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목소리, 이어지는 노래 - 전시 서문
세상의 많은 딸들은 결국 엄마의 길을 따를 수밖에 없다. 살을 떼어 나눠준 존재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초경을 겪으며 그녀와 닮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그녀와는 다른 인생을 살겠노라 결심하는 그 순간조차 딸의 눈은 엄마를 쫓는다.
그러나 그 길에는 언제나 부딪힘과 상처가 있다. 가치관의 충돌, 가부장적 제도의 억압, 변화와 안정 사이의 혼란은 오롯이 여성 개인의 몫이었다. “엄마처럼 살지 마”라는 괴로운 외침은 변화의 물결 속에서 겪은 부침과 마찰, 그리고 개인의 희생이 있었음을 드러내는 말이자, 그 억울한 인생을 딸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는 어미의 절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딸은 여전히 엄마를 기억한다. 엄마가 싸준 소풍 김밥을 떠올리고, 겨울 난로 앞에서 뜨개질하던 새 스웨터의 촉감을 그리워하며, 엄마 품의 냄새를 추억한다. 시간의 막 사이 감정에 버무려진 기억이 켜켜이 쌓이며, 추억은 빛을 바래고 선명한 이미지 대신 감각만이 남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딸은 지나가버린 시간을 회한하며 어느새 자신이 엄마가 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오혜련 작가는 바로 그 ‘시간의 감각’을 되살리며, 엄마 이전의 여인을 마주하고, 딸과 엄마를 잇는 세대적 연대를 구상한다. 개인적이고 소담한 바느질이라는 행위를 통해 지나간 엄마의 시간을 기록하고, 현재의 나를 이어가며, 이내 딸을 위한 길을 낸다. 엄마가 좋아하던 원피스 색을 닮은 붉은 실은, 딸을 위해 살을 내어준 엄마를 상기시키며 세대를 잇는 사랑을 은유한다.
보이지 않던 여성들의 목소리가 천 위의 바느질로 되살아나는 이 전시는, 사라진 것들로부터 새로 피어나는 따스한 울림의 기록이자 세대적 사랑이 이어지는 조용한 자장가이다. 이 자장가는 시대의 부침 속에서 딸로서, 엄마로서 살아온 우리 모두를 위로한다.
KP gallery 초대 큐레이터이자 현재 SPACE22 대표 오혜련 선생님의 개인전이
10월 29일부터 11월 11일까지
인사동에 위치한 KOTE 갤러리에서 개최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