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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 Apr 23. 2023

공포와 불유쾌의 면봉 비빔밥

면봉이 너무 긴 거 아닙니까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다 보면, 공포와 불쾌감을 마주하는 인간의 수많은 유형을 관람할 수 있는 순간들이 있다. 꿀잼이라면 꿀잼이고 스트레스라면 스트레스고 경우에 따라선 연민이 되기도 한다.

이 PCR 검사라는 게 어떤 이에게는 1~2초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간단하고도 간편한 검사일 수 있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1초가 1시간처럼 느껴지는 아득한 공포가 되기도 한다. 검사를 받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검사 키트를 처음 받아보면 괴기스러울 정도로 긴 면봉을 보고 절망스러운 공포를 직면하게 된다. 이게 내 콧구멍에 다 들어갈 예정이라는 건가. 대충 적당히 치고 빠질 거면 면봉이 이렇게 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PCR 검사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사실 남녀노소 구분이 없지만 통계적으로 따지면 주로 어린아이들이 많다. 물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의연하게 검사를 받는 아이들도 많고, 아예 1~2살 유아의 경우엔 아무 생각 없이 ‘뭐가 지나갔냥.’ 하면서 휘리릭 끝나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인지가 명확해진 아이들의 대다수는 면봉을 받아 든 순간 곧 닥쳐올 불행을 직감해 버린다. 그래서 간혹 함께 온 부모가 아이가 면봉을 보지 못하게 검사를 받는 직전까지 면봉을 숨기는 경우도 있지만, 아이들이라고 눈치가 없는 게 아니다. 어떤 부모들은 ‘이건 재밌는 놀이야. 봐봐. 재밌겠지?’ (도저히 재밌게 보일 수가 없는데.) 라든가, '이거 하나도 안 아파. 아빠가 먼저 해볼게.' 라며 먼저 검사를 받고는 누가 봐도 눈물 콧물 찔끔찔끔 흘리는 아찔한 얼굴로 '이거 봐. 하나도 안 아프잖아.' 라며 아이들을 기만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일을 하면서 언제나 느끼듯,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훨씬 더 직관적이라 어른들의 이런 선의의 거짓말은 대부분 통하지 않는다.


이젠 하도 많이 보다 보니 처음에 들어오는 폼만 봐도 어떤 애티튜드가 나올지 대충 짐작이 되는데, 아이들이 공포에 질렸을 때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나오는 반응은 뒷걸음질이다. 일단 아이가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하면 난 그냥 마음을 놔버리고 여유롭게 기다린다. 5~10분 부모와 실랑이를 벌이다 끝내 검사를 받고 울면서 돌아가는 케이스가 태반이지만 경우에 따라선 검사를 받지 않고 몇 시간을 버티는 아이들도 있다. 내가 그동안 근무하면서 본 최장시간 사투를 벌인 아이는 3시간이었다. 그렇게 부모가 어르고 달래고 화내고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도 안 되는 상황이 있는데, 이런 경우는 대체로 아이가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해서 생긴다. 동네 병원에서 신속항원검사로 간편하게 끝내지 못하고 보건소까지 와서 PCR 검사를 받는다는 것은 반드시 PCR 음성 확인을 어딘가에 증명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은 땡깡 부리면 피하고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사력을 다해 몸부림을 치지만 이 검사를 안 받고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을, 오늘 아니면 내일, 내일 아니면 모레, 결국 이 코쑤시개를 겪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사전에 확실하게 인지시켜주지 않으면 이런 상황이 종종 발생하게 된다. 아이의 입장에선 절대 받고 싶지 않은 이 지옥 같은 콧구멍 검사를 피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것이다. 이럴 땐 대개 간호사나 내가 다가가 아이를 잡아드릴까요? 의향을 묻는다. 보통은 화색을 띠며 잡아달라고 말씀들을 하시지만 (그럴 때마다 하얗게 질리는 아이의 가련한 얼굴이란.) 아이한테 손을 못 대게 하는 부모님들도 있다. 그럼 별 수 없이 2시간이고 3시간이고 선별진료소 한쪽 구석에서 아이와 100분 토론을 벌이게 되는 거다. 진료소 문 닫는 시간이 되어 어쩔 수 없이 검사를 포기하고 돌아가는 부모와 아이도 있지만 결국 다음 날 또 온다. 그냥 넘어갈 수가 없으니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는 사실이 어떤 아이한테는 너무나 가혹한 세상의 법칙인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진 괜찮다. 아이니까.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선별진료소가 떠나가라 울어서 귀에서 피가 나긴 하지만 그럭저럭 양호한 편이다. 문제는 어른들의 케이스다. 어른들의 땡깡에서 난 공무원들의 비애를 조금이나마 체험해 볼 수 있다.

