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心), Unfolding Awareness

전시 서문

by 니나

세상과 역사의 제어 불가능한 흐름 속에서 사람들은 조야한 목적을 위해 눈에 드러나는 모습만을 바꾸려 한다. 증폭하는 불안과 슬픔의 근원을 찾지 못한 채, 눈앞에 주어진 현실을 수동적으로 감내한다. 그리고 그것을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스스로를 가짜 위로하며 하루를 스친다. 지켜야할 것은 무엇인지, 버려야할 것은 무엇인지, 존재와 삶의 목표와 염원을 되새겨보지만, 어둠 속에 혼자 버려진 듯한 황망함이 불쑥 찾아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주변은 시시각각 변하고, 나는 그 흐름에 편승하지도, 무언가를 굳건히 지키지도 못한 채 서 있었다.


그러다 그의 사진을 발견했다.

사진은 조용하다. 빛은 고요히 바위를 어루만지고, 그림자는 느리게 시간을 쓸어올리다 어느덧 그 자리에 머문다. 강진형의 마애불은 수백, 수쳔 년의 시간과 바람, 비, 햇빛, 그리고 인간의 기도를 품은 숨결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인간의 모습, 아니, 나 자신의 모습으로 분한 듯한 착각이 든다. 렌즈는 ‘불상’을 향하고 있으나, 그가 찍는 것은 결코 불상의 형체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표면 너머, ‘드러나는 것과 숨겨진 것’ 사이의 떨림에 가깝다.


사진 속 부처는 풍화 속에 닳아있었다.

영원할 것 같은 얼굴은 마멸되었고, 그 마모된 돌의 결 속에서 나는 다른 진실을 마주했다. 그것은 돌에 새겨진 영원을 향한 인간의 염원과 그 덧없음이 교차한다는 사실이었다. 붙들고 싶었던 진실이 사실은 ‘불변하는 것은 없다’는 부처의 가르침이라는 아이러니였다. 시간은 모든 것을 침식시켰다. 그러나 그 흔적 속에서 오히려 ‘불변’을 탐하는 욕망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그 욕망의 초상이다. 영원하고자 했던 염원은 결국 사라질 수 밖에 없는 비애로 귀결되고, 이미 알고 있지만 붙들고 싶은 인간의 처절함을 함축한다. 그럼에도 그는 사라짐을 기록함으로써 본질에 한걸음 더 다가서고자 한다. 그러니 사진 속 닳은 표면은 다시 영원의 얼굴을 닮는다. 다만 그 영원은 변하지 않는 완전함이 아니라 모든 변화를 끌어안고 여전히 존재하는 어떤 숨결이다.


마애불은 돌에 새겨 만든 불상이 아니다.

자연 속에 이미 존재하던 부처를 ‘발견’한 것이다. 그 옛날 석공은 그저 바위의 불필요한 부분을 걷어내며, 본래부터 그 안에 있던 실재를 드러냈다. 그러므로 조각은 창조가 아니라 더 이상 걷어낼 것이 없는 본질의 상태로 향하는 과정이다. 작가 강진형의 사진 또한 이와 닮아있다. 그는 마애불을 찍지만, 보이는 것을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바위에 스며든 시간, 염원, 그리고 내면을 향하고 있다.


그러다 사진 속 두 개의 불상에서 내면의 풍경을 발견했다.

거대한 불상의 다리 앞에 위치한 작은 불상은 열반에 도달한 듯 보이지만, 한편으론 더 큰 존재에 의탁하고 싶고, 안온한 어딘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스며든 듯하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불경 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었던 아이처럼. 그 평화로운 순간으로의 회귀 욕망이 카메라에 붙들렸다. 이제 어미는 나이가 들었고, 더 이상 그 무릎에 누워 불경을 들으며 칭얼댈 수는 없지만, 그 기억은 여전히 살아있다. 그것을 삶에 덕지덕지 붙어 괴로운 감정들을 관조하고 흘려보내며, 한때 호기심과 탐구심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였던 순수한 상태, 본질에 가까웠던 나를 되새기는 일이다. 그렇게 마애불의 사진은 사라진 시간에서 되돌아오는 미래가 된다. 짦은 인간의 생을 비추는 돌의 시간과 형상은 사진 속에서 영원을 탐하는 인간의 욕망을 반추한다. 그리고 그 앞에 멈춰 서서 다시 묻는다. “본질이란 무엇인가?”


하지만 우리는 불가지 (不可知)의 존재다.

감각 너머의 세계를 결코 완전히 알 수 없다. 그러니 그 불가해함을 끌어안고 그 앞에 고요히 서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때 의식은 비로소 천천히 피어난다.


<Unfolding Awareness>는 바로 그 시간이다. 마애불이 돌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듯, 사진 앞 의식 또한 서서히 드러난다. 영원을 꿈꾸는 인간의 덧없음, 보이지 않는 것을 헤아려보는 사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 피어나는 자각. 사진 속 마애불은 부처도 돌도 아니었다. 마음이었다.


우리는 어떤 연유로 이곳에 모여 이 사진을 함께 바라본다.

그러나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고, 우리는 언젠가 헤어질 것이다. 그 끝이 아쉬워 마애불 사진을 보며 영원을 꿈꿔보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유한하고 제어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삶이다. 그 시간 속에서, 그럼에도 변하지 않을 진리와 본질을 고민한다. 그리고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기록한다. 그것은 간절히 염원한 것을 조우하고 간직하고자 하는 옛 석공과 작가와 그리고 우리의 기도이다.




강진형 선생님의 개인전 "심(心), Unfolding Awareness"이

11월 4일부터 21일까지 강남역 사거리에 위치한 SPACE22에서 열립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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