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 異香
노래에는 각자의 곡마다 배어 있는 향기가 있다.
원작자가 의도한 향을 그대로 취하는 사람도 있고 의도와는 다르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의도대로 느꼈건 느끼지 못했건 노래는 한 사람의 마음속에 가 닿고 비로소 하나의 의미가 된다. 시간이 지나 어디선가 잊고 지냈던 노래가 들려오거나 머릿속의 플레이리스트에서 추억의 노래가 자동 재생될 때면 그때의 추억 속에 흠뻑 빠진다. 그 노래가 마음속에 닿았던 날의 날씨와 분위기와 느낌이 마치 어제 먹은 된장찌개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노래의 향기에는 장점과 단점이 하나씩 있다. 먼저 장점은 온전히 ‘나’에 의해서 재해석되고 나만이 기억하고 나만이 추억하는 누구도 함께할 수 없는 미지의 비밀공간이다. 설령 추억의 장소와 향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 아끼는 사람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오고 싶어도 같은 마음으로 동화되기란 어렵고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건 소금이 맛이 짠지 아니면 단지 같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고 깻잎 논쟁처럼 옳고 그름을 딱 잘라 정의하기 힘든 것과 같은 이치다. 똑같은 한 곡의 노래를 듣고도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감흥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받은 느낌과 다른 느낌을 받은 사람에게 절대 비난하거나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것이 유일한 단점이다. 내가 동화되는 감정을 다른 사람과 똑같이 양분해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이다. 동상이몽과 같다. 같은 노래를 듣고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받아들인 포인트나 디테일이 조금씩 다르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노래를 듣고 같이 눈물을 흘렸다고 해도 눈물의 의미가 서로 다르다. 한 사람은 하나의 과거 기억이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고 또 다른 한 사람은 현재 직면한 상황이 노랫말로 느껴져 눈물로 승화됐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눈물이라는 같은 결과물을 도출해 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동상이몽에 빠진다.
음악과 노래에는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 엄청난 힘이 있다. 음악이나 노래를 전공하지 않았고 그저 노래를 좋아하는 한 사람이지만 음악은 때론 친구가 되어주었고, 위로를 건네주었고, 힘을 내라며 응원해 주었고 덕분에 주저앉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평균 4분 정도 되는 노래 한 곡은 엄청난 사람들의 노력이 깃들어 있다. 어디선가 영감을 얻고 가사를 쓰고 멜로디를 입혀서 적절한 악기를 통해 원하는 분위기를 이끌어 내고 마침내 목소리로 숨소리 하나까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진 결정체다. 그러니 각고의 노력을 통해 만들어지는 노래에 감동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음악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완벽한 의미가 된다. 노래는 사람을 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아주 먼 옛날부터 인류는 음악과 함께 생활해 왔다. 즐거울 때 춤추고 노래를 흥얼거렸고 심지어는 사람이 죽어도 장송곡이라는 노래로 떠나간 사람을 애도했다. 실생활 속에서도 아침에 알람을 듣고 일어나고 지하철을 이용할 때면 경쾌한 멜로디와 함께하고 헬스장에서 운동할 때도 야구장에서 응원할 때도 모두 음악이 사용된다. 누군가는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는 음악도 우리 주변에 널리 퍼져 있다는 증거이고 그만큼 사람은 음악과는 떼고 싶어도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나이에 따라 학창 시절을 다르게 보냈고 시대가 다르다. 그것을 쉽게 체감할 수 있는 지표는 노래다. 내가 중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버즈가 남학생들의 노래방 1순위 곡이었고 싸이월드의 미니홈피 속에는 프리스타일의 Y나 Muse의 Time is ruuning out 같은 노래가 인기였고 고등학교 때는 소녀시대, 원더걸스, 빅뱅, 동방신기 같은 아이돌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노래는 같은 세대를 살아온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하나의 매개체 역할도 한다. 남자들에게는 버즈만큼 각자의 인생에 의미가 있는 노래가 있다. ‘입대 곡’이라는 개념인데 군에 입대하던 때에 발매된 노래를 말한다. 아마 군대를 다녀온 한국 남성이라면 군가는 잊었어도 입대곡은 절대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 입대 곡은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Abracadabra-2009년 7월 발매되었다.)
이처럼 노래는 세대 간의 공감대 형성에도 도움을 주고 추억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소통을 이어가게 해주는 구심점이 되기도 한다. 콘서트장에 가보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온다. 당연히 공연 가수를 좋아해서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이고 가수를 모르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이끌려 오게 된다. 밝은 노래를 들어도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있고 조용한 노래를 들어도 웃으며 응원봉을 흔들며 즐기는 분들도 있다. 저마다 그렇게 노래를 즐기는 모습은 다르고 의도치 않게 공연에 참여했어도 나갈 때는 반대로 엄청난 팬으로 바뀌어 있는 경우도 꽤 볼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노래를 향기로 기억한다. 전혀 어떤 의도도 없었음에도 몸과 마음속에 그리고 머릿속에 저장된다. 생활에 지쳐서 한참 좋아했던 노래를 잊고 지내고 길을 걷다 우연히 그 노래가 귓가에 들려올 때 내면의 목소리가 손가락을 튕겨 삽시간에 추억 여행으로 빠져들게 한다. 걷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좋은 기억이 깃든 노래라면 기분이 하루 종일 좋지 않았어도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짓게 만들고 슬픈 기억이 깃든 노래라면 응어리져있던 마음이 녹아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추억은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당시의 상황과 향기의 감각을 현실로 끌어온다. 그리고 살포시 어깨에 기대 웃으며 말한다.
“안녕 오랜만이야 잘 지냈지?”
반갑다며 인사를 건네는 오랜 친구에게 과연 나도 웃으며 반갑다는 인사를 할 수 있을지는 마음 상태에 달려있다. 앞으로도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일을 겪고 더 많은 기억을 만들고 저장할 것이며 행복한 날들에 만났던 노래들과 힘들었던 날들의 노래들을 기억하려 한 적이 없어도 각인되어 남아 있을 것이다.
추운 겨울을 지나 매년 찾아오는 봄이 피부에 와닿는다.
따스한 봄날 싱그러운 햇살 아래 느껴지는 향기로운 꽃향기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