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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Jul 06. 2015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5

@ Pai, Thailand

이곳 빠이린에서 자연의 소리는 입체적이다. 


정체모를 다양한 소리가 15 중창으로 들려온다. 한쪽에서는 새의 지저김이 "짹짹" 거리고, 다른 쪽에서는 곤충의 소리로 추청 되는 "우엉우엉" 거리는 소리가 난다. "꾸어어억", 이 소리는 무슨 소리인지 상상도 안된다. 그리고 이런 베이스 위에 절대 잊을 수 없는 솔로 소프라노, 닭의 "꼬꼬댁꼬''가 울려 퍼진다. "꼬꼬댁"이 아닌 "꼬꼬댁꼬"이다.

새벽 6시쯤 이곳 닭들의 일어라나는 성황가 울려 퍼진다. 조금 버텨보다가 이내 포기하고 일어난다. 그래도 기분 나쁜 기상은 아니다. 창 밖을 보니 날이 밝아지면서 해가 올라오려 하는 게 보인다.


옷은 어제 다 빨아서 없기에 패딩을 꺼내서 펼치고 입고 베란다로 나와본다. 풀내음이 아침 공기에 섞여 전해지면서 기분 좋은 자연의 냄새를 몸으로 느낀다. 이곳에 있는 편안해 보이던 의자에 처음으로 몸을 늬워본다. 아늑하다.



온갖 소리들이 섞여서 울려대는 이 소리가 '여기도 해돋이가 있는데 안 보고 뭐하는거야' 라는 성화로 들린다. 그래, 앞에 산으로 가로 막혀서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해는 볼 수 없겠지만, 산곡선으로 올라오는 일출은 볼 수 있을 거다. 알았어, 알았어, 볼 테니까 그만 성화 부려. 그 와중에 "꾸우욱" 이 소리는 도대체 정체가 뭐냐.



어제 한 빨래는 하나도 안 말랐다. 큰일이다. 오늘은 결국 잠옷으로 입는 주머니 없는 체크 무늬 바지와, 옆구리 뚫린 후드티를 입고 다니게 생겼다. 어차피 숙소에서 책을 보기로 마음 먹었으니 큰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아침은 먹으러 가야 할 텐데 걱정이다.


왠지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고 싶어서 키보드를 가지고 나와서 잠시 쓰다가, 글을 덮고 누워서 자연이 하루에 한번 연출하는 블럭버스터 일출 영화를 여행 5일 만에 처음으로 느긋이 감상해본다. 그런데 지평선으로 올라오는 일출과 다르게 산곡선으로 올라오는 저 분은 눈이 너무 부셔서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 해돋이를 이렇게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보통 보지 않는 이유가 있음을 경험으로 깨닫는다. 그래도 나쁘지 않다.


희한하게 저분이 제 자리를 찾아가면서 오케스트라의 향연이 적당히 잦아들기 시작한다. 아까는 프레스토의 급함이 느껴졌다면, 이제는 아다지오의 여유가 전해진다. 그래, 지난 며칠 나도 좀 급하게 달려온 거 같다. 오늘은 아다지오의 템포를 찾아보자. 


사진에 예쁘게 담고 싶은데, 노출, 조리개 조절 다 해보고 ND 필터까지 활용해봐도 원하는 그림은 안 나온다.


잠시 누워서 구름이라는 캔버스에 햇빛이 은은하게 그리는 그림을 감상한다. 영화도 좋았지만 그림도 멋들어진다. 이러고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치유받는 느낌이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하지만, 가끔은 홀로 있을 때 가장 행복하기도 하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시간과 나만의 공간, 350바트가 선사하는 하루 동안의 나만의 극장이다.


자연의 소리는 참 신비하다. 다른 소리는 잠을 방해하지만 이 소리들은 그 음량이 아무리 커다래도 귀에 불편하지 않고 자장가로 들릴 뿐이다. 요즘은 이어폰을 안 가지고 다니게 되었다. 인간이 만든 음악 따위, 방해만 된다.

예상치 못한 선물을  선사받았음에 감사한다. 나를 깨워준 무수히 많은 생물들에 감사한다. 베란다가 이쪽으로 나 있었음에 감사한다. 오늘 하루는 감사로 시작해보자. 

감상적인 것은 여기까지! 이제 슬슬 나가 볼까. 옷이 다 안 말라서 진짜 어쩔 수 없이 잠옷을 입고 아침을 먹으러 가게 생겼다. 근데 아무도 모를게 뻔하다.



조금 누워 쉬다가 열쇠를 들고 나온다. 엄마냥이가 바닥에서 뒹구는 게 뭘 원하는지 알겠다. 볼 옆을 살짝 긁어주니 "그르르" 소리를 내ㅁ녀서 기분 좋아한다. 볼 옆을 만져주면 호르몬이 분비돼서 냥이들이 기분 좋아한다. 사장님이 지나가길래 오늘 하루 연장하겠다고 한다. 대금을 지금 드릴까, 나중에 드릴까 했더니 그냥 나중에 달라고 하셔서 그러겠다고 한다.


스쿠터에 올라타고 길을 나선다. 이 바지 안 좋은 게 주머니가 하나도 없다. 그러하기에 가방에 짐을 다 넣어야 하는데 카오산에서 산 이 가방은 잠금 장치가 엉망이라 매우 불편하다. 묶었다 푸를 때마다 리본 매듭을 지어야 한다. 오늘 낮에 시간 나면 이 가방도 개조를 좀 해볼까 싶다.


어제 먹었던 아침을 먹으러 또 온다. 여기 느낌이 좋아서 이곳에 있는 동안 매일 와야겠다. 여행 다닐 때 한 곳에 있으면 하나의 일상을 만드는 게 나는 좋다. 혼돈의 여행 속에서 질서가 찾아지며 마음의 평안이 온다.


어제 먹었던 죽을 먹고 있는데 어제 봤던 그 핫바디 커플이 또 지나가다 이곳에 들린다. 남자는 사실 못 알아보고, 여자분 얼굴도 못 알아봤는데... 다른 이유로 알아봤다. 아 내가 싫다. 인연은 인연인 게 확실한데 어찌할 수 없는 인연이다. 훈남 커플은 주스를 하나 사들고 떠난다.


30바트에 배부르게 아침을 해결했다. 커피는 조금 드라이브 나가서 먹을까 싶다. 기름이 간당 간당한데 채워야 될까? 오늘은 많이 안 쓸 거 같긴 하다. 남겨서 반납하긴 아깝긴 하지만 50바트 아끼다가 길 한복판에서 멈추는 것 보다는 낫지 싶다.

