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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Jul 07. 2015

나홀로 31일 동남아 여행 - Day 6

Pai, Thailand to Chiang Mai, Thailand

이 곳에서의 자연의 소리는 마음을 편안하게 하지만, 또 잠을 방해하기도 한다. 늦잠을 자 볼까 하는데 이놈들이 계속 나에게 일어나서 해 뜨는 거 안 보고 뭐하냐며 성화다. 어쩔 수 없이 눈을 뜬다.


베란다로 나가 보니 해는 이미 산에 걸쳐져 있다. 좀 늦었나 보다. 어제 본거와 같은 광경이기에 어제 같은 감동은 없지만 대신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한다.

오늘은 빠이를 떠나는 날이다. 밍그적 거리다 보니 시간이 벌써 8시가 지났다. 어쩌지? 아침을 먹으러 갈까? 말까? 일단 어제 쓴 글을 올리고 생각해봐야겠다.

티스토리 어플이 아주아주 매우 매우 짜증 난다. 글 쓰는 거와 사진을 붙이는 거는 사실 버릇이 돼서 그리 번거롭지도 않고 시간도 얼마 안 걸리는데, 이걸 올리는 건 다른 얘기다. 사진이 20장 정도인데도 꼭 처음 올리면 80장이라고 나온다. 그리고 20장이 넘어가면 오류가 나면서 다시 하라고 한다. 다시 하면 70장이라 나오고, 또 오류가 난후에 다시 하면 50장, 이런 식으로 줄어들다가 20장이 되면 성공하곤 한다. 이 과정이 한 시간은 걸린다. 어떻게 만들면 이리 만드는 거지. 시간 여유 있고 와이파이 좋으면 그냥 느긋하게 걸어놓고 책 보면 되는데 안될 때는 죽어라 안된다. 어제도 그래서 결국 포기했었다. 이런 식이면 미얀마에서는 사진을 올릴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오늘도 시도를 해본다. 그래도 와이파이 상태가 좋아서 기대를 해본다. 시간이 좀 걸릴듯 하니 걸어놓고 해우소를 들린다. 근심이 사라지는구나... 나와보니 역시나 당연하게도 오류 나 있길래 다시 시도한다. 다시 해우소를 들린다. 근심이 또 사라지는구나... 또 오류가 나 있다. 흠 이제 걸면 좀 되려나. 또 다시 해우소를 들린다. 근심이 또... 아 어제 너무 많이 먹었나?

또 오류가 났길래 다시 실행하니 사진 0/2로 나온다. 오, 두개만 올리면 된다니, 이제 됐군! 짐을 싸면서 준비를 한다. 그런데 이상해서 다시 보니, 오류가 또 나있다. 아니 왠 두개에서 오류? 다시 실행하니 한장도 안올라간다. 순간 뒷골이 팍 당겨오면서 불길한 느낌이 온다. 와이파이는 연결되어 있는데... 인터넷을 들어가니 안된다. 하... 공유기 설정 한번 볼까 해서 게이트웨이로 접속하니 당연히 암호가 걸려있다. 이거 끊고 다시 하면... 설마... 그래도 다시 하는거 말고는 방법이 없다. 끊고 다시 실행한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다시 업로드를 눌러본다. 두근두근 거리며 보는데 0/87라고 뜬다. 아놔...

화딱지 나서 집어 던지고 그냥 짐을 다 싸고 나올 준비를 한다. 나중에 올리지 뭐. 오늘 오전은 기름 태우는 시간이다. 어제 가득 채워진 기름을 결국 한 칸 밖에 소비 못했다. 대충 12시쯤 버스를 탈 예정이니 오전에 여기저기 스쿠터로 산책이나 좀 해야겠다.

짐을 싸다 뭔가가 없어진걸 발견했다. 노여사의 그 엘레강스한 우산이 사라졌다. 도착하는 날 식당에 두고 왔었나? 아 뭐라 할 텐데... 뭐 어차피 한 달 후니 잊어버리겠지? 그래도 우산껍데기는 안 잊어버렸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헬멧을 쓰고 브레이크를 잡는다. 열쇠를 꼽아서 돌린 후 시동을 건다. "찌르르" 소리가 시끄럽게 나지만 시동에 실패한다. 다시 한다. 또 실패한다. 이번에는 좀 길게 하고 쓰로틀도 같이 돌려준다. 성공한다.

이거 위험하다. 만약 저 멀리 가서 시동이 안 걸려버리면 그냥 망하는 거다. 귀찮은 것도 문제지만 오늘 떠나야 하니 시간도 문제다. 그래도 일단 시동이 걸렸으니 출발해본다. 아무래도 시동을 안 꺼뜨리고 최대한 돌아다녀봐야겠다. 원래 커피 한 잔 할까 했는데 취소해야하지 싶다.


