식하는 게 한국인 거 눈치챈 듯 싶다. 내가 먼저 가서 인사도 할만한데 며칠 안 있을 이곳에서 굳이 또 인연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더 적극적으로 한국인이 아닌 척 한다.

테이블이 부족해서 이번에는 내 자리에 중국인 3명이 합석한다. 말을 걸까 싶다가, 일단 씹힐 가능성이 크고, 두 번째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으면 코리아라고 얘기하면 안될 거 같아서 그냥 가만히 있는다.


자리가 매우 불편하다. 뒤에는 한국인, 앞에는 중국인. 아 난 왜 이럴까? 또 나만의 법칙을 만들어놓고 소심하게 그걸 신경 쓰고 있다. 팟타이가 나와서 일단 먹는다. 흠... 근데 상황을 떠나서 맛은 좋다.


다 먹고도 뭔가 계속 신경 쓰이고 피곤하다. 신경 쓰지 말 거면 아예 말고, 신경 쓸 거면 가서 인사하면 되는데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나 자신한테 너무 실망스럽다. 이게 뭐야...

중국인이 나가고 한국인들도 나간다. 혼자 남아서 남은 팟타이를 게걸스럽게 먹는다. 그래 먹는 거라도 제대로 처먹어야지. 계산을 하고 나온다.

아까는 굉장히 기분 좋은 거리였는데, 뭔가 갑자기 피곤한 거리가 된 느낌이다. 예전에 첫 배낭여행 때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데 먼저 못 다가서서 짜증이 났고, 이번에는 홀로 있고 싶은데 남들을 의식하는 게 짜증 난다. 결국 이쪽에서 그쪽으로, 또 수평이동을 했나 보다. 후

어디서 맥주 한 잔 마실 기분도 안 난다. 피곤하다. 그냥 숙소로 가서 편하게 마시고 싶다. 돌아가는 길에 창 작은 거를 30밧에 팔길래 두병 사온다. 한 병이면 원래 충분한데 오늘은 여행자의 마음이 아닌지라 조금 더 마시고 싶다.


방에 들어와서 가방을 뭔가 짜증 나게 집어던진다. 아직 혼자 여행할 자세가 안됐나. 왜 이러지. 별거 아닌 일인데 연연해 하는 내 감정이 너무 싫다. 일단 빨래나 하고 쉬어야겠다.

내일 하루는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해볼까 한다. 너무 돌아다니고 활발한 활동을 한 것 같다. 봐서 오전에 스쿠터 타고 근처만 갔다 오고 숙소에서 책이나 읽으며 보내야겠다. 마음이 가난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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