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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그거 저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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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연민

브런치는 작가로 승인된 사람에게만 글을 쓸 수 있게 한다. 마치 좁은 문 앞에 버티고 선 문지기가 곁눈질로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말하는 것 같았다. 허락받고 쓸 테면 쓰시고, 아니면 가던 길 가시라. 나는 결국 작가 신청을 했다. 절에 들어가려면 머리를 깎으라니 일단 따르긴 하겠으나, 내 입산(入山)만 하면 반백년 쌓은 염불 실력으로 이 절을 기어코 뒤집어 놓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수많은 실패를 겪으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 실패의 경험을 온전히 독자들과 나누며, '나 같은 사람도 삽니다, 그러니 당신도 살아요.'라는 위로의 글을 쓰고 싶습니다."


물론 읍소를 약간 곁들인 것도 사실이다. 인생에 실패하고, 무일푼에, 남은 거라고는 그저 노트북 하나뿐인데, 글 쓰는 길마저 막히면, 앞으로의 삶이 암담하기 짝이 없을 것 같다,는 어쭙잖은 '감정에의 호소' 같은 것 말이다. 아마도 작가 승인 부서의 브런치 담당자는 이렇다 할 성공 한 번 못해 본 이 자가 작가 승인에서까지 실패하면 무슨 일이 나도 나겠다, 싶었을 테다. 그는 담당 팀장에게 일단 사람은 살리고 보자, 는 별도 기안을 올려 내 작가 승인을 받았음이 틀림없다. 그렇게 나는 단번에 승인 메일을 받았다.

내가 인생의 온갖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그런 글을 쓰고, 그것으로 세상에 위로를 전하겠다는 생각만은 진심이었다. 그렇게 될 때에야 비로소 나의 실패도 의미를 얻을 수 있고, 나도 삶을 지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실패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매일 한 편씩 쓰고, 어떤 날엔 두 편도 썼다. 나의 글쓰기 열정과는 달리, 독자들의 반응은... 없었다. 위로받을 사람이 없는데, 나는 위로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하고 있었다. 댓글창은 텅 비어 있었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빈 공간에서 행간을 읽을 수 있었다.


"자까님, 이런 얘기는 그냥 일기장에나 쓰심이 어떠실는지?"


연재를 중단했다. 웹소설 플랫폼에서도 몇 차례 연재를 하다 중단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철저히 상업적인 공간이기에 지표가 좋지 않으면 중단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독자의 반응이 없는 것도 나를 힘 빠지게 하는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실패의 기억을 떠올리며, 당시를 회상하고 곱씹는 것은 심장을 쥐어짜는 고통이었다. 위로는 그저 손 끝에서 경쾌한 타자소리에 맞춰 대충 던져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 여기 실패 한 궤짝 있으니 읽고 가세요. 그러면 여러분이 겪은 한 움큼의 실패는 같잖게 여겨질 거예요. 어서들 나를 즈려밟고 가세요."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온몸이 발가벗겨진 채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느낌이었다. 도저히 더 쓸 수 없었다. 브런치북으로 10화 정도를 연재하다 내렸다. 그리고는 돌연 정반대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만 하면 망하지는 않아요."


투자서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고, 성공담도 아니고, 실패기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글을 쓰고 있었다. 진솔한 글이 아니었고, 내가 몸으로 체득한 내용도 아니었다. 5화 정도 쓰다가 한 달 여 멈춰 있다. 이번에는 브런치북을 내릴 힘도 없어 그냥 두고 있다. 별도 기안을 통해 작가 승인을 얻어 준 이가 팀장에게 시말서를 쓰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리고 오늘 오랜만에 찾은 브런치에 '작가의 꿈을 찾습니다'라는 공지를 보았다. 눈에 들어온 건 딱 하나, 오늘이 마감일이라는 것이었다. 불현듯 가슴에서 뜨거운 작가 본색이 터져 나왔다. 맞아 나 작가잖아. 작가는 낮술 먹다가 제 부모는 못 알아볼지언정, 마감일에는 만사 제치고 글을 써야 하는 거지, 하며 노트북을 열었다.

뜻대로 되는 것 하나 없는 인생이지만, 딱 하나 작가가 되는 것은 의지로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순간, 나는 세상에 없던 문장을 만들고, 이야기를 내놓는다. 요즘 유행하는 그 크리에이터, 창조자가 되는 것이다. 나는 쓰던 브런치북을 내리고, 조만간 새로운 세상을 다시 만들어 볼 참이다. 브런치랑 다시 한번 잘해 보려 한다. 그래서 내 작가 승인을 받아 준 그에게 꼭 특진의 기회를 안겨 줄 것이다.


'작가, 그거 저도 꼭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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