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아치와 폭주족
"난 나중에 한국 떠나서 살아야지"
"하 역시 헬조선이야. 쯧쯧."
대화마다 '만약 유럽이었으면 말이야~'등을 입에 담으면서 모든 짜증의 탓을 헬조선으로 돌리는 대화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선진국에서도 주변인이자 제2등 시민으로 살 수 밖에는 없다는 걸 생각하면, 한국만 아니었다면 모든 게 나아질 거라고 말하는 그 태도들이 우스워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스스로도 우습다고 생각하는 이 말들을 버릇처럼 하게 될 때가 있다. 바로 바이크를 탈 때이다. 도로에서 바이크를 탈 때만큼은 헬조선을 저릿하게 실감하며, 한국을 떠나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강력하게 한다.
누군가가 그러더라. 한국의 상위 계층에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고 싶으면, 바이크 타는 건 숨기는 게 좋을 거라고. 맞는 말이다. 한국 중산층 이상의 삶에 바이크 따위가 들어갈 자리는 없으며, 그렇게 도로에서, 그리고 사회구조에서 바이크는 점점 주변부의 소수자로 똬리를 틀 수밖에 없어진다.
말하자면 한국에서 오토바이는 계급적인 경멸과 강력하게 붙어있으며, 오토바이를 향한 시선은 곧 '양아치' 혹은 '폭주족'이라는 사회적(이자 경제적) 낙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회 전반에 퍼진 낙인은, 일상의 언어와 도로에서 다시 재생산된다.
차 주인에게는 쉽게 못할 '이런 건 얼마예요?' 같은 실례일 수도 있는 질문을 바이크만 보면 쉽게 해대고, 길가에 서있는 바이크를 툭툭 건드리거나 만져보는 황당한 행동들도 매우 자연스럽게 한다. 도로에서도 마찬가지다. 바이크가 차선 하나를 차지하고 달리는 걸 꼴 보기 싫어하며, 최소한의 차간 거리 확보나 깜빡이 같은 기본적인 매너조차 바이크를 대상으론 잘 지키지 않는다. 차에서 안전벨트를 하지 않는 습관에는 무척이나 관대하지만, 헬멧이라도 안 쓰고 달리는 오토바이를 보면 어김없이 한 마디씩 한다. "역시 오토바이 타는 새끼들. 위험한 줄 모르고 쯧쯧."
일상에 만연한 이런 상황에 처할 때마다, '헬조선'을 강력하게 실감하게 된다. 남들의 오지랖과 꼰대질은 쉽게 지적하면서도, 자기가 남에게 행하는 크고 작은 폭력들은 조금도 성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드글거리는 헬조선을. 실제 바이크 사고율과 사망률에 대해선 조금도 모른 채 '내가 아는 누구누구도 사고로 말이야...'로 시작하여 '바이크 타면 위험해'라는 말로 오지랖을 부리는가 하면, 급기야는 '환경오염'을 들먹이면서 바이크를 아니꼽게 보기도 한다.
바이크를 향한 시선이 이렇게 곱지가 않으니 바이크가 처한 법적인 사각지대와 허술한 제도는 나아질 기미가 없고, 오히려 바이크에 대한 규제는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보험료는 차와 비교해 턱없이 비싸고, 바이크 주차장은 절망적인 수준이며, 자동차만 허용되는 도로가 전국 곳곳에 널려있다. 환경검사 기준은 점점 까다로워져서 유럽과 달리 탈 수 있는 바이크의 선택 폭이 훨씬 좁고, 그렇다고 바이크를 꾸밀 수 있도록 허락하지도 않는다. 도로 규정상 (해외에선 당연하게도 허락되는) 바이크의 수많은 행위들을 '불법'으로 규정하며 늘 경찰 실적의 가장 손쉬운 먹잇감이 된다.
바이크를 둘러싼 환경이 이 지경이니, 바이크를 탈 때마다 헬조선을 욕하고 선진국들을 동경하게 된다는 것이다(바이크 문화에 있어서 만큼은 그 어떤 나라라도 한국보다 훨씬 선진적이다). 교수나 학생 직장인 할 것 없이 자연스럽게 바이크를 타고 출근하고, 대통령 역시도 스쿠터를 타는 게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그런 나라들이 참으로 부럽다. 바이크를 도로 위의 어엿한 권리를 가진 차로 대해주고, 라이더를 향한 사회적인 적의가 없는 그들의 문화가 부럽고, 무엇보다도, 그런 사회적인 편견과 낙인이 없는 사회에서 위축되지 않고 맘 편하게 타고 있는 많은 라이더들이 참으로 부럽다.
유럽의 문화를 부러워해봤자, 현실은 헬조선이다. 나는 결국 헬조선에서 앞으로 계속 바이크를 타면서 살아야만 한다. 양아치, 폭주족이라고 손가락질해도 어쩔 수 없다. 달리 할 말도 없다. 기껏해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짜증나는 그들의 편견 하나하나에 반응하지 않고)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세련된 문화를 보여주는 일이다.
다만, 주변의 시선따위 신경쓰지 않고 타오던 태도는 조금 바꾸기로 했다. 편견으로 가득 찬 주변의 시선때문에 날이 갈수록 피곤해지고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이제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일상의 편견을 고쳐나가기로 했다.
한국에서 바이크를 탄다는 건, 참으로 피곤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