어제 한번 왔던 길이라 쉽게 찾아온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 여기도 9시 출근인가? 일단 주차를 하고 잠시 기다려본다. 근데 아무래도 누군가가 금방 오지는 않지 싶다. 좀 기다리다 다시 길을 나선다.

기름이 불안 불안하다. 동네에서 돌아다니는 건 괜찮은데 멀리 나가기는 좀 위험해 보인다. 뭐 그래도 한번 가볼까. 어찌 되겠지 뭐. 어제 보니까 나 같은 사람을 위하여 전화하면 택시가 오토바이까지 픽업하러 오는 서비스도 있더라. 하긴 중간에 멈추는 경우가 한둘이겠어.

길을 대충 보고 나섰는데... 길을 잘못 들었다. 여기가 어디지? 다시 돌아나갈까? 그냥 한번 가보자. 걸어가는 것도 아니고 굳이 좀 헤맨다고 문제가 될 이유는 없지 않나.

시골길을 들어서서 계속 쭉 간다. 그냥 막다른 길일까, 아님 주거촌일까. 그냥 햇살이 밝아서 아무 생각 없이  드라이브하며 가다 보니 예쁜 건물들이 하나 둘 모습을 나타낸다.

허... 이곳에 일종의 카페촌이 형성되어 있다. 론리랑 지도에서는 못 본거 같다. 새로 형성된 건지 인기 없어서 빼놓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잭팟! 아직 오픈 준비하는 듯 청소를 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연듯 해서 주차를 하고 들어간다.


사장님이 날 보더니 "10 Minutes!"라고 외친다. 10분 정도 기다리는 거야 일도 아니지. 노프라블램을 외쳐주고 자리에 앉는다. 근데 왠 지랄 맞은 견이 하나 있다. 하는 행동이 딱 비글 같은데 비글은 아닌 거 같고... 개쪽은 내가 약해서 잘 모르겠지만 좀 놀아줘야겠다.


아 촐싹맞어. 으르렁 거리면서도 만져주면 좋아하고, 팔짝 팔짝 뛰면서 난리도 아니다. 귀엽긴 한데 확실히 나는 고양잇과인가 보다. 근데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묶여 있는 개를 본건 처음인 거 같기도 하다. 사진 한번 찍으려고 해도 영 쉽지가 않다. 좀 가만히 있으라고!

그렇게 놀아주는데 사장님 딸인 애가 수줍게 나에게 다가온다. 뭐지? 사인이라도 받으려고 하나? 조용히 쪽지를 하나 내민다. 아 이러면 안되는데...

[Open 10.00]

흠, 10분 후가 아니라 10시에 오픈한다는 말이군. 지금이 8시 반이니, 저 손님은 어쩌려고 저러고 있나 사장님이 많이 걱정하셨겠다.


민망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스쿠터에 오른다. 근데 그러고 보니 오늘 토요일 아니야? 왜 다들 이리 늦게 문을 여는 거지? 여기 예뻤는데 아쉽다.

다시 길을 나선다. 근데 앞으로는 진짜 없어 보인다. 일단 그냥 쭉 가본다. 그냥 내키는 데로 좌회전, 우회전, 우회전, 좌회전... 한참을 가니 희한하게 앞에 아까 카페가 다시 보인다. 이거 뭐 길눈이 안 좋다고 해야 하나 바보라고 해야 하나.

사장님이 보이길래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지나친다. 근데 바로 옆에 오픈한듯 보이는 곳이 눈에 띈다. 앞에 다 먹고 남겨놓은 식기들이 있으니 확실히 오픈했을 거다.


이번에는 확실히 하고자 들어가기 전에 "Open?"이라고 물어보니 젊은 사장님, 기분 좋게 들어오라고 한다. 바로 옆에 있었는데 뭘 이리 한바퀴를 돈거지. 살폿이 주차를 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멋쟁이 모자를 쓴 젊은 사장님이다. 카페도 예쁘다. 근데 뭔가 메뉴가 불안한 게 커피가 왠지 없어 보인다. 설마, 하면서 물어보니 없단다. 커피 한 잔 마시기 겁나 힘들구먼.

인사하고 나오다가 다시 들어가서 그럼 혹시 차는 있냐고 물어본다. 있단다. 아 그래, 모닝 차 한 잔도 괜찮지. 차는 뭐가 있냐니까 향이 주력인 차와 맛이 주력인 차가 있단다. 차는 자고로 향이지! 향차로 달라고 한다. 잔으로 마시면 40바트, 주전자로 마시면 80바트다. 여기 물가 비싸다. 빠이의 가로수길 같은 곳인가? 살짝 고민하는 척을 하다가 당연히 잔으로 달라고 한다. 80바트라니... 어제 팟타이가 50바트였음을 상기하면 금으로 만든 차다. 실망하는 듯한 사장님 모습을 뒤로 하고 테라스에 와서 자리를 잡는다.


서빙해주면서 사장님이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는다. 약간 자격지심이 생겨서 또 이리 대답한다. "아닌 거 같지만, 한국 사람이에요..." 솔직히 이 사장님이 더 한국사람 같다. 사장님 갑자기 반가워하면서 안으로 들어가더니 한국어 메뉴판을 가지고 온다. 글씨체가 어떤 예쁜 여자분이 쓴듯하다. 뭔가 한국어를 보니 반갑다.


근데 이건 메뉴판이다. 사장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다시 날 바라본다. 하... 나 방금 밥 먹고 왔는데. 영업하시는 거 같지는 않은데 뭔가 상황이 묘하다. 다시 한번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메뉴판을 돌려준다. "여자분 글씨체가 예쁘네요. 하하."

여기 사장님들은 생활에 여유가 좀 있는 분들 같다. 앞에 사장님도 묶어서 키우는 개가 있고 이분도 옷차림이 일단 나보다는 부자로 보인다. 


이제 앉아서 글을 좀 쓴다. 여기 한적하고 조용하니 좋다. 차는 향이 좋다더니만 그냥 녹차향 정도의 느낌이다. 그래도 뭐, 차를 맛으로 마시나, 이 한 잔이 주는 여유와 행복으로 마시는 거지.


어제 기분이 울적해서 오늘 떠날까 고민을 좀 했었다. 치앙마이로 돌아가든가, 아님 더 안쪽인 메홍쏜으로 가던가,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겠다 싶었다. 하지만 나도 단순한 것이 아침에 해돋이쇼(?)를 한번 봤더니 기분이 완전히 풀려버렸다. 이런 것도 여행이 주는 묘미가 아닐가 싶다. 그리고 사실 어제 일은 그리 오버할 일도 아니었다. 애는 아니잖아, 경훈아.

