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톨릭 국가의 최대 장점은 긴 휴가가 많다는 것!
놀랍게도! 벌써 해외 주재원 파견을 온지 9개월이 흘렀다.
브런치에도 첫 김치를 담그고 감격했던 순간을 기록해두었었는데 벌써 여러번의 김치를 담가먹었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
뭐든 처음이 있고 그 처음은 잘 잊히지 않는다.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새긴 것이라면 더더욱.
다른 국가로 떠나지 않고 주재국에 남아있었던 부활절 길고 긴 휴일,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아주 오래된 것들, 오래된 사람들과 만났던 시간이었다.
연휴 첫 날, 먼지가 쌓여가던 우쿨렐레를 집어 들었다.
대학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들과 우쿨렐레 공연도 하고 사실 파견 오기 전에도 역시 어쩌다 보니 기시감 그 자체였던 공연을 하고 왔었다.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똑같은 사람들과, 똑같은 곡, 똑같은 공연을 했지만 찝찝함만 잔뜩 남았던 그 공연. 친구는 그 일로 소설을 쓰고 있는데, 너무 너무 궁금할 뿐이다. 재현해보려고 했지만 절대 그 때와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없었던 그 공연.
여튼 그 공연 이후 우쿨렐레를 "차차" 잘 치는게 아니라, 진짜 더 잘 쳐보고 싶어서 이걸 주재국으로 가져왔었다. 다만, 예상과 달리 악기를 들 시간없이 바삐 일하느라 5개월간 방치되어 있었지만..
여튼 연휴 첫날 오랜만에 친 우쿨렐레. 손가락이 기억하고 있는 여러 코드들은 익숙했으나, 처음 도전해보는 아르페지오에 이내 왼쪽 손가락에는 지릿한 아픔과 오른쪽은 묵직한 근육통이 느껴졌다. 익숙한 아픔. 하하. 나아지지 않은 실력이었다.
1박 2일로 과테말라 안티구아라는 도시에도 다녀왔다. 안티구아는 1979년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곳. 스페인 식민지 시절 옛 중미의 수도였던 아주아주 오래된 곳. Casa Magnolia라는 곳에서 머물렀는데 정말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우리는 Santa Semana 주의 성수기 중의 성수기에 묵었던 터라 80불 정도였지만, 평소에는 50불 내외로 예약가능한 듯 하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곳이 가성비까지 좋을까? 일단 호텔이 아니라서 참 좋았고, 스페인어로 집이 Casa이듯이 정말 오래된 집이었다.
창문을 열면 하늘이 보이고, 돌과 타일로 예쁘게 된 화장실, 오래된 담요는 또 얼마나 마야틱(?)한지. 여행자 감성을 참 잘 담아놓은 곳이었다. 이런 집을 한국에 지어서, 오래오래 살 순 없을까라는 여행지스러운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그러고보니 과테말라의 옛 집은 한옥을 닮았다. 안에 중정이 있는 구조. 창문 밖으로 보이던 하늘이 너무 푸르러서 의자에 앉아 하늘을 보다 꾸벅 꾸벅 졸았다. 테라스에서는 고양이랑 햇볕 받으며 또 잠시 졸았다. 오랜만에 야외에서 햇볕을 많이 쬐서일까? 엄청 졸았던 것 같다.
과테말라에서는 1903년에 연 와인집에도 갔다. 술은 못해서 오이 레모네이드를 먹었지만(하하) 정말 맛있었다. 맛보다도 사실 정말 오래된 것들만 가득했던 인테리어가 더 기억에 남는다. 셀 수 없는 와인 코르크들이 가득했던 Almacen Troccoli. 오래된 사진들과 포스터가 벽에 가득했다. 나오면서 남편과 나중에 나이들어 50살, 60살이 되면 자연스럽게 "기억을 담은 물건과 사진"이 많아지겠지라고 말하다가, 문득 같이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나의 오랜 벗들과 통화를 했다.
사실 그 어떤 것보다도 휴일같았던 시간들, 1시간, 2시간, 3시간이 정말 10분, 20분, 30분처럼 느껴졌는데 그런걸 보면 친구와의 수다가 참 그리웠나보다. 주재원이라는 게, 생각보다 이해관계로 얽혀있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기가 참 어렵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대화에서 솔직하기는 더욱 쉽지 않고.
오랜만에, 긴 연휴 덕에, 오래된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 할 수 있어 참 행복했다.
한국에 돌아가려면 아직 한참 남았지만, 그래도 참 이런 긴 부활절 연휴덕에 다시 힘을 내서 일해봐야지, 하고 마음먹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부활절 휴가를 즐길 수 있게 해준,
늘 약자의 곁에서 타협없이 사셨던 예수님께 감사드리며 연휴를 마무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