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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효설 Aug 25. 2023

D+33. 모두에게 오타쿠를 권장합니다.

저와 같은 오타쿠가 아니더라도요.

 나는 멍석 말고 패 죽여도 오타쿠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캐릭터 굿즈를 사는, 그 오타쿠 맞다. 물론 캐릭터 베개를 들고 다니며 결혼한다고 외치거나, 공공장소에서 일본어로 시끄럽게 구는 등의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냥 어느 한 작품에 과하게 몰입해 있는, 그런 평범한 오타쿠다.

 오타쿠로 살아온 지 20년이 넘었다. 20대인데 어떻게 20년이 넘어요? 나를 맨 처음 오타쿠로 만든 작품은 '매직키드 마수리'라는 아동 드라마인데, 이 작품은 2002년 대한민국이 붉게 물들었을 때 방영을 시작한 작품으로, 그때 내 나이는……. 아무튼 시중에 나오는 굿즈를 부지런히 모으는 꼬마아이였다. 그때부터 꾸준히 서브컬처에 관심을 갖다가, 본격적으로 덕질을 시작한 건 남들 다 뭐에 홀린다는, 학창 시절부터였다. 그때부터 덕질의 성지라는 트위터를 시작하고, 흔히 2차 창작이라 불리는 저작물의 변형 행위, 쉽게 말해 캐릭터 그림을 그리거나 팬픽을 써보는 행동을 했다. 그 당시 나의 글은 8할이 팬픽이었으니……지금은 모두 비공개 처리해서 가끔씩만 들여다본다.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눈치 보며 캐릭터 굿즈를 사던 학생은 자신의 자취방을 좋아하는 걸로 가득 채우는 성인이 되었다. 나는 장르굿즈보단 담곰이(농담곰)와 먼작귀(치이카와) 굿즈를 왕창 사모으는 편이다. 나의 작은 4평 원룸은 나가노(농담곰과 치이카와의 원작자) 유니버스나 다름없다. 

 꽤 오랜 세월 동안 오타쿠를 했지만 현타를 맞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내 친구들은 자신이 오타쿠인 걸 열심히 숨기더니, 결국 오타쿠는 졸업했다며 현생으로 떠나곤 했다. 20대 초반의 일이었다. 나는 어디로도 떠나지 않고 열심히 덕질을 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도, 그 사람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너무 즐거웠다. 20대 중반을 넘어서니 오히려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생겼다. 몰입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게 좋아 보인다는 이유였다. 너도 하면 되잖아? 이 말엔 모두 고개를 저었다. 덕질할 게 없다는 이유였다. 신기한 답변이었다. 너무 오랜 세월을 오타쿠로 살아왔기 때문일까. 나는 손대는 모든 걸 '덕질'하는 사람이라, 덕질할 게 없어서 고민한 적은 없었다. 뮤지컬 배우를 좋아해 회전문을 돌고, 차(tea)를 좋아해 일본에서도 찻집에 들리고, 아이돌은 당연히 좋아한다. 덕질하기에도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덕질, 오타쿠가 되는 것을 권장하는 편이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돈을 미친 듯이 쓰지 않는 이상 괜찮다는 게 나의 의견이다. 첫 번째로, 덕질을 하면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이는 양날의 검이긴 하지만, 일단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이었기에 말해본다.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을 찾기 위해 돈까지 쓰는 요즘이다. 그런 세상에서 같은 덕질을 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어쩌면 영혼의 단짝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두 번째는 몰입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무언가에 깊이 빠진다는 게 참 어려운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내가 무언가를 깊게 좋아할 수 있다는 건, 거의 행운에 가까운 일이다. 휴대폰을 잠시 끄고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연극을 보는 게 내가 권장하는 덕질 방식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감상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다 보면, 휴대폰을 하는 시간이 더욱 즐거워질 것이다. 세 번째는 무용한 시간을 보낼 줄 알게 된다. 나는 이게 덕질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계발이니, 승진, 이직이니 모두가 경쟁으로 불타오르는 사회에서, 휴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혹시 덕질하다 내가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면 어떡해? 아직 덕질을 덜해봐서 그런다. 막상 덕질할 때는 그런 생각 안 난다. 눈앞의 최애가 멋있고, 새로운 영상이나 인터뷰를 찾아보기 바쁜데 현타 맞을 시간이 어딨나! 그리고 현타 맞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실을 자각해야 인생을 돌아볼 수 있다. 내가 정말 건강한 덕질을 하고 있는지 잠시 생각해 보는 거다. 건강하게 덕질하고 있다면 참회의 시간(?)은 길지 않을 거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덕질할 시간이 어딨냐고 묻는다면 나도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꼭 무언가 하나쯤은 덕질해 보기를 권장한다. 내가 앞서 말한 장점이 아니더라도 다른 장점을 찾아낼 수 있을 거다. 아니, 장점을 만들어내서라도 덕질을 할 거다. 그리고 혹시 아나, 그게 새로운 길이 되어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어줄지. 자, 모두 덕질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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