여기 앉아서 책을 좀 본다. 리디북스에 담았던 김영하의 '보다'는 다 봤고, '말하다'를 보기 시작한다. '보다'는 사실 좀 실망이었다. 원래 '말하다'를 보고 싶어서 전편 격인 '보다'를 본 것이었으니 이번 책은 기대를 좀 해본다. 이곳에서 그 분이 오실 때까지 책이나 봐야겠다.

'말하다'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글쓰기는 우리 자신으로부터도 우리를 해방시킵니다. 왜냐하면 글을 쓰는 동안 우리 자신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기 전까지 몰랐던 것들, 외면했던 것들을 직면하게 됩니다."

내가 작가는 아니지만 지금 글을 쓰는 이유이다. 쓰면서 내 모호했던 감정을 찾게 되고 자신에게 솔직해진다. 나 자신을 삶의 주인공으로 삼으면서도 객관적인 제3자의 시선으로도 보고 된다. 묘사를 하면서는 평소에 무심코 지나쳤던 냄새, 촉감, 후각에 집중하게 된다. 홀로 다니는 여행에서 외로움을 달래는 방법이며, 스스로에게 대화를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앉아 있는데 어떤 서양 할아버지가 오시더니 나한테 태국어로 말을 거신다. 처음에  인사할 때만 해도 같이 "사와디깝"을 해드렸는데 그 이후에는 무슨 말인지 당연히 알아들을 수가 없다. 사장님이 오셔서 구제받았다. 맥북을 여시고 작업을 하시는게 여기 단골이신 듯하다. 하긴 나같아도 만약 이곳에 며칠 더 있는다면 매일 아침에 밥 먹고 항상 이곳으로 출근하고 싶다.

아 근데 눈치 없이 그 분이 너무 빨리 오신다. 좀 더 있고 싶은데... 뭐 방에 테라스도 충분히 분위기가 좋기에 일단 일어난다. 내일도 올까 싶어서 몇 시에 문 여니까 9시라고 알려준다. 내일 떠나기 전에 여기서 차나 한 잔 마시고 갈까.

스쿠터 기름이 간당 간당하지만 숙소까지는 충분히 온다. 만약 이대로 안 나갈 거면 그냥 내일 반납하고 오후 서너 시쯤 한바퀴 돌 거면 기름 채워서 다 쓸 때까지 잔뜩 돌아다녀야겠다. 오는 길에 버스 정거장에 들려서 첫 차가 언제인지 알아본다.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가 치앙마이에서 내일 모레 10시 40분에 있다. 하루 더 있을까 싶었는데, 첫 차가 7시이고, 여기서 3시간이 걸리니 너무 촉박하다. 결국 오늘 저녁이 빠이에서의 마지막 밤이 되겠구나. 짧다, 너무 짧다.


숙소로 돌아왔는데... 그 분이 가셨다. 이럴 거면 오시지를 말든가. 에잇, 뭐 또 조만간 나타나시겠지. 아까 읽던 책을 가지고 베란다로 나간다. 오전에 앉았던 그 짚으로 만든 의자에 다시 앉은 후 다리를 난간에 올리고 새들의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다. 나른하지만 잠은 안 오고 마음은 편안하다.

책을 좀 보다가 내일 치앙마이를 몇 시에 갈까 싶어 론리를 좀 펴본다. 선데이 마켓이라는 게 눈에 딱 들어온다. 내일이 일요일이니 일정이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 나에게 오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근처에 게스트하우스를 잡고 선데이 마켓만 둘러보고 다음날 방콕으로 떠나면 되겠다. 근데 방콕에서도 하루 머물러야 하는데... 아 이 비효율적인 일정은 뭐지. 빌어먹을 에어아시아.

슬슬 배가 고파오는 게 어느새 12시가 넘었다. 누워서 유유 자작하니 시간이 금세 흐른다. 도가에서 신선들한테 끌려갔다가 나오니 몇십 년이 지났다는 얘기가 생각이 난다. 이래서 이런 것을 신선놀음이라고 하나보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싶어서 숙소 앞에 예전부터 찜해뒀던 식당을 향해 나선다. 바지를 갈아입을까 하다가 아직 덜 마른 듯해서 그냥 잠옷을 입고 나간다. 바로 앞이라 지갑하고 노트만 들고 간다. 



식당에 들어서니 개들이 날 반겨준다. 경계하듯 짖으면서도 꼬리를 살랑 살랑 흔드는 건 도대체 뭐냐. 유체이탈 화법이냐. 한참을 짓다가 내가 앉으니까 두 마리 다 내옆으로 와서 눕는다. 역시 심심했나 보다. 

사장님이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신다. 메뉴가 애매해서 그냥 추천해주시는 거 아무거나 달라고 했는데 못 알아들으신다. 사진을 보고 그냥 일단 팟타이 돼지고기로 주문한다. 왠지 맛있을 거 같아 기대된다. 



물은 셀프로 얼음과 물이 따로 보관되어 있다. 태국 식당들은 거의 이런듯 싶다. 콜라를 시킬까 하다 그냥 물을 한 잔 떠와서 마신다. 근데 태국은 원래 물갈이 안하나? 여행 첫날 부터 나름 각오를 하고 마셔댔는데 아무렇지도 않다. 인도에서는 물갈이가 꽤나 심했었다. 내 몸이 변한 건지 태국이 다른 건지 미스테리다. 


맛있다. 뭐 엄청난 맛은 아니지만 이정도면야 훌륭하지. 근데 태국 음식은 항상 조금 짜고 양이 조금 적다. 이 사람들 이거 먹고 양이 되나? 오늘은 배고프게 있기 싫어서 하나 더 주문한다. 뭔지 모르겠지만 맵고 신 국수란다. 뚬양꿍 비슷한 걸려나. 신 거는 취향에 보통 안 맞았지만 한번 시도해보지 뭐. 


강아지 3마리가 엄마 하나에 자식 둘인 거 같은데 막네 애만 계속 짖어댄다. 스쿠터가 지나갈 때마다 따라가며 엄청나게 짓는다. 애정결핍인가. 근데 그렇게 짖으면서도 꼬리는 계속 흔든다. 귀여운 것. 


이번에 시킨 음식은 금방 나온다. 얘가 주력 메뉴였나? 비주얼이 다소 특이하다. 무가 올라가 있고 과자 같은 것도 두개 꼽혀있다. 고기들은 무슨 부위인지 모르겠는데 우리 수육 먹을 때 나오는 애들이랑 비슷한 게 내장 부위일 거다. 

한입 떠 먹어본다. 오, 시원하다. 딱 내 스타일인데. 얼큰하면서 무와 해산물 , 그리고 내장으로 우려낸 깊은 국물 맛이 일품이다. 이거 소주 안주인데? 아 맞다 내 소주들은 잘 있나. 