일단 떠나는 버스 시간을 알아보고자 버스정거장으로 간다. 무의식적으로 시동을 끈다. 뒷머리가 서늘하지만 사실 여기서는 고장 나도 오토바이 빌린 AYA가 바로 옆이라 큰 상관없다. 버스 시간표를 보니 매시 정각마다 있다. 12시에 떠날까, 1시에 떠날까. 지금 시간은 9시다. 고민하다가 12시 표로 끊는다. 선데이 마켓이 4시에 열린다니 숙소 잡고 하려면 3시에는 도착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럼 한 시간이 남는군. 열심히 돌아다녀야겠다. 다시 브레이크를 잡고, 열쇠를 돌리고 불안한 마음으로 시동을 건다. 역시 한번에는 안된다. 4번의 시도 끝에 성공한다. 오늘은 지금까지 안 가봤던 곳으로 다녀봐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와 반대 방향인 동쪽으로 향한다.



길을 달리지만, 이곳에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이 좋다. 길에 누워 있는 강아지들 구경도 하고 애들 구경도 한다. 확실히 시골의 아이들은 해맑다. 도시에서 자란 애들은 세상을 일찍 알지만, 흙을 밟고 자란 애들은 즐거움을 먼저 안다.


한참을 달리니 작은 오솔길이 이어진다. 이쪽은 아닌가... 적당히 온 듯해서 오토바이를 돌린다. 또 달린다. 왔던 길로 다시 돌아오면서 중간에 샛길로도 들어가본다. 먼지가 눈에 들어가는 게 신경 쓰지만 얼굴에 부딪치는 바람의 감촉이 기분을 좋게 한다. 나도 모르게 가슴속에서 나오는 소리를 막지 않고 한번 크게 질러본다.


빠이는 딱히 볼만한 게 있는 곳은 아니다. 폭포도 그냥 그렇고, 사원도 가보지는 않았지만 딱히 특출 난 거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이곳에는 뭔가 고요한 울림이 있다. 마을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굉장히 이국적이고 평온한 분위기가 펼쳐진다. 안정을 찾으러 떠나는 여행에 평온함 말고 뭘 더 바랄 것인가.

즐겁게 달리다 보니 빠이로 돌아왔다. 아직 시간도 좀 남았고 기분도 뭔가 아쉽다. 어제 잘못 들었지만 우연히 숙소가 나왔던 그 길을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한번 가봐야겠다. 찾을 수 있겠지?


큰 사거리를 금방 찾고 이곳에서 우회전을 한다. 이 길이다. 아스팔트가 깔려있고 이 큰 도로에 아무도 없이 나 혼자 있는 이 길이다. 속도를 내고 싶은 충동이 스멀스멀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지만 50키로를 자체 제한으로 건다. 또 다시 나타난 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한다. 또 달린다.


어제 스쳐 지나갔던 빠이 공항이 나타난다. 에어아시아가 여기로 오는 비행기가 없어서 10개의 항공표가 있음에도 나는 치앙마이로 갔어야 했다. 빌어먹을 에어아시아. 이 작은 곳에 공항이 있는 것이 신기하긴 하지만 저 작은 활주로 하나만 있는 곳이 뭔가 불안해 보인다. 뭐 어차피 내가 탈건 아니니까 상관 없다.

한번 왔던 길이라 그런지 금방 길을 찾아서 숙소로 돌아온다. 이제 진짜 라이딩은 끝이구나. 감상에 젖고 싶지만 시간이 벌써 10시다. 밥 먹고 떠날 준비하려면 조금 서둘러야 한다.




아까 이미 짐을 다 싸놨기에 세컨드 백만 메인 가방에 쑤셔 넣고 짐을 어깨에 걸친다. 또 다시  7.5키로짜리 배낭을 메고 떠나는 길이 시작된다다. 항상 이 가방을 짊어지면 내가 여행을 왔음을 다시 새삼 깨닫게 된다.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정리의 순간은 필요하다. 방을 찬찬히 쭉 둘러보며, 특히 테라스를 쳐다보면서 이곳에서의 날들을 떠올려본다. 이틀 밖에 안 있어서 사실 뭔가 스펙터클한 사건은 없었지만 뭔가 이 고요함이 마음에 들었던 곳이다. 어제 오전에 봤던 일출도 마음에 들었고, 이곳의 친절한 사장님도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하다. 그래도 비누 하나만 챙겨갈게요 사장님.







나와서 고양이들한테 인사하러 간다. 이 예쁘장한 놈들하고도 이제 이별이구나. 하긴 서울 가면 두 마리나 있으니 괜찮다. 인사를 하러 갔더니 엄마 고양이가 누워있고 이미 다 장성한 청년 고양이가 젖을 빨고 있다. 이게 뭐하는 짓...? 엄마는 근데 그게 또 기분 좋은지 "그르르"거리며 누워있다. 우리 애들 꾹꾹이 하는 건 봤어도 실제 젖 빨면서 하는 꾹꾹이를 보는 건 처음이다. 우리 애들, 꾹꾹이 할 때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하지만 한놈은 유기묘, 한놈은 버림받은 길고양이이니 결국 너네는 나랑 살게 될 팔자여.

