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대중), 미국(불법이민 해결), 일본(자국 이익), 한국(??)
간간히 다른 공여기관 관계자를 만나거나, 어떤 프로젝트를 다른 공여기관이 하고 있는지를 들을 때면 각국이 어떤 원조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 피부로 확 체감하는 순간이 온다.
중국의 경우 이 나라에 가장 중심지역에 국립도서관을 짓고, 거대 스포츠 경기장을 건설중이고 최근에는 노후화된 버스 교체를 위해 1,500대의 신규 버스를 지원한다. 그야말로 대중의 눈에 팍팍 띄는 가시성 높은 지원 그 자체다. China Money.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예외없이 세계는 어마무시한 중국자본에 흔들린다. 중국에 대한 조롱이 많은만큼 그 영향력도 크다.
국제 개발협력(원조) 분야에서도 (비록 ODA로 계상되지는 않지만) 중국자본은 정말 눈이 휘둥그레해질 정도다. 내가 주재하고 있는 국가는 광물자원이나 석유가 나는 국가가 아닌데도 정말 입.틀.막할 규모로 지원을 하는 걸 보면 외교적/경제적 중요성을 가진 국가에서의 지원은 어마무시할 것 같다.
미국의 경우,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이 나라에 원조를 한다고 공공연하게 회의 테이블에서 말할 정도로 자국의 문제 해결을 위해 천문학적인 액수를 주재국 국민들과 귀환 이주민 취창업 지원에 투자한다.
일본의 경우 대체로 파견 전 책에서 읽었던 것처럼 자국 이익을 위한 지원 양상을 띄는 것 같고 어디에 무엇을 지원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세부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매우 신중한) 특성이 좀 있는 것 같다. 최근에 일본 지원으로 알게된 것은, 국립대학에 지진관련 경보시스템 구축이나 지진관련 활동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것 역시 일본 지진 관리를 위한 데이터로 잘 축적해서 쓰고 있는 것이 아닐지(..)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물론 이 나라도 지진이 흔해서 그 시스템이 이 나라에 도움이 당연히 되겠지만 말이다.
근데 우리나라의 원조는 이 세 나라와는 확실히 다르다. 일단 우리는 자국의 이익이 그렇게 강조되는 원조는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 외교부는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의 원조가 외교정책과 보다 긴밀하게 연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그런 정책단의 담론이 실무단으로 잘 연계되기가 어려운 지점도 있는 것 같고 사실 우리나라 정부도 어떤 뚜렷한 방향성이 있나? 의문도 든다. 말로만“국익”&“전략적” 위한 외교지, 사실 한국의 “특징적 지원”이라는 것이 참 없다. 무엇이 국익인가라는 것이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으면 각자 다른 생각과 이기를 가지고 있는 국조실, 외교부, KOICA, 타 부처들의 지도부에 의해 지원이 분산되기 마련이다. 누가 우리나라 ODA의 “컨트롤 타워”인가? 라고 하면 사실상 춘추전국시대입니다, 라는 답변밖에 안 떠오른다.
다만, 이러한 탈집권화된(?) ODA 지원이 나쁜가?에 대해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답변하고 싶다. 먼저 우리나라의 원조지원체계는 꽤나 신중하게 설계되었고, 정말 다양한 개발도상국의 수요를 반영하고 있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수원국과 관계자들을 누구보다 배려하고 그들의 요구를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갈길은 너무 멀고 내부 관계자로서 단점 먼저 보이는 것도 사실인데, 오늘날 다른 공여국들이 하고 있는 형태를 보니 그래도 대한민국 원조가 그나마 나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솔직히 든다. 자국이익 80%생각하는 원조가 아니라, 한 60% 생각하는 한국의 원조도 크게 나쁘지 않아보인다.