얘도 금방 비운다. 역시 여기 1인분은 한국 기준 반인분이 맞다. 두 그릇을 먹었는데도 그닥 배가 빵빵해지지 않다. 그냥 적당히 잘 먹은 느낌? 이러니 내가 요새 기운이 없었지. 앞으로는 군것질을 하든지 두 그릇을 먹든지 해야겠다. 

들어오면서 보니 문 앞에 수건 두장과 물, 비누가 놓여 있다. 하루 더 연장해서 새걸로 주신듯 하다. 아까 주지 말라고 말씀드릴걸 그랬다. 어차피 수건은 한 장 밖에 안 썼고 비누도 남고, 물도 남는다. 내가 낸 돈이랑 상관없이 이런 건 아끼고 싶다. 옆에 그냥 쓰지 않은 체로 놔둬야겠다. 흠, 비누는 혹시 모르니 챙겨볼까?


이열치열로 먹었는지라 들어오자마자 땀범벅이 된 몸을 대충 샤워하며 씻어낸다. 샤워하면서 보니 이마 한 복판에 여드름이 낫다. 승려 머리로 인하여 완벽하게 부각되는 이마 정 중앙에 여드름까지 있으니 참으로 볼만하다. 앞으로 여자 좀 꼬이겠구먼.

나가더라도 지금 나가는 건 자살행위고 좀 쉬다가 4시쯤 봐서 나가든지 말든지 해야겠다. 팬 방에서 거의 처음으로 선풍기를 튼다. 베란다로 향하게 틀어놓고 짚의자에 누워있으니 더위도 그다지 심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살짝 졸려서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서 낮잠을 청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으스으와우" 라고 우는 정체 모를 자연의 소리와 함께 딱 한 시간 꿀잠을 잔다.

이제 좀 나가 볼까? 드라이브도 가고 괜찮은 카페도 있으면 들려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는 적당한 곳에서 해지는 것을 보면 딱이겠다. 이곳 이제 적응한 거 같은데 며칠 더 있고 싶다. 진심 아쉽다.

어제 입었던 옷들은 빨았으니 그중에 하나를 잠옷으로 승격시킨다. 후드 옆구리 티는 오늘 입고 돌아다녔으니 네가 외출복의 자리를 메우거라. 그래도 햇빛이 걱정돼서 뿌리는 선크림을 얼굴에 찍 분사하고 스쿠터에 오른다.

오전에는 기름 넣는 애들이 안 나와서 못 넣었는데 지금은 열었을까? 그쪽을 가보니 아직도 없다. 기름이 없으면 움직일 수가 없는데 큰일이다. 일단 스쿠터를 빌린 AYA 회사로 가본다. 그쪽에 물어보면 알겠지.

가서 물어보지만 영어를 못해서 커뮤니케이션이 쉽지 않다. 한참 손발짓 해가며 얘기를 했더니 그쪽 문이 닫았을 리가 없단다. 큰 건물이라고 한다. 흠 그럼 걔네가 아닌 건가? 일단 알겠다고 하고 다시 한번 가본다.

지도를 보니 경찰서를 지나서 있다고 되어 있어서 다시 가보니 아까 온 곳이 경찰서 옆은 맞지만 혹시나 싶어서 조금 더 가본다. 커브를 돌아 조금 더 가니 금방 제대로 된 큰 주유소가 나타나다. 하... 속았었구나. 어쩐지 아무리 그래도 기름을 병에 팔고 넣는다는 게 조금 이상했다. 주유소에 들어가서 반만 채워달라고 한다. 50바트라고 하는걸 보니 가격은 같은 건가 싶다. 그럼 또 굳이 사기꾼들은 아닌데...


기름을 넣고 나오면서 주유 게이지를 체크하니 가득이다. 반 넣어달라고 했잖아. 아마 이게 미니멈으로 넣을 수 있는 수치인가 보다. 그럼 어제 게네가 거의 두배를 받았다는 얘기다. 결국 사기군. 게다가 어제 꽉 채웠으면 오늘까지 충분히 썼을 텐데, 지금 풀로 채우면 도대체 어떻게 쓰라는 거냐. 치앙마이까지 타고 가야 하나.




일단 나와서 큰 길을 따라 가본다. 오늘은 사실 어디 목표한데가 없어서 그냥 마음이 이끄는 데로 가보려고 한다. 원래는 기름이 딱 반인 데까지 갔다가 돌아오려고 했는데 지금은 기름이 너무 많아서 그랬다가는 해가 저물어 버리겠다.

드라이빙이 익숙해지니 이제 좀 즐겁다. 코너링은 핸들로 하는 게 아니라 무게중심의 이동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대한 안전을 지키면서도 즐기면서 달려본다. 아무도 없는 산속 길을 혼자 달리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



중간에 이상야릇한 카페가 나와서 잠시 세워본다. 어차피 커피 한 잔 마시려고 했는데 여기 한번 들어가 볼까? 시동을 끄고 들어가 보니 뭔가 화려한 인테리어가 나타나는데 문제는 사장님이 안 보인다. 음악도 굉장히 시끄럽게 틀어놓고 어디 가셨지? 해우소 가셨나. 조금 기다리다 그냥 나간다. 분위기는 좋은데 음악이 너무 시끄러워서 사실 내 스타일은 아니다.


다시 길을 나선다. 이번에는 양갈래가 나타난다. 왼쪽은 중국마을, 오른쪽은 폭포, 어디로 갈까? 기름이 충분해서 양쪽 다 갈 수도 있지 싶지만 일단 오른쪽 폭포 쪽으로 방향을 잡아본다.

산길을 한참 달린다. 다 좋은데 눈에 가끔 먼지가 들어가는 게 신경 쓰인다. 어차피 여행을 한동안 해야 하는데 내일 선데이 마켓에서 저렴한 선글라스나 하나 사야겠다. 중간에 엄청난 크기의 돼지도 발견한다. 야생은 아닌 거 같고 누가 키우는 건가 보다.

한참을 달려서 가다가 거의 정상쯤에 폭포 사인을 발견하고 속도를 줄인다. 여기가 맞는 거 같다. 주차를 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멀리서 폭포 소리가 들리고 특유의 상쾌한 내음이 여기까지 느껴진다.



아 나는 왜 어제 수영복을 하루 종일 입고 다니고서는, 막상 중요한 오늘은 안 가져왔을까. 여기는 물이 똥물이 아니다. 충분히 몸을 담글만한 물이다. 문제는 저 위에 물이 고여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거다. 어떻게 올라가지? 위에 보니 서양 히피들이 앉아서 히피스럽게 히피스러운 짓을 하고 있는 것이 올라가는 방법은 있어보인다.