사장님과 인사를 한다. 이틀 밖에 안 있었는데 사장님도 매우 섭섭해하신다. 태국에서 봤던 사람들 중에 이번 사장님이 가장 마음이 아름다웠다. 사람은 마음이 연결될 때 아름다운 법이다. 작별 인사를 뒤로 하고 스쿠터에 오른다. 이 스쿠터도 이제 마지막이구나.

빠이에서의 마지막 드라이빙은 순식간에 끝난다. AYA에 도착해서 오토바이를 맡기고 사무실로 들어간다. 스쿠터하고는 인사를 못한 듯해서 돌아보니 이미 걔는 지 원래 주인 손에 끌려가 있다. 잘 살아라 이놈아. 너 덕분에 그래도 이틀간 잘 돌아다녔다. 기름은 그래도 반 남겨놨으니 다음 주인한테 잘해주고.


헬멧을 돌려주고 맡겨놨던 여권과 디파짓을 돌려받는다. 배낭을 울러 매고 이제 밥 먹을 곳을 찾는다. 한 시간 반 정도 여유 시간이 있으니 밥 먹고 어제 못 올린 글도 올리고 오늘 오전도 정리해야겠다. 좀 편한 곳으로 가야겠다 생각한다.


그냥 눈에 들어와서 들어왔는데 엊그제 스쿠터를 빌리고 처음으로 갔던 그 식당이다. 아무래도 무의식 중에 작용하는 사람의 기호는  한결같은가보다. 아마 다시 태어나도 똑같은 삶을 살고 있을 거다. 공대를 가고, 회사를 다니다, 창업을 하고, 노여사를 만나고, 그리고 또 여행을 와 있겠지. 평행 우주 안에 모든 내가 지금 이 순간 빠이에서 이곳 이 레스토랑에 와있다면 그게 나의 행복이 아닐까 싶다. 흘러가는 데로 살지만 내 선택대로 살고 싶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팟타이를 시킨다. 그런데 35바트짜리 팟타이에 익숙해지니 60바트 팟타이에 손이 멈칫하게 된다. 그래, 마지막 식사니까. 어제 글을 올리고 있으니 금방 음식이 나온다.


맛은 꽤 좋다. 확실히 태국 음식은 다 좀 짜다. 더운 나라라서 그런 건지, 반찬이 없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바로 앞에 혼자 온 서양 남자분이 내 배낭보다 두배는 되는듯한 놈을 들고 와서 쉐이크를 마신다. 바깥을 응시하는 표정이 깊이가 있다. 그래 혼자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저런 눈빛은 지녔어야지. 내 눈빛은 어떨까?

그 옆에 또 다른 서양 남성분이 들어온다. 하필이면 바로 옆 테이블에 앉는다. 흠, 뭔가 묘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처음 그 형님의 깊은 눈빛이 얇아진다. 얘네도 우리랑 똑같나. 아무래도 신경은 쓰이겠지. 이 찰진 텐션에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된다. 이 결과는 어찌 될까? 나야 곧 떠날 테니 모르겠지. 둘이 행복하세요.

다 먹고, 커피를 한 잔 시킨다. 먼길 가야 하니 카페인을 좀 섭취해야겠다. 글 업로드를 걸어놓고 키보드를 펴서 오늘 처음으로 글을 쓴다. 빠이에서의 마지막 오전을 정리해본다.


바깥에서 젊은 서양 남녀 몇명이서 이별을 하고 있다. 많이 정들었는지 서로 안아주고 아쉬워한다. 좋겠다, 이놈들아. 나도 미얀마 가면 일행을 이제 좀 구해볼까? 이곳은 워낙 하루살이처럼 장소를 이동해야 해서 사람을 기피했지만 미얀마는 그래도 15일을 다니니까 마음 맞는 사람이 있다면 고려해봐야겠다. 물론 남자 혹은 이성적인 매력이 없는 여성분으로 말이다. 난 의리 있는 남자니까.

이번 글은 두 번 만에 쉽게 올라간다. 숙소의 와이파이가 문제였나? 다음에는 안되면 그냥 놔두고 속도 잘 나오는 곳에서 올려야겠다. 어제 저녁부터 고생한 거 생각하니... 그래도 올리고 나니 숙제를 하나 마친 것 같아서 마음이 안정된다.

이제 30분 남았다. 슬슬 일어나서 미니버스로 향해야겠다. 이곳 빠이, 다시 오게 될까? 아마 쉽지 않을 거다. 인도에서 일정을 연기하고 네팔 트래킹을 하고 싶었지만 다음에 와야지 하고 온 게 벌써 6년이 됐다. 한번 떠난 시간처럼, 한번 떠난 곳은 다시 찾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러니까, 이 순간을 각인시키고 즐기자. 눈에 담고, 머리에 담고, 가슴에 담아놓자. 안녕, 빠이.







