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사람은 삶을 정직하게 보는 것이다
아카이브K라는 사이트에서 대중음악 라이브러리를 만드는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말하자면 뮤지션의 전사(全史)를 쓰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이이언의 이야기를 썼다. 그는 인터뷰 등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비교적 많은 뮤지션이고, 그가 자주 하는 이야기에 공감한다. 강박과 집착, 죄의식에 관한 이야기다.
이이언은 교사인 부모님에게 타인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게 엄격하라고, 남에게 민폐 끼치지 말라고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하이 스탠더드‘의 윤리의식이 무의식에 깊게 남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집요하게 매달리면서, 자신을 위험한 수준까지 소모하면서 음악을 하는 방식도 거기서 비롯됐다고. 고통을 참고 스스로를 갈아넣어서 무언가를 원하는 게 습관이 되고, 삶의 형태가 됐기 때문에. 적당한 지점에서 멈추려고 하면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은 죄의식에 등을 떠밀리는 것이다.
그는 하다못해 볶음밥을 만들 때도 120% 집중하지 않으면 제대로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다 보니 억울한 생각이 들더란다. 120%를 해야 겨우 100%의 결과물을 얻는 거라면, 차라리 그 이상 자신을 몰아붙여서 남들보다 잘하자고. 이제 와서 그런 걸 버리자니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것 같고, 그걸 빼면 내가 남들보다 나은 게 뭐가 있나 싶어서 포기할 수가 없다는 그의 말에, 무엇보다 깊게 공감한다.
지난 여름, 7월에 부천영화제에서 스물일곱 편의 영화를 봤고, 이번에 제천영화제에서는 열두 편을 봤다. 그 사이에 서울아트시네마시네바캉스도 가고, 곧 EIDF도 시작한다. 책도 읽고, 애니메이션도 보고, 여자월드컵도 다 챙겨보고 있다. 물론 당연하게도 일은 일대로 다 한다. 최소한 이러고 다닐 돈은 벌어야 하니까.(메일링을 뜸하게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면 또 다른 뭔가가 생긴다. 늘 가벼운 과로 상태다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거의 이렇게 해온 같다.
힘들어서 머리가 핑핑 돌 정도가 되면 생각한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 지랄을 하고 있나. 그럴 때마다 강령처럼 떠오르는 게 이이언의 이야기다. 뭐든 잊지 못하는 것은 내 치명적인 단점이자 장점이고, 그러니 쉴 새 없는 ‘인풋’으로 뭔가를 몸에 새겨넣는 게 내 오랜 생활 방식이다. 그것 아니면 내가 뭐가 있나. 포기하면 내가 내가 아니게 되지 않을까. 신기하게도, 이런 집착은 양가적이다. 강박 때문에 스스로를 다그치다가도, 스스로에게 못할 짓을 한다는 죄의식을 일단 느끼게 되면, 나를 괴롭히면 안 된다는 강박에 또 사로잡혀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이이언은 어느 인터뷰에서 “우울한 사람은 삶을 정직하게 보고 있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 이야기도 심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삶은 그 자체로 모순의 형용이기 때문에, 그걸 똑바로 바라보면 우울해지는 게 디폴트가 되는 것이다. 언젠가 그 모순의 한쪽을 쓰레기통에 처박고 꽃장식 달린 뚜껑을 덮을 수 있다면 좀 편하겠다. 그러나 그건 그것대로 끔찍하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P.S 위의 뮤직비디오는 이이언이 직접 만들었다. 사진 1만 컷을 이어붙이는 스톱모션 방식으로, 완성까지 일 년 반이 걸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