근데 여기 올라가는 게 맞긴 한가 싶어서 주변을 살펴보니 떡하니 올라가지 말라고 경고문도 쓰여 있다. 하긴 올라가자면 못 갈 건 없지만 조금 위험해 보인다. 게다가 쫄이를 신고 올라갔다가 잘못하면 큰일 나겠다. 게다가 나중에 내려오는 것도 문제겠다. 히피들 사이에 앉아있는 것도 영 마음 편한 일은 아니다.


옆에 오두막 비슷한 게 있길래 거기 앉아서 잠시 글을 쓴다. 옆으로 꾸준히 사람들이 오고 또 서로 도와가며 저 작은 절벽(?)을 꾸준히 올라간다. 나도 혼자가 아니라 누구 한 명 같이 왔으면 올라갔을려나. 모르겠다.

시간이 5시다. 어쩌지? 다시 내려가서 아까 올 때 봤던 중국마을이나 가봐야겠다. 중간에 커피 마실 곳 있으면 커피도 한 잔 하고, 일몰을 볼만한 곳이 보이면 세워서 보고 가야겠다.

그 생각으로 스쿠터 주차해 놓은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데 왼편에서 한 커플이 나오는 것이 보인다. 이쪽에도 뭐가 있나? 보니까 왼쪽으로 작은 오솔길이 나 있다. 폭포도 못 봤는데, 새로운 곳 탐험이나 해볼까?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들어선다.


길이 좁고 편하지 않다. 근데 방향이 위쪽으로 가는 게 뭔가 수상하다. 위태위태하게 놔둔 다리를 지나고 잠시 더 가니 시야가 확 열린다.


그럼 그렇지! 저 위험한 곳을 모두 그냥 쉽게 올라갔을 리가 없어. 물론 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 절벽을 올라갈 수 있었지만 안 올라가기로 선택한거다. 그러고 보니 아까 내가 글 쓰는 동안 두 팀이나 올라갔었다. 이 뒤쪽으로 길이 나 있는데, 바보들이구먼. 쯧. 여하튼, 뭔가 모를 안도감이 느껴진다. 여기 좋네.



잠시 앉아서 마저 글을 쓰고 있는데 워낭 소리가 나며 소가 풀을 뜯는다. 얘네도 쉽게 오는 길인데, 괜히 졸았구먼. 폭포를 타고 몇 명이 미끄럼틀을 즐긴다. 수영복 안 입고 오기 잘했다. 입고 왔으면 또 이거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는 또 다른 고민이 생겼겠다. 나이가 들어도 이 소심함은 정말 없어지질 않는구나.


앉아있는데 동양 여자분이 또 하나 밑의 돌을 타고 올라온다. 아 뭐 이리 다들 쉽게 올라와. 하긴 뭐 나도 마음만 안 먹었을 뿐인거니까. 그럼 그럼.  


이번에는 중국인 커플이... 진짜 그냥 다 오는구먼. 근데 왜 길 안내를 이리 해놨지? 옛날 게임에서 일종의 세이브포인트 방식이 연상이 든다. 당시 게임은 세이브가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웠는지 어느 특정 구간까지 클리어 하면 다음에 그곳까지 직행할 수 있는 코드를 알려주었다. 다음 게임 시에 시작하면서 그 코드를 넣으면 바로 그 단계로 이동하는 식이었다. 여기를 올라온 자만이 지름길을 알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뭐 이런 건가. 이런 데는 나같이 치트키를 쓰는 자가 승자!

중국인 커플이 사람들 나가는걸 보고 지름길을 눈치챈다. 저 황당한 눈빛을 보라. 잡소리 그만하고 이제 나도 사람 구경 그만하고 가볼까나. 




내려가는데 길 건너는 소떼와 마주친다. 스쿠터를 세우고 지나가기를 기다려준다. 영화 같은데서 이런 장면을 보고 꼭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소원 성취했다. 근데 소들은 보면 끌고 가는 사람도 없는 거 같은데 그냥 자기가 밥 먹고 자기가 돌아간다. 똑똑한 것들이다.



다시 출발한다. 아무 생각 없이 눈앞의 양갈래 길을 그냥 지나쳤는데 생각해보니 아까 다른 쪽 길로 온 듯하다. 아차 싶어서 일단 돌아가서 어느쪽 길이 맞는지 고민해본다. 사실 잘 모르겠다. 근데 왼쪽 길이 뭔가 더 예쁘다. 방향도 맞는 거 같다. 한번 가보지 뭐. 어차피 기름이 넘쳐 난다.

이 길 정말 예쁘다. 멈춰 서서 사진을 찍을까 하다가 그냥 내 마음 속에만 담아 두기로 한다. 왼쪽에는 아름다운 구름이, 오른쪽에는 이제 내려가려는 준비를 하는 해가 경치를 더 빛내준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라이딩을 즐긴다. 근데 이 길이 맞는지는 가고 있는 지금도 역시 잘 모르겠다. 아 이 저주받을 기억력이 문제다.

이 길이 맞다. 내려와보니 처음에 봤던 그 차이나타운으로 들어가는 양갈래로 돌아왔다. 아직 저녁 6시도 안됐으니 차이나 타운도 한번 가볼까? 스쿠터를 돌려서 그쪽길로 들어서본다. 아까 길 해맬때부터 서양 남녀 6명이 내 뒤를 따라오더니, 이곳도 같이 들어간다. 희한하게 뭔가 한 팀이 된 듯이 라이딩을 함께 한다.

언덕 경사가 꽤나 심하다. 엄청난 언덕길을 7명이서 엔진 괴음을 내면서 올라간다. 아 이거 재미있네. 오르막이 심해서 허리를 앞으로 굽히고 무게중심을 앞쪽으로 갈 수 있게 도와준다. 다 같이 우루루 가니 뭔가 더 신난다. 단체 라이딩이 이런 맛인가 보다. 사실 나는 얘네 꼽사리이긴 하지만 기분은 같이 내본다.

금방 정상으로 올라온다. 도착지가 같다 보니 자연스레 다 같은 곳에 주차를 한다. 하지만 내리고는 다시 서로 쌩... 아까 나눴던 교류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지. 그럼 그럼.


여기 정상에서의 경치가 정말 아름답다. 태국 와서 본 경치 중에서는 당연 으뜸이다. 한쪽에는 구름이 멋들어지게 피어있고, 반대쪽에서는 해가 산 속으로 모습을 감추려 한다. 은은한 광원을 머금은 듯, 사라지는 해의 마지막 햇빛을 담은 구름이 하늘에 수를 놓고 있다.


