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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글쟁이 Dec 19. 2023

눈(雪) 위에 새긴 아버지의 마음

눈 내리는 날 아버지

변덕 심한 아이처럼 요 며칠 날씨 한 번 변화무쌍하다. 

따뜻하다~ 비 내리고~ 추워지더니~ 오늘은 눈이 내린다. 

요란했던 올해 첫눈과 달리 오늘은 소리도 없이 종일 눈이 내린다.

눈송이가 가벼운가 보다. 봄날 살랑~ 살랑~ 부유하는 민들레 홀씨처럼

자유롭게 부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이렇게 눈이 내리는 날이면 아무 일도 없으면서 괜히 설렌다. ^ ^ 

눈 내리는 것을 보며 걱정이 앞서면 어른이고,

행복해하면 아이라고 하던데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색이 무채색으로 변하고 눈부시게 반짝이는 설경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어린아이와 같은 탄성이 흘러나올 테니까 말이다. 

어린 시절, 분명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소싯적(?) 눈싸움, 눈썰매, 눈사람 만들기 등등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싶다.

눈은 동심 또는 과거의 기억으로 연결해 주는 것 같다. 

결혼 전 꽤 오랫동안 우리 가족은 상도동 달동네(산동네)에서 살았다.

번지수 앞에 '산(산 65-00번지)'이 껌처럼 붙여 다녔던 곳. 

달과 가까운_달동네,

하늘과 가장 가까운_달동네...... 는 개뿔!! ^ ^ 

여름엔 무지하게 덥고, 겨울엔 오지게 추웠으며

올라갈 땐 계절과 상관없이 이마와 겨드랑이에 땀이 맺혔고,

내려올 땐 위험해서 두 다리에 힘을 단단히 주어야 했다. 

집으로 향해 올라가는 좁은 골목에 서서

꼭대기에 위치한 집 하늘색 기외를 바라보고 있으면

좌절과 절망이 느껴졌다. 

그러다 또, 밤이 되어

하늘에 별이 빛나고, 발아래 도시에 불빛들을 보면

밑도 끝도 없는 희망을 느꼈다.

아버지는 알고 있었을까? 

그때, 내가 아버지를 많이 원망하고 미워했다는 것을...

눈이 내리는 날이면 새벽의, 아버지의, 등이 생각난다.

말 한마디 없으셨지만 나를 향해 많은 말을 전하던 아버지의 등이...

눈이 내리는 날이면 아버지는 평소 보다 한 시간 먼저 일어나셨는데,

우리 대문을 지나 골목 꼭대기부터 골목 아래 평지까지

연탄재를 곱게 빻아 흩뿌려 놓으셨다. 

그 길을 밟고 미화원아저씨들이 집집마다 쓰레기를 수거하고

밤샘 당직을 끝낸 옆 방 아저씨가 집에 돌아왔고

내가 한 번도 미끄러지지 않고 다녔다.

(정작 당신은 엉덩방아 찧어 며칠을 돌아누우며 끙끙 대셨다) 


이제 나는 버스정류장과 가까운 평지에 살고 있지만

눈 내리는 날이면 쌓인 눈을 보며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다.

쌓인 눈 위에 자식을 향한 걱정과 사랑을 새겨 놓는

아버지의 등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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