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스물하나
나는 노래를 좋아하는 음치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나만의 스테이지가 있다.
토요일 아침,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영화스쿨로 간다. 아이는 그곳에서 연출을 배우고 연기도 하고 있다. 그렇게 먼 곳까지 다니게 된 데는 계기가 있었다. 남편이 재작년 예술회관에서 연극을 배워 단막극 무대에 오른 것이다. 아이는 아빠의 어색한 연기에 두 배로 부끄러워했지만, 그 일로 연기에 관심이 생겼는지 영화스쿨을 다니고 싶다고 했다.
이번에 그곳에서 아이들이 기획하고 찍는 단편영화에 남편이 선생님 역할로 출연하게 되었다. 그는 겉으로 귀찮아하는 듯 보였지만, ‘나중에 상업영화에서 캐스팅이 들어오면 회사는 어떡하냐’는 황당한 농담을 던지는 걸 보니 속으로는 은근히 즐기고 있는 게 틀림없다. 이렇게 두 사람이 영화인을 꿈꾸며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동안, 나도 나만의 무대에서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
바쁘게 아침을 먹여 이들을 내보내고 나서 설거지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 갠다. 그러고는 안방 드레스룸에 옷을 가져다 놓고 돌아서서 베란다로 가 이중창문을 굳게 닫는다. 그러면 지금부터, 여기는 나만의 스테이지다. 핸드폰에서 시아의 <샹들리에>를 재생하고 방 안 가득 멜로디가 울려 퍼지면, 나는 어느 이름 모를 프랑스 골목길에 서 있다.
저녁을 맞아 가로등에는 주황색 불빛이 반짝이고, 파쇄석이 깔린 길을 지나는 노란 머리의 행인들은 트렌치코트 깃을 세우고는 어깨를 한껏 움츠리고 있다. 옆에 앉은 세션의 건반에서 첫 음이 울리고, 나는 마이크를 손에 쥔 채 눈을 감는다. 전주는 쓸쓸하게 시작해서 점점 리듬을 타고, 클라이맥스를 향해가며 장면이 바뀐다.
나무로 된 벽이 둘러싼 층고 높은 거실에 화려한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고, 친구들이 손에 샴페인 잔을 들고 대화를 나눈다. 적당히 취한 나는 기분이 아주 좋다. 너무 많이 웃어 볼 근육까지 아프지만, 쉬지 않고 떠든다. 그러다 문득 슬픈 일이 생각난 듯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급격히 찾아온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채 마스카라가 점점 번져 얼굴이 엉망이 될 때쯤, 노래는 끝난다.
다음은 이무진의 <에피소드>다. 눈이 소복이 오는 골목길에서 나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까까머리에 교복을 입은 남고생이, 쭈뼛거리며 나에게 편지봉투를 내민다. 나는 꽃무늬 이불이 깔린 내 방 침대의 커다란 베개를 안고 누워 연필로 쓰인 편지를 읽고 또 읽는다.
어느새 성인이 된 나는 싱그러운 잔디밭이 펼쳐진 공원에 앉았다. 민트색 카디건을 입은 내 무릎을 베고 그가 누워 있다. 눈을 감고 있는 그의 눈썹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손끝으로 조심스레 쓰다듬어본다. 그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내 마음은 콩닥거린다. 쑥스러워 바라본 하늘에 풍성한 벚꽃이 날리다가 한 잎, 두 잎 떨어지더니 갑자기 나무가 앙상해져 있다. 발치를 바라보니 갈색으로 바싹 마른 낙엽이 수북하다. 정장을 입은 그의 가슴을 때리며 나는 울고 있다. 뒤돌아 걷는다. 차가운 바람이 매섭고 아프다.
이렇게 아픈 이별을 하고도 나의 무대는 끝나지 않는다. 자우림이 부른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흘러나오고, 공기는 다시 청량하게 전환된다. 언덕 위 하얗게 펼쳐진 들꽃밭에, 중년의 내가 곱게 빗은 흰머리를 휘날리며 아련한 표정으로 서 있다.
