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차려준 아침밥

이 정도면 사랑 아닌가?

by 두세아


누군가 나를 보는 인기척이 느껴진다. 몸은 천근만근이건만 이상하게도 눈이 떠진다.

창밖으로는 옛 저녁에 뜬 거 같은 햇살이 들어오고, 딸아이는 말간 얼굴을 하고 턱을 괸 채 나를 쳐다보고 있다. 어제 새벽 세시에 잤던가, 네시에 잤던가.

일이 많아 컴퓨터 앞에 앉은 채로, 아이에게 늦었으니 얼른 자라고 재촉하고 두세 시간이 지났을 무렵 더벅머리의 남편이 눈부신 듯 찡그린 표정으로 배를 벅벅 긁으며 찾아왔다.

“빨리 안 자면 혼낼 거야”

눈도 제대로 뜨지도 못하면서 나에게 엄포를 놓는 무서운 목소리다.

알았다며 남편을 보내고도 얼마나 앉아있었는지 모르겠다. 아이는 내가 늦게 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를 깨우지도 않고 벌써 옷을 다 입었다. 일하는 엄마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나를 닮아서 그런지 묘하게 벌써부터 어른스러운 구석이 있는 아이다.


딸아이의 헝클어진 머리를 묶어주고 현관밖까지 배웅하고 나서야 남편이 출근 전에 차려둔 아침밥이 눈에 들어왔다. 주말에 시장에서 장을 봐온 재료들을 가지고 저녁때까지 주방에서 레시피를 검색하며 씨름을 하더니,

연근과 강낭콩은 조림이 되어, 멸치와 건새우는 볶음이 되어 상에 올라와 있다.

잘 챙겨 먹으라는 잔소리를 들을까 봐 남편에게는 비밀로 하고 거의 매일 라면을 먹고 일하러 가곤 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아침밥을 먹을 수 있다. 밥 한 숟갈을 뜨려던 찰나 남편에게 메시지가 왔다.


‘여보가 맛있다고 잘 먹었다고 아빠한테 말하라고 시켰어?’

‘아니?’

‘애가 스스로 했을 리는 없는데.. 뭐지?’

‘나한테 먹어보라던데, 맛있다고’

‘희얀하네’

사춘기에 접어들어 한창 예민해진 딸에게 칭찬을 들은 것을 은근히 자랑하는 말투다. 아이가 남기고 간 밥을 한 숟가락 퍼서 입에 넣고, 간장에 달큰하게 조려진 연근 조림을 한 젓가락 맛본다. 아이가 왜 맛있다고 이야기했는지 알 것 같다.





한 달 전이었다. 월화수목금토일 하루도 쉬지 못하고 회사를 다니고, 연수를 받으며 집에서 업무에 대한 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도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와 빨래, 그리고 그보다 더 쌓인 아이의 숙제도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아무리 이삼일에 한 번씩 마트에서 무겁게 한 박스를 사다 날라도 집에는 왜 그리도 먹을 게 없는지, 아이는 일주일째 카스테라와 우유를 아침으로 먹고 학교에 가고 있었고, 집안은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저 눈만 뜨고 다니는 시체 같아요” 생기 없는 표정으로 직장동료에게 농담을 하니, 그러게 어떡하냐고 걱정이 돌아온다.

그날도 주말에 있을 연수에 대한 시험 걱정과 집에 쌓여있는 집안일로 머리가 지끈거리던 나는 퇴근길에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저녁은 집에서 먹을 거야?’

‘오늘 저녁은 떡볶이랑 순대 먹자. 집에 있는 음식을 파먹어야겠어. 냉장고에 음식이 많더라고. 떡볶이 해줄 수 있어? 가래떡 떡볶이로 ’

남편과 아이는 요즘 내가 만들어준 떡볶이가 맛있는지 계속해달라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다.

‘... 떡볶이는 사 먹자’

‘알겠어. 어묵하나 사가서 떡볶이에 더 넣어서 먹어야겠어’


나는 그 메시지를 보고 한숨을 내쉬곤 집으로 향하던 차를 돌려 마트로 갔다.

도대체 마트는 왜 그렇게 넓은 건지 차에서부터 어묵을 사러 가는 길이 천리 같다. 무거운 카트에는 아이가 좋아하던 간식과 떨어진 조미료들이 담겼다.

쉬질 못하니 머리가 멍했다. 몸이 힘드니 간장의 종류를 선택을 하는 것도, 장을 본 물건들을 나르는 것도, 모두 노동이다.

서둘러 집으로 와 떡볶이를 하고 순대를 찌고, 남편이 좋아하는 어묵탕을 끓인다.

빨간 양념 연기에 매워진 코 끝에, 눈물을 찔끔 닦고 있는데 다시 메시지가 울린다.


‘찐만두도 있어?’

아 제발 누가 이 인간 좀, 잡아가 줬으면 좋겠다.

3구짜리 가스레인지에는 냄비가 꽉 차서 서로를 화내며 밀어내고 있는데 만두까지 찌라니. 도대체 이 사람은 남인지 웬수인지.

온몸은 안 아픈 구석이 없어서 오늘 아침에도 몸살약을 먹었고, 잠이 부족해서 다크서클이 볼까지 내려와 있는데.

어떻게 저렇게 세상 신나는 표정으로 술 한 병이 든 비닐봉지를 손에 들고 들어올 수가 있지?

이런 코미디가 있을 수가 있나.


철없는 남편을 데리고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모를 나의 일장연설과 한풀이가 시작되고 나자

남편은 어디에서 뺨 맞은 얼굴을 하고는 대답이 없다.

헛웃음이 난다.

참자. 남의 집 귀한 아들이다.

당신이 회사에서 힘들게 일하는 거 정말 안쓰럽게 생각하지만, 요즘 내가 너무 힘드니 제발 집안일 좀 도와달라고.

다행히 내 목소리가 귀에다 들어가긴 한 건지 못내 알았다는 대답을 듣고야 만다.

좀 있다 아이가 숙제를 시작하면 나 몰라라 안방 침대와 한 몸이 될 그에게 아이의 아침밥은 뭘 먹일 건지 물어보았다.

또다시 그걸 내가 하냐는,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이었다.



어쨋던 오늘의 연근조림과, 견과류를 한 봉지 다 넣은 멸치볶음은 합격이다.

고작 밑반찬이 뭐라고, 밥 한술과 반찬 한입에 섭섭했던 마음이 녹아 없어진다.

요리가 귀찮아서 계량 없이 대충 넣어 애매한 맛이 나는 나의 음식들과는 다르게,

남편의 요리에는 항상 집밥에서 느껴지는 무언가가 들어있다.

할머니의 손맛은 아니지만 맛있게 만들어서 칭찬을 듣고 싶다는, 나름대로 기특한 마음이라 참 맛있다.

원래 남이 해준 밥이 더 맛있는 법이라서 그런가.

아무튼 이 아침 한 끼 식사가 나에게는 오랜만에 찾아온 행복이다.

잔소리를 얻어 먹고 나서 며칠 후 사들고 왔던 샛노란 해바라기 한다발이 식탁 위 유리병에 꽂혀 따뜻한 아침햇살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