버스에서 이번 자리는 앞자리다. 아싸! 타자마자 안전벨트부터 채운다. 올 때는 현지인들이 대부분이더니 갈 때는 모두 서양인이고 동양인은 나 혼자다. 아 이거 영 어색하구먼. 영어 못하는 척할까?

그러고 보니 치앙마이는 선데이마켓 빼고는 알아둔 게 하나도 없다. 오늘 어디서 자지? 구시가지 근처에서 내려서 그래도 게스트 하우스를 좀 찾아 돌아 다니면 찾지 않을까 싶다. 도착 시간도 그리 늦지 않으니 큰 문제 없을거다. 오늘 선데이 마켓에서는 드디어 나의 패션을 완성할 계획이다. 목걸이, 팔찌, 반지 몇 게면 완벽한 간지 티벳 승려 패션이 완성될 듯! 후훗. 

옆자리에 서양 언니가 앉는다. 이 분 뭔가 친화적인 분위기다. 용기를 내서 말을 섞어본다. 물론 부킹의 기본처럼, 시작은 호구조사부터 한다. 

"어디서 오셨나요?"
"홀랜드요"
"아! 히딩크의 나라!"
"누구?"

나름 얘깃거리를 찾았다고 생각해서 신나게 얘기했더니 히딩크를 모른다. 우리나라에서만 유명한 거였나? 그건 아닌거 같은데. 여자분이라 축구에 관심이 없나 보다. 박지성을 물어볼까 하다가 왠지 두유노김치의 스멜이 나서 관둔다. 

뭐 어차피 조금 지나면 내 어깨에 박치기를 시작하겠지. 식사를 안 하셨는지 양해를 구하시더니 뭔가를 드신다. 멀미 날 텐데...

킨들로 '21세기 자본'을 펴본다. 있어 보이려고 하는 건 절대 아니고... 올 때 봤으니 이어서 봐야지. 내용도 은근 흥미진진하다. 


비가 온다. 오는 날 비 오더니 가는 날 비 온다. 그래도 머무는 동안은 한번도 비가 안온게 감사하다. 해변도 아닌데 비 왔음 꼼짝없이 갇혔을거다. 헌데 또 테라스에서 분위기 좋았을거라는 생각도 든다. 

사실 별 생각 없이 책을 폈는데 은근 재미있다. 노트4로 오디오북을 실행시키고 킨들로 읽으니 집중도 잘된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항상 읽고 싶었는데 그와 관련된 얘기도 나와서 흥미롭고, 리카르도의 '가장 유한한 자원은 땅이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불평등은 심해지고 땅을 가진 자만이 부를 축적하게 된다'라는 개념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유행어와도 맞닿는다. 기술 발전 이후 땅의 자원으로서의 활용성이 떨어지다가 최근 들어 다시 부각되고 있다는 기사를 지난주에 이코노미스트에서 본 기억도 난다. 

차가 중간에 잠시 멈춘다. 기사님이 뭐 사러 가시나보다. 옆 옆에 앉아 있던 여성분 급하게 나가신다. 화장실 가시나? 조금 있다 돌아오시더니 입을 닦으면서 토하셨단다. 실제 말미를 하는구나. 난 원래 멀미를 안 해서 그런지 책을 보면서 가도 멀쩡하다. 혼자 다니시는 거 같은데 뭔가 마음이 쓰인다. 봐서 도와드릴일 있으면 챙겨드려야겠다. 

옆의 홀랜드 언니는 팔짱 끼고 자기 시작한다. 발을 쭉 뻗었다가 운전수 손에 닿아서 기사님한테 혼난다. 다리가 길구먼 길어. 난 쭉 들이밀어도 안되지 싶은데. 


비가 와서 운전은 천천히 가신다. 고지대인데다가 비가 와서 그런지 구름을 뚫고 가는 느낌이다. 옆을 보니 안개인지 구름인지 산에 걸쳐있다. 나름 멋있는 광경이다. 비 와서 안전에 문제도 있고 운전하시기에도 피곤하시겠지만 뷰가 나쁘지 않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해본다. 

책을 보다 보니 금방 도착한다. 1장을 끝내자마자 바로 도착이다. 타이밍 죽이는군. 이 책 나름 재미있을 거 같다. 차 안에서 읽으니 집중도 잘되고, 다음에 이동할 때 또 이어서 봐야겠다. 


내려서 짐을 찾고 구시가지로 갈 차편을 구한다. 뚝뚝 등은 모두 100바트를 달라고 한다. 이건 아니지. 좀 돌아다녔다가 다시 돌아오니 30바트에 구시가지 중심까지 데려가 주는 쌩따우를 발견한다. 바로 탄다. 안에 전부 현지인들만 타고 있다. 올 때 타고 왔던 거와 같은 개별적 버스 같은 형태다. 그러고 보면 올때 공항에서 여기까지 100바트는 너무 비싼 거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나저나 화장실을 갖다 올 걸... 내리면 게하 찾으러 돌아다녀야 하는데 큰일이군. 



