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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우 Jan 17. 2023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향기 없는 꽃이라도 피어나도록

사랑 노래 이야기를 한 김에 하나 더 해야겠다. 싱어송라이터 양양의 공연을 기획한 적이 있다. 타이틀은 ‘사랑은 정답, 정답은 사랑’이었다. 그녀의 노래를 듣고 뻗어나온 테마로 만든 공연이다. 벌써 십 년 가까이 된 일이다.


(공연은 흥행은 성공했고, 내용은 처절하게 망했다. 다시 떠올리니 모니터에 머리를 처박고 싶어지는 흑역사라 자세한 얘기는 안 하겠다. 심지어 뒤풀이에서 누군가와 대판 싸우고 손절하기도 했다. 물론 그건 명백하게 내 잘못이 0%도 없다. 다 그 새끼 잘못이다.)


아무튼, 양양에게 <오! 사랑이여>를 부르기 전에 한강의 에세이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의 한 대목을 낭독해달라고 부탁했다.

“사랑이 아니면" 하고 마흐무드는 중얼거렸다.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니야.”

네 살 때 이스라엘군에게 고향을 잃은 뒤 청년 시절에 두 번 투옥되어 4년간의 옥살이를 했던, 그 뒤로 10여 년간 망명생활을 했던 그는 덧붙여 말했다.

“사랑 없이는 고통뿐이라구.”

“하지만 때로는” 하고 나는 반문했다. "사랑 그 자체가 고통스럽지 않나요?”

마흐무드는 생각에 잠겼다.

“아니지. 그렇지 않아.”

그의 음성은 숙연했다.

“사랑을 둘러싼 것들이 고통스럽지. 이별, 배신, 질투 같은 것. 사랑 그 자체는 그렇지 않아.”

그 말을 꺼내기까지 마흐무드의 눈앞을 스쳐간 여인들의 얼굴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가 그녀들과 보낸 시간, 나누었던 밀어, 무수한 입맞춤과 어루만짐을 모른다. 다만 그가 그 여인들을 이용하지 않았다는 것, 그때마다 순정을 다했으며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았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오 사랑이여 내게로 와 이 마음 불태워주어라
향기 없는 꽃이라도 마음에 피어나게 하여라
폭풍 같이 몰아치고 간대도 기꺼이 너를 반겨 하겠어
사랑이여 내 마음의 바닥 그곳까지 닿아주어라

비어 있는 말라버린 딱딱해진 내 맘에
다정하게 다정하게 다정하게 오라 사랑아
고독보다 더 가혹해도 아려도 더 쓸쓸하여도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이 결국엔 함께 온다 하여도

사랑 사랑 사랑 나는 너를 몰라도
사랑 사랑 사랑 너를 반겨 하겠어


사랑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참 명쾌하게 이야기하는 노래구나 싶다. 사랑이 무엇인지, 혹은 사랑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아니고. 양양의 담담하면서도 곧게 뻗는 목소리(혹자는 청양고추 같은 목소리라고 했다)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진다. 사랑에 대한 태도, 혹은 마음가짐의 노래라고 할까.


2008년에 양양을 인터뷰했을 때도 우리는 막판에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했다. 참을 수 없는 게 있냐는 질문에 그녀는 “사랑하고 싶어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요즘 작업실 벽에도 적어놓은 말이 ‘사랑이 정답, 정답은 사랑’이에요.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면 사랑이에요. 사랑이 정답이라고 밖에.”

“사랑 그 자체가 힘들어도?”

“네, 사랑이 힘들어도. 어쨌든 사랑은 정답. 지금 제가 말하는 사람은 좀 더 닫혀 있는 사랑을 얘기한 걸 수도 있어요. 남녀 간의 사랑 같은. 둘 밖에 나눌 수 없는 사랑, 마음. 사랑이 끝나고 나면 너무 힘들어서 못할 것 같고, 했을 때 힘든 걸 알면서도 그게 나에게 순간의 폭발적인 따뜻함과 마음의 안정과 행복감을 주는가를 생각하면 그래요.”


무언가를 의심없이 믿으며 직시하고, 받아들이면서도 물들지 않을 것 같은 그녀의 확고한 눈빛이 이따금씩 떠오른다. 그녀가 말하는 사랑은 장밋빛 환상이 달려들어 눈에 콱콱 박히는 사랑만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마흐무드의 말처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이 행간에 숨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카오스로 다시 한 번 기꺼이 뛰어들겠다는 순수한 전의(戰意)도. 그건 가끔 부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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