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천주교 #불교 #과학
아빠는 독실한 불교신자로 스님이 되고 싶었다고 했고 엄마는 신심 가득한 천주교 신자로 수녀가 되고 싶었다 했다. 스님이 되고 싶었던 남자와 수녀가 되고 싶었던 여자가 만나 나와 내 동생이 태어났다.
나는 엄마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2학년 때 성당을 열심히 다녔다. 그러다가 나의 게으름과 함께 아빠의 탐탁치 않은 눈초리에 세례를 받지 못하고 그만뒀다. 당시 친했던 친구 한 명은 성당에서 복사를 했었는데, 복사 옷을 입고 신부님 옆에 서 있는 모습이 참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성당 다니는 횟수가 줄다가 흐지 부지 되고 결국엔 성당에 발길을 끊었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교생실습을 나온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선생님은 나와 성만 다르고 이름이 같았다. 어린 마음에 그 선생님을 많이 따랐는데, 그분이 우리 집 근처 큰 교회 주일 학교 선생님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당장 내 친구와 함께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교회에서 교리 공부 때 불교는 나쁜 종교라고 설명하는 걸 듣고 어린 마음에 나는 과연 이 종교가 맞는 것인가 하는 인생의 종교방황기를 가졌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 아빠가 믿는 불교를 지금 나쁜 종교라고 한다고?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곧 교회에도 등을 돌렸다.
한참의 종교 휴지기를 지나 대학교 시절, 인생의 방황기에 아빠의 권유로 일주일 송광사 템플스테이를 하게 되었다. 일주일 동안 새벽 4시에 일어나 108배를 하고 묵언수행을 했다. 그 당시 마음이 힘들어서인지 몸이 힘든 것 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망의 템플 스테이 마지막 날, 밤새 1080배를 완수하고 향으로 내 손목을 살짝 지지는 과정을 거친 후 반야행이라는 법명을 얻었다. 그때부터 나는 아빠가 사주신 108배를 위한 쿠션을 집에 두고 마음이 복잡할 때는 108배를 했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 살만 해 졌을 즈음 108배 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그 쿠션은 낮 잠잘 때 쓰는 용도로 쓰이게 되었다.
그 후 십 오년이 지나 우리 집은 아빠의 퇴직으로 엄마의 세력이 확장했다. 엄마는 당당하게 성당을 다시 다니겠다고 아빠에게 선언하고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의 삶을 시작하셨다. 이런 엄마의 설득으로 나는 다시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고, 결국 스텔라라는 세례명을 얻었다.
이 모든 종교 섭렵기를 거친 덕분에 나의 자취방에는 법구경의 문구가 담긴 패브릭 포스터와 예수의 십자가가 벽에 함께 걸려있으며 성모상이 지켜보고 있는 성스러운 종교 대통합의 공간이 되었다.
나는 이렇게 엄마 아빠의 종교 세력 싸움에 이리저리 휩쓸렸지만 약학을 전공한 내 남동생에겐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자 이데올로기, 종교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과학이었다. 동생은 교회, 절, 또는 성당 따위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 학창 시절을 지냈다. 대학교를 입학 한 후는 더욱더 과학을 신봉하여 신앙생활로 얼룩진 중세시대의 우리 집을 개혁하기 위해 힘썼다.
부모님은 나이 들수록 부처님 예수님과 함께 건강에 좋다는 건 다 믿었는데 그들의 모든 유사 과학 정보에 동생은 코웃음을 치며 “그거 다 거짓이에요. 병원에 가세요.” 라고 씨니컬 하게 말한다. 모든 병은 유전적 영향이 크며, 그 소소한 비타민 따위로 병을 예방할 수 없다며 비타민을 추천해 달라는 우리 엄마의 말을 끊는다. 나는 엄마가 보내준 모든 영양제를 챙겨 먹느라 배가 부른데 동생은 그런 것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며 영양제를 보내주겠다는 엄마의 말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엄마도 가족 단톡방에 올리던 건강 정보를 내 동생의 핀잔 덕에 올리는 횟수가 점점 줄더니 요즘엔 그만 두셨다. 아빠도 건강에 이게 좋다던데, 라고 말을 꺼내다가 내 동생의 건강에 대한 직언에 이제는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으신다.
그러고 보면 우리 집 종교 전쟁의 승자는 결국 내 동생이 아닐까 싶다. 과학적이지 않은 것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 동생에 항상 감탄한다. 덕분에 우리 집은 근현대시대로 들어서서 서로의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다.
이런 당찬 내 동생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예수님 부처님 성모마리아님 당신들은 과학을 이길 수 없었네요, (종교 대 통합의 내 자취방에 과학 전문 서적을 꽂으며)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아멘, 과학이여 흥하라!