숙소는 오늘 열리는 선데이 마켓 근처로 잡으려고 한다. 시가지 중심이기도 하고 공항에서도 가까워서 내일 움직이기에도 편하다. 근데 어디로 갈지는 아직 미지수다. 근처에 많은 거 같던데 어떻게든 되겠지 뭐. 


도착했다고 내리라고 한다. 내리니 뭔가 시내 중심인 것은 분명 알겠는데... 어디가 어딘지 찾기가 쉽지 않다. 길 좀 헤매겠다. 일단 감을 좀 잡기 위해 걷는다. 이럴 때 처음부터 지도 백날 보아봐야 뭐가 뭔지 알 수 없다. 발이 좀 고생해야 지도도 눈에 들어오고 방향도 잡힌다.


그나마 삶의 무게가 7.5키로 밖에 안돼서 다행이다. 지도를 보고 한바퀴를 도니 살짝 감이 잡히려고 한다. 이곳에 선데이 마켓이 들어설 예정이라 그런지 뭔가 다들 분주히 준비하는 모습이다. 원래 목표로 했던 그 거리를 드디어 찾아서 들어선다.




괜히 멀리 가봤자 뭐 있나. 그냥 첫 번째 골목으로 들어선다. 오늘 목표는 300바트 이하에서 자는 거이므로 도미토리도 괜찮을 거 같다. 머물면서 즐기는 숙소면 돈을 좀 들이겠지만 이렇게 잠만 자는 곳이면 최대한 아끼는 게 좋다.


첫 번째 골목을 도는데 대부분 350바트를 부른다. 나쁜 가격은 아닌데... 그냥 들어갈까 싶지만 조금 더 가보기로 한다. 아직 다리가 멀쩡한데 이리 금방 결정하는 건 사치다. 첫 골목 탐사를 완료한다. 전부 350바트 이상이고 호텔 같은 곳은 800바트 정도이다. 두 번째 골목을 한번 가보자.

처음으로 300바트 숙소를 발견한다. 근데 뭔가 이상하게 정이 안 간다. 조금 더 가볼까? 어차피 이 구역이 다 선데이 마켓 길에서 가까운지라 어디든 상관은 없다. 걷다가 뭔가 촉이 오는 곳이 또 보여서 들어가서 가격을 물어본다.


주인 아저씨 시크하게 앉아 있다가 내가 물어보니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200 바트." 기쁜 표정을 최대한 안 드러 내려고 노력한다. 이런 대박이! 물어보니 작은 방이고 팬방이란다. 바퀴벌레 우글우글만 아니면 이 가격에 뭐든 좋다. 아저씨가 다소 퉁명스러워 보이지만 경험상 저건 첫인상에서 어쩔 수 없다. 저 첫인상이 그 사람의 전부를 나타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방을 볼 수 있냐고 물어보니 알겠다고 하더니 어디선가 아들이 나타나서 길을 안내한다. 한층 올라가고, 두 층 올라가고, 세 층 올라가고, 결국 4층에 자리 잡는다. 그래... 싼데 4층쯤이야. 문을 열고 들어간다. 오, 의외로 괜찮다. 침대는 역시 두개이고, 화장실도 깔끔하고, 콘센트도 안전해 보인다. 갑자기 떠오르는 마이의 리버사이드...

계약하겠다고 하고 열쇠를 받는다. 아들이 먼저 내려간 후에 아까부터 급했던 화장실부터 처리한다. 지금 시간이 3시 반이다. 근데 방에 있어봤자 뭐하나. 낮잠 자기에는 날씨도 좀 덥고, 차라리 나가서 카페를 가든 탐방을 하는 게 좋겠다. 메인 배낭을 놔두고 세컨드 백만 꺼내 가지고 일층으로 내려온다.


내려오는 길에 keep quiet라고 계속 쓰여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저걸 보니 역설적으로 저녁에 좀 시끄러울까봐 걱정이 된다. 내려와서 사모님한테 wifi 비밀번호를 물어보니 복도에 쓰여 있단다. 아무리 봐도 없언데? 없는데요? 있잖아. 뭐지? keepquiet가 비밀번호였다.

200바트를 기꺼이 지불하고 영수증을 받는다. 악! 여기 겁나 귀여운 강아지가 한마리 있다. 이거 내 사촌동생이 키우는 종인데 엄청 지랄 맞았던 기억이 있다. 얘도 그러려나? 글도 쓸겸, 그리고 아직 시간도 일러서 강아지 옆에 자리 잡고 앉는다.



만져주니 좋아라 한다. 귀여운 것. 사진도 좀 찍고 하다가 이제 글 좀 써볼까 싶어서 손을 떼니... 내 손을 잡더니 자기 머리로 가져간다. 헐, 만져 달라는 거구나. 보아하니 나이가 꽤나 많은 애 같다. 물어보니 7살이란다. 중년은 넘어섰군. 그래 좀 더 만져주지 뭐. 계속 만져주니 뽀뽀하고 난리 났다. 일 년 동안 이빨 한번 안 닦는 우리 애들 뽀뽀도 받아주는데 이 쯤이야.



