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기에 소중한 것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잃지 말자

by 정수윤세

사람은 살아가다 보면 소중한 것들을 지키지 못할 때가 생긴다. 그런 괴로운 상황들은 자각하지 못하는 새에 벌어지기에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손에서 빠져나간 뒤라는 것을 깨닫고 뒤늦게 후회하곤 한다. 쉬운 예를 들자면 호흡이 그렇다. 사람은 호흡이 멈추면 생명을 유지하지 못한다. 사실 사람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동일하다. 호흡은 살면서 가장 중요함에도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자연스러운 위치에서 공존한다. 숨을 쉰다고 의식하기 전에는 내가 숨을 쉬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잠을 자는 순간에도 기억이 사라지는 순간부터는 호흡을 하고 있었는지 멈춰있다가 잠에서 깨는 순간 다시 시작되는지 나 자신은 알지 못한다. 이렇듯 인생에서는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벌어지는 일들이 상당히 많다.


가족의 소중함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모두가 다 마음속에는 간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가족이기에 기분에 따라 가족이니까 이해해 줄 거란 믿음을 가지고 편하게 대하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 지인도 모두 마찬가지다. 믿고 있던 사람이 떠나가거나 사이가 틀어졌을 때 배신감과 허무함을 모두 느끼게 된다. 절대적으로 믿고 있던 사람이 떠나갔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이기도 힘들고 의식이 자각이 되는 순간 고통은 배가 된다. 옛말에 ‘있을 때 잘해’라는 표현이 있었고 현대에 들어와서는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잃지 말자’라는 명언도 있다. 이런 말들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비슷한 상황을 경험해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 말은 누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영원히 자신의 곁에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 타인이 자신을 떠날 수도 있지만 상대방의 실수로 자신이 먼저 관계를 끊는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주 두껍게 얼어버린 강물 위를 걷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다. 이것은 인간관계에만 국한되지도 않는다. 건강이나 배움 등에 있어서도 착각하고 자각하기 어려워한다. 특히 건강은 아무리 젊다고 해도 병은 특정 대상에게만 나타나지 않는다. 병원에 누워있는 환자가 자신이 될 수도 있고 가족이 될 수도 있다. 그제야 평소 건강에 대해 신경 쓰지 못한 사실을 자각하고 후회한다. 누구나 알고 있듯 잃고 나서 후회하는 것만큼 바보는 없다. 건강은 그 누구도 책임져주지 못한다. 오직 본인이 본인에게 행할 수 있는 온전한 관심과 사랑이 모여서 건강이 된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좋은 책을 읽고, 편하게 휴식하면서 한 번 살아가는 전 우주에 하나뿐인 몸에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해야 한다. 남들이 한다고 해서 다 따라서 할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더라도 장수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 사람은 자신이 아니다. 절대적으로 간과해선 안 되는 사실은 자신은 온전히 자신일 뿐이지 어떠한 기준에서도 자신을 신경 써주지 못하면 어느새 건강을 잃고 만다.

지식과 지혜도 비슷한데 살아오면서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고 느끼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가방끈이 짧다고 해서 지혜까지 짧지는 않고 지식이 많다고 해서 지혜가 꼭 있지도 않다. 자신이 가장 힘들 때 손을 내밀어주었던 사람은 누구인가? 반대로 내가 진심을 다해 힘들어하는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주었던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떠오르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 사람인지 저 사람인지 헷갈리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익숙함의 노예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힘든 상황을 겪었을 때 도움을 주었던 사람을 평생의 은인으로 여기고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살거라 다짐했을 과거의 자신이었는데 현재를 바쁘게 살다 보니 어느새 희미한 기억 속에 묻혀버린 사람이 된다. 고마웠던 마음까지는 잃지 않았다 해도 당시에 가졌던 마음과는 전혀 다른 마음을 가지게 된다. 나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나 당연함을 자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힘든 상황에 들었던 상대방의 말은 세상 어떤 말보다 따뜻한 사랑의 햇빛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바쁜 생활에 치이다 보면 따뜻한 말이 아니라 잔소리처럼 들린다. 아주 간사한 사람의 마음을 자각하지 못하면 말이다.


과거의 기억들과 경험들이 모두 모여 지금의 자신이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고 주기도 하며 살아왔다. 인생에 진정한 스승이 없다고 여길지 모르겠으나 사실은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고 만나온 모든 사람이 스승님이다. 눈에 보이지 않으며 하늘에 계신다고 믿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 서로 관계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을 구성하고 만들어 왔다.


많은 것을 배우며 살아서 지식이 생겼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다 보니 사람들을 만났고 사람들과 관계하며 지내다 보니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하는 주관적인 가치관도 생겼고 좋은 것은 공유하고 나쁜 것은 없애려는 마음을 키워가며 지내왔다. 이런 것들을 통틀어 경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중심을 잃지 않는 자신이 있었고 주변 환경과 사람들이 있었다. 보기에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나쁜 것은 뱉어가며 한 사람이 생성되어 가는 중이다. 개인적인 취향이 잔뜩 들어가는 탓에 정해진 레시피는 없다. 하물며 아무리 유명한 세계적인 셰프라고 해도 전 세계인들이 모두 그 사람의 음식을 좋아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조건이 갖춰진 완벽한 사람은 앞으로도 세상엔 존재하지 않을 거다.


다만 한 걸음씩이라도 완벽한 사람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준 사람들의 은혜를 가슴속에 묻어두지만 말고 매일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머릿속에 떠올려 감사 인사를 전하기를 바란다.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준 것은 비단 사람뿐만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음악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는 글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는 동물이나 식물도 될 수 있다. 심지어는 전에 만났던 여자 친구, 남자 친구라고 해도 그들이 이해되지 않는 잘못을 저질러 관계가 파탄이 났어도 감사하길 바란다. 지금의 자신은 태풍 같은 자연재해에 휩쓸려 있지 않고 정상적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살아갈 수 있잖은가? 그러니 감사 인사를 전할 필요성이 있다. 붙잡고 있지 않아 줘서 고맙고 앞으로 더 빛나는 인생을 살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멕시코의 전통 중에 디아 데 로스 무에르토스(죽은 자들의 날)라는 전통에서는 사람이 세 번 죽는다고 믿는다고 한다. 첫 번째는 신체가 죽을 때고 두 번째는 장례식이 끝났을 때고 세 번째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잊혀질 때라고 표현한다. 아직 죽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우리를 만들어 준 모든 사람과 사물들을 기억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단 한 번의 인생을 사는 우리가 소중한 것을 지키는 유일한 힘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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