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생일(ver. 쑤)

61년생 ISFJ 엄마와 ESFJ 88년생 딸의 동상이몽 일기

by ssoocation

1988년 7월 20일, 막상 나는 그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진짜 내가 그 날 태어났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엄마아빠가 나의 생일을 7월 19일이라고 알려줬다면, 내 출생신고를 2월 7일에 했다면 그날이 곧 내 생일로 알고 살았을 것이다. 엄마아빠가 나를 처음부터 속이지 않았길 바랄 수 밖에.


엄마아빠가 나를 속이고자 했다면 생일을 여름이 아닌 가을 9월이나 10월 생으로 만들었겠지 싶다. 나름 내 생일에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는 걸 꽤 크고 깨달았다. 엄마아빠의 결혼기념일이 87년 11월이였고 나의 생일이 88년 7월인 즉 나는 팔삭둥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짐작에 쐐기를 박았던 것인 바로 아빠였다.


우리 가족이 부산에서 서울로 급하게 비행기를 탈 일이 있었다. 나는 비행기를 타는 걸 매우 무서워 했는데 그 때 아빠가 나의 긴장을 풀어준답시고 "너 너희 엄마랑 똑같다. 너희 엄마가 신혼여행 제주도 갈 때 비행기 타기 무섭다고 그 때 너도 배안에 있었는...!?!?!?!!?" 뭐 이런 맥락으로 TMI를 방출한 것이다. 그때 앗차 싶던 아빠와 흠칫 놀라서 당황하던 엄마의 모습이 너무 웃겨서 깔깔 거렸던 기억이 있다. 그 때 당시 속도위반이 조금씩 공론화(?) 되던 시기라 우리 엄마아빠가 속도위반계의 '얼리어답터' , '트렌드세터' 였다고 근사한 타이틀까지 붙였다. 엄마아빠는 결혼을 약속 한 이후에 그리 되었다고 괜찮은 거라고 나름 합리화하던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고 우리 엄마 아빠에게도 결혼식날까지는 기다릴 수 없었던(!) 뜨거웠던 청춘, 사랑의 날들이 있었다는게 신기하기도 했다.


내가 상상하는 1988년 7월 20일의 이미지가 있다. 바로 엄마가 비가 오는데 서둘러 택시 뒷자석에 몸을 던지며 '병원 이요' 하는 모습이다. 출산의 과정을 더 알게된 지금 엄마가 나를 낳으러 간 그 날이 바로 내가 태어난 날일지 진통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갔던 날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비가 오는 날 태어났고 아빠가 출근했던 중에 엄마가 병원에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어서 아마 저런 이미지를 상상하고 있었나보다. 엄마도 아빠도 그날을 기점으로 수현이 엄마, 수현이 아빠로 다시 태어난 날이였는데 그때 엄마 나이 27, 아빠 나이 28임을 생각하면 애가 애를 낳는 격이 아니였을까 싶다.


7월 20일은 나의 생일만 있는 날이 아니였다. 이소룡이 죽은 날이였고 god 박준형의 생일이고 했으며 인류가 처음으로 달에 착륙한 날이였다. 특히 73년 7월 20일이 이소룡이 죽은 날이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기분이 묘했다. 누군가는 나의 탄생과 함께 죽음을 맞이 한게, 나의 생일이 누군가의 장날일 수 있다는게 삶과 죽음은 정말 가깝게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이렇게 이 일기를 쓰고 있는 순간 누군가는 축복을 받으며 새롭게 태어나고 있을 것이며 누군가는 마지막 숨을 쉬고 있을텐데. 나의 마지막도 생일 같았으면 좋겠다. 엄마아빠의 기쁨으로, 건강하게 태어난 것만으로도 따뜻한 환대를 받았듯,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애도와 축복을 받으며 건강하게 마무리 지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태어날 때 나의 시작에 대한 기억과 의식이 없었듯, 갈 때도 나의 마지막을 내가 의식하지 않고 홀가분히 갈 수 있다면 죽음이 조금은 덜 무서울 것 같다.




ㄴRE) From 옥

따님 정말 글 잘쓴다. 맨 끝에 글 내가 정말 생각했던 글이다.

ㄴRE) From 쑤

엄마에게 칭찬받으니 좋네?ㅋㅋㅋ

ㄴRE) From 동

출생의 비밀 ㅎㅎ 어쨋든 아빠의 딸로 태어나줘서 너무 고맙고 이뻐 죽겠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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