이제 됐겠지 싶어서 손을 떼는데 또 손을 잡는다. 아이고, 이걸 어쩌지? 애정 결핍이 심한가 보다. 결국 사모님이 와서 데려간다. 아... 나는 괜찮은데. 끌려가는 애 눈망울이 안타깝다. 하긴 눈알이 워낙 커놔서 뭘 해도 안타까워 보이긴 하겠다.

4시다. 생각해보니 오늘 좀 돌아다닐 예정이라 운동화로 갈아 신으려고 했는데 깜박했다. 그렇다고 4층까지 올라가자니 귀찮고... 그냥 이 슬리퍼 신고 다녀야겠다. 예전에 인도에서 다닐 때는 이 슬리퍼 신으면 발바닥이 난리 났는데, 이번에는 초반에 한번 살이 찢어진 거 빼고 괜찮았다. 야... 그래도 이놈 6년을 신었다. 처음 살 때 다들 비싸다고 사기당한 거라고 했었던 기억이 난다. 얼마를 줬든 이리 오래 신으면 사기가 사기가 아니게 되는 법이다. 난 사기를 무로 돌리는 남자!


4시쯤 되어 나가 본다. 여전히 햇살은 뜨겁지만 배가 고파서 일단 뭐라도 먹고 시작해봐야겠다. 메인 거리로 나가자마자 시장의 분위기가 확 느껴진다. 다양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길의 양쪽을 가득 채우고 있다. 동물 모양을 만드는 분도 있길래 가서 보니 고양이가 없다. 고양이가 없다니, 안 사! 


안쪽으로 들어가는 곳이 있길래 들어가니 푸드코드처럼 되어 있다. 여기서 배를 좀 채워야겠다. 일단 망고주스 한번 제대로 먹어보자. 여행 끝나고 한국 가면 항상 망고주스를 한 잔 더 안 먹은 것이 가장 후회된다. 나름 망고마니아이니 즐겨봐야겠다. 



40바트다. 어찌 보면 싼 가격이지만 팟타이 가격을 생각하니 그다지 싸게 안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태국도 음식은 싸지만 술과 음료는 그리 안 싼 듯하다. 주문을 하니 바로 앞에서 망고를 깎아서 얼음과 함께 넣고 즉석에서 갈아서 준다. 그래, 이맛이지!

망고만으로는 부족해 배를 채울 것도 찾아본다. 대략 30-40바트로 가격이 형성되어 있다. 오늘의 목표는 조금씩 자주 먹는 것! 뭔지 모르겠지만 30바트짜리 국을 사본다. 




소 내장과 선지, 어묵 등으로 만든 수프이다. 야채는 셀프이길래 눈치 안보고 고수를 다량 투척한다. 외국인을 배려해서 그런지 식당을 가면 항상 고수를 충분히 안 넣어서 이 향에 굶주려 있었다. 자리를 잡고 한입 떠먹어본다. 

내 스타일이군. 근데 나한테 맛 없는 게 있던가. 금방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망고 주스를 들고 그늘로 가서 앉는다. 여기서 좀 쉬다가 큰 길로 다시 나가 봐야겠다. 여기 약간 인사동 같은 느낌이 든다. 

6일이 지나고 이제 좀 여유를 즐기게 되었다. 아무 생각도 안하기, 이게 쉬워보이지만 막상 쉽지 않다. 우리는 항상 뭔가를 생각하고, 계획을 잡고 , 미래를 꿈꾸고 있다. 문득 현재를 산다는 것은 아무런 생각을 안하는 거에서 출발하는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 무념의 시간이 있어야 미래의 계획도 할 수 있다. 여백이 그림을 돋보이게 하고 무음이 음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법이다. 


5시. 이제 슬슬 나가볼까. 오늘의 목표는 패션의 완성! 일단 눈이 부시니 선글라스부터 찾아본다. 아저씨가 250바트를 부르길래 흥정해서 200바트에 겟! 싸게 샀다고 좋아했는데 돌아서자마자 뭔가 비싼거 같다는 느낌에 사로 잡힌다. 6000원이면 우리나라 명동 거리에서도 살 수 있지 않나? 아 난 흥정에 재능이 없나 보다. 


자 이제 길을 한번 걸어가 볼까? 그래도 선글라스를 쓰고 가니 뭔가 더 멋있어진 거 같다. 내가 내 자신을 볼 수 없다는 건 참 축복이다. 당당히 어깨를 피고, 셀카도 찍어가면서 메인 길로 나서본다.



아까보다 사람도 더 많아진 듯하고 먹을 것도 많아졌다. 우산을 펴놓고 그 그늘에서 노래 부르는 청년들, 수 많은 마사지샵들, 발로 드럼 치면서 노래하는 아저씨, 어찌 보면 우리의 명동거리를 연상시킨다. 



