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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협력 직업인 Jun 13. 2024

프로젝트 너머 상상해보는 개발협력의 새로운 관점

Rules for Radicals, 주민조직운동(CO) 

뱅크시_꽃을 던지는 사람<2003>

목표의 역설은 특정 목표를 달성하려는 노력이 원하는 결과와 반대로 작용하여 역설적인 상황을 초래한다는 개념이다. 


목표의 역설의 쉬운 예로는 탄소배출 문제해결을 위해 겉보기에는 정교하게 고안되었던 기업의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탄소배출량을 줄이지 못하면서 동시에 개발도상국 선주민들의 지속 가능한 숲과 바다 이용권리를 박탈하고 있는 현상을 들 수 있다.  


목표의 역설은 개발협력 분야에서도 빈번히 나타나곤 한다. ODA의 효과성을 제고하기 위한 굵직한 국제적 합의는 매년 여러 형태로 발표되지만 발표된 후 정작 ODA의 효과성이 제고되었다는 근거는 사실 미약하다. 


우리는 최선이 없어서 차선으로 "프로젝트" "PDM" "성과관리" 뭐 이런 수단으로 대표될 수 있는 수단으로서 개발협력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다만 이런 노력이 ODA의 효과성을 더 높였을까?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여하였을까? 결과적으로 공여국/기관의 목표설정과 지표관리, 성과관리와 평가로 인해 주민들이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게 되었을까? 


쉽사리 "그렇다"고 답하기가 좀 어렵다. 

일단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끝낸다라는 결과 중심 접근이 아닌 무언가 새로운 접근이 요구되는 지도 모른다. 


프로젝트보다 더 넓은 범주의 개념인 개발협력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실 프로젝트는 어떤 분야에서나 활용되는 범용성 수단이지만 유독 개발협력분야에서 프로젝트는 그 자체로 목표화되어버린, 목표와 수단이 전복되버린 현상이 뚜렷하게 관찰된다. 


프로젝트로서의 개발협력은 여러 문제점을 파생시킨다. 

먼저 프로젝트적 접근은 지표화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들을 쉽게 가려버린다. 예컨대 지역사회 캠페인이라는 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주민들이 참여하며 서로 나누는 고민, 그 가운데 구축된 현장에서의 관계들인데(그 관계가 결국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변화를 만드는 초석이 되기때문) 이 활동을 프로젝트적 접근, PDM에서 나타내고자 한다면 캠페인 참여자 수, 캠페인 진행 건수 정도로밖에 포착할 수가 없다.


문제는 성과를 달성해야 하기에 개발협력 실무자들은 정작 중요한 관계 구축에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라 수행 여부만 충족에 천착하게 된다. 그렇다고 현장에서 장기간으로 관계만 구축하고 있자니, 사업 시작을 늦게 하거나 예산 집행률을 잘 안챙기면 기관 차원의 "주의" 또는 "경고"로 이어진다. 나만 이상한 사람,  능력없는 실무자가 되기 쉽상이다. 


또한, 프로젝트로서의 개발협력은 정작 현장주민을 소외시킨다. 주민들은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프로젝트를 통해 지원된 자원을 제공받고 프로젝트 수행자들에게 이리저리 동원되는 객체로 전락하기가 너무 쉽다. 


프로젝트적 접근은 그 본질적 특성상 과정이 아닌 결과에 집중한다. 본질적으로 사람 중심이 아닌 사업 중심, 과정 중심이 아닌 결과 중심, 현장 중심이 아닌 문서중심이기 쉽다. 


프로젝트로서의 개발협력이라는 거대한 패러다임에 균열을 만들 수 있을까?

한국에도 그렇다고 믿는 "코빌"이라는 조직이 있다. 코빌의 주요한 방법론은 주민조직(Community Organization)이다. 


주민조직(CO)적 접근은 사람 중심, 과정 중심, 현장 중심의 개발협력으로서, 주민들이 능동적 주체가 되어 조직된 힘을 바탕으로 스스로 발전을 만들어가는 것을 지원하는 하나의 흐름이다. 중요한 것은 주민이고, 주민조직이며, 지속가능성이지 타당성 조사, 예산집행절차, PDM이나 지표의 정합성같은 개념들이 아니다.  


코빌은 프로젝트 제안서, 사업수행결과보고서, 정산보고서를 기계적으로 작성하는 일상에 지친 실무자를 비판하고 또 위로한다. 코빌은 주민조직활동가로서 왜 개발협력을 계속해나가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누구와 함께 일할 것인지에 대해 답할 수 있는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을 배양하기 위해 일면 존재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사실 국제개발협력 현장에서 주민조직(CO)적인 관점 또는 사회운동은 스스로가 사회운동가이자 주민조직가였던 알렌스키의 이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알렌스키는 사회변화를 주도하기 위한 주민 조직화와 전략을 주창하고, 주민조직이 지역사회에서 스스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이론화하였다. 

그의 주민조직이론은 여전히 다양한 사회운동과 지역운동에서 차용되어 사회변화에 대한 전략적인 접근을 위한 중요한 지침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개발협력분야에서도 주민조직적 접근은 유효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믿는다. 


개발협력 현장에서 주민조직(CO)적 접근은 프로젝트의 성과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관점을 완전히 비틀어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주민조직의 지속가능성을 바탕으로 한 지역사회의 변화를 만드는 것에 집중한다. 주민조직적 접근을 지향하는 개발협력 활동가들은 예산집행, 결과보고로 인한 조급함을 내려놓고, 주민들이 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에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제공하며 현장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주체로 변모하게 된다(고 한다). 


개발협력에서의 주민조직적 접근은 프로젝트라는 좁은 길을 벗어나 주민이 주도하는 사회적 변화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새로운 길을 제시해보려고 하는 듯 하다.


프로젝트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 자기 의식을 갖는 개발협력 활동가가 될 수 있을까? 

프로젝트라는 수단에 눈이 멀지 않고, 기술적 역량보다 개발협력의 본질을 지향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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