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류에 여전히 휩쓸리며 일을 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 굉장히 귀중한 일을 맡게 됐다.
개발협력 프로젝트가 끝난 날 것의(?) 현장(보건소 건립 사업)에 가보게 된 것이다.
사업종료, 코로나19 시절을 거쳐 4년만에 처음 가보는 (본부나 외부 관계자들을 위해 꾸며놓지 않은) 말그대로 날 것의 현장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정부가 공여한 3차 보건소*는 정말 잘 운영되고 있었다.
인구 30만 정도 되는 도시에서, 4년간 10만명이 의료 서비스를 받았다.
단순 서비스 이용자 수로 사업의 성공을 이야기할 수 없다고는 하지만, 전체 도시의 1/3이 이용했다고 하는건 조금 다른 이야기다. 그만큼 의료체계 내로 잘 편입되었다는 거다.
*참고로 중남미가 보통 이러는 건지, 내가 주재하고 있는 나라에는 보건소가 3개의 레벨로 한번 더 나뉘는데, 기초 진료를 보는 Basic, 2차 보건소 Intermediate, 그리고 3차 보건소 Special 급이 그 분류체계이다.
의료진+의무기록사+원무행정을 담당하는 인력들도 총 약 50여명 수준으로 안정적으로 고용되어 있었고, 보건부로부터 연간 예산도 잘 배분받고 있었다. (예산이 끊기거나 하지 않고)
그 밖에도, 건물 개보수를 보건부 자체 예산으로 잘 진행하고 있었고 그 유지보수 이력까지 관리대장으로 기록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었고, 필수 의약품도 누락 없이 구비하고 환자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꿈의 현장인가? 워낙 부정적인 케이스도 많이 들었어서 적응이 좀 안됐다)
조금 아쉬웠지만 오히려 놀랐던 점도 있었는데, 우리가 지원해줬던 의료기기 중 전문의가 필요한 의료기기의 경우에는 타 병원으로 알아서(?) 잘 옮겨서 쓰고 있었다. 현지에서 자체 판단 하에 보건소에서 전문 서비스까지 제공하지 않으니, 장비가 아까웠던 것 같고 여기에서 굉장히 유명한 zacamil hospital에 의료기기를 옮겨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보건소에 피부과 전문의가 상주하지는 않는다. 워낙 이 보건소가 지어진 곳이 소외지역이기도 하다보니, 더욱더 전문의가 상주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리고 정말 예상 못했던 일을 한가지 겪었다(지금 생각해도 웃기네).
하하. 위에서 말한 것처럼 모든 시설은 너무나 잘 돌아가고 있었지만 딱 하나, 모든 공여마크가 사라졌다. 하하하. 한국정부의 지원에 대한 표기가 모두 사라진 것이다.
수원국 입장을 헤아려봤다.
사실은 원조를 받는 국가는 외국 정부 돈을 안 받고 싶고, 본인들의 돈으로 국민들에게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남의 나라 돈으로 이런 시설을 지었던 것이 부끄러웠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애초에 아무 공여마크가 없었던 것처럼 증발할 리가 없지 않은가- (전문업체를 불러서 공여마크를 다 뗀 것 같다)
세계를 하나의 교실이라 가정할 때, 만약 내가 급식비를 지원받는 취약계층이라면 무료 급식을 지원받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그런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국민 세금으로 하는 일이니 공여마크 안 붙일 수는 없어서, 다시 부랴부랴 스티커 제작해서 다음 주에 싹다 붙이러 가야 하는 상황이긴 하다. 공여마크 붙이는 게 사실 국가 지원이니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부분이긴 하지만(무조건 해야하지 않나 싶다)
다만 정말 지극히 개인의 입장에서만 생각해보면 좀 다른 생각도 들었다.
사실은 누군가를 돕는다는 걸 도움받는 사람이 모르게 하는게 사실 가장 성숙한 도움일 수 있지 않나 싶었다.
익명의 기부가 사실은 가장 아름답지 않은가. 왼 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라는 말도 있고.
뭐, 스티커 붙이러 가야지 어쩌겠나.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