확실히 당초부터 힘 없는 국가로 수많은 수탈에 시달렸던 우리나라라서 그런지(우리나라 사람들이 착해서가 아니라, 다른나라 등쳐먹어서 개발하는 역사가 없고 이에 대한 경험도 없다는 의미),, 개발도상국 개별부처의 상이한 요구들을 매우 진심으로 듣고 하나하나 사업으로 발굴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NMC(국립중앙의료원), 세브란스, 유수의 대학들, 고속도로와 같은 것들을 외국의 원조로 건설하고 정책 내에서 잘 편입하여 발전시킨 경험이 있어서 그런 관점에서 자꾸 개발도상국 관계자들에게 우리나라 관점으로 권고해보기도 하고.. 하는 것 같다.
글이 좀 길어지긴 하지만, 사실 파견 오기 전에는 무조건 “중앙화된” 지원이 좋다고만 생각했었다. 수원국의 경우도 수원총괄기관이라는, 외국 원조를 총괄하는 기관에서 지원을 중앙화해서 배분하는 것이 절대적 선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가만보니 이 수원총괄기관도 자기 이익을 생각하고, 대통령 산하 출신들로 쭉 다 배치가 되어있더라. 즉, 수원총괄기관에 맡기면 우리 원조가 독재정권 선거 공약으로 활용되고 때로는 힘있는 자(정치인들)의 개별적 이익으로 흘러가버리는 경향도 심심치 않게 관찰된다는 점이다. 힘없는 부처들, 힘없는 국립기관들의 목소리는 그대로 묻혀버리는 경향도 크고. 정리하자면 중앙화된 지원보다 분산화된 권력이 오히려 수원국만 생각했을 때는 주재국 내의 다양한 개발 요구를 잘 반영할 수 있다는 것.
회사 선배가, 파견 나가보면 우리나라가 그렇게 못하고 있는 것 아니고 국제기구도 다른 공여기관도 우리만큼이나 꽤나 엉망진창일 수 있다고 우스개 소리로 말했었다. 어떤 의미에서 맞는 것도 같다. 우리 기관만큼 세세하게 국제기구한테 요구하고(그들은 너무나 귀찮아 하고 한국이 너무 마이크로매니징하는게 아니냐고 불만이 많지만), 다 끝난 사업장에 계속해서 열심히 가서 성과 모니터링하는 기관 정말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적어도 프랑스처럼 과거 식민시대에 수탈한 문화재를 프랑스 국립박물관/미술관에 모셔두고 반환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문화유산 ODA를 많이 하고 각 나라의 문화유적을 복원하는 위선적인 짓은 하지 않는다.
어차피 한국정부가 아무리 많이 공여한다고 해봤자, 일본은 우리나라의 6배요 미국, 중국은 뭐 30배도 훌쩍 넘는 금액이다.
그러니 개별 사업단위로 적은 금액은 아니라도 전체적으로 미미한 지원이라면, 한국지원은 좀 다른 트랙으로 진정 가난한 국가를 위해 써도 되지 않을까(국익은 60%만 생각하구요)?
여튼! 다른 선진(?) 공여국*과는 조금 다른 결로 가도 되지 않을까..
* 다만 무엇이 선진 공여국이란 말이오 대체..
# (참고) 신중한 & 분권화 그 자체인 우리나라 ODA 사업 추진체계
모든 ODA는 시행 2년 전부터 타당성조사를 2번을 기본으로 해야하고, 2회의 내외부 심사를 통해 사업 최종 확정여부가 정해진다. 나의 경우, 파견 후 1년이 되지 않았지만 벌써 3번째 신규 사업 발굴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번 신규사업의 경우 규모가 좀 커지게 되며 무려 조사 한번이 추가되기도 했다(개인적으로는 좋지만 회사원으로서는 울어봅니다).
사업승인권한은 국회와 국조실에 있다. 예산승인에 대한 권한은 우리나라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서 하고, 타부처 간 다양한 사업의 조정은 국무조정실에서 담당한다. 한 기관이 연간 약 6조정도의 사업 권한을 독점하는 것을 막는(너무 힘이 세지는 것을) 형태로 기관의 권한이 분산되어졌다.
무상원조와 유상원조도 나누어져있다. 유상원조는 기재부 산하의 EDCF에서 독점하고 있지만, 무상원조는 30~40여개의 부처가 개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형태. 무상원조의 약 50%는 외교부 산하 KOICA에서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