잠시 분위기를 즐긴다. 좀 더 올라가 볼까? 아까 더 올라가는 길을 본 듯 한데. 6명을 놔두고 이번에는 솔로 라이딩을 한다. 뷰포인트라고 쓰여 있는 쪽으로 올라간다. 사실 아까 거기가 충분히 뷰포인트 같은데 더 좋은데가 있으려나 싶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안 가고 돌아서기는 좀 아쉽다.

도착하니 큰 주차장이 있는데 뭐 그다지 특별한 건 없어 보인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어서 올라가 보긴 하는데 뭔가 식당 같기도 하고 분위기가 이상야릇하다.


역시... 20바트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사실 그리 비싼 입장료는 아닌데 이번 여행에서 한번도 돈 받는 관광지를 못 보다가 여기서 처음 보니 20바트도 굉장히 상업적으로 느껴진다. 관광도 사실 어차피 하나의 상업인데 말이다. 게다가 밑에서 이미 좋은 뷰는 최대한 누리고 왔기에 들어갈 필요성도 그다지 못 느낀다. 상업이라면 대체재가 없어야지 이러면 누가 여길 들어올까. 안에 중국말이 꽤나 들리는 거 보니 중국 사람들은 들어오나 보다.

이제 내려갈 차례이다. 올라올 때는 좋았지만 내려가는 건 사실 걱정된다. 경사가 꽤나 가파러서 자칫하다가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을 거 같다. 왼쪽이 뒷바퀴 브레이크, 오른쪽이 앞바퀴 브레이크, 다시 한번 되내인다. 뒷바퀴 브레이크를 풀로 잡고 가도 속도가 꽤나 나온다. 이런 내리막에서 앞바퀴 브레이크는 안 좋다. 게다가 계속 브레이크를 잡고 가면 브레이크 마모 걱정도 된다. 스쿠터의 메카닉을 잘 모르기에 사실 확실하진 않지만 그냥 내가 알고 있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본다. 그러고 보니 아까 내리막에서 오히려 쓰로틀을 당기면 엔진 브레이크가 걸렸던 거 같아서 좀 시도해본다. 엔진 브레이크가 역시 걸린다. 오토메틱이라 그냥 놔두면 중립으로 가다가 당기면 오히려 엔진 브레이크가 걸리나보다.

걱정과는 다르게 그래도 큰 무리 없이 내려온다. 아직 기름은 한 칸도 줄어들지 않았다. 아 아쉬운데... 시간은 아직 6시 반 밖에 안됐다. 좀 더 달려볼까? 가다가 큰 4 거리가 나온다. 아까 올 때는 직진으로 왔었다. 그래, 한번 어딘지 모르지만 달려보자. 길 잃으면 표지판 보고 찾아오거나 사람들한테 물어보지 뭐.

약간 도전적인 마음을 가지고 왼쪽으로 핸들을 돌린다. 이 기름 한번 불 태우겠어! 반이라도 없애고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비포장길만 달리다가 포장길을 달리니 아주 천국이 따로 없다. 차도 하나도 없고 길도 뚫려 있어서 그냥 속시원히 신나게 달린다. 그래 봤자 시속 50키로 정도이지만, 바이크는 확실히 차보다 속도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메홍쏜으로 가는 길이라는 간판도 나오고 그래서 조금 걱정은 된다. 메홍쏜으로 가는 길인가... 근데 그쪽은 아마 3시간은 달려야 하는 걸로 알고 있다. 뭐 봐서 정 아니다 싶으면 돌아오지 뭐. 걱정은 되지만 방향을 틀지 않고 계속 가던 길을 간다.

태국의 작은 동네는 다 비슷한가 보다. 가다가 나오는 풍경들이 오전에 봤던 풍경들과 익숙하다. 근데 너무 익숙하다.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든다. 설마 또...?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숙소가 나온다. 이놈의 귀소본능... 항상 밑으로 다녀서 위쪽 길은 몰랐는데 이길을 가니 숙소를 위에서 내려오게 된다. 이 사실도 바로 안게 아니라 숙소를 지나치면서 곁눈질로 확인 후 깨닫고 바로 유턴해서 돌아온다.

아 김샌다... 이곳에서의 마지막 라이딩인데... 아닌가, 내일 오전에 커피 한 잔 마시러 다녀오면 될 거 같기도 하다. 그래도 뭔가 아쉽다. 어쩌겠어, 여기까지 왔는데. 주차를 하고 들어온다. 들어오는 길에 엄마냥이가 이번에는 그 아줌마 3인방 예술 조각 근처에 있길래 가서 좀 만져준다. 임신해서 그런지 애정결핍이 심하다. 새끼는 언제 낳을려나.



먼지를 하루종일 뒤집어 썼더니 먼저 좀 씻고 싶다. 헌데 어차피 저녁 먹으러 나가야 하는데, 먹고 씻을까? 그래 그게 낫겠지? 내가 언제부터 깔끔을 떨었다냐. 거울을 보니 이마 정중앙 여드름이 많이 무르익었다. 한번 터트려 볼까? 건드리니 툭 터지며 고름이 흘러나온다. 아프지만 시원하다. 이 나이에 뭔 여드름이래. 회춘하나? 

베란다에 잠시 누워서 평화를 찾는다. 빠이에서 기억 나는 건 사실 이 테라스가 가장 클 거 같다. 이곳, 왜 매력이 있는지, 왜 매력이 없는지 다 알 거 같다. 나한테는? 글쎄, 애매하다. 사람이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곳 같다.

저녁은 먹어야지. 7시 반쯤 돼서 저녁 먹으러 나간다. 나가는 길에 냥이들 만져주는 건 잊을 수 없지. 오늘따라 애들이 우루루 몰려있다. 그래, 내가 가마.



한참을 놀아주다가 이제 먹으러 나간다. 빠이에서의 마지막 저녁이다. 저녁 장소로는 이미 마음 먹은 게 있다. 오늘 낮에 점심 먹었던 그곳, 마지막 저녁을 하기에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을 듯하다. 가까운 곳에 가니까 카메라와 지갑만 들고 나선다.

가다가 뭔가 아쉽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왜 마지막은 이리 아쉬울까. 마지막 사랑, 마지막 한 잔, 그리고 마지막 인연들. 그래, 오늘은 좀 먹어보자. 올라오면서 항상 봤던 149바트의 고깃집이 문득 생각난다. 지나다니면서 항상 고기 냄새에 혹했지만 내 주제에 무슨 149바트야 하면서 의식적으로 지나쳤던 곳이다.

