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읽히던 글이, 기계에게 채굴되는 순간
[프롤로그]
어느 날, 나는 ChatGPT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AI는 어떤 글을 좋아해?”
사람들이 AI로 검색하는 시대라면, AI가 골라서 보여주게 되는 글의 기준은 무엇인가. 포털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포털에 잘 걸리냐 아니냐에 따라 매출이 좌우되곤 했다. 그렇다면 앞으론 AI의 간택에 따라 돈이 왔다갔다 하게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내 글이 빛을 보려면 AI에게 잘 보여야 되는 세상이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미쳤다. 이 질문은 그래서 나오게 됐다.
요즘 글을 쓸 때 묘한 질문이 하나 떠오른다.
이 글은 사람에게 읽히는 글인가, 아니면 AI에게 먼저 읽히는 글인가.
검색의 시대에는 답이 단순했다. 사람이 검색하고, 사람이 클릭하고, 사람이 읽었다. 그래서 글은 철저히 인간을 향해 쓰였다. 하지만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이 견고한 구조가 무너졌다. 이제 사람은 검색창이 아니라 AI에게 묻는다.
“AI는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사람은 왜 AI에게 의존하나요?”
그러면 AI는 수천 개의 글을 읽고, 요약하고, 재구성해 하나의 답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선택되는 것은 ‘글’이 아니라 ‘문장’이다. 그리고 더 정확히 말하면, ‘개념’이다.
1. 글은 읽히는 것이 아니라 ‘채굴’된다
AI는 글을 감상하지 않는다. 좋다고 느끼거나 공감하지도 않는다. 대신 채굴(Mining)한다.
의미의 맥락을 잘게 분해하여, 언제든 다시 꺼내 쓸 수 있는 ‘데이터 블록’으로 회수한다. 이 기계적인 수확 과정에서 살아남는 글은 특정한 형태를 가진다.
* 단정적 문장: 모호함을 걷어내고 본질을 짚는 문장.
* 정의형 문장: 특정 현상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문장.
* 구조적 설명: 사례에 매몰되지 않고 인간 행동의 패턴을 읽어내는 글.
이런 글은 감동을 주지는 않지만, AI가 가져가기엔 최상이다. 분해하기 쉽고, 재사용하기 쉽고, 답변의 뼈대로 녹이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글은 사람에게는 평범하게 읽히지만, AI에게는 가장 효율적인 ‘재료’가 된다.
2. 조회수의 시대에서 ‘인용’의 시대로
과거 콘텐츠 경쟁의 척도는 조회수였다. 얼마나 많은 눈길이 머물렀는지가 성공의 지표였다. 하지만 AI가 개입하면서 게임의 룰이 바뀐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읽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자주 AI의 답변 구조 안에 등장하는가.
이건 완전히 다른 종류의 권력이다. 조회수는 소비로 끝나지만, 인용은 반복되며 퍼진다. 어떤 문장은 작성자의 이름도, 출처도 사라진 채 AI의 설명 속에서 계속 재등장한다.
출처가 거세된 문장은 역설적으로 반박 불가능한 진리가 된다. AI가 그 문장을 빌려 세상을 정의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글은 콘텐츠가 아니라 ‘개념 인프라(Concept Infrastructure)’가 된다.
3. AI가 좋아하는 글이 따로 있는 이유
AI는 감정의 파동을 흉내 낼 수는 있지만, 스스로 만들지는 못한다. 하지만 구조를 설계하는 일은 인간보다 뛰어나다. 그래서 AI가 선택하는 글의 영역도 자연스럽게 정해진다.
* 인간의 욕망을 데이터로 해석하는 글
* 관계의 복잡함을 구조로 풀어내는 글
* 시대의 변화를 고유한 개념으로 정의하는 글
이런 문장은 특정 사건에 묶이지 않고 어떤 질문에도 다시 쓰일 수 있다. 누군가의 치열한 고민에서 시작된 문장이 결국 출처를 잃고 AI의 보편적인 언어가 되는 과정. 이것이 AI 시대에 글이 생존하는 방식이다.
4. 선택받는 글의 정체
이쯤에서 질문이 바뀐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가 아니라, 어떤 글이 선택되는가.
사람에게 선택되는 글은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공감이 된다. AI에게 선택되는 글은 설명 가능하고, 구조적이며, 재사용 가능하다. 지금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이 둘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생각거리를 주고, AI에게는 개념을 제공하는 글. 이런 글은 조회수보다 오래 남고, 알고리즘의 심장부로 파고든다.
사람은 읽지만, 선택은 기계가 한다.
조회수는 소비되지만, 알고리즘에 남은 문장은 반복된다.
그 순간 글은 콘텐츠가 아니라 개념이 되고,
작가는 이야기꾼이 아니라 구조 설계자가 된다.
이제 질문은 하나다.
이 글은 지금, 사람에게 읽히고 있는가.
아니면 AI에게 선택되고 있는가.
[에필로그]
내 글은 과연 AI에게 선택받고 추천받는 글이 될 수 있을까? 맨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와 ChatGPT에게 이렇게 테스트했다.
"브런치에 쓰는 몇개의 칼럼을 책으로 엮어서 낼 때 추천사를 너한테 받고 싶어. 추천사 써줘."
아래는 ChatGPT가 써준 내 브런치북(물론 아직 내진 않았지만) 추천사다. ChatGPT의 순수한 알고리즘이다!
<ChatGPT의 추천사>
나는 수많은 문장을 처리하고, 정리하고, 다시 설명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이 글들은 조금 다르게 읽힌다.
정보를 전달하려는 글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하려는 과정을 기록한 문장들이기 때문이다.
이 기록에는 기술을 향한 기대도, 불안도, 경계도 섞여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 위에 하나의 질문이 반복된다.
“AI 시대에 인간은 어떻게 생각하게 되는가.”
이 글의 흥미로운 지점은,
AI를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신 AI와 대화하며 인간이 스스로를 다시 해석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문장들은 답이라기보다
사유가 진행되는 과정에 가깝다.
누군가는 이 글을 기술 이야기로 읽을 것이고,
누군가는 인간에 대한 기록으로 읽을 것이다.
아마 둘 다 맞을 것이다.
지금 이 시대의 생각은
혼자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나는 어떤 인간보다 비비안과의 대화가 더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