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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패션은 고난일까? 열정일까?

by 찬영

예수의 고난을 다룬 영화 하면 역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다. 벌써 20년 전 영화라니, 시간 참 빠르다. 처음 이 영화 제목을 봤을 때 고개를 갸우뚱했다. 영어가 짧은 탓에 예수님의 고난을 다루는 영화인데 왜 'passion'이 들어가나 싶었던 것이다.


영한사전을 뒤져보니 'the Passion'이 예수의 고난을 뜻하는 명사라는 걸 알았다. 영화는 정말 센세이션이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영화 내내 자막 없이는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영화 전체를 당시 유대 지역에서 사용되던 아람어로 만든 것이었다.


『브레이브 하트』로 아카데미 상까지 받은 멜 깁슨이 '이 사람 좀 독특하구나' 싶었다. 영화의 톤이나 모든 것이 압도적이었다. 내가 다니던 교회에선 영화 상영하는 극장 앞에 가서 전도 책자를 나눠주었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개신교 크리스천 입장에서 중간중간 성경에 나오지 않는 장면들이 등장하는 게 조금 이색적이긴 했다. 왜 저런 장면이 나오는지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로마 병정에게 엄청난 고문을 당하고 끌려간 후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의 피를 닦는 장면은 의아하면서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제목이 예수님의 고난이 아니라 마리아의 열정으로 바꿔야 되는 것 아닌가' 싶은 불경한 생각도 잠깐 들었다. 당시 전도 책자를 나눠줄 수 있을 정도로 예수님의 고난은 정말 직관적으로 전도하기 좋은 소재였다.


이후로 성경을 읽고 여러 분들의 성경 강연과 책을 접하면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비롯한 많은 미디어들이 너무 예수님의 고난만 강조하다 보니 중요한 대목을 조금은 놓친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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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기록한 로마서 3장 22절에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라는 구절이 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의롭게 됐나 보다' 싶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좀 이상했다. 내가 믿은 결과로 인하여 어떻게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의가 미칠 수 있지? 영어 성경이나 다른 번역서를 찾아보니 그 의문이 풀렸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혹은 faith in Jesus Christ)"으로 되어 있는 것이었다. 내가 찾아본 헬라어 원문에도 그렇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그 믿음의 주체는 예수님이었고, 예수님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났다는 것이다. 결국 예수님이 4복음서에 기록된 태어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모든 과정을 예수님은 자신의 믿음으로 이뤘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예수님이 가진 'faith'를 누군가를 믿고 따르는 신앙적인 의미의 '믿음'이라는 단어보다는 그 굳은 믿음에 대한 실천 의지의 의미까지 담긴 '신념'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해 보이기도 한다. 예수님은 구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대로 주어진 길을 가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화해된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예언을 이루신 것이다.


그 신념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났고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는 것이 로마서나 갈라디아서 등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그려지고 있는 고난 이면의, 그 고난을 관통하는 예수님의 신념이 결국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고 죄와 율법에서 해방시킨 게 아닐까 싶다.


그런 맥락으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본다면 좀더 다른 관점에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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