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나는 오늘도 마음을 걷는다.

by 연담

푸릇한 소녀 시절, 내 시선을 오래 붙잡아두던 문장이 있었다.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묻힐 뿐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나는 그 문장을 너무 이르게 만났고, 너무 이르게 의문을 품었다.

감정이란 왜 사라지지 않는가.

왜 말하지 못한 마음은 평생 그림자처럼 붙어다니는가.


그 질문은 해마다 모양을 바꾸어 나를 찾아왔다.

열두 번도 넘는 하루 속에서,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

나는 그 의문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붙들린 사람처럼

그 질문의 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사라지고 질문만 남아 있었다.


그 질문을 품고 걷기 시작했을 때,

길은 내게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다.

멀고 깊은 곳으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기게 하는 길.

정신의 작용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길'의 형식으로 다가왔다.

걷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멈추면 다시 들리지 않는 길이었다.


그 길의 한가운데에는 진료실이 있었다.

작고 침착한 방이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하나의 우주가 펼쳐졌다.

창문 틈으로 들어온 빛이 바닥에 가라앉은 오후,

말하기 전 떨리는 손끝,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숨을 고르는 순간들.


그 작은 움직임들 속에서

나는 말보다 먼저 태어나는 감정들을 보았다.

말이 닿지 못해 남겨진 층위들,

말해지지 않았기에 오히려 더 선명한 진실들,

그리고 사람을 이루는 가장 오래된 흔적들을.


그곳은 때로는 볕이 깔린 들판처럼 따뜻했다가,

때로는 어둠이 내려앉은 골짜기처럼 깊었다.

어떤 날은 작은 돌멩이 하나도 울림이 되었고,

어떤 날은 침묵이 방 안을 가득 채운 호흡이 되었다.

나는 그 방에서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고,

어떤 순간에 빛을 받고

어떤 순간에 그늘을 찾는지를 보았다.


프로이트, 융, 라캉, 비온, 말러, 위니콧, 아들러, 클라인, 프롬...

그들의 이름을 지금도 처음 부르듯 느리게 발음해 본다.

아, 지그문트, 지기-

햇빛보다 눈부시고, 그늘보다 깊은 사람들.

나는 왜 유독 그들의 글에 끌렸던가.

아마도 그들은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언어로 붙잡으려 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매거진은 그런 시도들에 대한 기록이다.

감정이 말이 얻기 전의 풍경,

사람이 자기 마음을 알아차리기 훨씬 이전의 순간들,

말할 수 없는 침묵 속에서

이미 전해지고 있던 진실들에 대한 기록.


나는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느낀 것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첫 환자와 마주한 날,

나는 분명히 알았다.

말보다 먼저, 우리는 서로를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그 느껴지는 결 속에서

새로운 생이 깨어나고,

오래된 절망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불가능해 보이던 평온이

아주 천천히 스며든다는 것을.


프로이트가 언어로 붙잡으려 했던 것들 역시

결국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것들이 아니었을까.


그러므로 이 매거진은

우리가 알고 있지만 말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여행기다.

그 여행은 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쉼 없이 이어져 왔다.


열일곱, 프로이트를 처음 읽고

마음이 한없이 흔들리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오늘도

우리들의 마음을 걷는다.


그 걸음걸음에,

정신분석과 뇌과학,

그리고 마음에 관한

모든 글들이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