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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글쟁이 Aug 26. 2022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너라는 선물>

#내 인생 최고의 선택

 엄마도 모르는 사이에 엄마의 몸에 뿌리를 내린 사과씨만 한 너의 존재를 알게 된 그날을 엄마는 절대 잊을 수 없을 거야.


 추석을 하루 앞둔 그날은 차례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할머니를 큰할머니 댁에 모셔다 드리기 위해 아빠와 엄마가 함께 나서는 길, 직진 차선으로 주행하고 있던 우리 차를 동네 어귀에서 나오는 차가 일시 정차 없이 무리하게 합류를 시도하는 바람에 접촉사고가 나고 말았어. 정말 사고는 한 순간에 벌어졌단다. 

아빠는 핸들을 오른쪽으로 힘껏 꺾었고 그나마 피해를 많이 줄일 수 있었다지만, 운전석 문짝은 구겨진 도화지 같았고 상대방 차량은 폐차를(새 차였다는데...) 해야 할 정도로 꽤 큰 사고였어.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삶에서 처음 겪는 사건이라 입으로는 자신의 안위보단 서로의 안위를 묻고 또 되묻는 몹시 어수선한 상황이었어.


 더 정신없는 응급실에 도착해서 검사와 간단한 처지를 받고 대기하던 중, 엄마 소유의 자궁에 아무런 의사표시 없이 무단으로 점유한 너의 존재를 알게 되었어. 엄만 손에 듣고 있던 가방을 놓쳤고 가해차량 운전자는 '인생 망했다'는 표정을 하고 응급실 바닥에 주저 않았던 것 같아.(이런 씬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그건 절대 연출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을 거야)


 그때 엄마의 기분을 요즘식으로 표현하자면 '갑자기?'가 딱 맞을 것 같아. 정말 이렇게 갑자기??

결혼한 지 햇수로 2년이 다 되어가는 부부 사이에 전혀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기에 당시 놀라고 당황했을 엄마를 이해해 줄 수 있을까? 당시 엄만 현재에서 한 계단 올라서기 위한 공부를 이제 막 시작하는 상황이었고, 사실 무엇보다 엄마 삶에서는 비어 있던 '엄마'라는 역할에 대해 체험한 바가 없었기에 두려운 마음이 상당히 컸었단다. 




 인간이 두려움을 느끼는 데에는 '모름'에서 오는 것도 있단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패'라는 말이 있듯 상대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있고 잘 알고 있다면 어떤 것이 마주하든 무섭지 않은 거거든.

엄마는 선택을 하려고 했어, 그리고 선택을 했지. 엄마가 되기로 말이야.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수놓은 배넷저고리와 보행기 신발>


 엄마의 품에 있으면서도 넌 여러 번 엄마를 놀라게 했었지. 매일매일 엄마의 품에서 나무처럼 쑥쑥 자라는 동안 엄마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쑥쑥 잘도 만들어냈지. 

 어느 날, 병원에서 전화가 왔단다. 그땐 근무 중이기도 했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수신거절을 했었단다. 그렇게 이틀이란 시간이 지나고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병원 전화를 받게 되었어. 

 

 간호사의 차분한 목소리... 그때 '아! 뭔가 좋은 소식은 아니겠구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단다. 1차 기형아 기형아 검사 중 의심되는 항목(다훈증후군)이 있으니 급히 대학병원으로 전원 해서 양수 검사를 해 봐야 한다는구나. 이건 또 무슨 상황일까? 다음 날, 엄마와 아빠는 산전검사를 하던 병원에 나란히 불려 와 의사 선생님이 써 주는 의뢰서를 들고 바로 지정해 준 대학병원으로 가야만 했어. 




 그렇게 도착한 대학병원에서 몇 시간을 대기하다 수술방 같은 곳으로 끌려가 침대에 누워 병원 천장을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 안 그래도 겁이 많은 엄마였는데 혼자 어둡고 싸늘한 방으로 끌려가서인지 낯설고 차갑게 보였던 의료기구들 때문였는지... 아니면 정말 너에게 유전적으로 어떤 문제 있는 것인지... 그때의 감정을 생각해 보면 이런 복합적인 마음이 한꺼번에 몰려와서였겠지...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1차 검사에서 분류된 산모 중 2차에서 양수검사를 해 보면 0.2% 정도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해요. 오히려 1차 검사에서 문제 되지 않았던 아이들이 나중에 문제로 발견되는 경우가 왕왕 있지요. 행여 검사상 문제가 발견이 되면 그때 '선택'을 해도 되니 미뤄 걱정하지 마세요. 이렇게 긴장하면 아이에게도 안 좋아요. 엄마의 감정을 아이도 다 느끼거든요." 


