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던 집 건물 1층에 작은 카페가 생겼다. 간판도 카페 이름도 알 수 없는 5,6평 남짓한 공간, 밖에서도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유리를 통해 매일 집을 오가는 순간마다 카페를 훔쳐보곤 했다. 카페의 주인은 젊은 동양인 남자였다. 대만 사람일까 아니면 일본 사람일까. 스타일로 봐서는 구분이 불가능했다. 내가 아침에 집을 나서는 순간에는 카페는 아직 오픈 전이었다.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올 때 즈음엔 이미 문을 닫은 후였다. 어느 날 조금 늦게 외출을 하던 날에야 문을 연 카페가 보였다. 오전 10시쯤 문을 열어서 오후 4시쯤 문을 닫는 카페인듯했다. 사장님 배짱도 좋으시네, 작은 카페가 운영 시간조차 길지 않고 위치는 대로변에서 걸어서 5분 정도로 가깝긴 해도 약간 주거지역에 숨겨진 느낌인데. 게다가 주말에는 아예 오픈조차 하지 않았다. 학교 수업과 다른 일정들로 바쁜 나는 저 카페에 가볼 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그 주 토요일 오전, 나는 곧 헤어지게 될 남자 친구와 스카이프 통화를 앞두고 있었다. 장거리 연애를 시작한 지 2주째였다. 나는 그에게 일주일 동안 서로 연락하지 말고 우리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그 일주일이 끝나는 토요일에 대화를 나누기로. 사실 그가 떠나면서 이별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는 나를 만나고 나와 사귀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전에 이미 다른 나라로 떠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나라는 복병이 생겼던 것이다. 나는 그걸 다 알면서도 그의 고백을 받아줬고 그러면 이렇게 된 이상 떠나지 말고 나와 함께 이 도시에 남으라고 붙잡지도 않았다. 장거리 연애를 하면 된다고 서로를 위로했지만 처음부터 헤어질 것을 알고 시작한 몇 달간의 짧은 연애기간 동안 나는 그가 내가 기댈 수 있을 만큼 성숙한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만 알게 됐다.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장거리 연애를 이 사람과 할 용기가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일주일간 충분히 마음 정리를 했고 그 역시 그랬으리라 믿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감정이 격해져 할 말을 제대로 못 할까 봐 머릿속으로 차분히 생각한 이별의 이유들을 노트에 적어 내려갔다. 화상통화 이별에도 장점이 있다면 논리 정연하게 적은 노트를 훔쳐보며 그나마 좀 냉정한 척을 할 수 있는 것이려나. 통화하기로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는데 갑자기 인터넷이 말썽이었다. 이 집에 살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이별을 사람 많은 카페에서 해야 하는 건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하는 수 없이 아이패드를 챙겨 집 밖으로 나왔다. 집 근처에 최대한 사람이 없는 카페를 찾아봐야겠다 생각하는 차에 간판 없는 그 작은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토요일은 영업을 안 하는 줄 알았는데 오늘은 문을 연 모양이었다. 다행히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결국 이 카페를 이렇게 와 보는건가.
"請問你們有沒有網絡呢? 저 혹시 와이파이 되나요?"
"有的。네, 됩니다."
"那可不可以點一杯茶嗎?我不能喝咖啡。그럼 차 한잔 주문 가능할까요? 제가 커피를 못 마셔서요."
누가 봐도 커피가 전문인 카페였다. 간판도 화려한 내부 인테리어도 없이 통유리를 통해 환하게 들어오는 자연광과 심플한 디자인의 테이블 의자 세트가 전부인 이 카페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곤 종류별로 다양한 커피콩들과 꽤 전문적이어 보이는 커피머신들 뿐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나는 커피는 고사하고 홍차나 녹차, 심지어는 콜라만 마셔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카페인에 민감하다. 오늘 가게 첫 손님이 나인 것 같은데 커피를 못 마신다는 내가 실망스럽지는 않을까 싶었지만 카페 주인은 별다른 반응 없이 우롱차가 있다고 했다.
유리창 옆 작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곧이어 우롱차가 도착했다. 화상통화는 이미 시작하고 있었다. 차분하게 적어 내려 간 대로 할 말을 다 마치고 결정은 그에게 직접 하라고 했다. 내 얘기를 다 들은 그는 이렇게 끝내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했다. 통화는 4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여름의 연애는 끝나버렸다. 통화를 하는 내내 평정심을 유지했는데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쏟아진 눈물에 내가 더 깜짝 놀랄 정도였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쏟아지는 눈물을 받아내느라 한참을 앉아있었다. 그 작은 카페에서 내가 한 통화 내용, 지금 울고 있는 내 모습까지 카페 주인에게 숨길수 있는 방법은 하나도 없었다. 카페 주인은 내가 부담을 느낄 정도로 가까이에 머물지 않으면서 내가 도움이 필요하면 바로 도와줄 수 있다는 시선을 간간이 느껴지게 했다. 십 분 정도 흘렀을까. 눈물이 어느 정도 그치고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되자마자 나는 눈물자국을 대충 쓱쓱 훔치고 카운터에 계산을 하러 갔다. 생각해보니 우롱차를 입에 대지도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커피를 시킬걸 그랬나. 카페 주인은 말없이 계산을 도와주고 나는 조용히 카페를 빠져나왔다.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는 시선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건 처음이었다.
그날 이후 아주 가끔 그 카페가 열린 시간에 집 밖을 나서거나 돌아오는 순간이 몇 번 있었다. 카페에는 그 새 손님들이 조금씩 늘어갔다. 어느 날 유리창을 통해 카페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나를 기억하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눈빛. 하지만 그의 눈빛엔 동정심도 없었다. 그거면 됐다. 나는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