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죽음은 살아있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에 등장하는 죽음과 신화 속 죽음 그리고 성서 속 죽음

by 찬영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와 '미션 임파서블'의 두 영화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두 영화 모두 2025년까지 계속 계봉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1996년에 1편을 시작으로 2025년까지 8편이 나왔고, '파이널 데스티네이션'도 1편이 2000년도에 개봉하여 현재 6편까지 개봉했다.


톰크루즈의 노화를 고려하면, 매편마다 주인공이 바뀌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시리즈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횟수를 더 앞지를 지도 모르겠다. 물론 톰크루즈도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 하차한다고 하지 않았으니 지켜볼 일이다. AI의 힘을 빌려서 영생할지도 모르니..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이 '미션 임파서블'처럼 매회 폭발적인 흥행을 한 것은 아니다. 2025년작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블러디라인'까지 25년간 6편을 개봉한 것을 보면 그만큼 이 IP가 돈벌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매편마다 이야기의 큰 얽개는 복붙하는 수준이지만, 등장인물들이 다양한 상황에서 예측을 살짝 빗나가는 죽음은 관객들에 무지막지한 자극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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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라인은 정말 간단하다. 주인공이 단체로 어디로 떠나거나 무언가 관람을 한다. 그때 주인공은 잠깐 잠이 들어 꿈속에서 자신과 친구들이 모두 죽는 꿈을 꾼다. 깨어보니 꿈에서 본 똑같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주인공은 급하게 친구들을 데리고 그 현장을 빠져나와 죽음의 위기를 모면한다. 죽음을 모면한 주인공과 친구들은 모두 결국 다양한 방식으로 죽는다.


한 번 죽게 될 운명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리즈마다 어떤 존재가 주인공들을 따라다니는 것처럼 연출된다. 어떤 존재가 한 번 죽음을 피했던 그들에게 끝까지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마치 죽음이라는 존재가 살아있는 존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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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에 인상적인 장면 하나를 소개하면, 2011년에 개봉한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5'에서 (2011) 의 레이저 시력 교정 수술 장면이 있다. 극 중 올리비아는 라식 수술을 받는다. 그녀는 수술 중 작은 사고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컵에 담긴 물이 레이저 기계로 쏟아지고,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켜 그녀의 눈을 고정하는 장치가 풀린다.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된 상태에서 레이저가 계속 작동하며 한쪽 눈을 쏘자 공포에 질려 탈출하려다 창문으로 떨어져 차 위로 추락해서 사망한다.


이런 방식이다. 각자 일상 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공간에서 죽는다. 그때마다 형체를 드러나지 않는 존재가 바람에 커텐이 흔들리는 방식으로 묘사된다. 정말 살아있는 존재가 어떤 전능한 힘을 발위해서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보이지 않는 존재는 대놓고 어떻게든 현장의 사물을 이용해서 그렇게 위험하지 않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선사한다.


현상이 아닌 이런 죽음이라는 존재는 과연 있을까? 죽음을 존재로 그린 것은 오래된 신화에서 등장하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타나토스'라는 죽음의 신이 등장한다. 타나토스는 '죽음' 그 자체를 의인화한 신으로 보통 검은 날개를 달고 차가운 모습으로 묘사되며, 정해진 운명에 따라 목숨을 거두어가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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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에는 '그림 리퍼'가 있다. '그림 리퍼'는 오늘날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검은 망토를 쓰고 큰 낫을 든 해골'의 형상을 한 죽음의 신이다. 14세기 유럽을 휩쓴 흑사병(Black Death) 시기에 등장했다. 죽음이 마치 곡식을 베듯 사람들을 휩쓸어간다는 공포에서 '낫'을 든 농부의 형상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이 존재는 지금까지 여러 게임, 영화, 만화 등에 변형되어 등장한다.


이런 신화나 민간 전설 뿐만 아니라 성경에서는 죽음을 살아있는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 흔히 열성적(?)인 분들이 전도를 위해서 길거리에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칠 때 자주 인용하는 요한계시록에는 세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몸을 가지고 부활해서 살아 생전 했던 행위로 심판을 받아서 천국 또는 지옥에 간다. 그 때 이 '사망'도 그 지옥에 함께 간다고 되어 있다.


심판 이후 등장하는 새로운 땅과 하늘에서 '사망'이 사라지는 은유라고도 이해할 수 있지만, 심판을 받는 사람들과 이 '사망'이 함께 불못(지옥)에 간다고 되어 있으니 '사망'만을 은유로 해석하기는 애매하다. 이 살아있는 존재인 사망은 그럼 태어난 날도 있어야 할 것이다. 구약 성경 로마서에는 사망이 첫번째 사람 아담이 범죄함으로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죄로 인해서 사망이 등장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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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아담이 하나님과의 계약, 즉 선악과를 먹지 않기로 한 약속을 어기면서 죄와 함께 사망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담은 바로 죽지 않았다. 아담은 늙어서 죽어가는 몸이 되었다. 우리의 몸이 노화되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이 이 '사망'이 들어온 이후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죽음은 목숨이 끊어지는 것만을 죽음이라고 하지 않는다. 다시 몸이 부활해서 심판을 받은 다음에 지옥이라는 불못에 가는 두번째 죽음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이블에서 이 '사망'이라는 놈의 진짜 역할은 사고를 가장해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먼저 늙거나 병들어 한 번 죽게 한 다음에 , 다시 심판을 통해서 불못에 들어가는 두번째 죽음을 맞이하게 만드는 거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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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두의권'이라는 만화에서 주인공이 주인공 켄시로가 북두신권으로 상대방의 비수를 찌른 후에 '너는 이미 죽어있다'고 하는 것처럼 이 사망도 우리가 각자 태어나나자마 '너는 이미 죽어있다'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는 듯하다. '죽음(사망)'이라는 놈은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역할을 하고, 그 나쁜 짓의 벌로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것처럼 새로운 하늘과 땅이 등장하기 전에 그 벌로 지옥으로 가는 것이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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