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이제 이 브런치는 제 겁니다

by 코뿔소

시대가 참 어렵습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며 토닥입니다. 한쪽 책장에는 바이브코딩이니 MCP니 날 선 기술용어가 담긴 책들이 뒤처지지 말라하고, 맞은편 선반에는 파스텔톤 일러스트가 그려진 에세이들이 쉬어가라 합니다. 그래서 우린 도대체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요?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전자 쪽이었습니다. 열심히 살았습니다. 빨리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개인사업, 대기업 인턴, 국제기구, 스타트업 전략실 리드를 거쳤고 20대에 제 나이 또래가 받기 힘든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국제 봉사 단체에서 총무로 일했고, 덕분에 인맥도 제법 생겼습니다. 실제로 도움을 주신 분들도 많고요. 금융계에 계신 아버지 덕에 자산관리도 일찍 시작한 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쉴 때 뭐 하냐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일만 했거든요. 그럼 쉬게 되면 뭐 하고 싶냐는 질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고 싶은 게 없었거든요. 어딘가 고장 난 게 아닌가 갸웃거리게 됩니다.


재미만 없었으면 그냥 지나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거리감도 주었습니다. 내 앞에선 실수하면 안 될 것 같다, 흐트러진 모습 보여주면 실망할 것 같다, 두 번째 들었을 때는 확실히 문제임을 인정했습니다.


돌아보면 고등학교 때 저는 인디 노래를 발굴해 주는 플레이리스트 맛집이었습니다. 8살 때부터 조형미술을 했고, 미대 입시를 위해 그림을 3년 넘게 그렸습니다. 시를 썼고, 함께 장맛비를 맞으러 나가고, 친구 생일에 직접 만든 작품을 선물하는 낭만도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아무도 제게 '대체 불가능한 젊은 엘리트'가 되라고 한 적이 없었습니다. 스스로 자처한 이상한 캐릭터입니다.


이 브런치의 주제는 욜로(YOLO)인가요?


슬슬 이 브런치의 방향을 오해하기 좋은 구간인 것 같아 정리해 봅니다. ‘OO 하지 않아도 괜찮아’ 같은 감성 에세이의 메시지를 답습하지 않습니다. 그런 책을 쓴 작가분들은 본업도 하시면서 원고도 쓰고, 출판도 하셨습니다. 정작 본인은 엄청 열심히 사십니다. 저는 책임을 짊어지는 삶이 지속가능한 행복이라 여전히 믿습니다.


그렇다고 할 일 다 하고 취미까지 섭렵하는 초인적인 삶을 설파할 생각도 없습니다. 잠을 줄이지 않으면 불가능하고, 저는 잠을 좋아합니다.


결국 그 사이 어드메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여전히 잘 살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잘'의 기준을 조금 더 내면에서 현명하게 찾는 과정이 담길 것입니다. 샤워할 때 물 온도를 맞추는 일처럼 - 매일 같지는 않지만, 대체로 쾌적한 온도를 찾아갈 겁니다.


누가 읽으면 좋을까요?


굳이 타깃을 정하자면, 이런 분들일지도 모릅니다:

- 열심히 살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행복하지 않다

- 괜찮은 사람이 되려 애쓰지만, 그게 나를 해치는 것 같기도 하다

- 스스로 만든 기준이 얽매는 것 같다

- 아무도 그러라 한 적 없는데 '좋은 사람'이 되려다 더 위축되는 듯하다


그렇다고 힐링을 글의 목적으로 두지 않으려 합니다. 정확히는, 글에 목적을 두지 않으려 합니다. 아직 자기 검열 있는 편이라 '도움 되는 글을 써야 해’ 같은 압박이 생기면 손이 굳습니다. 그래서 그냥 씁니다. 어쩌다 유용하면 좋은 일이고, 읽은 김에 잊히는 글이어도 괜찮습니다.


사실 브런치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작가 신청을 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냥 멀끔하게 생긴 블로그를 찾다 보니 브런치밖에 없었습니다. 티스토리는 UI가 영 불편하고, 네이버블로그는 다들 하라고 해서 싫고(청개구리), 미디엄은 예쁜데 외국 블로그라 한글 폰트가 박살 났습니다.


그래서 초기에 올라오는 글들은 무게감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심사에 보내야 했거든요. 어느 순간 나사가 빠져 보인다면 심사 이후에 쓴 글이라 보시면 됩니다.


그럼 굳이 읽어야 하나요?


설득은 못 하겠습니다. 다만 앞으로 이런 글들을 써볼 생각이니, 참고하셔서 시간을 유용하게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1. Project Unearnest

원래 이름은 ‘탈효율 프로젝트’였지만, 좀 덜 진지하자는 의미를 더 담고 싶어서 Unearnest로 정했습니다. 책임과 자유의 균형을 찾아나가는 성장일지입니다. 일 못 놓는 성격을 탐구해 치료하고,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실험도 해보려 합니다. 꼭 해야 하는 것과 덜 해도 되는 것을 나누는 연습도 담기겠네요.


2. 취미공장

새로운 취미에 도전합니다. 보통의 취미리뷰는 이미 입문을 지난 사람들이 쓰죠. 이 블로그(?)는 그보다 더 초보자의 눈으로 발만 담근 입장에서 느낀 시행착오와 감상, 가이드를 공유합니다. 사진 찍기, 킥복싱, 일본어 배우기, 스쿠버다이빙, 숏스키, 보컬학원, 요리, 커피, 술, 카페투어, 스카이다이빙 등 다양한 테마가 예상됩니다.


3. 에세이

말이 되는 말, 말이 안 되는 말, 떠오른 문장들. 정제되지 않았지만, 낯설지는 않은 글들이 될 겁니다. 고르고 따진 문장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나쁘지 않다면 천천히 읽어주세요.


4. 자산관리

놀든, 일하든, 아프든, 건강하든 — 돈은 필요합니다. 의외로 이 이야기에 주변 반응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하나의 카테고리로 뺐습니다. 종목 추천이나 시황분석은 거의 없을 겁니다. 조금 더 신선한 질문과 답변을 해보려 합니다.


끝으로

제 블로그(이제 당당히 블로그라 합니다)는 입구가 아닌 출구였으면 좋겠습니다. 받아들이기보다 소비해 주세요. 그러다 남은 부스러기가 여러분께 도움이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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