아까 먹은 걸로 인해서 어느 정도 배는 부르지만 버틸 수 없는 유혹이 너무 많다. 조금 더 먹어볼까나. 일단 우유튀김이라는 음식명이 특이해서 하나 사먹어본다. 20바트, 저렴하다. 받아서 먹어보니 약간 푸딩 맛이 난다. 꽤나 맛있다.


엄청난 크기의 팟타이를 제조하는 아저씨도 보인다. 하지만 이미 배불러서 먹어본 음식에는 눈길이 안 간다. 그러다 보니 어묵 같이 생긴, 처음 보는 음식에 또 혹한다. 게다가 가격도 10바트다. 이건 함 먹어보자. 매운 소스를 같이 주냐고 묻길래 당연히 달라고 한다.



먹어보니 그냥 어묵이다. 실망이다. 이렇게 내 배의 공간은 또 한층 줄어들었다. 지나가는데 이번에는 어떤 노래하는 꼬마의 목소리가 내 시선을 잡는다. 노래를 엄청 잘하는 건 아니지만 뭔가 목소리에 묘한 울림이 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번 봐야겠다.


원래는 목걸이, 팔찌 등을 살 생각이었다. 이유는 패션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하지만 보다 보니 못 사겠다. 필수품이 아닌 건 그 물건에 의미가 담겨 있지 않으면 사는 게 뭔가 사치처럼 느껴진다. 한 물건은 얼마를 주고 샀냐보다는 어떤 추억이 담겨 있냐가 그것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믿는다. 그냥 스킵하다. 미얀마 가면 뭔가 의미 있는 액세서리를 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아, 엽서 발견! 그래, 치앙마이에서의 엽서를 잊을뻔했다. 20바트에 우표 15바트해서 35바트다. 빠이보다 비싸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 옆에 앉아서 노여사한테 보낼 엽서를 작성한다. 이건 그냥 집으로 보낼게.


내가 앉아서 엽서를 쓰고 있으니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모여든다. 사람은 참 단순하다. 남이 하면 따라하고 싶어 진다. 고객을 이리 모았는데, 이거 커미션 챙겨야 하는 거 아냐? 근데 중국 사람들은 내가 쓰는 걸 그냥 대놓고 옆에서 뚫어지게 쳐다본다. 프라이버시라는 개념이 없는 걸까?



또 길을 나선다. 아직은 다리도 괜찮고 체력도 괜찮다. 멀리 구름이 예쁘게 꽃을 피고 있고 그 아래 사원이 하나 보인다. 저기까지만 찍고 오자. 어차피 그냥 산책한다 생각하고 가는 거라 느긋하게 구경하면서 길을 걷는다.



갑자기 국가인듯한 노래가 울려 퍼지더니 모든 사람들이 걷던 것을 멈춘다. 이런 게 여기는 아직도 있구나. 요즘애들은 우리나라에도 이런 게 있었다고 하면 안 믿을거다. 걸어가다 애국가 나오면 가슴에 손을 얹고 멈춰 서 있었어야 했던 시절이 생각난다. 아 나이 인증이군.


이번에는 아이스크림의 유혹에 넘어간다. 얘는 35바트이다. 이렇게 찔끔찔끔 먹다가 그냥 스테이크 값 하나 나오겠다. 그래도 안 먹을 수가 없다. 맛있어 보이는 걸. 요구르트 뭐시기로 하나 사서 입에 물고 또 다른 유혹을 찾아 걸어간다.


드디어 아까 보이던 사원에 도착한다. 한 시간 정도 걸린 건가? 그러고 보니 난 태국 와서 사원을 한번도 안 갔다. 종교를 알아야 그 나라를 이해하는 법인데, 너무 무심했나. 태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이번에는 그다지 신경 안 쓰고 왔다. 여행자로서 그리 좋은 자세는 아니다다. 미얀마로 내일 모레 들어갈 때는 비행기에서라도 그 나라에 대한 공부를 좀 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어제부터 계속 망고밥이라고 써 있는게 눈에 띄는데 이게 뭔지를 모르겠다. 망고를 무슨 밥이랑 먹는다는 겨. 그게 맛있나? 계속 거부했는데 또 나오니 한번 먹어보고 싶어 진다. 배는 진짜 부른데... 이건 맛있어 보인다기 보다는 궁금해서 하나를 산다. 40바트이다. 망고가 들어가면 은근 음식들이 싸지 않다.




망고 하나를 넣기 전 사장님이 작게 잘라서 자기가 먹어본다. 기미상궁처럼, 상했는지 먼저 확인해보나 보다. 이 행동 하나에 신뢰가 확 간다. 역시 보이는 게 중요하다. 그 생망고를 슬라이스 내서 그릇에 담고, 밥을 넣고, 시리얼 같은 과자를 올린 후에 연유를 듬뿍 뿌린다. 오늘 깨달은 건데 태국 디저트는 연유의 향연이다. 이거 칼로리 장난 아니겠다.