 날카로운 눈을 모니터에 꽂고 세상 부드러운 목소리로 엄마를 달래며 교수님은 자기 손가락보다 더 긴 바늘을 통해 양수를 뽑아냈어. 그렇게 채취한 양수에 태아 세포를 분리하고 배양 배지에서 성장시킨 다음 현미경으로 염색체를 검사한다고 했어. 그 기간이 21일...


 검사 결과가 나오는 그 21일은 마치 '선택'을 위한 카운트다운 같았어. 검사 결과에 따라 엄마 아빤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하루하루가 고통의 나날이었지. '아닐 거야. 절대 그럴 일 없어'라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론 자꾸만 절망스러운 그림들이 그려지곤 했었지. 널 내 속에 품고 있으면서도 너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던 엄만 무서웠단다. 엄만 위로보단 흔들리지 않는 격려와 위로가 필요했어. 하지만 아빠는 물론이고 가족과 지인들은 모두 "1차 검사에서 그러면 2차 검사해도 똑같을 거야. 아이가 더 자라기 전에 그냥 포기하는 쪽으로 선택하는 게 나을 거야. 아이는 또 가지면 되잖아." 아빠도 할머니도 종합병원 임상병리과에 있다는 아빠의 지인도 모두 같은 말을 하더라.  


 그러던 어느 날, 가장 늦게 소식을 전해 들은 외삼촌이(외삼촌은 당시 복학생이었단다) 전화를 했었어. '몸은 좀 어떠니? 입덧은 해? 며칠 전 꿈에서 내가 너한테 빨간색 운동화를 줬는데 이런 것도 태몽이 맞다면 아마도 딸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안 딸이 귀한데 경사네....... 넌 어떻게 하고 싶어?' 외삼촌의 기습 질문에 엄만 대답하지 못했어.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외삼촌이 먼저 말을 꺼내더라 '네 선택이 제일 중요해. 다른 사람 말을 왜 듣냐? 지금 그 아이가 유전적으로 질병이 있든 없든 네 아이니까 네가 선택하면 되는 거야. 만약에 그 아이가 다운증후군이라서 그래서 매부나 시댁 어르신들이 거부한다면 오빠가 오빠 호적에 올려 줄게. 그러니까 걱정 말고 네 선택대로 해.' 외삼촌의 말을 듣고 엄만 흔들리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단다. 


 21일이 지나고 아빠 회사로 팩스로 병원에서 보낸 검사결과지(정말 철저하게 성 염색체는 가리고 ^^)를 통해 넌 건강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지. 외삼촌의 태몽과는 다르게 넌 건강한 사내아이였고 세상 손재주 없던 엄마가 눈물로 한 땀 한 땀 수놓으며 이 옷이 처음이자 마지막 옷이면 어쩌나 하는 배냇저고리도 더 이상 작아 입힐 수 없을 때까지 입힐 수 있었지.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하루에도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 돼. 아주 오래전 예능프로그램 중 'TV 인생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주인공이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고 고민하던 주인공이 "그래 결심했어.'라는 멘트와 함께 선택한 루트의 전개를 하나씩 확인하게 되는 거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어느 쪽도 선뜻 선택할 수 없을 거야. 그건 아마도 내가 한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내가 선택하지 않은 다른 쪽 선택이 더 나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일 거야.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21일 동안의 엄마의 마음이 딱 이러했으니까.


 "최고의 선택은 바로 네가 하는 것이란다! 엄마는 언제나 너를  응원해!"  


 어떤 선택을 놓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체 흔들리고 있다면 무엇보다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바로 너의 기준이란다. 어느 쪽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때론 어려움이 때론 기쁨과 영광이 있겠지만, 네가 한 선택에 좌절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책임질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최고의 선택이란다. 그리고 너의 선택을 언제나 응원하고 지지하는 첫 번째 사람은 바로 엄마라는 것을 잊지 마! 


 

엄마가 지어준 배냇저고리를 입던 뽀송한 아가였던 네가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 어느새 군복을 입는 청년이 된 모습을 보고 엄마 괜히 심술이 나서 아빠 엉덩이를 꼬집으며 말했단다.


"저렇게 건강하고 멋진 아이를 그때 포기했더라면 어쩔 뻔했어? 당신 죽을 때까지 길환이한테 사과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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