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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협력 직업인 Oct 01. 2024

파산 직전의 현지직원

40대인데 예적금 개념도 모르면 어떡합니까. 답답합니다.

10년 전에는 하우스 푸어라는 말, 집을 살려면 30년간 숨도 안 쉬고 돈을 모아야 한다는 표현이 유행이었다. 요새는 영끌족이라는 말로 평가절하되고 있지만, 10년 전과 달리 자산 형성이라는게 훨씬 더 긍정적인 가치가 되었다.     

 

30대에 결혼을 하며 그렇게 사회악으로 보이던 대출이 생각보다 엄청나게 좋은 제도라는 걸 깨닫게 됐다. 지금 내가 돈이 없어도, 집을 구매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자신의 현재 소득 대비 어디까지가 무리하지 않는 대출 범위인지 같은 것들을 알게 된다. 다만 우리나라도 그렇고 이 나라도 그렇고, 20대까지는 금융에 대한 교육이 거의 전무하고, 금융을 이용할만한 계기도 딱히 없는 듯 하다.

     

출장 중에 한 현지직원의 비보를 들었다. 회사로, 연체 대금 청구서가 여러 차례로 왔고 은행에서 월급 압류 가능여부 문의가 들어왔댄다. 스페인어로 이런 상황을 Numero Rojo (빨간 금액)라고 표현한다. 그 직원의 경우 평소에도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을 겪고 계실 거라는 건 상상이 잘 안 갔다. 딸도 있고, 도박이나 술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좀 어렵다. 문득 우리 직원들은 돈 관리를 어떻게 하나 싶어, 스페인어 선생님께 평균적인 돈관리 방법을 물어보기도 하고 은행 상품도 좀 찾아봤다.      


일단 여기에도 은행 대출이 당연히 있다. 신용대출과 담보 대출로 나뉘는데, 담보는 보통 어느 나라가 그렇듯 개인들은 집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 곳에서 제일 비싼 집은 7억 정도 한다, 수도의 괜찮은 아파트들은 2~3억 정도 한다. 나쁘지 않은 집은 1억 정도도 많다. 집값의 몇%까지 은행에서 대출해주는 지는 모르겠는데, 대부분 렌트로 산다. 월세를 최소 200불에서 최대 400불 정도까지 부담하는 게 평균적인 구조이다. 간단한 산수를 해보니, 현지직원들이 한 달에 1000불~1500불 정도 벌면 300-800불 정도는 저축할 수 있고, 1억짜리 집은 40년 만기 대출로 해서 무리없이 살 수 있는 구조로 보인다. 이곳의 예적금은 3~4%대로, 우리나라와 비슷하거나 약간 높다.      


이곳 사람들의 최저임금은 400불 정도, 대학을 나온 사람들의 통상임금은 600~1000불 정도 되는 것 같다. 대학 나온 사람들은 돈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 건지, 당장 우리 현지직원들이 걱정이다. 일단 우리 스페인어 선생님의 경우 월 1000불 정도를 버는 듯 한데, 여기에서 생활비로 60~70%(집값, 음식값, 생활비, 교통비), 10%(병원비-병원 한번 가면 50불, 약값 따로), 나머지는 비상금으로 관리. 저축할 돈이 없는 달도 있고, 돈이 생기면 현금으로 뽑아서 집에 묻어둔다고 한다. 은행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지출처를 듣고 속이 터졌다. 그냥 집에 여윳돈을 실물로 묻어두는게 뭐냐, 돈의 가치가 계속 하락하는데. 적어도 적금이라도 넣거나 차라리 금을 사서 묻어두지라고 선생님께 말하니, 이런 이야기를 한다.

- 은행이 서민을 생각하지 않는다. 다들 외국 은행이고 자본이다. 

- 은행을 못 믿겠다.  

- 은행 예적금 넣어봤자 0.01%밖에 안 준다(결과적으로 틀린 말이였다입출금 통장 비율이다예적금의 개념 자체를 모르는 것 같다)

- 40년간 내가 죽은 다음에 집을 갖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 numero rojo 상태에 있는 현지직원도, 집에 있는 무언가를 팔거다(차, 가구같은) 그리고 그 돈을 다시 은행계좌에 넣으면 괜찮아질 거고, 일시적으로 돈이 없는 건 흔한 일이다.     


아니, 정말. 답답해 죽겠네. 

금융제도를 어떻게 이용해야하는건지, 나이 40대인 똑똑한 우리 스페인어 선생님조차 모르고 있다는게 너무 큰 충격이다. 예금 적금도 모른다고? 믿겨지지가 않는다.


매우 슬프다. 직원들 한명 한명 붙잡고 집 사라고 말하고 가는게 남은 1년의 목표가 됐다.

너희들이 그렇게 비웃는 금융제도, 너희 나라 고위층들은 엄청 잘 이용해서 집 몇채씩 사서 월세 2000불~3000불에 돌리고 현금 수익 따박 따박 받고 있다고. 금융 비웃지말고 너도 열심히 이용해서 적어도 물가상승률은 방어하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물론 600불 벌어서 여기서 대출금 상환하는 건 말도 안된다. 개발도상국은 선진국보다 훨씬 더 안 좋은 물건들을 훨씬 더 비싼 값을 치루고 살아야 하니까. 다이소에서 천원이면 살 걸, 여기서는 삼천원 줘야되니까. 중남미에는 가난한 국가일수록, 중산층을 위한 시장이 없다. 생활비 빠듯한 건 너무너무 알겠지만, 그래도 1000불 이상 버는 사람들은 좀 달라야 하지 않은가.

      

전 세계적으로 서민들은 금융을 비웃음으로써 금융제도에서 멀어지도록, 그래서 더 가난해지도록 설계된 세상같다. 오늘은 살라는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 될대로 되라지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리라는 그들의 말이 더 이상 멋지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답답해 죽겠다.      


다시, 파산 위기의 우리 직원에 대해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지 고민을 나눴다. 그랬더니 친구가 말씀 한 구절을 보내준다. 일단 한번 그 직원과 이야기를 해보고, 어떤 사정인지를 들어봐야겠다.      


누가복음 10장 36절-37절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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