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신뢰"의 결과물
언제부터였을까? 학창시절 백일장에서 상 한 번 못 받아봤던 내가 언제부터 글이 쓰고 싶어졌을까 곰곰이 생각을 해 본다.
태어나자마자 희귀병진단을 받은 둘째와 함께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나를 세상으로부터 단절시켰었다. 누구도 나를 가두지 않았지만 나는 갇혀 있었다. 육체적인 힘듦과 정신적인 힘듦이 내 머리와 마음 속에서 차곡차곡 쌓여 날카로운 화살촉을 만들었고 그 화살들이 날아갈 방향은 언제나 남편이었다. 누구도 내 상황을 이해 못하니 나와 같은 입장의 당신이 당연히 내 말을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화살을 던진 이유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리고는 매번 후회했다.
내 감정을 쏟는 대상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장은 낮이든 밤이든 한시도 둘째에게 눈을 뗄 수 없었고 거의 24시간 붙어있어야 했기에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유일한 거라곤 ‘손 안의 작은세상‘ 핸드폰 뿐이었다. 그렇게 인터넷 세상을 의미없이 매일매일 헤메이다 우연히 알게 된 게 바로 온라인 독서모임이었다.
'아 맞다. 나 예전에 책 좋아했었지!'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희도처럼 책대여점에서 신간소설이 나오면 부리나케 달려가 아줌마에게(백이진 같은 멋진 오빠가 아닌) 1등으로 대여예약을 걸고 설레이며 기다리던 그 시간들, 책을 읽고 있는데도 읽고 싶은 기분으로 가득했던 그 때가 떠올랐다.
꽤 전문적으로 운영이 되던 온라인 독서모임은 자의반 타의반 외따로 지내던 나에게 소속감을 느끼게 해 주었고 새로운 일 하나 없는 내 일상에 흥미와 재미를 찾아주었다. 그렇게 책 읽기에 대한 물꼬를 트고 나서는 그야말로 독서의 세계에 푹 빠지게 되었다. 여러 분야의 책들을 계속 읽어나갔다. 인문학, 철학, 심리학, 경제서, 에세이 등
특히 에세이라는 분야를 접하고 나서는 언젠가 나도 나의 특별한 경험들을 글로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라는 소리도 한 번 들어보고 싶다는 꿈도 꾸었지만 일기나 다이어리 한 번 제대로 써 본적 없던 사람이 갑자기 글을 쓰려고 하니 될 리가 만무했다. 온라인으로 글쓰는 모임을 찾아 조금씩 쓰는 연습을 해 보기로 했다.
호기롭게 시작한 마음과 달리 몇 주 일정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워크샵이 종료되고 나면 남아있는건 중간에 그만 둔 초라한 내 모습뿐이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그 뒤로도 글쓰기 워크샵만 보이면 '해내야 한다'는 게 아닌 '단순히 하고 싶다'는 의지만으로 계속 신청을 했었다. 결과는 역시나 핸드폰 폴더처럼 접혀버린 부끄러운 마음만 남아 있었다. 의지만은 에베레스트보다 높았지만 나의 실행력은 동네 뒷산 정도라는 현실 속 내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시도는 좋았잖아~‘ 라고 하기엔 외벌이였고 자꾸 내 자기계발에 돈을 쓰는 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시점이라 다시 한 번 숙고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나 스스로를 "워~워~" 시켰다.
그렇게 가뭄에 콩 나듯 드문드문 쓰다 말다 반복하고 있던 중 유튜브 '슬기로운 초등생활'의 운영자 이은경 쌤을 만나게 되었다. 9시의 요정 이은경 쌤은 큰 아이의 초등생활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게 해준 나만의 든든한 버팀목 같은 존재였다. 큰 아이 6살 무렵 새로운 곳으로 이사오고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초등입학을 맞이하게 됐을 때 오로지 유튜브 '슬기로운 초등생활과 함께 아이를 키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독서 하셨나요? 운동하셨나요? 칭찬하셨나요? " 이 3가지 인사말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했고 마음이 복잡하고 흔들릴 때마다 은경쌤의 유튜브 영상을 다시보며 마음을 다잡곤 했었다.
그렇게 나에게 "I'm 신뢰에요" 이미지를 듬뿍 심어주셨던 이은경쌤이 이번에는 아이들이 아닌 부모성장을 위해 '브런치프로젝트'를 진행하신다는 것이다. 아묻따 당장 신청하고 싶었지만 "워~워~" 기간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잠시 브레이크를 걸었다. 고민은 잠깐일 뿐 통장계좌 속 금액은 이미 전송이 되었다.
몇 번의 경험으로 나를 어느정도 파악했기에 6주동안 진행되는 과정에서 작가 합격은 욕심이고 그저 숙제만이라도 꼭!꼭! 제출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목표가 심플하니 마음도 편안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 10시 줌을 통해 은경쌤의 "신뢰"와 "긍정"의 에너지를 듬뿍 받은 후 주어진 과제만 집중해서 제출했다. 사실 6주 과정뒤에 브런치작가 도전인 줄 알고 있던 나는 2번째 과제 제출 후 바로 작가 신청을 해야한다는 얘기에 약간 당황하기는 했지만 'Next time'도 함께 해 주실 든든한 은경쌤이 계시니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제출하고 약간의 설레임과 조마조마함이 있었지만 느낌이 좋았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
와~ 작가라니.. 나에게 소중한 글을 기대한다니.. 너무 감격스러웠다.
독서 시작하면서 책에만 빠져 있고 책도 많이 사들이고 하는 나에게 은근 핀잔을 주었던 남편이 합격 소식을 전한 날 사진 하나를 보내왔다.
말로는 한 번도 표현한 적 없지만 매일 뭐하나 궁금했을 남편에게 그래도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게 되어 너무 뿌듯했다. 남편앞에서는 항상 당당한 척만 했었는데 이제서야 비로소 당당해진 것이다.
같은 기수 동기분들의 남편들도 비슷한 희망사항을 얘기하셨다는데 우리 남편도 역시나..
"너 김은희 작가처럼 되는 거야? 내가 글감 많이 물어다 줄께~ 꼭 성공해!!"
성공은 남의 얘기라고만 생각했는데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보니 딱히 내가 안 될 이유도 없는 거 같다. 왜냐면 난 이미 출발점에 서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