“바람에 날려 꽃이 지는 계절엔 -
아직도 너의 손을 잡은 듯 그런듯해-
그때는 아직 꽃이 아름다운 걸 -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못했어-”
나는 바람을 타고 기억 속 저편으로 이동한다. 일렁이는 수면에서 부서진 햇빛이 눈부시게 반짝인다. 청바지를 발목까지 걷어입은 나는 말 그대로 스물한 살. 맨얼굴과 빠알간 볼, 가지런한 어깨. 서걱거리는 모래의 감촉이 발바닥으로 느껴진다. 차가운 바닷물이 밀려와 발목까지 차오르자, 놀라 뛰어오르다 중심을 잃고 넘어지듯 그의 팔뚝을 잡는다. 옆모습의 그는, 흰 티에 걸쳐진 셔츠에 물이 다 튀었다. 풍경이 시리게 푸르다. 바다 내음은 짜고, 우리는 젊다.
해가 수평선 뒤로 넘어가고, 붉게 익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는 두 손 잡은 우리의 뒷모습이 보인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는 순간, 그가 사라졌다. 짙어진 어둠 속에 나만 홀로 서 있다. 조용히 무릎을 감싸고 앉아 검은 바다를 바라본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덮쳐오고, 공허함과 외로움만이 내 곁에 남았다. 나는 어느새 모래사장에 앉은 주름진 흰머리 할머니가 되었다. 모래를 손에 꽉 쥐어본다. 흘러간 청춘처럼,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고야 만다. 나의 지나간 계절들과 아직 오지 않은 완연한 시절이 그렇게 눈앞에 생생하다. 노래 가사처럼 가슴 시리도록 행복한 꿈이다.
관객은 없다. 화장대 위의 드라이기 하나만 멍하니 나를 보고 있다. 박수 좀 치라구. 짝짝짝. 나는 프리마돈나가 되어 두 손 모아 공손히 인사한다.
내가 불렀던 꽃잎들이, 눈송이가, 그리고 바닷모래가 미련을 담은 채 바닥에 뚝뚝 떨어져 있다. 머쓱하게 코를 쓰다듬고 청소기를 가지러 거실로 나왔을 때, 삐리릭 소리가 났다. 현관을 바라보니 내 뮤직비디오의 남자 주인공이 들어온다. 그리고 키가 그의 절반인 나를 꼭 닮은 딸이 그의 뒤에 서 있다. 아이는 “엄마!” 하며 달려와 내 품에 쏙 안긴다. 남편은 점심으로 먹어보니 맛있어서 샀다며, 찐만두 한 도시락을 꺼내 식탁 위에 놓는다. 그의 얼굴에는 내가 처음 만났던 스물다섯 청년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굳게 닫혔던 이중창문이 열리고, 살아있는 진짜 바람이 거실로 들어온다. 내가 만든 공기는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아이가 아빠의 연극을 볼 때처럼, 두 배로 부끄러워할 일은 없다. 더 이상의 완전 범죄는 없으니까. 이미 온 집안은 아이의 웃음소리와 따끈한 만두 냄새로 가득하다.
노래를 못 부르는 나는 안방의 프리마돈나. 좀 못 부르면 어떠한가. 내가 즐겁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무대에 서 있는 동안 나는 아이 엄마도, 남편의 아내도 아니다. 그 순간의 나는 오롯이 나 자신이 되어 존재할 뿐이다.
나만의 은밀한 취미는 이중창을 꼭꼭 닫은 안방에서 마이크도 없이 펼쳐지지만, 내가 살아온 시리게 푸른 시절과 가슴 터지던 이별은 진짜니까. 언젠가는 사람들 앞에서 내 노래를 들려줘야지. 아름다운 이야기가 가득한 나의 바다에 초대해야지. 나도 남편처럼, 나만의 황당하고 작은 꿈을 꿔본다.
잠자기 전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아파트 온라인 게시판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안방 화장실 환기구를 통해서 소리가 올라오니 밤늦게 샤워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갑자기 등골에 서늘한 느낌이 스친다.
설마...내가 안방 화장실 문을 닫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