마지막이 갖는 의미는 뭘까? 애정을 가지고, 열정을 다 했던 일이 마지막일 때는 다양한 감정이 든다. 하지만 그거에 앞서 그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 진다. 문제는 보통 마지막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모른다는 거다. 그러므로 마지막을 알고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내 지난 6년은 그런 의미에서 제대로 된 마지막을 가졌다. 아직까지도 6년간 자식처럼 애정했던 사업을 정리하던 마지막 날의 오전부터 저녁, 마지막까지의 순간을 다 기억할 수 있다. 여행은 마지막이 보통 예견되어 있다. 외부의 선택이 아닌 자기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 마지막을 존중해주자. 그런 추억 하나하나가 모여서 여행이라는 더 커다란 추억을 형성한다.

집 앞이 아니니 물건들을 좀 챙겨가야겠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서 키보드도 들고, 카메라도 들고, 마음껏 먹을 마음가짐도 챙겨가지고 나온다.

근데 가는 길 이 길이 아니었던가? 이상하게 그 식당이 안 보인다. 문 닫았으면 안되는데... 지출하고자 마음 먹었을 때는 지출을 좀 하고 싶다. 불안해하며 거의 메인 도로에 가까이 오자 다행스럽게 보인다. 아 이게 여기였나? 숙소와 굉장히 가까워 보였는데 희한하다. 역시 사람의 기억은 추상적이다. 그래도 문 닫았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나타나서 다행이다.


부푼 마음을 안고 들어선다. 항상 여기를 지나다니면서 고기 냄새에 끌려했었다. 들어가자마자 음악 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앞에서 어떤 여자분이 노래를 부르는데... 음치이다. 그것도 심하게. 음정, 박자, 감정 다 제로이다. 그래도 뭔가 일반 음악 틀어놓은 거보다는 안정감이 온다. 자연의 소리가 더 좋은 이유와 일맥상통할가 싶다.

사장님이 오셔서 한 명만 먹어도 되냐고 슬쩍 물어본다. 한국에서 고깃집에 혼자 갔다가 뺀치 먹은 적이 있어서 왠지 물어봐야 할거 같았다. 쿨하게 괜찮다고 답해주신다. 불과 판을 세팅해주시더니 맥주는 별도지만 고기는 모두 149달러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신다. 아 무제한이었어?? 알겠다고 하고 맥주 창 큰 거를  하나시킨다. 그래도 그 정도는 먹어야지. 사장님이 셀프바도 이용하라고 얘기하신다. 멀리서 보니 30바트라고 쓰여 있어서 무료냐고 물어보니 그것도 무료란다. 고기 먹는 사람한테는 무료인가? 뭐 공짜는 언제나 환영!


불판이 나왔는데 고기가 아직 안 나왔길래 셀프바에 먼저 가본다. 각종 채소와 고기들이 있다. 엥? 고기가 왜 있지? 순간 돌아보니 무제한 고기라기 보다는 고기 뷔페라는 걸 깨닫는다. 더 훌륭한걸? 아까 30바트는 읽어보니 남기는 벌금이다. 걱정마 안 남겨.


삼겹살 같은 친숙한 것도 있지만 해산물, 간 등 익숙하지 않은 재료들도 있다. 순간 천호동에 조개 무제한 집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분위기가 다르다. 태국 전통 소스도 4종류가 있다. 진리는 삼겹살 아니겠어? 잔뜩 담아  온다. 거기에 야채도 보이긴 하는데 익숙한 야채가 아니라서 놔둔다.

자리에 오니 세팅이 되어 있다. 판이 희한하다. 고기판이 가운데 있고, 판 둘레에 육수 같은 것이 담겨 있다. 주전자로 육수는 별도로 주기도 한다. 이거 어떻게 먹는 거지? 거기에 작은 그릇과 숟가락까지 주니 진정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냥 고기 구워먹는 거 아니었나?



이왕 먹는거 제대로 먹어봐야지 싶어서 사장님을 다시 부른다. 


"이 국물은 뭔가요?" 


"원하면 먹고 싶은데로 탕처럼 드시면 됩니다." 


어쩌라는 거지? 일단은 알겠다고 하고 그냥 고기를 구워먹는다. 아까 야채 중에 양배추도 보이고 그래서 한국식으로 싸먹는다. 뭐 고기야 언제나 진리지. 나쁘지 않다.


내가 좀 일찍 왔는지 현지인들은 이제서야 슬금 슬금 오기 시작한다. 자고로 먹는 방법을 모를 때는 '관찰'이 정답이다. 사람들이 먹는 것을 좀 지켜본다. 아 이거 완전 다르구나. 일단 보아하니 샤브샤브와 비비큐의 혼합인 듯 싶다. 야채에 특이한 것들이 많더니 다 잘게 잘라서 주변 육수에 풍덩시킨다. 이런 식이군! 나도 어서 야채를 다시 가져와서 따라해본다.




사람들을 다시 지켜보니, 고기도 소스에 찍어 먹는 게 아니라 하나를 야채와 함께 담가놓고, 다음 거 담가놓고, 하나씩 먹는다. 호... 나도 따라한다.

맛있군. 맛있네. 고기가 원래 진리이긴 하지만 쑥쑥 들어간다. 아 이거 위험한데. 고기는 원래 홀로 존재하지 않는 법. 이거 한 병으로 될까? 위험 위험.


한 점 먹고, 또 한점 먹고, 그리고 또 한점 먹는다. 맥주는 한 잔, 두 잔, 석잔, 쑥쑥 들어간다. 이 천상의 조합, 글로벌한 거다. 소주가 살짝 아쉽다. 세병 가지고 온 소주, 오늘 한병 소비할걸 그랬나? 그랬어도 나쁘지는 않았을 거 같다. 나도 모르게 소주는 혼자 먹지 않고 누군가와 마셔야 된다는 의미없는 규정을 지었나 보다. 그놈의 규정. 그냥 끌리는 데로 살면 될걸.

문득 뷔페에서 쌀국수도 본 기억이 난다. 아 이국물에 먹으면 진국이겠다. 생각을 했으면 실천을 해야지. 바로 가서 쌀국수를 가져와서 육수에 풍덩시킨다. 조금 있다 꺼내서 육수를 좀 붓고, 해산물 한점, 그리고 소스를 넣어서 후루룩 들이킨다. 후... 소주가 정말 아쉽다.



오늘 진짜 날 잡아보자. 무한이라니! 갑자기 149바트가 헐값으로 느껴진다. 대략 4천 원 정도에 이 가격은 사기다. 어디 한번 달려볼까나.



