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깨끗한 두려움에는 형태가 없다.
아이의 깨끗한 두려움에는 형태가 없다. 한국 집에서는 자기방이 무섭다고, 같이 잠들어주지 않으면 안방에 와서 칭얼거리던 아이가 낯선 말레이시아 조호바루에 한 달 살기를 와서는 우리가 신경을 쓰지 않아도 졸리면 자기 방에 들어가 자기 침대에서 알아서 기절을 한다. 얼마나 겁이 없는지 새로운 집, 새로운 마을에서 춤을 추며 뛰어다니고 그걸 잡으러 다니기 바쁘다.
나는 그녀와는 다른 성격이라, 하루는 쉬었다가도 하루는 막막하고 겁이 나면서 조급한 마음에 이런저런 일들을 하며 헛되지 않는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애를 썼다.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소득이 없지만 이상하게도 무엇이라도 한 날에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죄책감 없이 맛있는 외식을 즐길 수 있었다. 아직도 오랜 직장인 생활의 허물을 벗지 못했는지 나는 여기서도 아침 일곱시 반에 일어나고, 한국에서는 먹지 않던 아침을 차려먹는다.
그리고 아직도 가끔씩 한 달 살기, 세계일년 살기를 떠난 일이 잘한 일인지 다시 생각하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알차게 보내야 하겠다며 다시 결심을 한다.
우리는 첫 열흘을 주변을 탐색하며 보냈다. 다섯 개의 유치원과 세 개의 어학원에 상담을 다녀와 아이의 유치원과 우리 부부의 어학원에 등록을 했다. 아이는 처음 보는 유치원에 들어갈 때는 항상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미끄럼틀이 보이면 무조건 달려가서 일단 한번 타고 내려온다. 우리가 설명을 듣기 위해 위층으로 올라갔다가 다녀와도 처음 보는 인도인 선생님과 웃으며 놀고 있었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면 아이는 자신의 의견을 열심히 피력했는데, 요는 하나의 유치원만 다니는 게 아니라 여러 개의 유치원을 다녀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분명히 육아 서적에서는 애착관계가 형성되고 심신의 안정을 얻기 위해서 여러 양육자의 손을 타는 것이 좋지 않다고 배웠었는데, 내 딸은 영어유치원을 키즈카페 정도로 생각하는 건지 다녀온 유치원 중 하나만 다니기에는 너무 아쉽다고 했다. 우리는 그 의견을 적극 반영해서 최소 등록 기간을 비교해보고 하루씩 테스트 수업을 보내본 뒤, 두 개의 유치원을 선택해서 한 달씩 등록했다.
유치원이 쉬는 날에는 아침을 먹자마자 창문에 찰싹 붙어서 콘도의 풀장을 내려다보며 수영을 하러 가자고 졸라댔다. 한국에서 몇 번 수영 강습을 시키고 데려온 게 도움이 되었는지, 아이는 발도 닿지 않는 풀장에 튜브도 없이 풍덩 뛰어들기 일쑤라 나는 기겁을 하고 아이를 건져올렸다. 그래도 아이는 계속 괜찮다며 놓으라고 하고 선채로 팔과 다리를 열심히 휘젓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물에 빠질까 봐 노심초사하며 일 미터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나를 계속 밀어내면서 아이의 얼굴에는 연신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일주일 넘게 매일 하는 수영인데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입술이 새파랗게 될 때까지 한참을 놀아도 풀장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통에, 엄마가 배가 고프다는 핑계로 겨우 집에 데리고 올라오곤 했다.
짐을 준비해온다고 싸왔지만, 대부분의 물건은 현지에서 사기로 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물건들이 필요해서 마트도 자주 갔다. 아이는 ABC를 쓰면서 배우는 색칠 공책과 스케치북, 그리고 딱풀을 사달라고 했다. 한 달 살기 겸 세계일년 살기를 오면서 장난감을 많이 챙기지 못해서 아이가 필요하다는 물건은 대체로 사주었다. 말레이시아 조호바루의 물가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비싸서, 열흘 만에 한 달 치 장볼 예산을 거의 다 소진했다. 남편은 우리나라보다 비싼 술값에 갈 때마다 맥주코너 앞에서 울상을 짓고는 한참 가격표들을 봤다.
참 이상하게도 고작 열흘이 지났지만 이제 이 동네에서 맛있는 식당은 전부 알고 있고, 하루 일과가 패턴화되다 보니 이제 원래 살았던 곳처럼 편안하다. 딸처럼 나도,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가며 여기서 삼 개월을 머무는 동안의 계획을 마무리하고 그 후에 갈 나라들에 대해서 계획해야겠다.
처음 보는 아이와도 금방 친해지는 활달한 성격의 일곱 살 아이, 로숲이는 세계 일년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엄마는 스케줄 매니저로, 아빠는 짐꾼과 보디가드로 함께 다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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