걸어가면서 먹어본다. 나쁘진 않은데 그렇다고 이렇게 많이 팔정도로 맛있지도 않다. 왠지 지금 뭔가 트렌드인게 아닌가 싶다. 작년 한국에서 유행했던 벌꿀 아이스크림이 생각난다. 소프트리가 가로수길에서 유행시킨 후 개나 소나 따라해서 결국 사라진 비운의 디저트. 따라하는 공급자도 문제지만 하나가 유행하면 그것만 먹는 소비자도 문제다. 여름이면 빙수만 판다고 뭐라 하지만 빙수를 팔아야 손님이 온다는 게 더 근원적인 이유다. 우리나라는 남들이 다 하는걸 하지 않을 시에 불안감을 느끼기에 트렌드, 붐이 비정상적으로 쏠린다. 어른들이 네이버가 '인터넷'인 줄 아는 것도 마찬가지다. 스타트업이 성공하기에 너무 어려운 환경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스타트업만 아니라 모든 사업이 힘들다. 대기업 자본이 아니면 자리 잡는게 쉽지 않다. 공급자는 자기의 개성있는 콘텐츠를 생성하고, 소비자는 자기 소신껏 소비를 하는 세상이 올 수 있을까?



걷다 보니 다시 아까 꼬마 여자애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다. 얘 목소리, 진짜 울림이 있다.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려고 한다. 게다가 할아버지랑 아이 둘 다 너무 행복해 보인다. 억지로 끌려나온 게 아닌, 아이가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하긴 안 그러면 이런 감성이 나올 수 없겠지. 오늘 지출이 과했지만 이 정도 감동을 받고서 그냥 가는 건 어찌 보면 공짜 근성이다. 작지만 20바트를 넣는다. 무료 게임을 하더라도 양심적으로 한번쯤은 콘텐츠 결제를 하자!

길을 내려오다 보니 해가 지기 시작한다. 사람은 그새 훨씬 많아졌다. 아까의 두배는 되는 듯하다. 이제는 다리도 아프고 지친다. 그만 들어갈 때가 되었나 보다. 숙소에 돌아갈까 하는데 옆 공원에 사람들이 풀밭에 앉아있는 게 보인다. 사원인가? 나도 같이 들어가서 풀밭에 앉아서 밀린 글을 적어본다. 



헌데 여기 벌레가 너무 많다. 풀밭이니 당연한가? 조금 앉아있다 모기를 두어방 물린 후에 그냥 일어난다. 여기는 아니다.

다시 길을 나선다. 다 온 거 같은데 숙소가 있는 골목이 안 보인다. 왜 이리 피곤하지. 사람들 틈에 치여 가니 기운이 없고 힘이 든다. 골목을 못 찾고 지나쳐서 다음 골목으로 잘못 들어간다. 결국 아까 처음 올 때처럼 뒤로 돌아서 내 게스트하우스로 향한다.

그래도 사람을 벗어나서 골목으로 들어서니 좀 살 거 같다. 육체도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 더 피곤했나 보다. 사람들이 많은 곳은 뭔가 기를 빨아가는 느낌이다. 특히 막판에 길에서 춤을 추면서 학비를 구하는 아이들, 꼬마가 훌라후프를 돌리면서 자선을 받게 하고 지켜보는 부모, 음악을 하면서 돈을 원하는 할아버지, 다 뭔가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만들었다.

나는 자본주의가 싫다. 자본주의는 최선책이라기보다는 차악이라고 얘기하는 게 맞다고 본다. 다른 대체 이데올로기가 없으니까 존재할뿐이다. 그렇다고 마르크스처럼 검증도 안되고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유토피아적인 공산주의로 가자는 건 절대 아니다.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사람들이 돈을 위해서 하루를 사는 게 아니라 본인을 위해서 그 정말 소중한 하루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게 근데 당연하게도 참 어려운 얘기라는 걸 안다.

숙소로 들어서니 기운이 다 빠졌다. 빠이에서의 빠이린 사장님이나 그 앞에 갔던 식당의 어머니는 뭔가 돈을 위해서 일한다는 생각이 들게 하지 않았다. 사람을 좋아하고 일을 좋아한다는 느낌이어서 나도 마음을 주게 되었나 보다. 하지만 대도시로 나오니 분위기가 다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자꾸 오지로 떠나나 보다. 자기들이 하지 못하는걸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하여 말이다.

빨리 미얀마로 떠나고 싶다. 내일은 또 방콕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는데, 뭘 해야 할지... 카오산은 두 번 가고 싶은 곳은 아니고, 차라리 어떤 공원 같은데서 책이나 볼까 싶기도 하다. 오늘 처럼 지친 하루를 또 보내고 싶지는 않다.

아까 선글라스 살 때만 해도 기분이 좋았는데... 뭐 내일은 또 다른 즐거움이 있겠지. 누워서 책이나 보다 자야겠다. 근데 왜 방에 마실 물이 없는 거지? 물 가지러 4층에서 1층까지 정녕 내려가야 하나? 좀 버텨볼까? 에잇.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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