무아지경! 고기 흡입! 다시 한번 시작! 또 가져와서 올리고 또 먹고 또 마신다. 남기면 30바트라고 했던가? 전혀 걱정 안된다. 최근에 억압되어 있던 식욕을 불태 운다. 내 어디 한번 어디까지 가는지 두고 보겠어.

흠, 생각보다 많이 못 간다. 삼겹살을 욕심 내서 가지고 왔는데 배가 부르기 시작한다. 더 큰 문제는 맥주도 다 마셔간다. 벌써 이러면 안되는데.

배부를 땐 모다? 

"사장님, 여기 한병 더요!"


고기가 술을 부르고 술이 고기를 부르고, 분위기는 친구를 그리워하게 한다. 

사장님, 나의 '한병 더' 외침에 딱 내가 술 마실 때 우리 이모부가 짓는 표정을 지으신다. 그래! 남자는 술이지! 원래 작은 병을 시키려고 했던데 없단다. 에이 까짓 거 그냥 큰 병 주세요.


신기하게 배가 불러도 술을 먹으면 또 고기가 들어간다. 이거 모르는 한국 사람은 없겠지? 쭉쭉 술도 들이키고 고기도 들이키고, 오늘 포식 한번 제대로 한다. 아 신난다! 한국에서 혼자 영화도 보고, 혼자 각종 음식을 먹었지만 하지 못했던 혼자 삼겹살 먹기, 오늘 제대로 하는구나.




결국 다 처먹는다. 기억나는 건 뭔가 계란 푸딩 같았던 놈과 야채, 육수, 그리고 소스이다. 의외로 삼겹살은 안 어울린 듯하다. 역시 삼겹살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 마늘, 고추, 쌈장의 파워가 합체되어야 삼겹살의 힘이 드디어 나오게 되는 법이다.


마지막 잔이 남았다. 아 잘 먹었다. 남기는 게 있으면 안되지. 육수 안에 남은 고기와 야채들을 모두 담아서 그릇에 채운다. 맥주를 한 잔 쭉 들이키고, 약간의 쓴맛을 중화하고자 마지막 안주를 입안에 머금는다. 끝!



배 땅땅! 태국 와서 드디어 제대로 된 식사를 한 느낌이다. 진작 이곳에 올걸 그랬나? 아니지, 그랬다면 오늘의 만족감이 없었을 거다. 현재는 현재에 있기에 의미가 있는 법이다.

여기 사장님도 매우 마음에 든다. 수시로 나를 체크하면서 불편한 게 없는지 물어본다. 6년간 배운 게 하나 있다면 누가 사장인지를 알아보는 방법이다. 직원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필요하지 않은 구석까지 챙기긴 힘들다. 고객이 춥진 않은지, 오늘 이별을 하고 온 건지, 집안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고객들의 이런 세세한 것들이 사장은 원하지 않아도 눈에 들어오게 된다.

글을 쓰면서 느끼는 건 무슨 일을 할 때 머리 속에 작상이 마구 떠오르는데 그걸 적지 못해 아쉽다는 거다. 이게 나중에 적을 때 기억이 날까? 이 순간을 표현하고 싶은데 그러자니 흐름이 끊기고 딜레마다. 그러다 보니 한 감정이 생겼을 때 그걸 글로서 적어놔야지만 뭔가 마무리가 되는 느낌이다. 오늘 저녁도 역시 글과 함께 하고 싶었으나 먹는거에 심취해서 그럴 수 없었다.

제주도 여행 다닐 때는 이거 과연 글이 먼저인가 여행이 먼저인가 약간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듯이, 그리고 영상을 찍듯이 나는 글을 쓸 뿐이다. 그리고 글은 어떤 훌륭한 기계에도 담을 수 없는 한 사람의 가치관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게 능숙하든, 아니면 어설프던 간에 말이다.

오늘도 역시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계산을 하고 옆 테이블로 옮겨서 키보드를 핀다. 사장님, 혹시 나를 무슨 유명한 블로거나 론리 작가로 보는 건 아니겠지? 관심도 없는 거 보니 저 스님은 뭐한 짓인가 생각하는 거 같기도 하다. 

저 앞에 노래 부르는 사람들은 뭐지? 처음에는 고용된 사람인 줄 알고 뭔 음치를 불렀나 했는데, 사람이 바뀐다. 다음으로 아저씨가 부르더니 이번에는 다른 여자가 부른다. 사장님은 노래는 안 부르는데 그 옆에 가끔 앉아 있는다. 가족 모임인가. 그런데 지금 부르는 여성분은 좀 노래를 하신다. 감정을 담을 줄 아신다. 예술은 감정이다. 음정이고 박자고 감정만 제대로 담기면 그래도 일단 눈은 간다. 조용히 노래를 음미한다.

글이 잘 써질거라 생각했었는데 아까 생각 났던 내용들은 이미 다 저 넘어 갈라파고스로 사라져 버렸다. 에잇, 계산을 하고 나와 버린다. 방으로 가서 쓰는 게 낫겠다.


집으로 오는 길에 개구리 한 마리를 발견한다. 만져도 가만히 있는다. 넌 뭘 먹고 사니?


숙소 문이 닫혀있다. 내가 이 시간에 오는 건 처음인가? 그래 봤자 며칠 됐다고 '처음'을 논하냐. 그래도 다행히 잠겨있지는 않아서 손으로 밀어서 열고 들어온다.

간단히 씻은 후 앉아서 글을 쓴다. 그래, 여기가 낫네. 글은 쓰다 보면 신기한 게 잘 써질 때가 있고 정말 안 써질 때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쓰는 순간이 기대되고 재미있다는 거겠지.

빠이에서의 마지막 밤, 나쁘지 않았던 거 같다. 내일 오전이 있으니 정리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빠이는 단순한 하나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 거 같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틀만으로 알 수 있는 건 정말 눈곱만큼 아닌가 싶다. 하지만 왜 매력이 있는지, 왜 매력이 없는지 그것만은 조금은 알게 된 느낌이다. 단, 내가 오기 전에 고민했던 것처럼 요즘 변절됐다고 오지 말까 올까 고민했던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그건 자기가 어디를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뿐이다. 수많은 얼굴 중에 그 부분을 봤다면 그리 느낄 거고 다른 부분을 봤다면 또 다를거다.

여행 온 이후 가장 많이 마신 날이다. 창 큰 병 두병. 그래도 어제처럼 기분 나빠서 마신 건 아니고 기분 좋게 마신 거라 상관없다. 나에게 상징적인 소주 3병, 이건 뜯을 날이 올까? 뭐 남으면 한국 가서 여행을 정리하면서 마시는 것도 나름 괜찮지 싶다. 여행이 조금이나마 익숙해진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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