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잇티레터

'Deaf' 와 'deaf'의 차이

vol16. 멘탈모델 그리고 Deaf&deaf

by 향기찾기

지난호에서 청각장애가 비가시적인 장애이기 때문에, 청각장애인들이 스스로를 장애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부분을 보고 청각장애 아이덴티티에 관한 궁금증이 생겼는데요. 그래서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다 HearingLikeMe.com라는 청각 손실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룬 언론매체를 발견했어요. 여기서 <Why lower case “d” deaf culture matters>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글을 발견해 그 내용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Deaf(대문자 D)’란?

미국 청각장애 문화에서 ‘Deaf’(대문자 D)는 일반적으로 데프 커뮤니티(Deaf Community)’의 일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고 해요. 전통적으로 ‘Deaf’라는 정체성은 수어(수화)를 주된 의사소통 방식으로 사용하고, 수어 중심의 학교 및 프로그램에서 교육받으며, 문화적으로 데프 커뮤니티의 일원임을 자각하는 사람들입니다.


‘deaf(소문자 d)’란?

‘청각장애’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청력 손실 정도와 그 사람이 청각 장애의 가족력을 갖고 태어났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해요. 이 글에서는 크게 3가지 케이스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1) 가족력에 의해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들

우선, 이들은 대체로 ‘대문자 D’ Deaf로 정체성을 확립합니다. 가족 구성원이 이미 수어를 사용하고, 교육, 가치관, 신념 등을 통해 이미 청각장애 공동체(데프 커뮤니티)에 뿌리를 두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인데요. 이러한 사람들은 종종 ‘데프 엘리트(Deaf Elites)’라고 불리기도 하며, 여러 세대에 걸쳐 청각장애를 가진 가족을 둔 경우가 많습니다.


2) 수어와 구화를 함께 사용하는 사람들

청각장애 가족이 있지만 수어와 음성 언어를 함께 사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보통 구화 교육을 받으며, 수어와 음성언어를 병행하는 의사소통 방식을 기반으로 한 ‘말하는 청각장애인(Speaking Deaf)’ 커뮤니티를 형성하기도 합니다.


3) 후천적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들

나이가 들면서 또는 질병, 사고 등으로 청력을 잃은 경우 그리고 가족 중 청각 장애인이 없는 사람들은 종종 ‘소문자d’ deaf 또는 ‘난청(hard of hearing)’으로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미국 국립 난청 및 기타 의사소통 장애 연구소(NIDCD)에 따르면, 청각장애를 가진 아기의 90% 이상이 청인 부모에게서 태어난다고 해요. 이들은 청인 가정에서 수어와 음성 언어를 병행해서 사용하거나, 보청기, 청각 훈련, 독화(입술 읽기)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17256_2656558_1739792129198790107.png 출처: HearingLikeMe 홈페이지

소문자 “d”의 사라진 정체성과 그에 따른 문제

Hearing Health Foundation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약 5억 명이 청력 손실을 가지고 있으며, 64세 이상의 사람 중 3분의 1, 75세 이상의 절반이 청력 손실을 겪고 있다고 해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어린이의 경우 1,000명 중 1~3명이 청력 손실을 가지고 있다고 추정합니다.


그러나 종종 청력 손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거나 의료적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신생아 청력 검사 이후, 나이가 들면서 청력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죠. 예를 들어, 한쪽 귀의 청력을 잃은 사람들은 “한쪽 귀로 들을 수 있으니 괜찮다”는 말을 듣는 경우가 있기도 하며 경제적 문제나 개인적인 결정으로 보청기 등 청력 보조 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2020년 SeniorLiving.org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660만 명이 청력 손실을 겪고 있지만 보청기를 사용하지 않으며, 그 이유로 비용 문제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를 꼽았습니다.


이처럼 기술 사용 여부, 접근성 부족, 교육 문제, 경제적 이유 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청력 손실을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죠. 정체성을 갖는 것은 소속감을 느끼고 자신감을 얻는 데 중요합니다. 청력 손실로 인해 사회적 역할에서 소외되거나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은 상실감과 자존감 저하를 경험하게 되며, 청력 손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 우울증, 사회적 고립, 외로움을 겪게 된다고 해요. 한 연구에 따르면 청력 손실을 방치하는 경우 치매, 뇌 구조 변화, 인지 부하 증가 등의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청력 손실에 대한 정체성을 갖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어요.


통합된 “deaf” 공동체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

글에서 인상깊었던 부분은 청각 보조 기기에 대한 청각 장애인들의 견해 차이였는데요. 일부 청각 장애인들은 보청기나 인공 와우 등 청력 보조 기기 사용에 반대하며, 청력 보조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청각 장애인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가지기도 한다고 해요. 또한 부모들은 자녀에게 보청기나 인공 와우를 제공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데, 일부 ‘Deaf’ 공동체는 아기에게 인공 와우를 시술하는 것에 반대하며, 당사자가 성장 후 직접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Deaf 학교나 대학에서도 일부 학생들은 수화와 말하기를 병행하며 청력 보조 기술을 사용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요. Netflix 다큐멘터리 Deaf U의 한 출연자는 말하면서 수화를 했다는 이유로 “충분히 ‘deaf’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고 해요.


저자는 통합된 “deaf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서 모든 개인이 각자의 필요를 인정받을 권리가 있다는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모든 수준의 청력 손실을 받아들이고 각자가 자신의 방식대로 청력 손실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도 말했어요. HearingLikeMe.com은 다양한 청각 손실에 포용적인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청력 기술 제조업체인 Phonak의 지원을 받아 “Phonak hEARo” 프로그램을 통해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기도 해요.


d/Deaf 가시성 부족 문제

저자는 청각 장애를 가진 유명인들이 자신의 청각 손실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해 언급하며 근본적인 문제로 할리우드와 다른 산업 전반에서의 접근성 부족과 포용성 부족을 꼽았는데요. 대중매체에서 장애가 배제되는 것은 단순히 유명인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더 넓은 사회에서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되고 다양한 청각장애 경험을 보여줄 기회가 사라지는 문제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죠. 다양한 청력 손실 수준과 그에 따른 정체성을 대중문화에서 보여주지 않는다면, 개인의 차이를 인정하는 기회를 잃게 되고,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사회에서 자신과 비슷한 롤모델을 찾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게 됩니다.


글 속 한 인터뷰이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사람들은 청각 장애인(Deaf)과 청력 보유자(hearing)를 흑백처럼 구분하지만, 저는 그 중간 지대에 속해 있습니다". 이 회색지대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 것 같아요.


어떠셨어요?

흥미로운 기사들과 다양한 청각장애 스펙트럼에 놓인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볼 수 있는 매체를 발견한 게 의미있는 소득이었어요. 기사 내용에서 스스로의 청각 장애를 잘 받아들이고 인지하며 정체성을 형성하지 않는 경우 멘탈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이 항목에서 더 나아가 청각손실이 멘탈 헬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룬 글이 있어서 이 글을 확장해서 공부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장애 정체성'은 무엇에 영향을 받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