우리가 음식점이나 술집 등을 이용할 때, 돈을 지불했으니 난 지불한 만큼 상품과 서비스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듯이, 관공서에 오시는 분들도 세금을 착실히 냈으니 난 여기서 어느 정도 대우와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온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열심히 세금을 내고 국가가 제공하는, 내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는 것은 잘못된 게 아니다. 하지만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된다는 말이 있던가. 공포가 이상하게 변질된 다양한 애티튜드들이 난무할 때가 있다. 가령, 콧구멍에 면봉 앞대가리만 들어갔는데 감탄사처럼 욕을 박아버린다든지. 검사 직전, 다른 곳에선 살살해줬다며 아프게 하지 말라는 신신당부를 뒤에 사람들이 줄을 서든 말든 애국가마냥 4절까지 늘어놓는다든지. 좀 깊게 들어갔다고 일부러 그런 거 아니냐며 고소를 운운한다든지. (결국 고소가 아닌 민원이 들어왔다.) 아파서 화는 나는데 어디 풀 길이 없는 불쾌감으로 얼굴이 우락부락해진 채, 과도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본인이 내일 새벽에 가게를 열어야 하니 자기만 검사 결과를 빨리 알려달라든지. 약국 아닌데 약 안 지어 준다며 민원 넣겠다고 협박한다든지. 여기 앉아있으면 어른들의 땡깡을 아주 다채로운 모습으로 엿볼 수 있는데 내가 서두에 두려움과 불쾌감에는 남녀노소 구분이 없다고 쓴 이유는 여기에 있다. 공포와 불유쾌를 마주하는 수많은 남녀노소들을 겪게 되는 공간이다 보니 나도 사람인지라 비교를 하게 된다. 콧구멍이 좀 아팠다며 검사하는 간호사 부스를 발로 뻥 차버리고 가는 어른을 보노라면 그로부터 5분 전, 의연하게 검사를 받고는 의사 선생님 감사합니다!! 해맑게 인사하고 돌아가던 초등학생의 모습이 어쩔 수 없이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저번 주에는 한 어르신이 검사를 받으러 오셨다. 정신적으로 질환이 있으신 건지, 그냥 고집이 대단하신 건지 의료진이 아닌 나로선 알 길은 없지만 온 가족이 발버둥 치는 어르신을 붙잡고 있었고, 그럼에도 간호사분은 각이 잘 안 나오는지 검사에 애를 먹고 있었다. 아이를 붙잡는 것과 성인 남자를 붙잡는 건 아무래도 에너지가 다르기에 나도 다가가 합류해서 어찌어찌 겨우 검사를 끝마쳤는데, 너무 화가 나서 분을 이길 수 없었던 어르신은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나에게 던지고는 마구 저주를 퍼부었다. 대충 역병이나 떨어지란 뜻이었던 거 같다. 죄송하다면서 굽신대며 어르신을 모시고 가는 그 가족들을 보며 난 문득 궁금해졌다. 어떤 사연이 있을까. 저들에겐 어떤 드라마가 있을까. 굉장히 직업병적인 반응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여기선 어쩐지 그렇게 된다. 어떤 사람은 멀쩡하게 저벅저벅 걸어 들어와서 휠체어를 요구하길래 누구 불편한 사람을 데려왔나 보다 싶어 안내해 줬더니 본인이 털썩 앉아 유유히 휠체어 끌고 지나가 버리기도 한다. 응? 본인이었어? 저 사람은 어디가 불편한 거지? 내가 모든 질병을 알 수 없으니 모를 일이다. 이렇듯 여기는 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내가 상식이라 여겼던 통념을 넘어선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그래서 이곳 선별진료소는 때때로 스트레스의 근원이 되기도 하지만 때때로 호기심 천국이 되기도 하고, 진상을 보며 한숨짓다가도 문득 궁금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되는 기묘한 공간이다.


난 개인적으로 공포를 포함한 모든 감정들이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나한테 사탕 하나는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5살짜리 꼬마가 들고 있는 사탕을 한 번 빼앗아보라. 그 아이는 온 세상을 다 뺏긴 사람처럼 서럽게 울지도 모른다. 공포나 상실, 불쾌감, 그 밖에 다양한 감정들은 사람에 따라 그 무게가 다른 법이다. 그러니 내게는 수도 없이 마주치는 별 것 아닌 PCR 검사라 할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공포가 될 수 있음을 존중한다. 그리고 그 감정이 ‘공포’이기 때문에 나이스하고 멋지게 마주하기 힘들다는 것도 이 일을 하면서 이해하게 된다. 나 역시 내가 두려워하는 공포 앞에서 의연할 자신이 없다. 어쩌면 그 누구보다 비겁하고 찌질할 수도 있다. 그건 닥쳐봐야 알 일이다. 그저, 두려움 앞에서 멋지고 당당하진 못해도 너무 꼴사납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도 가끔 여기서 PCR 검사를 받곤 하는데, 아무래도 이런저런 사람들을 대하며 함께 고생하는 사이라 최대한 귀찮지 않게 조용히 코를 들이대고 검사를 받긴 하지만, 나도 솔직히 간호사님이 면봉 들고 내 콧구멍 노려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긴 한다.


‘...면봉이 너무 긴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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