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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 Jun 02. 2024

이번 인생은 내 수많은 인생 중 하나이기 때문에

두 달 전쯤인가, 친구와 저녁을 먹고 근처 칵테일바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어쩌다보니 종교 얘기가 나왔고, 친구는 불교가 좋다고 했다. 윤회사상이 있는 게 좋다면서.


나는 정말이지, 친구의 생각이 신기했다. 이번 삶 하나 챙기기에도 버거웠고,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 내가 어디에 어떤 조건으로 태어날 지도 모르는데 그런 윤회사상이 좋다고? 계속 태어나고, 또 태어나고, 또 태어나서 어떤 조건으로 살게 될지도 모르는 인생을 계속 반복하면서 고통을 반복한다는 걸 주장한다는 그 사상이 좋다고? 아니 뭐, 요즘의 나는 나를 사랑하고 지금의 삶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건 "지금의 나"가 좋은거지, (윤회사상에 의거한다면) "다시 태어나게 될 나"를 좋아한다는 의미는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솔직히 나에게 인생은 좋고 행복한 순간도 있지만, 힘들고 괴로운 순간들도 많기에 인생을 계속 반복한다는 것은 조금 (사실 많이) 버겁게 느껴졌었다.


친구의 요지는, 경험/직업/장소 등 지금 겪어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은데 윤회를 하면서 그런 삶들을 겪어보고 싶다는 점이었다. 또한 현재의 삶에도 여러 어려움과 힘든 상황이 있지만 그래도 잘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다른 삶에도 그러한 어려움과 힘듦을 해결해 나가면서 삶을 일궈낼 것 같고, 그렇게 살아가면서 그 삶에서의 의미를 또 발견할 것 같다는 얘기를 하였다.


솔직히 당시에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정말이지 공감이 되지 않았다. '나는 그냥 이번 인생 화려하게 불태우고 다시 태어나고 싶지는 않은데..'라는 생각과 함께 '사람마다 생각이 참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퇴근하고 돌아와서 힘들어하던 날이었던 것 같다. 맞지 않는 일을 하느라 지쳤고, 회사를 언제 그만둘지 - 지금 그만두어도 될지 - 충분한 돈이 모인게 맞을지 - 이렇게 건강을 해칠 바에는 그냥 당장 그만두는 게 낫지 않나 - 등의 생각을 꼬리에 꼬리를 문 채로 고민하고 있었던 것 같다. 돈과 내 건강과 미래의 수명을 등가교환한다는 느낌이 드는 날들의 반복이었다.


그러다가 그냥, 이번 생은 내 수많은 생 중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게 사실인지의 여부와 특정 종교를 믿고 말고의 여부를 떠나서 맘이, 편안해졌다.

이번 인생에서 행복해야 한다는 집착, 성취를 하고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 경험해보고 싶은 것을 게걸스럽게 경험해보고 빠짐없이 두 눈에 담아야 한다는 욕망, 노후에는 돈 걱정 없이 편하게 살아야 하지 않나 싶은 걱정, 지나간 시간과 동생의 삶에 대한 회한 등이.. 그 걱정과 고민들의 무게가, 너무나도 가벼워졌다. 


이전에도 나는 수많은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수많은 삶을 살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의 삶은 그러한 수많은 삶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이번 삶이 행복하든 불행하든, 돈이 많든 돈이 적든, 성취를 하든 성취를 하지 못하든, 원하는 것을 경험하든 하지 못하든. 그냥 모두 한낱 찰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머리 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그저 중요한 것은 지금 나의 마음상태가 충만하고, 안정적이고, 건강한지... 정도일 뿐이라는 것을. 

그러자 복잡했던 삶이 너무나도 조용해졌다. 놓지 못해 두 손에 꽉 쥐고 있었던 삶의 가닥가닥들을 풀어주고 나니 남은 건 안정감과 고요함이었다.


그래서 나는 믿기로 했다. 이번 생이 내 수많은 생 중 하나일 뿐이라고. 이전에도 나는 수많은 삶을 살았고, 앞으로도 수많은 삶을 살거라고. 수많은 이전 삶 중에서 나는 매우 행복했을 수도, 핍박과 차별과 멸시를 받았을 수도, 많은 성취를 이루어내었지만 공허한 삶을 살았을 수도, 소박하지만 소박함 속에서 매일매일의 아름다움을 찾아낸 삶을 살았을 수도, 부자였을 수도, 매우 가난하게 살았을 수도, 아름다웠을 수도, 외적으로 불만족스러워했을 수도, 건강했을수도, 매일 병마와 싸워야 했을 수도, 그리고 지금 삶도 그런 삶 중의 하나일 뿐일 수도.


그래도 뭐, 사실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반복되는 인생을 산다는 것이 어차피 떨어지게 될 큰 돌을 매일 가파른 언덕 위로 굴려야 하는 시시포스의 운명같아서인지, 나에게 주어진 삶은 지금 하나로도 족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주어진 삶이 하나인 게임을 플레이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여러 번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 속이라고 생각하면, 나에게 느껴졌던 삶의 무게들이 한없이 가볍게 다가오는 것 같은 해방감에, 이번 인생은 내 수많은 인생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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