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마음 산책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담 Oct 25. 2024

나 아닌 나로 살아가는 느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면요.

"이건 내가 원한 삶일까?"





분명히 나는 오늘도 해야 할 일을 잘 해낼 겁니다. 동료들과 웃고, 대화를 나누고, 문제를 해결하며 바쁘게 살아가겠죠. 그런데 왜일까요?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듯한 이 삶 속에, 나의 중심은 빠져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마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세상을 연기하고 있는 듯한 느낌.



도날드 위니컷은 이 불편한 감각을 '거짓 자아(False Self)'라 불렀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이는 삶이지만, 내면에서는 자신이 진짜 나로 살아가고 있지 않다는 고독한 감정이 존재하는 상태. 위니컷의 말에 따르면, 이는 어쩌면 우리의 아주 어린 시절, 엄마와 처음으로 나눈 상호작용의 기억에서 시작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기의 첫 경험: 나의 세상이 열리던 순간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의 세상은 아직 모호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세상이 명확한 경계로 나뉘지 않은 채, 다양한 감각과 욕구가 떠다니는 바다 같죠. 배가 고프거나 춥다는 신호가 아기의 안에서 솟구쳐 오르면, 엄마는 그 욕구를 마치 주문처럼 알아채고 응답합니다. 배가 고프면 젖이 나타나고, 춥다고 느끼면 세상이 곧바로 따뜻해집니다. 그 순간, 아기는 마치 자신이 세상을 움직이고, 창조하는 힘을 가진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위니컷은 이 환상을 '주관적 전능감(subjective omnipotence)'이라 불렀습니다. 아기는 자신의 욕망이 세상을 바꾸고 움직인다고 믿으며, 그 속에서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느낍니다. 이 믿음 속에서 아기는 처음으로 나라는 존재를 발견하게 됩니다. 나는 나를 표현하고, 세상은 나에게 응답해 주는 곳.









작은 틈새에서 시작되는 자아의 발견



하지만 이 환상이 오래 지속될 수는 없습니다. 엄마도 결국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죠. 처음에는 아기가 원하는 대로 움직였던 세상이 점점 조금씩 느려지고 틀어지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아기가 배고프다고 울어도 젖이 곧바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작은 기다림 속에서 아기는 처음에는 세상에는 나 외에도 다른 사람의 욕구와 리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처음엔 이 틈이 불편하고 좌절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경험이 '진정한 자아(True Self)'가 자라나는 토양이 됩니다. 아기는 이제 자신의 욕구를 타인의 욕구와 맞추어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협력하고 조율하며, 세상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받아들이게 되죠.








거짓 자아의 그림자



그러나 만약 엄마가 아기의 자발성을 지나치게 통제하거나, 아이의 욕구를 무시한 채 자신의 방식으로만 돌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아기는 자신의 진짜 감정을 억누르고, 외부의 기대에 맞추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이렇게 형성된 거짓 자아는, 겉으로는 문제없이 기능하지만 내면 깊숙이 진짜 나로 살아가고 있지 않다는 공허함을 남깁니다.




거짓 자아로 살아가는 사람은 마치 타인의 기대에 맞춘 연극의 주인공처럼 살아갑니다. 일상에서 아무 문제 없이 일을 해내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가끔은 웃기까지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스치죠.


"이건 정말 내가 원한 삶일까?"










치유의 공간: 다시 나를 찾는 여정



위니컷은 우리가 진정한 자아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고 따뜻한 관계 속에서 나의 억눌린 욕구와 감정을 다시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아기 시절의 엄마와 아기가 나눈 순간처럼, 나의 진짜 감정이 받아들여지고 환영받는 경험을 통해 가능합니다.



이 과정은 혼란스럽기도 하고, 불편한 좌절의 경험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는 진짜 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워갑니다.









매일 조금씩 진짜 나로 살아가는 연습



우리 모두 매일 타인의 기대와 나 자신의 욕구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순간들을 맞이합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거짓 자아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진정한 나를 찾는 여정이 언제나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아로 살아가는 것은 완벽한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매일의 작은 선택 속에서, 나의 진짜 감정과 욕구에 조금씩 더 가까워지는 연습입니다.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나에게 가장 진실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답하는 것입니다.



위니컷이 말한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처럼, 우리는 서로의 자아를 발견하고 돌보는 과정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결국 진짜 나로 살아가는 것은 매 순간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여정입니다.





"오늘은 당신의 내면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나요?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














#도널드 위니컷

#거짓 자아

#참 자아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